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시절인 936년, 태조는 강릉에 강릉부 객사인 임영관을 설립한다. 수없이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임영관은 세월의 풍파속에 존재 자체가 사라졌지만 그 세월의 풍파를 견뎌가며 꾸준히 강릉을 지켜오던 문 하나가 존재한다.
강릉 임영관 삼문.
936년 태조가 임영관을 새울때 임영관의 정문역할을 하도록 새운 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21세기에 임영관이 복원되기 전까지는 임영관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매우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건 대다수의 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정확히 어느시기에 지어졌는지는 여러모로 의견이 갈린다.
1. 936년설
936년에 지어진 문을 수리만 거쳐 현재까지 전해왔다는 설. 다만 임영관 삼문의 건축양식이 매우 오래된 양식이라는 사실은 맞지만 그 양식이 고려초까지 올라가는 양식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는 그리 많지 않아서 주류설은 아니다.
2. 조선초기 설
한때 나름대로 유력했던 설. 양식적으로 봤을때 이 건축물이 고려시대까지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설이었다.
3. 고려후기 설
현재의 다수설. 1366년 공민왕이 친필로 임영관의 판액을 하사했다는 기록과 아직도 남아있는 판액의 존재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설이다.
이렇듯 지어진 시기는 여러모로 의문이 많이 드는 건축물이지만 적어도 6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강릉을 지켜온 이 외로운 문은 1962년 국보 제 5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