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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숙종 27) 음력 10월 10일.
숙종의 비망기(명령)에 따라서 장희빈이 자진했다.
이때 사건의 배경은 창경궁이다.
그럼 장희빈의 시신은 어떤 문으로 나갔을까?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를 보면
출입문이 참 많지만
조선시대엔 "신분"과 "상황"에 따라 출입문이 다르다!
(타임슬립할 수도 있으니까 기억해둬)
인현왕후는 죽어서
관이 창경궁 홍화문(정문)으로 나갔다.
신분차이 오지게 느껴지지?
근데 장희빈은 죄인이고
결정적으로 숙종이 꼴보기 싫어함.
죽어서도 보기 싫은데 정문으로 어떻게 나가?
숙종: 장씨 시신이 단봉문으로 나가는건 일이 좀 그렇다. 어느
문으로 나가는게 좋겠는가?
신하들: (눈치 뽝 챘음) 선인문으로 나가는게 좋겠습니다.
<창덕궁 단봉문>
동궐도에서 단봉문은 이렇게 생겼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옆에 작은 문인데
궁궐에 사는 왕실 여성이 죽으면 여기로 나갔다.
예를 들면
정조의 후궁인 의빈 성씨.
현종의 딸이자 숙종 여동생 명혜공주.
느낌 오지?
장희빈도 단봉문으로 나가야 맞지만
창경궁 취선당에서 창덕궁 단봉문까지 가려면
명정전을 지나가야 한다.
또 죄인이 단봉문을 이용해?
그건 ㄴㄴ
어떤 사람들은 숙종이
3개월이 아니라 4개월로 장례를 치렀네
최소한 왕비 대우로 장례를 치렀네
그거 다 역사 사료 해석 못해서 그런거임;
(4개월로 발인이 늦어진건 묻을만한
괜찮은 장지를 못 찾아서 그런거임 ㄹㅇ;;;)
장희빈 상여가 나간 문 보면 알 수 있음.
전혀 대접 안해줬다...
왕세자 생모인데도...
<창경궁 선인문>
여기서 중요한 점!
선인문은 문이 두 개다!
문이 닫혀있어서 출입은 못하지만
현재까지도 선인문은 남아있어서 볼 수는 있다.
하나는 문이 크고 하나는 작지?
장희빈의 시신은
선인문의 소문(작은문)으로 나갔다.
선인문에서도 격이 제일 낮은 문으로
나갔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 선인문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이 또 있는데
1. 연산군 폐위될때 선인문으로 나감
2. 소현세자빈 강씨도 폐위될때 선인문으로 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