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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 로마에는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벌어진 기원전 218년 기준으로도 이미 로마 원로원의 원로에 속하는 인재였는데, 기원전 218년 기준으로 그는 이미 집정관을 두 번(기원전 237, 224년)이나 역임한 사람이었다.
장군으로서의 명성 또한 이미 정점이었던 인물로, 그가 집정관이었던 기원전 224년에 로마 역사상 최초로 포 강을 도하하여 켈트족의 일파인 보이 족을 격파했었고
그 전 임기인 기원전 237년에도 역시 켈트족의 일파인 리구리아 인을 무찌른, 그야말로 켈트 담당 일진이었다.
하지만 이런 명장도 로마 남자 최고의 명예인 개선식과는 인연이 없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때도 이 양반은 트라시메누스 호수 전투의 패잔병을 수습하는 등 활약하다가 그 유명한 카푸아 공방전에서 무려 한니발과 영혼의 맞다이를 쳤는데
역사에 카푸아 공방전으로 남은 이 전투에서 리비우스에 따르면 한니발군에 8,000명의 전사자를, 카푸아군에 3,000명의 전사자를 안겨줬고, 카르타고군의 군기 15개, 카푸아의 군기 18개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뒀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카푸아를 함락시켰고, 당연히 원로원에 로마 장군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개선식을 요구했으나....
가슴, 아니 개선식하게 해주세요!를 외치는 플라쿠스에게 원로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워 거부했다.
첫번째로 카푸아와의 전쟁은 내전이므로 개선식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두번째로 아직도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웅거하고 있는데 개선식은 김칫국이라는 논리였다.
물론 개억지논리인게 카푸아는 엄연히 기원전 600년대에 세워진 에트루리아인의 도시에서 기원한 도시라 내전 어쩌고 하는건 롬북공정 같은 소리였고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웅거 어쩌고도 합리적이지 않은게, 비슷한 시기 시라쿠사를 점령한 마르켈루스는 약식 개선식(Ovatio)이라도 잘만 했다.
필자의 뇌피셜이지만 원로원이 저런 말같잖은 핑계를 댄 것은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의 동생 그나이우스가
제1차 헤르도니아 전투에서 한니발에게 개관광당하고 해외로 빤스런한 것 때문에 형 퀸투스가 개선식을 할 경우 로마인 유족들의 어그로를 끌지 않을까 우려해서가 아닌가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뇌피셜.)
하여간 이런 말같잖은 이유로 개선식이 물건너갔지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이후에도 활약하여 기원전 209년 루카니아 지역을 장악하는 등 꾸준한 군공을 세웠고,
집정관도 두 번 더해서 도합 네 번이나 했으나....개선식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이후에도 파스티 트라이엄팔레스에 그의 이름은 수록되지 못했다.
그렇게 퀸투스 풀비우스 플라쿠스는 무려 한니발을 한타 싸움에서 무찌른 장군임에도 개선식 한번 하지 못했다.
참조 사료
리비우스 로마사 (티투스 리비우스 저/이종인 역)
Mastering the West: Rome and Carthage at War (Dexter Hoyos 저)
https://en.wikipedia.org/wiki/Fasti_Triumpha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