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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dd7689-9bb9-442b-bd85-e904970143cb.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바로 퇴위사건

 

일본은 고종이 헤이그 특사를 보낸 일을 빌미로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줄 것을 요구한다.

 

고종은 강력히 저항했고 박영효를 궁내부대신에 임명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완용과 송병준은 통화선까지 끊어버리며 감금해버린다.

 

고종은 하는 수 없이 대리청정만 허가했다. 일본은 새 황제 즉위를 축하하자 대리청정이 아닌 순종의 즉위가 확정됐고 고종도 순종도 없는 자리에서 내시 2명이 양위와 즉위 역할을 맡은 즉위식이 거행된다. 그렇게 고종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고종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가 있는데, 바로 권력욕이다.

구한말의 군주인 고종의 리더십은 최악이었는데 항상 모호한 태도에, 신하에게 어떤 일을 맡겨도 도무지 끝까지 책임지고 밀어준 적이 없다. 일이 틀어질 기미가 보이면 자긴 몰랐다는듯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팽해버렸다.

 

동학농민운동 진압도, 을사조약에서도 항상 두루뭉술했던 그였다.

 

 

그가 권력 유지 외에 한번이라도 결연한 적이 정말 없었을까? 그의 일대기를 한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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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의 간섭이 심해지고 탐관오리의 횡포와 동학을 탄압하는 기조가 심해지자 농민들은 보국안민을 외치며 봉기했다.

 

신하들은 강화도와 평양의 병력을 파견하고 서울 군사들을 대기시켜 놓자고 건의했다. 이에 고종은 갑자기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반대의 중론은 "조선 내부의 일에 외국군대를 끌어들이면 외국의 간섭이 심해지고, 이 땅은 전쟁터가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친청파 민씨일가는 청나라 개입을 찬성했다.

 

김병시는 "청군이 개입하면 톈진조약을 빌미로 일본군도 개입할텐데 그럼 이 땅은 외세의 전쟁터가 돼버릴 겁니다" 라는 예리한 지적을 했다.

 

 

고종은 이에 "청나라도 태평천국의 난때 영국군의 도움을 받지 않았냐"며 청군을 개입시키려했지만 신하들은 "어찌 청나라의 일이라고 본받을 수 있겠습니까?(왜 꼭 이딴것만 따라할려해요 ㅅㅂ)"라며 결사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무지성 청군만 부르짖었다.

 

 

 

cd76a7f2fbcdfe9f727208140a05d048.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결국 고종은 다 무시하고 청군의 도움을 요청했고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도 참전, 경복궁이 기습당해 강제점령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

 

갑신정변 실패 이후 한반도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열도에 웅크린 채 고뇌하던 일본은 이게 웬 떡이냐는듯 서둘러 4500명의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고 경복궁을 습격해 고종을 사로잡았다.

 

신하들 앞에서 고집쟁이였던 태도는 일본군 앞에선 누그러들었다. 일본이 청과의 관계단절을 요구하자 수용했다.

 

 

 

20230817504037.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그리고 조선의 종주권을 두고 청일전쟁이 발발했고 신하들의 우려대로 한반도는 외세의 전쟁터가 돼버린다.

 

 

참고로 동학농민군은 청군의 개입 소식을 듣자마자 "이 땅을 외세의 전쟁터로 만들 수 없다" 며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청군 파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던거다. 고종 빼고.

 

일개 농민들보다 식견이 낮은 군주 고종은 사태의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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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일본간섭 하에 김홍집 내각이 구성되었다. 김홍집은 현재 일본의 간섭을 받고 있지만 적어도 조선이 여러 개혁정책으로 국력을 길러서 후일을 도모하길 바랬다. 애초에 김홍집은 친일매국노가 아니다. 그가 조선에 가져온 조선책략만 하더라도 "러시아가 가장 큰 위협일 것 같은데 청나라와 일본을 적절히 이용해서 조선이 생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라는 세력균형을 중시한거다.

 

그런데 고종이 세력균형을 붕괴시켜 버렸다.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진거다. 하는 수 없이 김홍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하기 위해 개혁정책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후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통해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시도할때 내각에 참여해 친러파들과 공조했다. 그러전 중 명성황후가 일본에게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벌어진다. 김홍집은 이때 자결하려 할 정도로 분개했다.

 

 

"유공(유길준)! 그대가 말하는 뜻은 다 알겠소.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보전과 개혁을 위하여 모든 굴욕을 참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번 사태만은 절대로 저들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세록지신(世祿之臣)[24]으로 또 일국의 중신된 자가 국모의 참변을 보고 어찌 살아서 폐하와 만백성을 대할 수가 있겠소? 나는 유공의 처지와 다릅니다. 유공은 어떤 난국이라도 극복해서 앞으로 이 나라를 건져야 할 사명이 있지만 내가 할 일은 이제 내 스스로 죽는 일밖에 없소"

 

-유길준이 자결을 만류하자 김홍집이 한 말

 

 

 

김홍집은 주변의 만류로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을미사변 이후 새로 구성된 내각의 총리대신직을 수락한다.

 

당연히 지금 총리가 되면 무조건 욕받이가 된다. 가족들은 총리가 되면 안된다고 말렸다. 그러나 김홍집은 총리직을 수락한다.

 

"이 난세에 상감(고종)께서 잠을 못 이루고 조르시니 어찌 내 한 몸이나 아끼려고 거부할 수 있겠느냐? 부득이 어명대로 승낙했으니 내 생명은 이미 각오한 바이다. 너희들도 미리 짐작하여라"

 

결국 김홍집은 고종과 나라를 위해 총리가 된 것이다.

 

 

 

2018080700043_0.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그런데 1896년 2월 11일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동한 아관파천으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하고 친러 내각이 수립된다.

 

그리고 고종은 이해할 수가 없는 미친짓을 하는데, 바로 김홍집을 포함한 을미4적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었다.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는건 정치적으로 필요하지만 김홍집을 죽이라니? 김홍집은 조선을 위해 일하고 개혁을 위해 친러파와도 공조하며 을미사변에 분개할만큼 조선의 충신이었고 고종의 충신이었다.

 

고종의 명에 따라 의병과 보부상 수천명이 김홍집을 죽이기 위해 동원됐다. (고종은 반대파를 탄압할때 보부상을 어용 폭력 조직으로 애용했다)

 

지금 김홍집에겐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대로 저들에게 죽거나, 일본에 망명하는 것.

 

 

 

김홍집은 죽는 것을 택했다.

 

일본군은 밖에 나가려는 김홍집을 만류했지만 그는 뿌리치며 말했다.

 

"시끄럽소! 일국의 총리대신으로서 백성에게 죽는 건 천명이오! 남의 나라 군인의 도움까지 받아서 살고 싶지는 않소!"

 

결국 김홍집은 고종이 보낸 자들에게 잡혀 광화문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돌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보부상들이 김홍집의 사지를 찢어서 종로까지 시체를 끌고가서 광화문에서 종로거리 까지 피로 물들었다.

 

 

김홍집의 가족 또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는데 연좌제를 통한 처벌이 내려질 것을 예상한 김홍집의 부인은 아들을 죽이고 자결한 것이다.

 

 

 

 

Gojong_of_the_Korean_Empire_02.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김홍집에게 사태의 모든 책임을 물은 뒤 고종은 이후 덕수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 진압 이후 일본은 한반도를 급속도로 잠식해갔고 러일전쟁 마저 이겼으니 이젠 조선 병합이 코앞이었다.

 

 

WDSVWCOS9_wkPkg6w7rw6JUCNnwc6sjiRSUKBCJNJEPL1c6Lr9eHPo3PClBpy2QvI7zO42c28UKBrJ4pMoJjUg.webp.ren.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일본은 외교권을 넘기라고(을사조약) 요구한다. 대한제국이 거부하자 서울에 주둔하던 일본군 기병 800명 포병 5,000명 보병 20,000명을 동원해 경운궁 주변으로 배치하고 압박했다.

 

이토가 고종의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고종을 알현하려 하자 고종은 "인후염 때문에 어렵다"며 거절했다.

 

그리고 대신들과 논하라고 명령하는데 나라가 망할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망간 것이다.

 

결국 이토는 대신들과 을사조약을 논하게 됐고 "이런 쓰레기 같은 나라에도 충신이 있었군요!" 라는 말을 한다.

 

 

참정 대신 한규설과 탁지부 대신 민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끝까지 반대했다. 하지만 이완용이 처음으로 을사조약을 찬성했고 이지용, 이근택이 동조한다.

 

결국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 사실상 이때 나라가 망한 것이다.

 

 

 

2422617902_13cdcc472d_o.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시종부 무장관 민영환은 분노하며 민영환은 백관들을 거느리고 2~3차례나 고종에게 상소를 올려 을사오적을 당장 처단하고 을사조약은 폐기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이미 여러 번 칙유하였으니 이해해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구는가? 경들의 충성스런 말을 왜 모르겠는가? 물러가라" 며 쫓아냈다.

 

민영환은 망국의 현실에 통탄스러워 하다 단도로 배를 가르고 목을 찔러 자결했다. 전국 수많은 백성들이 통곡하며 그를 애도했다. 조병세도 을사조약을 거부하며 아편을 마시고 자결했다.

 

 

 

Portraits_for_Choe_Ik-Hyeon_by_Chae_Yong-sin.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최익현도 즉각 상소를 올렸는데 고종에게 자금성 함락 이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자결한 것을 비유하며 만사가 불여의 하면 고종은 명나라 숭정제처럼 순국할 각오도 없냐며 질타했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을 모조리 죽일 것을 청했으며 아직 외국 공사들이 귀국하지 않았고 고종이 조약에 인준한 바 없으니 원천 무효임을 강조하며 을사조약을 백지화할 것을 주장했다.

 

고종은 "그대 말이 공분에서 나온 것임을 알고 충정을 이해한다"라고 말할 뿐 별다른 조치를 안했다.

 

 

고종이 나중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고종은 조선의 위기 때마다 우유부단하고 두루뭉술하게 행동했고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일본은 열강들에게 한일합병의 동의를 모두 구해놓은 상태였다. 이제와서 특사를 파견해서 하소연해봤자 누가 들어주겠냐?

 

결국 일본은 헤이그 특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퇴위시킨다. 우리는 이때 자국민이 죽어나갈때도, 국권이 상실될 때도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고종의 강력한 반대 의지를 볼 수 있었다.

 

 

 

55dd7689-9bb9-442b-bd85-e904970143cb.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결연히 저항해야 할때 항상 모호하고 우유부단하다가 모든게 늦어버린 뒤에야 강력히 저항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고종은 권력욕이 강한 겁쟁이, 내가 왕 해먹기 위해서라면 외국군대가 자국민을 쏴죽이고 이 땅이 외세에 짓밟혀도 상관없지만 내 권력이 사라지는건 못 참는 무책임한 지도자라는게 느껴진다.

 

 

 



Screenshot_20240127_123342_Chrome Beta.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Screenshot_20240127_123418_Chrome Beta.jpg 고종이 유일하게 강력히 저항했던 일

마지막으로 어떤 바보들이 황실복원 같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는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황족 따위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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