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막루
고구려가 부여를 멸망시키자 부여인들이 북쪽으로 넘어가 만든 국가라고 기록됨
문화는 고구려,부여와 같았다고 하고 부여의 후예를 자칭했으니 한국계 국가가 빼박 아닌가 싶지만 정작 언어는 거란족의 언어를 쓴다고 써있어서
거란에 동화된 부여인? 부여호소인 거란인? 몽골사로 봐야할지 한국사로 봐야할지 역사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함
발해건국뒤 중국 조공기록이 끊겨 발해에 정복당하고 사라진것으로 추정됨
개원(開元) 11년(→서기 723년)에 달말루(→두막루) 구 2군(郡) 수령이 조공했다. 달말루는 스스로를 북부여의 후예라고 말한다. 고려(→고구려)가 그 나라를 멸하자 유민들이 나하(那河)를 건너 그곳에 거주했다.
두막루국은 물길(勿吉)의 북쪽 1천 리에 있고 낙양으로부터 6천 리 떨어져 있다. 옛날의 북부여(北夫餘)이다. 실위(失韋)의 동쪽에 있고, 동쪽은 바다와 닿아 있고, 사방 2천 리이다. 그 사람들은 토착하며 살고, 집에 거주하며 창고가 있다. 산과 구릉, 넓은 연못이 많고, 동이(東夷)의 지역에서 가장 넓고 높다랗게 트여있다. 땅은 오곡에 알맞고,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키와 몸집이 크고, 성품이 강직하고 용맹하고, 신중하고 중후하니 노략질을 하지 않는다. 그 군장은 모두 여섯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삼고, 읍락에는 호걸과 장수가 있다. 음식은 역시 조두를 사용한다. 삼과 베가 있고, 옷을 마름질하는 것은 고려(→고구려)와 비슷하나 폭이 크다. 그 나라의 대인은 금과 은으로 장식한다. 형벌은 엄하고 급하여 살인자는 죽이고, 그 집안사람은 노비로 삼는다. 풍속은 음란하고 투기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 죽여서 시체를 나라의 남쪽 산 위에 놓고 썩힌다. 여자 집에서 이 시신을 거두려면, 소나 말을 주어야 한다. 혹 말하길, 본래 예맥(濊貊)의 땅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