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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시아 - 일본 관계 : 적에서 아군으로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패한 적은 보복 욕구가 일어나고 이는 다음 전쟁의 서막이 되기도 하지만, (독일 - 프랑스 관계) 종종 전쟁은 두 적 간의 화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러일전쟁 후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은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세력 균형을 이루기 위한 첫 단계였다. 전쟁이 끝난 후 러시아의 관심사는 내부 혁명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이었고, 외교 정책이 유럽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극동에서의 평화가 필요했다. 반면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피해는 컸고, 영일동맹에 여전히 의구심이 있었으며, 러시아의 보복 위험을 최소화하고 안정이 필요했다. 한편 프랑스와 영국은 러시아가 독일에 대항하여 유럽에 집중할 수 있도록 러시아를 일본과 화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당시 국제관계가 모두 맞물려 러일전쟁 후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는 빠르게 화해 무드로 들어선다.
1907년 7월, 러시아와 일본은 "중국의 영토 보전과 균등한 기회를 인정하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현상을 유지하고 방어하기로" 약속했다. 같은 날 체결된 비밀 협약은 만주를 반으로 나누어 북쪽은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남쪽은 일본의 영향권으로 남겨두고 각자의 주도권을 방해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관계"를 인정하고 방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고, 일본은 "외몽골에서의 러시아의 특별한 이익"을 인정했다. 이 비밀 협정문은 러시아가 프랑스에게, 일본이 영국에게 보내면서 보증되었다.
1909년, 미국이 중국에 차관을 제공해, 만주 철도권을 무력화시키려 한 행위는 러시아와 일본의 연대를 더욱 강화시켰다. 일본과 러시아는 "만주에 있는 러일의 이익"에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를 위해 1910년 7월 다시 한 번 비밀 협정을 체결했다. 두 국가는 자신들의 이익에 위협이 생길 경우 "공동의 행동을 취하거나, 상호 지원하는 것"을 합의했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영국과 동맹국이면서 러시아의 구애를 받는 갑의 위치가 된다. 러시아는 전쟁 중 유럽에 집중하고 극동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1916년, 러시아와 일본의 관계는 "동아시아에서 양국의 특수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동맹 조약" 초안을 합의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실현되었다면 프랑스 < - > 러시아 <-> 일본 <-> 영국으로 이어지는 동맹 관계가 형성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얼마 안 가 러시아 제정이 붕괴되고 소련이 나타나며 러일 밀월 관계는 무너진다.
2. 미국과 일본 - 아군에서 적으로
미국은 의화단 운동 이후 중국에서의 정책을 두고 러시아와 충돌했고, 러시아와 경쟁하던 일본을 후원하는 우방이었으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자, 미국은 일본을 "잠재적인 주적"으로 설정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길 원하면서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경쟁하며 세력 균형을 이루길 바랐지만, 일본의 러일 전쟁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로 러시아가 동아시아에서 급속히 힘을 잃고, 자신감을 얻은 일본이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미국이 볼 때 일본은 중국의 개방 정책을 방해하고 중국에서의 특수한 이권을 추구했으며,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주장하여 세력 균형을 위협했고, 미국 서부 지역으로 몰려오는 일본인 이민자들의 존재는 미국인들의 인종적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영일 동맹의 지속적인 갱신은 영일동맹이 미국을 저격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르기도 했다.
1903년, 즉 러일전쟁 이전부터 계획된 "플랜 오렌지"는 미국이 일본을 새로운 위협으로 예견했다는 중요한 증거로, 이 전쟁 계획은 "필리핀에서 일본으로부터 미국의 이익을 방어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전쟁 계획은 러일 전쟁이 끝난 후 더욱 확대되어 1907년 이후부터는 "하와이 방어", "일본의 파나마 운하 봉쇄", "일본의 미 서해안 공격"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일본에 대한 루스벨트 행정부의 태도는 러일전쟁 전후로 극적인 변화를 거쳤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주적으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2차 대전 직전까지도 지속되었고 대륙에서 이권을 얻으려는 일본의 행위는 미국의 적대감을 확신시키는 꼴이 되었다.
이런 미국의 정책은 훗날 영일동맹 파기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출처
From enemies to allies: the war and RussoJapanese relations , PETER BERTON
America’s first cold war: the emergence of a new rivalry , TAL TOVY AND SHARON HALEVI
외교관계는 생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