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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당시, 영국령 서아프리카에서 차출되어 일본의 침공으로 위태로운 동남아 전역에 투입된 식민지 출신 흑인병사들은
전투에서 마지막 한 명까지 발악적으로 저항할 줄 알았던 한 무리의 일본군들에게서 예상치 못한 쉬운 항복을 받아냈다.
일본 군인들이 말하기를 "아프리카 흑인병들은 전투에서 잡은 적들을 포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잡아먹는다던데,
흑인들에게 먹혀버리면 죽어서도 내세에서 선조들께서 받아 주시지 않아 영영 구천을 떠돌게 될 것"이 두려워 항복했다는 것이었다.
- 니얼 퍼거슨 저 "제국" 에서
1945년 4월 1일, 미군의 오키나와 침공은 본국의 일본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오키나와가 함락된다면, 이제 규슈까지 시속 30노트면 불과 하룻밤만에 도달할 수 있는 곳에
귀축미영들이 진을 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본영은 어떻게든 황국신민들을 장밋빛 환상 속에 그대로 쳐박아두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제는 양치기 소년도 씹정색할 지경이었지만, 대본영은 태평양전쟁의 승패를 가를 결전은 사이판이나 레이테가 아니라
이번에 오키나와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어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신문들은 구독자들에게 황군의 사무라이들이
"적들이 굶주린 나머지 인육을 먹기 위해 서로 죽이게" 만들 것이며,
일본군이 미 해병대가 오키나와에 상륙하도록 내버려둔 것은 속수무책이라서가 아니라
가미카제 특공대가 적들의 함대를 괴멸시켜 미 해병대를 오키나와에 갇힌 독안의 쥐로 만들기 위한 치밀한 작전이었다고 선전했다.
- "아메리칸 시저 : 맥아더 평전" 2권에서
일본군이 포로들을 '인간 가축'으로 취급한 것은 군율이 붕괴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식인 행위는 주로 장교들이 지시했다.
미국과 호주 전쟁범죄부에서 정리한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명백해진다.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들이 광범위하게 자행한 식인행위는,
단순히 극한 상황에 처한 개인이나 소집단에 의해 자행된 임의의 행위가 아니다.
일본군의 식인 행위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군사 전략이었음을 여러 증거가 말해주고 있다."
일본군 병사들은 식량이 부족해지면 현지 주민들과 포로들을 식량으로 여겼다.
일본군 에노모토 마사요는 자신이 어린 중국 소녀들을 강간한 후 "도살",
고기가 많은 부분을 골라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육질에 대해 "부드럽고 맛있었다. 돼지고기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고 표현했다.
음식의 정체를 안 지휘 장교도 그를 꾸짖지 않았다.
- 앤터니 비버 저 "제 2차 세계대전" 에서
출처 : 에펨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