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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기 소련군의 주력전차였던 T-34, 85mm 포 장착형)
T-34는 탁월한 주행성능, 76mm포와 85mm포를 가리지 않고 동체급의 전차를 상대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던 공격력, 경사장갑의 적극적 채용으로 일궈낸 준수한 방호력으로, 2차 대전 당시 공수주의 균형이 가장 훌륭했던 전차 중 하나로 꼽히곤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T-34의 전설을 써내려가는 데 공헌했던 일등공신은 바로 생산성이었다.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이후 우랄산맥 서쪽이 독일군의 위협에 놓이게 되자, 소련이 우랄산맥 서쪽의 군수공장들을 죄다 뜯어 우랄산맥 동쪽으로 옮긴 후 마구잡이로 군수물자를 찍어냈다는 이야기야 워낙 유명하니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마구잡이로 찍어낸 것은 맞지만, 전황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한 1943년 이전까진 정말 '마구잡이'로 찍어냈던 터라 여러 문제가 터져나왔는 데, 오늘의 주인공1인 T-34도 그러했다. 비숙련 노동자들이 그냥 되는대로 막 만들어대다보니 기계적인 신뢰성이 엉망이었던 것.
T-34가 '가성비'가 매우 훌륭한 전차였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나, 치명적인 단점들이 존재했는 데, 낮은 전고와 저 경사장갑의 존재로 인해 승무원의 거주성이 최악이었던 점, 그리고 낮은 소련의 기술력과 비숙련 노동자들의 콜라보로 인한 떨어지는 신뢰성이었다. 걸핏하면 퍼지고 고장나기 일쑤라 개전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투손실 못잖게 비전투손실도 상당했다.
한 편, 미국은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는 미명 하에 무기대여법을 실시, 나치독일에 맞서 싸우는 동맹국들에게 무시무시한 양의 군수물자와 생필품을 퍼주고 있었는 데, 비록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다만 대독일전의 메인탱커였던 소련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렌드리스를 퍼부어대고 있었다. 무기대여법으로 대여했던 물자의 21%가 소련으로 향했으니 이정도면 소련의 전쟁수행능력은 미국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당연히, 미국의 '그냥 만들기 시작해 많이 만든' 전차인 M4 셔먼 또한 소련에 공여되었는 데 그 수가 무려 4,000대가 넘었다. '아니, 소련이 이미 몇 만대씩 전차를 뽑아대고 있는데 뭘 그리 많이 보내주나'라는 의문이 들 법 하지만, 소련군은 이 미제 땅크를 쌍수를 들고 반겼다.
세간의 이상한 인식과는 달리, M4 셔먼은 2차대전기 최고의 전차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명품이었다. '최강'이 아닐 지는 몰라도. 셔먼의 최대 장점은 정신나간 수준의 신뢰성과 범용성, 확장성에 있었다. 구조가 단순하진 않았으나 높은 수준의 기술력에서 따라오는 기계적 신뢰성은 소련, 영국의 전차들은 물론 독일의 기라성같은 전차들과 비교선상에 놓아도 우위를 점했으며, 적절한 장갑과 적절한 성능의 주포를 통한 대전차전과 대보병전에서 두루두루 고른 활약을 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의 범용성, 무엇보다도 크고 넉넉한 차체로 인해 대구경의 주포나 추가장갑을 부착해도 크게 무리가 되질 않으며, 차체를 활용해 여러 파생형을 생산해내는 것도 용이했던 확장성은 실로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셔먼이 연합군의 준마로 전선에서 분투할 때, 소련군의 품으로 흘러들어간 4천 여 대의 셔먼은 소련군에 의해 애지중지 여겨졌다. T-34와 비교했을 때, 훨씬 부드러운 주행성능과 좀처럼 퍼지질 않는 신뢰성, 그리고 훨씬 넉넉한 공간으로 인한 주거성이 장점이었던 셔먼은 소련 전차병들의 '드림카'나 다름없었다.
소련군은 셔먼을 일종의 포상으로 삼아 공을 세운 전차병들에게 하사하였고, 큰 공을 세운 부대에 편성하는 등 특별대우까지 했으니 그 대우가 얼마나 각별했는 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 물론 소련군 수뇌부에서는 범용성이 어쨌고 신뢰성이 어쨌고, 독일군의 주력 전차들을 정면에서 상대하기 쉽지 않은 셔먼보다는 T-34를 더 선호하기는 했지만, 일선 전차병들은 한 번 셔먼 맛을 보면 다시는 T-34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였으니, 소련 전차병들이 얼마나 셔먼을 사랑했는 지는 굳이 더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셔먼뿐 아니라, 무기공여법을 통해 들여온 P-39 에어라코브라 전투기는 소련의 제공권을 책임졌으며, 허쉬 초콜릿과 스팸은 소련군 장병들의 당장 먹을 게 넉넉치 않던 시기 소중한 영양분이 되었다고 하니 소련군의 미제 사랑이 얼마나 대단했는 지는 두 말 하면 잔소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