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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6월 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한 노인이 노면전차에 치였다. 운전자는 전차에서 내려 사고당한 노인을 짐짝 다루듯 길가로 치웠다. 그리고 다시 전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고 출발했다. 행인들이 노인을 부축했다. 그들은 노인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택시를 잡으려 했다 , 노숙자로 보일 만큼 행색이 남루하고 피까지 흘리는 노인을 태우려는 택시 기사는 없었다. 결국 경찰이 나서 강제로 택시를 세웠다. 어렵게 병원에 왔지만 노인은 방치됐다 , 병원은 노인을 부랑자들이 모여 있는 공동병실로 보내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같은 시간 노인의 지인들은 실종신고를 하고 노인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병원에 거지 몰골을 한 노인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찾던 노인이 피로 뒤범벅된 채로 누워 있었다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 노인은 개인 병실로 옮겨졌다. 다음날 의식은 되찾았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노인은 사고 3일 만에 눈을 감았다. 비참한 죽음이었다."
 
 
Top-Family-Friendly-Tourist-Attractions-In-Barcelona.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Barcelona!
 
바르셀로나 ,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스페인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부터 프랑스 남쪽 피레네산맥과 접경지역을 아우르는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보다 더 큰 존재감을 자랑하고 로마 , 파리와 더불어 늘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아름다운 도시
 
바르셀로나에 들린 수 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장소들이 있다 바로 그곳은
 
 
Tour-Antoni-Gaudi-top-rated.pn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1852년 6월 25일
스페인 카탈루냐 레우스 (혹 리우돔스) 에서 태어나
 
1926년 6월 10일 (향년 73세)
카탈루냐 바르셀로나에서 생을 마감한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건축물들이다
 
 

image_2203591711531039020559.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카사 비센스

 

가우디가 설계한 첫 번째 집으로, 타일공장을 운영하는 돈 마누의 저택

 

 

fachada-palau-guell-gaudi.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가우디의 영원한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을 위해 설계한 저택 구엘 궁전

 

8028133419.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섬유업계의 거물인 바트요의 의뢰로 1870년대 세워진 건물을 1906년 안토니 가우디가 완전히 리모델링한 공동주택 건물 카사 바트요

 

 

16743700032648.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1906년 설계를 시작해 1912년에 완공된 고급 연립주택 , 카사 밀라

 

바르셀로나구엘공원입장권-클룩Klook한국.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가우디의 후원자 구엘 백작이 평소 동경하던 영국의 전원 도시를 모델로 고급 주택단지를 만들려고 했으나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가우디 미완의 꿈 구엘 공원

 

 

wallpaperaccess.com_-scaled.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그리고 가우디가 죽기전까지 평생을 매달린 지금도 건설중인 가우디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그외에도 가우디는 구엘 별장 , 성 테레사 수녀원 학교 , 카사 칼베트등 여러 건물을 설계했다

 

그의 건축방식이 현대에는 어느곳도 지어지고 있지 않다는점 , 그의 건축 방식을 이어가는 건축가가 없다는점에서 그를 거품만 낀 건축가라고 폄하하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 그렇지만 1984년 안토니 가우디의 건축이라는 등재명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비롯한 그의 건축물들이 무려 7개나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됬으며 그의 건축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점에서 그 의견은 어찌보면 틀렸다고 당당하게 말할수 있을것이다

 


gettyimages-492437846jpg--.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르 코르뷔지에 ,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 건축가 )

여담이지만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로, 현대 건축의 기초를 다졌다고 평가되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유일하게 천재라고 치켜세운 인물이 가우디였다

 

GAUDI-KAPAK.pn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오직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보러 바르셀로나에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만큼 가우디 혼자만으로 그는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수 있겠다 , 그러나 이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는 너무나 비참했다

 

가우디는 74세에 사망했다 , 20세기 초 유럽인들의 평균 수명이 60세에 채 미치지 못했다는것을 생각하면 가우디는 당대에 천수를 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나이 마흔 둘에 과도한 단식으로 생명을 위협을 받을 때도 있었고 그의 나이 쉰 아홉에 브루셀라병에 걸려 요양을 갔어야 했을 때도 있었지만 가우디는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질병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고로 죽었다

 

 

656dc0a0e0e30.jpe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작품은 긴 시간의 결과여야 한다. 따라서 건축하는 기간이 길수록 좋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말년은 수도승에 가까웠다. 건축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고, 1909년부터는 오직 사그리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건축에만 매달렸다.

 

1925년부터는 구엘 공원의 자택에 머물지 않고 아예 성당의 작업장에서 기거하며 생의 마지막 9개월을 보내게 된다. 종일 공사현장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산책을 하고, 취침을 하는 것이 그즈음 가우디의 일상이었다.

 

 

8 Barcelona, Plaça Molina 1920.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사진이 없어서 1920년대 노면전차 (트램) 사진으로 대체 )

 

1926년 6월 7일 운명의 그날 , 가우디는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카탈루냐 법원 인근의 대로를 건너다 노면전차에 치여 치명상을 당했다. 전차의 운전사는 가우디를 지저분한 노숙자로 여겨 그냥 길가에 끌어다 놓은 뒤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고를 목격한 행인들이 가우디를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으나, 볼품없는 차림새의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3번이나 승차거부를 당한 끝에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4번째 택시 운전사가 겨우 운전하여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으로 이송되었다.

 

 

1200px-Hospital_Sant_Pau,_main_facade.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산 파우 병원 , 우연의 일치인지 이 병원은 가우디의 스승이자 라이벌이였던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가 건축한 건물이였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에서도 그를 노숙자로 여긴 의사가 크게 다친 그에게 기본적인 치료만 해 주었다. 이 병원에서 조차 신분을 증명하지 못해 기본적인 치료만 받고 방치된 상태로 머물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가우디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고, 그제서야 병원 관계자들이 가우디의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연락했다.

 

이후 가우디와 친분이 있던 주임 신부 모센 길 파레스(Mosén Gil Parés, 1880~1936)가 사고 소식을 듣고 가우디를 찾아 병원에 방문하였는데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그를 알아보고선 빨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닦달한다.

 

그러나 이미 극도로 절망에 빠진 가우디는 파레스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그래서 이 거지 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걸 보여주게 해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

 

( 사실 가우디가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다는 말도 있긴 하다 )

 

아무튼 가우디는 치료를 거부한 후 그대로 남았고, 결국 그가 몇십년을 몸 담아왔던 파밀리아 성당의 완공을 끝내 마치지 못하고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1111.pn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가우디의 생전 마지막 사진 )

 

12223.pn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안토니 가우디의 마지막 길 , 그리고 마지막을 배웅하는 수많은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인파 )

1222.pn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 가우디의 장례 행렬과 파밀리아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 )

 

 

그를 죽게 만든 노면 전차 운전사는 파직과 동시에 구속되었으며, 승차거부한 택시기사 3명도 불구속 입건되었다.

 

또한 그의 치료를 대충했던 산 파우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년 6월 12일 사실상 반(半)국장으로 치러졌고 시신은 가우디가 마지막까지 열정을 쏟았던 성가정 대성당의 지하묘지에 안장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묘비명이 묘석에 새겨졌다.

 

 

Gauditomb.jpg 위대한 건축가의 최후

"안토니우스 가우디"
코르네트
레우스 출신
향년 74세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으로
위대한 예술가이며
경이로운 이 교회의
건축가
1926년 6월 10일
바르셀로나에서 세상을 떠나다
이 위대한 인간의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기대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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