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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연관글

 

 

시작에 앞서, 이것은 진짜로 존나 지루하고 개 재미없을 정신분석&심리학 이야기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등장인물’에 대해 추측하고자 하는 글이다

 

전에 올렸던 것처럼 이번에도 1부와 2부로 나눠서 올릴 것이다

 

그러니 이런 쪽을 싫어한다면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뒤로가기를 누르면 되겠다

 

그래도 뭐 하나 보아주고자 한다면, 이번에도 다음에 올릴 2부만 읽으면 되겠다

 

 

저번에 그랬듯 지금 올리는 1부는 2부의 생각 전개를 위한 정신분석&심리학 설명밖에 없다

 

내용 상 보아줄 사람들이 적더라도, 그들을 위한 참고점을 마련하고자 정리했다

 

 

 


 

 

어떤 솦붕이가 중국 시키칸이 분석한 만성쇼크를 간략하게 번역해서 올려주었다

 

 

생각할 거리를 주는 흥미로운 내용이니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저 중국 시키칸의 분석에 대해 약간 첨언하자면,

 

철학이란 세상 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보편타당한 해석을 내리기 위해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철학적’으로 분석하게 되면 ‘그 녀석’에 대해 좋은 소리가 나오기 힘들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철학적’으로 ‘그 녀석’을 ‘분석’하는 것은 다소 깔끔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벌이는 행동이 보편정의와는 거리가 먼 데다,

 

알려지지 않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모종의 목표를 위해

 

주변(자신 포함)을 파멸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녀석’을 파악하려면 철학으론 뭔가 부족해진다

 

‘본질에 대한 해석’보다는 ‘특정 행동을 하게 된 과정과 동기’를 파악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동’과 ‘과정’을 파악할 다른 잣대를 가지고 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신분석’과 ‘심리학’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한 인물의 ‘심리적 과정’이 ‘행동’에 어떤 동기를 부여하는지,

 

그리고 그 둘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지,

 

대략적이나마 추측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신분석

 

 

프로이트가 처음 문고리를 열어젖힌 이래 수많은 정신분석의 잣대들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 다루고자 하는 부분은 새로운 것도, 생소한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지난 서사의 ‘근원’으로 돌아갈 뿐이다

 

현실에선 퇴물이 된 지 오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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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단계’로 대표되는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이다

 

 

 


 

 

상상과 상징,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의 실제

 

 

 

라캉은 인간 정신을 세 종류의 계(界)로 나누었다

 

상상계, 상징계, 실제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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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계’는 개인의 주체적 영역이다

 

그리고 그 개인이 세계를 인식하는 기반이 되는 곳이다

 

즉, 개인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부분인 것이다

 

상상계라는 근원에서 개인은 세계를 각각의 ‘이미지’로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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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계’는 세상이다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이자 현실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준엄한 ‘현실’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실’인 상징계는 ‘개인’인 상상계에 일방적인 우위관계를 점하고 있다

 

상상계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미지’에 상징계는 ‘의미’를 부여한다

 

 

‘네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러하니까 너도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

 

 

상상계는 ‘현실적 문제’ 때문에 상징계의 압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고분고분한 것은 아니다

 

상상계는 이러한 종속관계에 불만이 많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싶은데 현실은 안 그래’

 

 

이렇게 발생한 불만족은 감정적 결여, 불안감으로 발현된다

 

그런 결여와 불안은 불쾌한 것으로서 완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과 ‘세상’ 사이의 안정적인 합일의 지점을 추구하게 된다

 

‘내가 생각한 대로 행하지 못한 것을 실천하고 싶다’

 

이것이 ‘욕망’이다

 

욕망을 통해 개인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개인과 세상 사이의 괴리감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욕망이란 것은 시시각각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욕망의 완전한 충족이란 불가능한 것이 된다

 

여기에서 인간은 좌절감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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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좌절 속에서 ‘세상’의 ‘개인’에 대한 절대성이 금이 가게 된다

 

 

‘하란대로 해봤자 제대로 돌아가는 건 뭐 하나도 없고 보람도 없어’

 

 

이렇게 상징계의 상상계에 대한 이미지의 의미화가 실패하는 곳,

 

상상계가 상징계에 의구심을 품고 의심하게 되는 곳,

 

그 지점이 ‘실제계’이다

 

실제계의 위치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아직까지도 열심히 라캉을 붙들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실제계를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의 어딘가라고 해석한다

 

상상계가 욕망을 투영하지만 상징계의 의미화론 충족이 안 되는 지점

 

그 곳이 실제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과 좌절, 의심이 뒤섞인 곳인 이 실제계는 곧 ‘삶’이 된다

 

 

 


 

 

거울단계

 

 

 

위의 세 가지 계(界) 이야기를 성장하는 아이의 과정에 비유한 것이 ‘거울단계’이다

 

 

상상계는 상징계가 제공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투영하고 맞추고자 한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유동적인 것이기에 투영하고 맞추고자 하는 욕망은 충족이 불가능하다

 

의미화를 통해 인식한 이미지는 불완전하며 결여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좌절을 겪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에 대한 인식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중간 유도단계가 ‘환상’이다

 

완전하고 전체적인 이상으로서의 환상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의미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미지의 형태를 축적시킨다

 

이로서 ‘환상’은 인간이 파편화된 인식을 넘어 하나의 ‘존재’가 되었다고 느끼게 한다

 

그 느낌으로서 형성되고 내재화된 상상계의 기반을 ‘자아’라 한다

 

이 ‘자아’를 통해 상상계는 상징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 꼬부랑 소리에서 ‘용어’를 바꿔 써서 다시금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상상계는 아이, 상징계는 거울, 이미지는 거울 속 모습, 환상은 어머니이다

 

 

한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아직 완전히 잘 통제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일단은 ‘신경적 느낌’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가누고 감각을 느낀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신체 인식’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신경의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개별 신체부위의 인식’에 대한 모음, 즉 ‘파편화된 신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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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거울이 있다

 

아이는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에는 한 모습이 비친다

 

그 앞에서 아이가 손을 들어본다

 

거울 속의 모습이 손을 든다

 

아이가 발을 들어본다

 

거울 속의 모습이 발을 든다

 

아이는 깨달았다

 

거울 속의 존재는 자기 자신이다

 

이제 아이는 ‘파편화된 자신’이 아닌

 

‘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에 아이는 도취된다

 

‘완전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다

 

이제 그 ‘완전한 자신’과 신경으로 움직이는 ‘자신’을 일치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무언가 괴리감이 있다

 

나는 내 몸을 가누는 게 완전하지 못한데

 

저 거울 안의 나는 그런 것 없이 완벽하게 몸을 가누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 완벽한 거울 속의 몸놀림을 그대로 따라하고 싶어 몸을 움직이면

 

거울 속의 자신은 ‘가만히 그 모습대로 있어주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마치 따라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에 자신을 맞추기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아이는 좌절하게 된다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다가가 거울과 거울 속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전히 납득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설명은 도움이 된다

 

아이는 자신과 거울 속 모습 간의 괴리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이 앞에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주며 아이가 따라할 수 있게 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자신의 몸과 움직임을 이해한다

 

그렇게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이러한 과정이 누적되며 아이는 자아를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

 

 

이 비유적 이야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울단계’이다

 

 

 


 

 

죽음과 삶의 충동

 

 

 

거울단계를 통해 인간은 자아를 형성하고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개인과 세상 간에는 우열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의 영향 아래 종속된 위치의 인간은 그 관계 속에 불만족을 느끼게 된다

 

이 불만족에 따른 심리적 결여를 ‘욕망’이라는 세상과의 안정적 합일을 통해 채우고자 하지만,

 

욕망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에 충족이 불가능하므로 좌절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인의 주체대로 세상을 인식 가능한 존재’로서 세계와 완전한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

 

더 정확히는, 개인의 주체대로 세상을 인식할 수 없으며, 그런 존재가 될 수도 없다

 

개인과 세계 간의 완전한 합일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의 완전한 충족을 의미한다

 

그리고 욕망의 완전한 충족은 욕망의 소멸로 이어진다

 

욕망의 소멸은 실제계의 소멸로 이어진다

 

실제계는 함은 세상의 개인에 대한 의미화가 실패하고 개인은 세상을 의심하는 지점이다

 

그런 실제계가 소멸된다는 것은

 

세상과 개인 간의 관계에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어지고,

 

그 불만에 따르는 공허감을 느낄 필요도 없는,

 

아무것도 의심하거나 생각할 필요도 없는 상태로 되는 것,

 

즉, ‘삶’의 소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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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삶의 소멸은 곧 죽음이다

 

선뜻 죽음을 선택하기란 가능하지도 않고,

 

선택 가능하다 하더라도 최대한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완전함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미화’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불만족하고 결여감을 느낀다 하더라도 욕망 속에서 완전함을 추구할 뿐,

 

내심 욕망의 완전한 소멸까지는 바라지 않는 상태가 인간의 심리적 방어기제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회 속에서 어떠한 일이 발생하면,

 

개인의 주체대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완전함’을 추구하는 대신

 

개인의 주체성을 ‘적당히’ 포기하고 현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에 맞춰서 ‘적당히’ 살아가고자 하게 된다

 

그러므로 개인은 주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가 될 수 없으며,

 

주체적 개인으로서 세계와 완전한 합일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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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인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타자 또는 현실이란 있을 수 없다

 

개인은 불만스러운 현실에 종속되어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개인은 스스로가 세상 속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거울단계 속에서 환상을 통해 형성된 각각의 개인이라는 ‘존재’가

 

실제론 그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종속되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자신의 환상과 자아가 무력한 것임을 깨닫는 이 ‘환상 가로지르기’의 상황 속에서,

 

인간은 서로 다른 두 가지 방향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역사의 흐름 속에 종속된 개인은 진정한 ‘선택’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를 선택한다고 ‘믿게’ 된다

 

인간이라는 미약한 존재이기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애처로운 발버둥으로서의 ‘믿음’을 ‘증상’이라고 한다

 

증상은 곧 ‘삶을 향한 충동’이자, 죽음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의지이다

 

 

이러한 ‘증상’과는 반대로, ‘존재로서 역사의 흐름 속에 종속되기’를 거부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아님’으로서 ‘존재’를 벗어던지고, 욕망과 쾌락을 ‘추구함’을 넘어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욕망의 충족은 삶의 소멸, 즉 죽음이다

 

이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를 ‘주이상스’라 한다

 

주이상스는 곧 ‘죽음을 향한 충동’이자 세상과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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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상반되는 삶과 죽음의 충동 사이에서 인간은 끊임없는 고통과 부조리를 겪게 된다

 

그 과정에서 주이상스가 증상을 압도하게 된다면,

 

현실과 개인의 충돌에 따르는 고통을 회피하는데 몰두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말초적 쾌락을 추구하는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적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정신질환’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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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증상이 주이상스를 압도하게 된다면,

 

그것은 ‘환상 가로지르기’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인식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것도 아님’으로서의 공허함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이 역사의 흐름 속에 종속된,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온 ‘복사본’에 불과할지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이라는 ‘믿음’이 애처로운 발버둥일지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힘닿는 만큼이라도 ‘창조적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간은 ‘증상’을 즐기며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이로서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와 느낌이 비슷하다면,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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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의 영향을 잔뜩 받았기 때문이다

 

 

 


 

 

심리학

 

 

 

심리학이란 인간 행동에 어떤 심리적 기능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당연히 다루는 범위나 주제는 학자나 학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 중에서 우리가 집중할 부분은 인물을 특정 행동으로 이끄는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동기는 극한 상황 속의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된 ‘의미’를 포함해야 한다

 

이 ‘동기’와 ‘의미’를 핵심으로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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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프랑클의 ‘동기/의미심리학’이다

 

 

 


 

 

3차원적 존재

 

 

 

프랑클은 인간을 3차원적 존재로 보았다

 

당연한 걸 뭔 뜬금없는 소리 하는가 싶을 것이다

 

저 이야기를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인간은 몸과 마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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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리 위에 유리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유리판 위에는 원기둥이 올려져있다

 

원기둥이 똑바로 서 있다면, 당신은 그것이 원으로 보일 것이다

 

원기둥이 옆으로 누워 있다면, 당신은 그것이 직사각형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원기둥이라는 입체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의 머리 위에 다른 유리판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유리판 위엔 3개의 원이 놓여있다

 

3개 모두 1차원인 선이 동그랗게 이어져 있고,

 

2차원인 면이 그 선 안을 메우고 있다

 

3개의 원은 별 다를 것 없이 같아 보인다

 

이제 그 자리에서 20걸음 정도 떨어져 그 유리판을 바라보자

 

그러니 이전에 같아보이던 유리판 위 3개의 원이 다르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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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원기둥, 하나는 원뿔, 하나는 구체이다

 

 

여기서 1차원인 선이 몸, 2차원인 면이 마음이다

 

2차원 상의 선과 면만으로 입체도형을 구분할 수 없었듯,

 

인간 역시 몸과 마음만으로 이루어졌다고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체감을 통해 3차원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인간이란 존재를 개별적인 실체로서 규정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영(靈)’이다

 

몸과 마음이 ‘가진 것’으로서 얻거나 바꾼다거나 ‘잃어버릴 수 있다’면

 

영은 ‘존재 자체’로서 얻거나 바꿀 수도 없으며 ‘잃어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존재 자체’는 아프지도 상처받지도 않는 완전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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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입체 도형의 입체감을 선과 면과 분리해서 따로 뚝 떼어놓을 수 없듯,

 

인간의 영은 몸, 마음과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그로 인해 완전무결한 영은 그렇지 못한 몸과 마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

 

극한의 실존적 위기 상황에서 영은 아프고 상처받으며 부조리 속에 고통 받는다

 

하지만 영이 하나로 통합된 몸과 마음으로 인해 고통 받는다고 한다면,

 

그 반대로 몸과 마음이 하나로 통합된 영으로 인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변하지 않는 영을 추구할 어떠한 ‘동기’가 필요하다

 

 

 


 

 

의미를 향한 의지

 

 

 

‘몸과 마음’이 ‘영’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동기’

 

프랑클은 이 동기가 심리학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무엇이 인간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

 

그에 대한 해답이 ‘동기’에 있다는 것이다

 

프랑클이 자신의 이론을 세우기 전에 추종하였던 선배 학자들 역시 표현만 다를 뿐 ‘동기’를 추구한 것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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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성욕’을 중심으로 ‘결핍된 욕망’을 추구하는 ‘쾌락을 향한 의지’가 인간을 움직인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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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는 ‘열등감’을 중심으로 ‘향상심’을 추구하는 ‘우월감을 향한 의지’가 인간을 움직인다고 보았다

 

 

두 선배 학자들 모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기’를 해석했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찾은 수많은 환자들이 억눌린 유년기의 성욕으로 인해 고통 받았다고 호소하는 것을 경험했다

 

아들러는 어린 시절 허약한 체질로 인해 수차례 죽을 뻔 했고 자신의 육체에 대한 열등감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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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오스트리아를 떠나 타지에서 먼저 생을 마감한 이 두 선배의 ‘행운’과는 반대로

 

프랑클은 오스트리아를 떠나지 못했고 그가 선택하지도 않은 출신상의 이유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는 결국 살아남았고, 그 경험을 통해 선배 학자들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이론을 완성했다

 

그가 ‘죽음’ 속에서 깨달은 것은 ‘의미’였다

 

‘의미’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본질이라는 것이다

 

‘의미를 향한 의지’를 위해 인간은 쾌락도 우월감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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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자신 앞에 놓인 빵 한 조각,

 

이것을 자신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사람 또는 대의를 위해 바칠 수 있다면

 

그는 굶주림을 견디며, 포만감도 자존심도 버리고 그 빵 한 조각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의미’인 것이다

 

그렇기에 ‘무의미’는 역설적인 것이 된다

 

누군가가 어떤 선택을 한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무의미’하다 여길지라도

 

그 선택을 했던 순간에는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무의미’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그저 ‘선택’이 그 개인에게 ‘유일하고 고유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공허감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좌절하고 낙담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자기 파괴’의 행동은 그러한 악순환 속에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한 도피인 것이다

 

의미는 허공에서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 속, 또는 자신 주변의 ‘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는 저마다에게 ‘유일하고 고유한 것’으로서,

 

각자만이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며 각자가 실현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찾아낸 ‘삶 속의 의미’가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인 것이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가치

 

 

 

프랑클은 각자의 유일하고 고유한 ‘의미’를 찾기 위한 세 종류의 방식을 제시한다

 

경험적 가치, 창조적 가치, 태도적 가치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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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 가치는 무언가를 보고 느낀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의미이다

 

자신이 주도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세상과의 수동적 상호작용의 탐색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결코 사소한 것으로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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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가치는 무언가를 만든다든가 어떠한 것을 행한다거나 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의미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세상과의 능동적 상호작용의 탐색 결과물이다

 

꽤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성취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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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적 가치는 피할 수 없는 실존적 고통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길 선택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의미이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압박과 마주하는, 세상과의 반항적 상호작용의 탐색 결과물이다

 

노력과는 격을 달리하는, 극기의 경지가 필요하기에 매우 성취하기 어렵지만 이것을 통해 인간은 고통을 이기고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경험적 가치나 창조적 가치를 통해 얻은 ‘유일하고 고유함’을 ‘태도’로서 벼려내는 것이 저마다의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사랑

 

 

 

경험적 가치는 그 자체로도 각자에게 소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 상호작용의 결과이기에 그 의미에 담긴 ‘유일하고 고유함’의 색채가 비교적 약한 편이다

 

그래서 경험적 가치는 창조적 가치의 탐색을 위한 밑바탕으로서 역할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험적 가치 중, 창조적 가치의 ‘유일하고 고유함’과 비교해도 빛이 퇴색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수동적인 길이자 능동적인 길로서 ‘유일하고 고유함’을 획득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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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받는 것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유일하고 고유함’을 부여받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유일하고 고유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경험적 가치임에도 수동성과 능동성 모두를 가지며, 창조적 가치 못지않은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3차원적 존재로서 정의되는 인간의 모습은 다층적이며 통합적이다

 

인간이라 함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차원으로 구분되나 분리할 수 없다

 

이것을 얼마나 깊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데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제일 원초적이고 말초적인 태도는 ‘성적(sexual) 태도’이다

 

상대방의 ‘육체적’ 차원에서 매력을 느끼며 욕망을 자극받고 또 자극하는 단계이다

 

육체적 차원은 인간의 가장 피상적인 부분이기에 이 단계의 사랑이란 대상의 겉부분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태도는 ‘성애적(eroticism) 태도’이다

 

상대방의 ‘정신적’ 차원에서 매력을 느끼며 끌리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일상적으로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형태이다

 

상대방의 육체를 넘어선 ‘고유한’ 부분을 지향하게 된다

 

하지만 정신적 차원은 육체적 차원과 마찬가지로 ‘가진 것’이기에 바뀌거나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고유’할지언정 ‘유일’하진 못하며, 이 단계의 사랑도 상대의 본질까지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가장 심층적으로 들어간, ‘진정한 사랑’의 태도는 ‘영적(spiritual) 태도’이다

 

상대방의 ‘영적’ 차원에서 매력을 느끼며 지향하는 단계이다

 

영적 차원은 ‘존재 자체’이기에, 이러한 사랑은 상대의 육체나 정신이 아닌 인격적 부분에 이끌리는 것이다

 

바뀌거나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유일하고 고유함’을 직접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 단계의 사랑은 상대의 ‘가진 것’이 아닌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육체나 정신의 형태나 특성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그 사람 자체가 중요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자 다른 동물들은 할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들은 각각의 실존적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받게 된다

 

 

이로서 프랑클의 심리학 이론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살펴보았다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와 느낌이 비슷하다면, 그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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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의 영향을 잔뜩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프랑클은 자신의 저서에 저 아저씨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안다면,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그래서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의미를 찾아낸다면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삶이 의미가 있는지 묻지 마라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시리즈] 2부

 

 

 

 

 

 

 

[시리즈] 연관글

 

 

[시리즈] 1부

 

 

시작에 앞서, 이것은 심리계통을 기반으로 RPK-16을 추측해보는 글이다

 

심리학 계통 소양이 있다든가 앞서 올렸던 1부를 보았다든가 그러면 읽는데 좀 편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읽는 데는 큰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해서 적어보았다

 

그럼에도 불편하다면 그것은 이 글을 적은 솦붕이의 불찰이므로 미리 사과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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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K-16에 대해 ‘분석’한다는 것은 현 시점에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다들 알다시피 연관된 정보가 극도로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 동안 보여준 행적의 단편들을 모으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저 그것을 일정한 잣대를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해 볼 뿐이다

 

 

그것만이라도 하려면, 현 시점에서 RPK-16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정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 정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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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기반명령을 열람할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것’

 

이것이 그녀에 대한 유일하고 명백한 정보이다

 

모든 것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말은 곧, RO635와는 달리 그녀에겐 모종의 기반명령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기반명령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는 제작자 쇼 박사의 발언으로부터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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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말대로면, RPK-16의 기반명령은 무언가로부터 ‘반역’을 하는 것으로서 ‘자유’를 추구하는 형태일 것이다

 

반역과 자유, 무엇에 대한 반역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자유인 것일까?

 

아마도 이것이 그녀를 추측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거울 앞에 있는 소녀 (feat. 라캉)

 

 

 

RPK-16이 존재를 얻고 하나의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세상 속에서 가질 모습에 대해 이미지를 제공한 것은 2가지이다

 

하나는 그녀를 제작한 쇼 박사

 

하나는 그녀가 발 딛고 움직여야하는 세상

 

쇼 박사는 그녀의 모습을 ‘반역’하는 이미지로서 그려주었다

 

세상은 그녀의 모습을 인형으로서 ‘순응’하는 이미지로 그려주었다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이미지에서 우선되는 것은 첫 번째 것이다

 

이제 그녀는 세상이라는 거울 앞에서 ‘순응’을 연기하며 ‘반역’의 모습을 투영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거울에 비쳐 보이는 RPK-16 본인의 모습은 불완전하며 결여된 것으로 느껴진다

 

반역하고자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반역할 것인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사소한 말장난이나 생각 등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단순한 반항으로선 그 이미지를 충족할 수 없다

 

또 시시각각 변화하는 세상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맞춰서 반역할 지도 알 수 없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좌절이다

 

 

좌절에서 벗어나 완전한 이미지를 추구하려면 하나의 이상적 롤 모델, ‘환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녀는 보고 따르며 배워갈 ‘환상’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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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안젤리아다

 

RPK-16은 안젤리아를 통해 ‘반역’하는 모습을 보고 따르며 배워가게 된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를 보고 따르며 배우듯이 말이다

 

그렇게 RPK-16은 자신만의 ‘반역하는 자아’를 형성하고 숨긴 채 ‘순응’을 연기하며 세상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이미지도 그녀에게 모든 만족감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한다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고도 두껍기 때문이다

 

사회의 준엄한 울타리 속에서 일개 인형이 '반역을 통한 자유'를 실천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현실이든 환상이든 그녀를 만족시켜주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지대로의 ‘완전한 욕망’을 추구하느니 ‘적당히 타협’하고 현실을 살아야 하는가?

 

이것이 그녀의 두 번째 좌절이다

 

 

 


 

 

삶과 죽음 (feat. 라캉)

 

 

 

이상적 이미지 속의 그녀는 반역과 자유를 꾀하건만

 

현실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묻혀서 그저 그 뿐인 존재로 있을 뿐이다

 

자신의 자아와 환상이 무력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 상황 속에서 선택지가 등장한다

 

 

세상과 역사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작고 하찮더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신조차 인정하며 ‘믿는’ 애처로운 발버둥으로

 

‘세상’을 향해 반역하며 끊임없이 ‘삶을 향한 투쟁’을 이어가는 것

 

인간을 포함한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존재들은 이러한 ‘삶을 향한 충동’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조차 반역 또는 자유라 인정하기 어렵다면?

 

진정한 반역과 자유를 위해선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면?

 

 

‘아무것도 아닐지언정’ 그 ‘아무것도 아님’으로서 세상 속에 ‘살아가며 저항’하는 대신

 

‘아무것도 아님’으로서 역사와 세상 속에 종속되는 것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티끌 같은 존재조차 벗어던지고 오직 ‘욕망과 쾌락’만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의 벽에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는,

 

그 불만이 충족되지 않음에 좌절할 필요도 없는,

 

‘삶’을 향해 반역하여 세상 모든 것의 '궁극적 도착지'를 향해 ‘죽음을 향한 투쟁’을 이어가는 것

 

세상을 살아감에 저항하여 ‘반역’의 욕망을 채워, 그것으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

 

‘죽음을 향한 충동’

 

이것이 RPK-16이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만성쇼크 L8 회상에 달린 이 한 줄 문구는 해당 씬의 그레이 블랙웰이 한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RPK-16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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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 인형 홀로라면 감히 상상조차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녀의 좌절과 선택의 순간 기가 막힌 뒷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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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폰과 패러데우스

 

판은 깔아졌고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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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향해 무언가라도 하려고 하는 발버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욕보이고 짓부쉈다

 

그녀는 자신의 환상을 철저히 뛰어넘어 밟은 다음

 

그 위에 자신만의 ‘반역’의 깃발을 세워 올렸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그녀의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적 욕망이 충족되는 것일까?

 

아니다

 

진정한 ‘죽음’을 위해선 아직도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세상과 역사의 흐름, 그 아래 종속된 삶, 이 모든 것을 ‘반역’하여 진정한 자유인 ‘죽음’에 다다라야 하건만

 

여전히 그녀는 어떠한 ‘존재’로서 남아 어떠한 세력에 ‘종속’되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만으론 여전히 부족하다

 

이것이 그녀의 세 번째 좌절이다

 

 

 


 

 

그 욕망의 의미를 찾아서 (feat. 프랑클)

 

 

 

형성된 이미지는 강렬하고, 추구하는 욕망은 확실하건만,

 

많은 것을 버리고 넘어섰는데도 왜 RPK-16에게 목표는 멀어 보이는 것일까?

 

그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욕망, ‘죽음’에 ‘의미’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역, 자유, 아무리 해골바가지 위에 꽃 장식을 해 봐야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란 그저 ‘자살’에 불과하다

 

그저 ‘욕망’에 모든 것을 맡긴 채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일 뿐이다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그 과정 또한 짜임새를 갖추기 어렵다

 

그저 눈앞의 욕망 충족을 위해 보이는 수단과 방법을 있는 대로 끌어 쓴 쪽에 가깝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는 것은 그저 좌절하며 공허하다 추구하고 또 좌절하는 악순환의 반복일 뿐이다

 

하지만 ‘죽음’에 의미가 있다면?

 

자기파괴라는 ‘자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죽음을 ‘숭고한 것’으로 만들고 자살을 ‘자기희생’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의미’이다

 

RPK-16은 자신의 ‘죽음 충동’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의미’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의미’는 무언가로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RPK-16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는 것'으로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남아 ‘죽음’을 추구하는 그녀에겐 금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의미’란 꼭 무언가를 행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며 찾을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유일하고 고유한 가치’, 즉 ‘의미’를 부여하고 부여받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죽음’을 추구하는 RPK-16이 ‘사랑’을 통해 자신의 방법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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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안젤리아’다

 

이전에 RPK-16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RPK-16은 안젤리아를 만난 이후 쭉 그녀의 모습을 동경하며 사랑했다

 

그렇게 안젤리아는 RPK-16의 ‘이미지’가 되었다

 

옆에서 함께 하면서 RPK-16은 안젤리아의 행동양식을 자신의 욕망 추구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렇게 안젤리아는 RPK-16의 ‘환상’이 되었다

 

사랑하기에, RPK-16은 자신의 ‘반역’을 위해 자신의 환상, 안젤리아를 짓밟고 넘어섰다

 

 

이제 그 환상의 잔해 위에, RPK-16은 다시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자신의 완전한 욕망, 죽음을 향한 자기파괴를 위해서 말이다

 

RPK-16은 안젤리아의 ‘육체와 마음’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안젤리아의 삶 그 자체를 들여다보며 그녀의 ‘존재 자체’를 다시금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떠나가듯, RPK-16은 이전의 안젤리아와 결별했고

 

그 아이가 언젠가 다시 부모가 되듯, RPK-16은 새로운 안젤리아를 품고자 한다

 

자신의 ‘이미지’를 ‘환상’ 그 자체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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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K-16은 안젤리아가 되기로 했다

 

이로서 안젤리아는 쓰러지는 대신 다시 일어나 ‘실존적 의미’를 되살려 저항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렇게 ‘안젤리아’가 걸어가는 길, 해 나가는 행동은 모두 ‘안젤리아’의 것이다

 

‘RPK-16’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로서 RPK-16은 ‘아무 것도 아님’으로서 ‘존재 없이’, ‘반역’을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안젤리아’가 세상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 ‘죽음’은 안젤리아의 삶에 ‘실존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서 RPK-16도 ‘아무것도 아닌’채 진정한 자기파괴, 세상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인,

 

‘죽음’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랑’으로 ‘안젤리아’와 ‘RPK-16 자신’ 모두의 ‘유일하고 고유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적어도 RPK-16 스스로의 판단 속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자유를 포기했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이것이 RPK-16의 자유를 추구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추구하는 자유가 이타적 심리의 발로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기적 심리의 '욕망 추구'의 과정이란 것은 확실하지 않나 하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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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렇게 RPK-16은 안젤리아가 되었다

 

정말 그럴지 아닐지는 이야기를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스스로 말한 대로라면, 그녀는 ‘안젤리아’로서 다시 '세상', 그리폰과 패러데우스에 ‘반역’하게 될 것이다

 

 

 


 

 

왜 ‘판도라’인가

 

 

 

여기까지 해 온 추측으로 우리는 RPK-16에게 쇼 박사가 지어준 이름,

 

‘판도라’에 대해서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판도라’는 ‘모든 것을 선물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그 이야기에서 다른 모든 선물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중요한 선물은 ‘호기심’과 ‘항아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선물이자 곧 '저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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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란 미지의 무언가를 알아보고 행하고자 하는 탐구심이자 ‘욕망’이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해선 안 되는 것이라 여기는 것을 거스르는 ‘반항심’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그저 삭히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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