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역사 커뮤니티 | 세계 역사, 고대 역사, 역사 토론 및 정보 공유

조회 수 567 추천 수 0 댓글 0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image_readbot_2017_30841_14842713732747026.jpg [충무공] 난중일기 속 아쎄이들의 생활상

 

임진년(1592년) 12월 10일(양력 1593년 1월 12일)

전선은 비변사의 공문 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본영과 여러 진포에 명령하여 많은 수를 더 만들도록 하였다.

그러나 한 척의 전선에 사부와 격군을 아울러서 130여 명의 군사를 충당할 방법이 없어서 민망하니,

'친족에게 징발하는 일들'을 사변이 평정될 때까지 전과 같이 시행하되,

조금씩 좋고 나쁜 점을 가려내어 백성의 원성을 풀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당연한 급선무이다.

 

 

계사년(1593년) 7월 13일(양력 8월 9일)

 

 

저녁나절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광양, 두치 등에는 적이 없다"고 했다.

흥양 현감이 들어오고 우수사 영감도 들어왔다.

순천 거북함의 격군으로서 경상도 사람인 종 태수(太守)가 달아나다가 잡혀 사형에 처했다.

(얘는 환생해도 장가 못 갈 듯..)

 

 

계사년(1593년) 8월 11일(양력 9월 5일)

늦게 소나기가 쏟아지고 바람이 몹시 불더니만, 오후에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종일 앉았다 누웠다 했다.

여도만호에게 격군을 잡아올 일로 사흘 기한으로 갔다 오라고 일러 보냈다.

 

 

갑오년(1594년) 1월 19일(양력 3월 10일)

 

 

저녁에 경상우수사 원균 (元均)이 왔다.

소비포권관 이영남(李英男)에게서 영남의 여러 배의 사부 및 격군이 거의 다 굶어 죽겠다는 말을 들으니,

참혹하여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

(원균이 아쎄이들 관리를 못해 아사당할 판...)

 

 

갑오년(1594년) 1월 21일(양력 3월12일)

 

 

아침에 본영의 격군 742명에게 술을 먹였다.

광양현감 (어영담)이 들어왔다. 저녁에 녹도만호(송여종)가 와서 보고하는 데,

"병들어 죽은 214명을 거두어서 묻었다"고 한다.

 

 

갑오년(1594년) 1월 24일(양력 3월 15일)

평의지(대마도주 종의지)가 지 금 웅천에 있다고 하는데, 밝혀지지는 않았다.

류황(柳滉)을 불러서 암행어사가 붙잡아 간 것을 물었더니, 문서가 멋대로 꾸며졌다고 하였다.

놀랍다. 또 격군의 일을 들으니, 고을 아전들의 간악한 짓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령을 내려 모집한 의병 144명을 붙잡아 오라고 하고,

또 현감에게 독촉하여 전령을 보내게 했다.

 

 

갑오년(1594년) 2월 7일(양력 3월 28일)

고성현령(조응도)이 보고에,"적선 쉰 여 척이 춘원포(고성군 광도면 예승리 끄승개)에 이르렀다"고 했 다.

삼천포권관과 가배량권관 제만춘(諸萬春)이 와서 서울 소식을 말했다.

이경복(李景福)을 격군 붙잡아올 일로 내보냈다.

오늘 군대를 개편하고, 격군을 각 배에 옮겨 태웠다.

방답첨사에게 죄인을 (격군으로 쓰게) 잡아오라고 전령했다.

낙안군수의 편지가 왔는데, 새 군수 김준계(金俊繼)가 내려왔다고 하므로

그에게도 (격군으로 쓸 죄인을) 붙잡아 오라고 전령했다.

보성의 전선 두 척이 들어왔다. 소비포권관(이영남)이 와서 봤다.

 

 

갑오년(1594년) 5월 13일(양력 6월 30일)

 

 

이 날 검모포만호의 보고에,

"경상우수사 소속의 보자기들이 격군을 싣고 도망가다가 현장에서 붙들렸는데,

많은 보자기들이 원 수사가 있는 곳에 숨어 있었다" 고 한다.

그래서 사복들을 보 내어 잡아 오게 하였더니,

원균(元均) 수사가 도리어 사복(司僕) 들을 묶어서 가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군관 노윤발을 보내어 이를 풀어 주게 했다.

밤 10시 쯤에 비가 왔다.

(치트공의 아쎄이를 납치해 가려했던 원균...)

 

 

갑오년(1594년) 5월 22일(양력 7월 9일)

 

 

오는 29일이 장모의 제삿날이다. 아들 회와 면을 내보냈다. 계집 종들도 내 보냈다.

순찰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또 순변사에게도 편지를 써 보냈다.

황득중(黃得中)․박주하(朴注河)․ 오수(吳水) 등은 격군을 잡아 올 일로 내 보냈다.

 

 

갑오년(1594년) 5월 29일(양력 7월 16일)

 

 

장모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저녁에 진도군수(金萬 壽)가 아뢰고 돌아갔다.

웅천현감(李雲龍)․거제현령(安衛)․적량 첨사(高汝友)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저물녁에 정사립(鄭思立)이 보고하는데, "남해 사람이 배를 가지고 와서 순천 격군을 싣고 간다"고 했다.

그래서 잡아서 가두었다.

(아쎄이를 빼돌리려 한 민간인을 처벌함)

 

 

갑오년(1594년) 6월 12일(양력 7월 29일)

 

 

가뭄이 너무 심하다. 농사의 근심이 더욱 염려스럽다.

이 날 어둘 무렵에 본영의 배 격군 일곱 놈이 도망갔다.

(아쎄이 7명이 탈영함)

 

 

갑오년(1594년) 7월 6일(양력 8월 21일)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큰 도둑 세 놈을 최귀석(崔貴 石)이 잡아 왔다.

또 박춘양(朴春陽) 등을 보내어 그 괴수를 잡아 왼쪽 귀를 잘라서 왔다.

아침에 정원명(鄭元溟) 등을 격군을 정비하지 않은 일로 이를 잡아 가두었다.

(아쎄이 훈련 안시켰다고 영창에 보냄)

 

 

갑오년(1594년) 7월 9일(양력 8월 24일)

 

 

아침에 충청우후(원유남)가 교서에 숙배하였다.

저녁나절에 순천, 낙안, 보성의 군관과 색리들이 격군을 소홀히 하고 또 기일을 어긴 죄를 처벌했다.

(아쎄이 훈련 안시켰다고 또 영창에 보냄)

 

 

갑오년(1594년) 9월 11일(양력 10월 24일)

 

 

일찌기 수루 위로 나갔다.

남평(南平)의 색리와 순천의 격군으로서 세 번이나 양식을 훔친 자를 처형했다.

 

 

을미년(1595년) 5월 17일(양력 6월 24일)

 

 

아침에 나가 본영의 각 배에 사부, 격군을 점고했다.

저녁나절에 활 스무 순을 쏘았는데, 박․권 두 조방장이 잘 맞추었다.

오늘 소금 굽는 가마솥 하나를 부어 만들었다.

 

 

병신년(1596년) 1월 15일(양력 2월 12일)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 흥양의 현감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 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낙안 현감은 조져졌을 듯...)

 

병신년(1596년) 5월 11일([양력 6월 6일)

 

 

새벽에 앉아서 이정(李正)과 함께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비인현감 신경징(申景澄)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또 순천 격군과 감관 조명(趙銘)의 죄를 곤장쳤다.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끙끙 앓았다. 거제 현령, 영등포만호는 이영남(李英男)과 같이 잤다.

 

 

병신년(1596년) 7월 16일(양력 8월 9일)

 

 

북쪽에 툇마루 세 칸을 만들었다.

이 날 충청도 홍주 격군으로 신평에 사는 사삿집 종 엇복(於叱卜)이 도망가다 붙잡혔으므로 목을 베어내다 걸었다.

하동 현감․사천 현감이 왔다. 저녁나절에 활 세 쾌를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바닷달이 너무도 밝아서 혼자 수루 위에 기대었다. 밤 10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정유년(1597년) 9월 6일(양력 10월 16일)

 

 

바람은 조금 자는 듯 했으나, 물결은 가라앉지 앉았다.

추위가 엄습하니 격군들 때문에 걱정이다.

 

 

출처 : 난중일기


역사

역사 커뮤니티 | 세계 역사, 고대 역사, 역사 토론 및 정보 공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HOT글 이재명이... 61살밖에 안 됐어....? 4 2025.05.15 586 0
HOT글 동양 서양 역사가 겹치는 타임라인 2 file 2025.05.11 609 0
HOT글 이준석, 긴급 기자회견 “나와 이재명 일대일 구도돼야…김문수론 이길 수 없어” 2 2025.05.20 362 0
공지 🚨(뉴비필독) 전체공지 & 포인트안내 3 file 2024.11.04 25860 54
공지 URL만 붙여넣으면 끝! 임베드 기능 2025.01.21 20435 43
13016 힘을 숨긴 주치의 file 2023.11.19 30 0
13015 힐러리가 트럼프 상대로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 file 2023.10.30 970 0
13014 히틀러의 인생과 사랑에 대한 탐구 file 2024.12.01 3383 1
13013 히틀러의 연설 file 2023.11.13 296 0
13012 히틀러의 연설 file 2023.11.12 270 0
13011 히틀러의 연설 file 2023.10.12 886 0
13010 히틀러의 사상 행적 중 가장 의외인 부분 file 2024.02.10 351 0
13009 히틀러의 기미상궁이였던 여인 file 2022.01.22 55 0
13008 히틀러와 직접 인연이 있었던 유대인들 file 2022.02.18 55 0
13007 히틀러도 감탄할 소년병 훈련 file 2024.01.15 625 0
13006 히틀러가 평가한 각국 군대 file 2021.08.24 64 0
13005 히틀러가 최종적으로 이루고자했던 대규모 프로젝트 file 2024.07.29 63 0
13004 히틀러가 일본에게 선물로 준 요요 비슷한 무언가. file 2023.09.07 378 0
13003 히틀러가 사용하던 집무실 file 2023.01.28 3622 0
13002 히틀러가 미대 입시 떨어진 이유 file 2023.04.25 65 0
13001 히틀러가 미국을 경계한 이유.jpg file 2024.03.12 440 0
13000 히틀러가 미국을 경계한 이유 file 2024.03.14 663 0
12999 히틀러가 말하는 남녀평등 file 2021.12.20 77 0
12998 히틀러가 계획한 역대급 대규모 프로젝트 ㄷㄷㄷ..jpg file 2023.08.10 390 0
12997 히틀러가 계획한 대규모 프로젝트 file 2023.04.14 1864 0
12996 히틀러 총통 관저 구경 file 2022.04.08 280 0
12995 히틀러 암컷 타락 대작전 file 2022.05.12 367 0
12994 히틀러 아니었으면 홀로코스트는 없었다.JPG file 2023.10.09 204 0
12993 히틀러 맞음) 콧수염 독재자는 사실 꽤 성공한 화가였음 file 2023.09.07 337 0
12992 히틀러 만나본 한국인 썰 file 2023.01.01 1031 0
12991 히틀러 가계도 file 2023.06.17 156 0
12990 히키코모리 자립 지원시설로 떠나는 아들 file 2023.03.01 26 0
12989 히잡 쓰기 운동하는 이란 남자들 file 2022.04.15 250 0
12988 히말라야의 해골 호수 file 2022.10.29 3121 0
12987 히로시마 원폭돔이 지금까지도 온전했다면? file 2023.04.29 5560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34 Next
/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