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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징은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핫초코를 한 모금 넘기고 잔을 내려놓았다. 진한 단맛이 혀뿌리를 자극했다.

“왜 보자고 했어?”

남망기는 강징의 물음에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이고는 대답했다.

“위영의 친척을 만났어.”

“…….”

예상치 못한 말은 아니었지만 막상 들으니 속이 뒤집어지는 것도 같아 강징은 인상을 찡그렸다.

“언제?”

“저번주에. 별다른 수확은 없었어.”

“그래, 그랬겠지.”

8년 전, 위무선은 사라졌다. 모든 것을 남기고 사라졌다. 오랜시간 돌아오지 않길래 나가보았더니 자리는 비어있었다. 오겠거니, 하고 기다렸지만 발인 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지에 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화가 났다. 그리고는 걱정이 되었다. 이럴 애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자 위무선이 큰 사고를 당했고 의식을 되찾자마자 바로 움직였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무슨 일이 생긴줄 알고 병원부터 집까지 모든 길을 뒤졌다. 탈이 났는지, 또 안좋은 일을 당했는지, 불안감에 며칠동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실종신고도 소용 없었다. 위무선은 말 그대로 증발했다.

사라질 거면 제 흔적일랑 다 지우고 사라지지. 강징은 위무선만 없는 위무선의 흔적 더미에서 허우적댔다.

처음에는 온갖곳을 헤집고 다녔다. 집 주변부터 학교는 물론이고 자주 가던 곳은 모두 찾았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그때의 강징은 정신이 나간것 같았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작은 바스락 소리에도 반응하며 위무선을 찾았다.

남망기는 자신을 찾아온 강만음에 얼떨떨해 했지만, 위무선이 사라졌다는 말에 집안의 도움을 받아 사람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 한 살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위무선은 모든 추적을 따돌린듯 행적을 밟히는 법이 없었다. 위무선이 철저하게 숨을수록 강징의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강징은 언제나 위무선이 자신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반대로 굳이 떠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위무선이 떠나지 않게 하는 것에 급급해, 정작 위무선이 떠날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해놓지 않은 것이다. 그랬기에 더더욱 강징은 위무선이 떠난 것이 아니라 사고를 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위무선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알게된 ‘다른 사람들이 아는 위무선’은 ‘자신이 아는 위무선’과는 다른 인물 같았다.

'위무선 괜찮은 애지. 근데 좀 곁을 안 주는 느낌?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애가 있었나?'

'위무선 진짜 다정한데 거리가 좀 있지. 다른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기는 하는데…….'

'맞아, 뭐 물어보거나 그러면 다 알려주는데, 좀 사적인 얘기하면 자기 얘기는 안하더라.'

'개인적으로 연락하거나 얘기해본 적이 없어서……. 아마 다들 비슷할걸.'

'예대에 남망기랑 좀 친하다 그러지 않았나?'

'아 맞아, 남망기 아니면 OO대에 친구 있다고 들었는데. 걔가 우리 학교보다 그 학교 앞에서 잘 보이지 않았나.'

강징이 아는 한 위무선은 만인에게 친절하고 모두에게 다정한 사교적이었다. 그랬기에 저에게 답싹 안겨올 때마다 특별한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무선형? 네가 제일 잘 알걸? 그 형이 너한테 엄청 약하잖아.'

'와, 맞아 그 형 네가 입 댄건 잘만 먹더라.'

'맞아 술잔 돌리기 엄청 싫어하면서 강만음 네건 잘만 쓰더라.'

'가족이라 그런가? 그 형한테 뭐 부탁할거 있을때 강만음 이름 대면 진짜 만사형통.'

모른다. 강징은 위무선에게 허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허들이 저에게만 한없이 낮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마지막으로 남망기를 찾아가 위무선이 사라졌다며, 연락 받은 것 있냐 물었을 때 남망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한테 연락한거 없으면, 아무도 모를거야.'

남망기의 자본은 강징이 알아볼 수 있는 것보다 범위를 확장시켜주긴 했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위무선의 현재가 아닌 과거 뿐이었다. 위무선의 과거는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위무선이 제게 남긴 사과가 무슨 뜻인지 알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네 탓이 아니라는 한 마디만 해줄걸 하는 후회가 남았다.

"그래도 위영이 한국에 있는 건 맞는 것 같아."

"아직도 찾고있는거야?"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8년이야. 이제 그만할 때도 됐지."

"음."

강징의 눈가엔 피로가 가득했다. 남망기는 잠시 찻잔을 바라보다 들어올려 한 모금 넘겼다.

"그래."

"……."

남망기의 담담한 말에 강징은 인상을 찡그렸다. 다 아는 것 같은 어투에 결국 숨기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다.

"집을, 못 비우겠어."

"음."

"그 안에 있는건 진작에 다 내다버렸는데. 벗어날 수가 없어."

학교를 졸업할 때 쯤의 강징은 악에 받쳐있었다. 오랜 그리움은 그보다 더 오래된 첫사랑만큼 습관처럼 굳어져 감정의 기반이 되었고, 그 위에는 증오만이 드러났다. 위무선의 얘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를 드러냈고 오피스텔에 있던 위무선의 흔적을 죄다 내다버렸다.

우자연은 그런 막내 아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어릴때 소심하고 순하던 기질은 어디 갔는지, 위무선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쫓는 모습은 정상이라 보기에는 힘들었다. 그나마 처음 찾으려 애를 쓸 때는 정상이었다는듯, 애정에서 기반한 분노는 강징을 야차처럼 보이게 했다. 핏발 선 눈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 할 때는 사업을 하며 이런저런 인간군상을 본 우자연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본가에 있는 것은 강염리의 만류에 차마 손대지 못했지만, 제 손이 닿는 곳에 있는 것 중 위무선이 떠오를만한 것은 전부 쓸어담았다. 위무선이 없는 동안 강징이 하도 쓰다듬고 들여다보아 이제는 옅은 냄새마저도 다 날아가버린 물건들이었다. 추억을 곱씹을 수 없게 되고 부여잡고 있을 것이 사라지자 속이 허함을 느꼈다. 끼니를 걸러왔던 것이 무색하게 미련할만큼 속을 채워넣던 강징은 그제서야 위무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위무선은 외로움과 불안을 그렇게 채워넣었던 것이다. 제가 위무선이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이라 느꼈던 불안처럼, 위무선은 언제든지 제 곁을 떠나야할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손톱만큼의 이해는 강징이 괜찮은것처럼 연기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남망기는 강징이 위무선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든지 언제나 묵묵히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대해 강징이 물어보았을 때, 남망기는 대답했다.

'위영이 네 얘기를 많이 했어.'

강징은 위무선이 제 성질머리에 대해 남망기에게 하도 말해 그정도로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남망기는 강징이 잘못 이해한 것을 알았지만, 친구의 고백을 대신 해 줄만큼 생각없지 않았기에 그 오해를 그냥 두었다. 남망기가 강징의 태도에 질색하지 않는 것은 그저 위무선이 그만큼 강징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남잠, 너는 너무 담담해. 강징처럼 놀리는 맛이 없어.
남잠, 너 그렇게 짜증낼 때 강징처럼 여기가 찡그려져.
남잠, 강징 어때? 아니야. 생각해본 적 없으면 앞으로도 생각하지마.
남잠, 강징 너무 귀엽지 않아?

위영, 그냥 강만음한테 고백을 해.
안돼. 남잠, 이건 다 비밀이야. 강징은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야지.

남망기는 위무선을 이해했으나, 위무선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위무선이 사라지고 강징은 좋은 사람은 커녕, 그냥 사람도 곁에 두지 못했다.

그래도 강징은 이제 괜찮아 보였다. 취직도 금방 해 제 몫의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었으며, 더이상 위무선의 이름에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강징이 포기하고 담담해졌다 여겼다. 애초에 강징이 위무선에게 분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남망기는 강징이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딘가 위태로워보여 가끔씩 위무선의 핑계를 대며 이렇게 상태를 살피고는 했다.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위영을 찾으면, 어떡할거야?"

"모르겠어."

"음."

“처음에는 되돌려놓으려 했지. 그러고 나서는 찾아서 죽여버리려 했어.”

“음.”

"이제는 그냥……. 한 번만 보고싶어."

"……."

"너무……, 너무 보고싶어."

아. 남망기는 그제서야 강만음의 어디가 이상했던건지 깨달았다.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위무선을 찾아다니고 실망하고 그 외로움을 알게되었을 때도, 위무선을 원망하던 순간에도. 강징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강징의 모습은 어른스러워진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던 것 뿐이라는 것을 남망기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강징은 숨기는 것에 능숙했다. 늘 들킬까 마음을 졸이는 것에 비례하여 위무선에 대한 제 마음을 숨겼다. 그런 강징에게 위무선이 사라진 것은 변수였다. 모든 것을 망각하고 그 뒤를 쫓을만큼 위무선의 상실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 상실의 시간이 길어지고 익숙해지면서 강징은 습관처럼 다시 숨기기 시작했다. 가족의 실종을 걱정하는 척, 거둬준 은혜를 배신한 것에 대해 분노한 척, 더이상 지나간 인연을 찾지 않는 척하며 위무선을 향한 제 집착을 숨겼다.

"……이만 일어나야겠다. 내일 출장이 있어."

"그래. 잘 다녀와."

남망기는 강징이 떠난 후 책을 읽다 빗소리에 밖을 내다보았다. 갑작스레 온 비에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통유리창에 부딪칠 것처럼 가까이 지나가는 우산에는 요즘 유행하는 초록 연잎 위에 발도리를 하고 앉아있는 연보라 색의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길고 새침하게 그려진 고양이의 눈매가 강만음을 닮은것 같았다.






나 근데 진짜 걍 얘네가 현대에서 오지게 사랑하는거 보고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됐지




만수무강 무선강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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