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正祖, 1752년 10월 28일 ~ 1800년 8월 18일 [재위 1776년 ~ 1800년] 조선의 제22대 임금
할아버지인 영조와 함께 조선 최후의 부흥기를 이끈 임금, 정조대왕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저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했으나 오래도록 계속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밤마다 시험 ㄷㄷ) 학식, 인품, 외모 딸리는건 건강이 약했다..
연애소설을 비롯한 소설을 무척 싫어하여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서고에 있던 모든 소설을 불태웠다.
또한 숙직을 하던 규장각 학자들이 몰래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들켜서 정조에게 혼이 났고 벼슬을 삭탈했다.
그들은 정조에게 다시는 소설을 안 보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벼슬길이 다시 열렸다.
영조는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정조는 개인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서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금주령을 없앴다.
정조는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 끊임 없이 시키며, 숙제를 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망신을 주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신하에게 술을 강요하여 기절할 때까지 마시게 하고, 활을 못 쏘는 신하에게는 끊임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술을 무진장 좋아하여, 정약용에게 필통안에 술을 한가득 부어 원샷 하기를 강요하여 정약용은 술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필통에 술 붓기라면, 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 것과 맞먹는다고 한다.
정조 20년, 이정용이라는 유생이 술에 취해 늦은밤 궁궐 담장아래에서 잠에 들었다 잡혀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했던 정조는 요즘 유생들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술을 좋아한다고 칭찬을 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생들이 숙박하던 잡촌과 집춘영은 벽을 맞대고 있으니 이정용은 잡촌에서 잤던거라는 궤변을 펼쳐서 오히려 상까지 주어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