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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미국 텍사스 위치타 폴스에 있는 Newby- McMahon 빌딩이다.
왜 저딴 쪼매난 건물이 마천루라고 불리는지 알기위해선 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때는 1차대전이 벌어지기 2년전이었던 1912년.
텍사스 위치타 카운티 서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던 버크버넷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석유.
버크버넷 마을에 엄청난 규모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게 확인되었고 이에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이른바 '오일 러쉬'가 시작되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위치타 폴스
이에 버크버넷과 그 인근에 위치한 지역들에는 1918년까지 최소 2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정착하게 되었고, 이렇게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자 각종 물자의 수요가 급등하면서 버크버넷 주위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위치타 폴스'라는 도시 역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치타 폴스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인프라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들면서 위치타 폴스에는 수도, 병원, 도로등 거의 모든 생활을 위한 시설들이 매우 부족한 상태가 되었고 심지어 몰려들은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마저 부족해 유전을 개발하러 온 석유 회사들마저 텐트를 임시 거점으로 사용해 텐트촌에서 주식거래가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문에 위치타 폴스의 사람들은 추가적인 인프라 건설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J.D. 맥마흔이라는 건축업자가 1919년에 한가지 제안을 하는데, 이 지역에 위치한 '뉴비'라는 건물 오른쪽에 별관으로 150m의 마천루를 건설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에 열광했고 순식간에 20만 달러(현재가치로 약 34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이 모였다.
이에 맥마흔은 곧바로 마천루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지긋지긋한 텐트촌을 벗어날수 있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얼마 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건설중인 마천루의 상태를 본 투자자들이 분노해서 맥마흔을 고소한 것이었다.
오른쪽에서 본 뉴비-맥마흔 빌딩
맥마흔이 건설하는 자칭 '마천루'는 150m의 마천루는 개뿔, 고작해봐야 약 10m~20m정도밖에 안되는 건물이었고 평수도 너무 작아 엘리베이터가 들어갈 공간도 없고 심지어 계단도 없어 무려 사다리를 이용해야 윗층으로 겨우겨우 올라갈수 있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현재는 계단이 생긴 상태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맥마흔이 사기를 쳤다고 외치며 맥마흔을 고소했다.
그러나 맥마흔은 놀랍게도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는데 성공했다.
그 이유는 바로 단위를 이용한 트릭 덕분이었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에도 미국은 야드파운드법을 쓰고 있는데, 고의인지 실수인지 맥마흔은 계약서에서 마천루의 높이를 480피트(약 150m)가 아닌 480인치(약 12m)로 단위를 바꾸어서 표기했던 것이다.
이에 맥마흔은 법정에서 자신은 계약에 따라 건물을 480인치의 높이로 건설했을 뿐이니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여기에다가 그동안 맥마흔이 구두로 '마천루의 높이는 480피트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는 것까지 맥마흔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맥마흔은 끝내 소송전에서 승리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소송에서 승리한 맥마흔은 다시 건설을 진행해 건물을 완성시킨 후 곧바로 투자금을 가지고 빤스런했고, 투자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 빌딩에서 꾸역꾸역 1929년까지 거주했으며 위치타 폴스의 인프라 문제는 이 지역의 석유 붐이 잦아들고 대공황이 온 후에야 겨우겨우 끝났다.
이후 Newby- McMahon 빌딩은 1931년의 화재,여러 번의 철거 시도(미운정이 들었는지 위치타 폴스 시민들이 철거가 시도될때마다 무산시켰다), 2003년의 폭풍등을 견뎌내가며 질기게 그 건물생을 이어나가다 마침내 텍사스 주로부터 역사기념물로 지정받는데 성공했고 이후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천루라고 불리며 텍사스의 유명 관광명소가 되어 나름 괜찮은 말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