
1938년 중일전쟁 당시
대부분 알겠지만 당시 국민당군은 일본에게 줘 털리고 있었다.
쉬저우를 점령한 일본은 중국군을 추격하였고
일본군 상부에서는 적당히 후퇴하라 했지만
상부의 명령을 씹고 중국군을 추격하였다
6월 카이펑을 방어하기위해 란펑현에서 일본군 14사단과 전투하지만 결국 6월 6일 카이펑이 점령되고 만다.
역시 다음 목표는 일본군들이 장저우를 공격하려고 진격을 하였다


결국 장제스는 장저우를 잃을수 없어
화위안커우 진에 있는 황하의 남쪽 제방을 폭파해 물길을 바꿔 버려 홍수를 일으킴.
황허강의 규모는 꽤나 큰편이라
일본군 14사단과 16사단이 휩쓸리고
4만 3000명의 병력을 잃었고
중국군은 5~6만의 병력을 잃었다함
(교환비가 구져보이지만 일본군 15000명에게 수십만 대군이 개털린적이 있는거 생각하면 나쁘지 않음)
하지만 인근 주민들에게 통보를 안한 탓에
무려 89만명이 사망하고 125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함


이재민들의 사진

황허강에 포격을 한 일본군

침수된 지역을 건너는 일본군

황허강 방을 무너뜨린후 황허강 물줄기의 변화





이후 홍수로 농경지 3분의 2가 파괴되어서
1942년 허난 대기근으로 300만명이 아사했다고 함

괴벨스는 이 제방 폭파를 두고
"게르니카(스페인내전 폭격)과 비교할수 없는 악행"이라 비판했다함

당시 주중 독일군사 고문단 팔켄하우젠이 중일전쟁당시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동맹국인 일본으로 인해 군사고문단을 벼르고 있던 독일은
군사고문단장이 끝까지 남겠다고 했지만 결국 본국으로 철수시켰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