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4년 9월, 한반도 중부에는 유례없는 폭우로 사망자 200여명, 재산피해 2500억, 이재민 23만명이 발생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폭우로 물에 잠겨버린 서울)
이것을 보고있던 북한은...
에... 그러니까 우리 남쪽 동무들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우리 공화국이
쌀 5만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톤에 의약품까지 보내주갔시오.
(ㅋㅋㅋ 받으면 거지인증인데 받갔어?)
(노영신 당시 안기부장)
잠시만요 가카근데 우리가 급하니까 9월안에 꼭 좀 보내주십쇼
또 사고쳤냐?
그렇게 중국한테도 구걸하고, 전 지역의 쌀과 군량미도 털어제끼고, 공장도 밤새워 돌려서 가까스로 물량을 맞춰 9/29~10/4에 걸쳐서 전달되고
그렇게 남한에서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전자제품, 시계, 양복지등을 채워넣은 선물상자들을 들려보냈는데 당시 북한이 보낸 구호물자 금액의 100배에 달하는 액수였다.
- 요약 -
1. 한반도에 폭우로 남한이 피해를 입자 지들도 피해입었으면서 쎈척하려던 북한이 물자 지원하겠다고 큰소리침
2. 원래는 거절하는게 관례였는데 ㅈ되보라는 심정으로 남한이 달라고 함.
3. 입은 북한이 털었는데 비용은 중국이 다 대고 어찌저찌 겨우 수량 맞춰보냄
4. 이에 남한에서는 물자갖고 온 근로자들한테 구호물품 가격의 100배정도되는 선물뿌림.
5. 선물 전량 압수엔딩.
후일담
1. 구호물자 싣고오던 배가 침몰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북한이 불쌍했던 남한에서는 '받은 셈 치겠다' 고 해서 넘어갔다.
2. 쌀의 품질은 오락가락 해서 어떤 사람은 밥해먹고 어떤 사람들은 밥 하긴 그래서 떡을 해먹었으며 실향민들은 이 쌀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3. 시멘트는 품질이 하도 안좋아서 재가공을 해서 썼고, 옷감은 비날론같은 질 나쁜걸 줘서 옷만드는데 쓰지도 못했다고 한다.
4. 당시 선물상자 받았던 북한 근로자중 한명은 당국에 압수당하자 '서독제나 일본제로 주지'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5. 그래도 어찌저찌 물자를 보낸게 계기가 되어 훗날 이산가족 상봉으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