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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잘 알려진 시대별 고려 지배층 구분은 사실 확정된 게 아니고 일부는 아예 틀린 것 들이다.
고려 지배층이 문벌귀족인지 문벌관료인지는 수십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영원한 논쟁거리이며
권문세족은 오래전의 잘못된 이해(사극 정도전이 대표적)가 아직도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진 사대부는 그냥 잘못된 용어로 논쟁이 마무리 되었다.
개중에 호족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나말여초 지방 세력을 호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건 일제시대부터.
한국인 사학자 중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백남운으로 추정되는데 이땐 학자별로 뜻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지방세력 개념으로 호족을 지칭하게 된 건 5, 60년대를 거치면서부터.
문제는 이게 일본학자들이 중국사 연구하면서 만들어 낸 개념을 한국사에 그대로 복붙한 산물이라는 것
일본의 동양사학자들이 위진남북조,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 시대에
'혈연으로 뭉친 씨족'이 누대에 걸쳐 지방에 정착해 살면서 세력을 형성한 케이스를 호족이라고 불렀음
하내의 사마씨나 영천의 순씨 같은
한국 역사학이 결국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한때는 동양사 시간에 일본인 학자들 쭉 써놓고 그 사람들 연구 내용 읽어내려가던 시절도 있어서 그때 유산이 남은 건데
문제는 이게 나말여초 지방세력을 설명하는 데 안 들어맞는다는 것
중국사를 연구하며 나온 호족의 정의. '누대에 걸쳐 특정지방에 세력을 형성한 고대적 집단'이 성립하는 인물이 왕건 빼면 거의 없다.
중국의 호족은
1. 대대로 이어온 가부장적 혈연집단의 장
2. 토착성, 지방과의 밀착
이 거론되고 신라 시대 향촌을 다스리던 촌주계급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한 때 있었는데
얘 빼고 끼워 넣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신라말 향촌지배층인 촌주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엔
도적떼 출신인 궁예와 기훤,
출신 불분명한 양길
해적 능창(수달)
신라 근위대 출신인 견훤 등 반례가 너무 많다.
호족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토착성, 지방과의 밀착 역시
신라 말의 장보고부터 시작해 궁예와 견훤이 멋지게 부정해준다.
견훤은 경상도 출신으로 전주에서 왕이 되었고 궁예는 세달사에 출가하기 이전엔 행적 추적이 안 된다. 패서 호족들과 밀착은 커녕 오히려 경계했다는 정황만 한가득이고
여기에 더 깊이 파고들면 중국의 호족은 상고시대 씨족공동체적 집단이 새로운 생산력(철기, 축력심경법)의 발전으로 붕괴되고 새롭게 형성된 고대왕국의 사회기층단위 집단. 가부장적 가내노예소유제적 세대공동체집단의 장으로서 성격을 가지는데 어떻게 이들이 중세국가인 고려를 세우느냐. 고려 초기부터 중세아냐? 사실 고려 중기부터 중세인가.
시대구분론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이건 복잡하니까 제끼고
하여튼 나말여초 지방세력을 가리키는 호족이란 용어는 완전히 틀린 용어였다는 거
그런데 왜 아직도 그냥 다 호족이라고 할까?
역사학자 이순근 교수가 87년부터 의혹을 제기해 92년에 박사논문으로 발표했음에도 왜 아직도 호족이냐면...
적당히 대체할 용어가 없어서
여말선초의 신진 사대부가 완전히 잘못된 용어로 판별났을 때는 신흥 유신, 신진 사류 같은 용어로 대체가 가능했고
권문세족에 대한 정의가 잘못 되었다는 지적에는 부원배라는 카테고리를 새로 신설하고 권문세족에 대해선 개념만 손 봄
문벌귀족이 맞느냐? 고려에 진짜 귀족이 존재하긴 했느냐 논쟁은 통일되기 전엔 결론날 문제가 아니라서 보류하고 교과서엔 귀족도 관료도 아닌 문벌이라고만 적는 걸로 타협
근데 호족은 진짜 방법이 없어
호부(지방에서 부를 축적한 이들)
호강(지방에서 강성했던 이들)
성주&장군(당시 지방세력들이 자칭했던 직함으로 최대한 불러주는 것)
소위 호족
그냥 지방세력(지방세력은 고조선때부터 대한민국까지 언제나 존재하니 특정 시대의 지방세력을 일컫는 용어론 부적합함)
온갖 용어들이 거론되지만 나말여초의 그 지방세력들을 하나로 아우르고, 학자들이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고 문벌 귀족을 퇴출시킨 교과서도 호족은 그냥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