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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부녀는 군사가 힘껏 싸워 얻은 것인데 지금 들으니 우리나라의 부녀가 뜨거운 물에 담가 가혹한 형벌로써 고문하여 이윽고 첩으로 삼길 용납하지 않는다 한다.
또한 노비로 삼아 남기지도 않으니 투기하고 잔학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이들 부인은 짐이 순국한 남편을 따라 죽는 판례에 따라 용서 없이 필히 응징할 것이노라!
마땅히 잘못을 뉘우치고 급히 너그럽게 아랫사람을 대하여 각각 알맞은 자리를 얻게 하라!
만일 이미 허물을 벗었다면 국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면하게 하라!
1637년 4월 22일
병자호란이 1637년 2월 24일에 끝났으니 전쟁 이후 두달도 안 되어서 홍타이지가 칙서를 통해 조선 여자들을 질투하여 고문하는 청나라 여자들은 모두 엄벌에 처하겠다고 선포함.
호란 때 끌려간 조선 여자들을 청군 부인 등이 질투해서 뜨거운 물 등을 부어버리며 고문하고 내쫓고 하는 일이 많긴 했던 듯.
그리고 겨우겨우 돌아와도 정절을 잃었다고 손가락질 하거나 부인과 이혼하고 새장가 등을 들려했고, 전 승지 한이겸은 자기 딸이 잡혀갔다가 돌아왔는데 사위 놈이 새장가를 들려 한다고 원통함을 호소함.
이에 최명길은 "그들이 정절을 잃은 것은 지켜주지 못한 나라의 잘못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 이혼을 허락하면 안 된다. 그리고 돌아온 여자들이 모두 정절을 잃었다고 볼 수도 없다" 라고 주장하며 이혼을 허락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고 인조도 본인들이 원해서 간 것도 아닌데 그런 걸로 이혼 불가라며 "여인들을 집에서 내치지 말라" 라고 했지만 당시 최명길에 대해 사관이 씨부린 평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의 집과는 의리가 끊어진 것이다. 억지로 다시 합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절의를 잃은 사람과 짝이 되면 자신도 절의를 잃는 것이다.”
"아! 백년 동안 내려온 나라의 풍속을 무너뜨리고, 삼한(三韓)을 오랑캐(夷)로 만든 자는 명길이다. 통분함을 금할 수가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