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역사 커뮤니티 | 세계 역사, 고대 역사, 역사 토론 및 정보 공유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자책골: 축구같이 구기종목에서 상대편이 아닌 자기편 골대에 골을 넣는 걸 말한다. 당연히 상대팀의 골로 기록되며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두고두고 욕 먹는다.

 

news_1529103625_719938_m_1.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자책골을 넣고 절망하는 축구선수와 기뻐하는 상대 팀. 러시아 월드컵의 이란 vs 모로코의 경기이다.

 

 

자책골은 축구, 농구같은 구기 종목에서 한 선수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인데, 특히 축구같이 점수를 내기가 힘든 종목은 1골의 실점이 경기에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해서는 안되는 실수가 자책골이다.

 

그런데 1994년에 치뤄진 한 축구 경기에서 두 팀 모두 자책골을 넣으려고 혈안이 되었던 이상한 일이 있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자세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케리비안 컵.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캐리비안 컵의 로고

 

1994년, 카리브해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토바고라는 나라에서 캐리비안 컵(Caribbean cup)이라는 축구 대회가 열렸다. 캐리비안 컵은 카리브해의 국가들이 모여 경기를 치뤄서 우승팀을 정하는, 한 마디로 카리브해의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참가 팀들이 카리브 해 국가들인 만큼 펨붕이들에게 생소한 나라 이름이 꽤 나올 수도 있다.

 

카리브해에 위치한 수 십개의 국가들 중 예선을 통과한 단 8개국 만이 본선에 올라갈 수 있었는데, 예선 방식은 8개의 조로 나뉘어 리그전 방식으로 경기를 진행해 각 조의 1위만이 본선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식이었다.

 

시작하기 전에, 이번 대회에는 조직위원회가 관중의 흥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추가된 새로운 규칙들이 몇 개 있었다. 보통 리그전은 무승부가 나와도 진행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경기를 하다 두 팀이 무승부를 해도 연장전을 진행하지 않고 그대로 무승부 처리를 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리그전에서도 무승부가 나오면 연장전+승부차기를 해서 끝끝내 승부를 정해야 한다는 규칙이 추가되었다. 거기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장전에서 넣은 골은 2골로 취급된다는, 농구에서나 볼 법한 '2점 슛' 규칙도 추가되었다. 이 규칙들이 뒤에 설명할 황당한 경기의 원인이 되고 만다.

 

어쨋든 그렇게 예선이 시작되고, 1조에는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푸에르토리코 이 3개의 나라가 한 조로 편성되게 된다. 3팀 다 실력은 비슷비슷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혼전이 예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치뤄진 첫 경기, 바베이도스는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에서 0-1로 지고 만다.

 

2번째 경기에서는 그레나다가 푸에르토리코 상대로 연장전에 '2점 슛' 을 때려서 2-0으로 승리하게 된다. 마지막 3차전인 바베이도스 vs 그레나다 의 경기를 남겨두고 푸에르토리코는 이미 득실차에 밀려 탈락이 확정되었는데, 2차전까지의 순위표는 다음과 같았다.

 

순위표.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2차전 종료 후 중간 순위표

 

 

푸에르토리코는 당장은 승점이 높은 것 같지만 이미 2경기를 모두 치뤄 여기서 승점이나 득실차를 올릴 여지가 없었고, 3차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바베이도스, 그레나다 둘 중 한 팀에 밀려 1위를 할 수 없다. 즉 진작에 나가리됐단 뜻이다.

 

바베이도스는 그레나다와의 남은 1경기에서 오직 승리를 해야만 승점 3점을 얻어 승점을 1위와 똑같이 맞출 수 있었고, 거기다 2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골 득실에서 그레나다에 앞서서 1위로 진출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설의 경기의 시작>

 

그렇게 시작된 3차전, 바베이도스 선수들은 진출을 향한 집념을 불태워 먼저 2골을 넣어 2:0으로 그레나다에 앞서기 시작한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 바베이도스가 본선에 진출하나 했는데...

 

그레나다 골.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그레나다의 추격골

 

 

종료 7분 전, 그레나다 선수가 이대로 떨어질 수 없다며 골을 넣었다! 이제 점수는 2:1로 1점 차, 이대로 끝나면 바베이도스는 떨어지고 대신 그레나다가 진출할 상황인 것이다. 그레나다 대표팀이 단체로 뇌를 크라켄에게 잡아먹힌 게 아니면 남은 7분동안 작정하고 수비할텐데 무슨 수로 바베이도스가 1골을 또 넣겠는가? 이제 바베이도스는 좆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베이도스의 케이스 그리피스(Keith Griffith) 감독은 기발한 수를 생각해 냈다.

 

 

'어차피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우린 떨어지는데, 골을 넣기도 쉽지 않다. 잠만, 그런데 이 대회에서는 비기면 연장전으로 가서 30분동안 추가로 경기가 진행되잖아? 거기다 연장전에서 넣은 골은 2골로 인정되니까 30분 동안 1골만 넣어도 진출이네?'

 

 

이런 생각을 해낸 바베이도스의 감독은 선수들에게 황당한 지시를 내리는데, 바로 자책골을 넣어서 일부러 그레나다에게 한 점을 줘 무승부를 만들어 연장전으로 가자는 지시였다.

 

바베이도스 자살골.jp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자책골을 넣는 바베이도스 2인조

선수들은 감독의 기발한 생각에 부랄을 탁! 치고 바로 지시를 따랐다. 경기 종료 약 5분 전인 후반 87분, 바베이도스의 골키퍼가 수비수와 공을 주고 받다가 일부러 자기 골대에 골을 넣어버렸다. 점수는 2:2 동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쟤네 뭐하는거지? 아싸 개꿀 하고 좋아하던 그레나다의 선수들도 곧 바베이도스의 꼼수를 알아차렸다.

 

그레나다 입장에선 상황이 더 안 좋아진게, 원래대로라면 7분만 자기 골문을 수비해도 되는 것을 연장전으로 가게 된다면 30분 동안 골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레나다의 감독은 작전을 생각해냈는데, 바로 똑같이 자책골 넣기였다.

 

여기서 그레나다가 자책골을 넣어 바베이도스에게 1골을 주더라도 3:2, 즉 1점 차 패배라 그레나다의 진출이 되기 때문이다. 그레나다의 선수들은 자책골을 넣으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바베이도스의 골문에도 골을 넣으려고 했다.(이기면 점수 차에 관계없이 그레나다가 진출하니까)

 

바베이도스의 선수들은 자기 팀 골대랑 상대팀 골대를 동시에 지켜야했는데, 이 때문에 7분동안 그레나다가 자책골을 넣어 바베이도스에게 점수를 주려고 하고 바베이도스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바베이도스 선수들의 필사적인 수비(?)덕에 본 게임은 그대로 2:2로 끝났고,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바베이도스에게는 30분의 시간이 새로 주어졌고, 연장전에서 넣은 골은 2골로 취급되기 때문에 1골만 넣어도 바로 진출을 확정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장전, 바베이도스는 공격을 퍼부어 마침내 트레버 쏜(Trevor Throne)이 골을 넣었고 말했듯이 연장전의 1골은 2골로 취급되어 바베이도스가 4:2로 앞서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존재했던 골든골 제도로 인해 잔여시간에 상관없이 경기가 끝나게 됐고, 결국 바베이도스는 4:2로 그레나다를 꺾고 기적적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경기 종료후.png 재미있는 세계 축구사 이야기 <2편: 자책골을 넣어야 이기는 경기>

 

1조의 최종 순위

 

 

이 경기로 인해 멘붕한 그레나다의 감독은 다음과 같은 인터뷰까지 남겼다.

 

 

"사기당한 기분이다. 이딴 규칙을 생각해낸 사람을 정신병동에 입원시킬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선수들이 이런 모습으로 혼돈에 싸인 채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결코 있어서는 안되며, 우리 선수들은 우리 골대에 골을 넣을지, 상대 팀 골대에 골을 넣을지 갈팡질팡하며 뛰어다녔다. 이런 경기는 태어나서 처음이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골대가 아닌 상대 팀의 골대에 골을 넣으려 뛰어다니는게 정상이다."

 

 

그레나다의 감독이 신랄하게 비판한 문제의 '2점 슛' 규칙은 다음 대회에 바로 사라지게 되었고, 이 경기는 그 당시에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하다 2005년 Sports Law 라는 축구 잡지에 소개돼 유명해졌다.

 

여담으로 이렇게 진출하게 된 바베이도스는 본선에서 1무 2패로 빠르게 짐을 싸게 되었다.

 

본선진출만을 위해 경기 자체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스포츠맨쉽을 져버린 바베이도스 선수들은 비판 받을 만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규칙의 허점을 잘 이용해 어려워보였던 본선 진출을 이뤄낸 바베이도스 감독의 탁월한 잔머리가 감탄스럽기도 하다.

 

 

다음편 예고: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게임, 히혼의 수치>

 

출처 : https://m.fmkorea.com/7027805606


역사

역사 커뮤니티 | 세계 역사, 고대 역사, 역사 토론 및 정보 공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HOT글 이재명이... 61살밖에 안 됐어....? 4 2025.05.15 581 0
HOT글 동양 서양 역사가 겹치는 타임라인 2 file 2025.05.11 603 0
HOT글 나치 독일이 초반에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 2 file 2025.05.17 297 0
공지 사랑LOVE 포인트 만렙! 도전 2025.03.19 4612 73
공지 🚨(뉴비필독) 전체공지 & 포인트안내 2 2024.11.04 25843 54
공지 URL만 붙여넣으면 끝! 임베드 기능 2025.01.21 20425 43
13014 204일동안 항해한 핵잠수함 상태 file 2025.05.17 287 0
13013 나치 독일이 초반에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 2 file 2025.05.17 297 0
13012 이재명이... 61살밖에 안 됐어....? 4 2025.05.15 581 0
13011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비극, 조승희는 누구인가? 알아보자 file 2025.05.14 734 0
13010 옛날 동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과 다른 이유(천사까지..?) file 2025.05.11 556 0
13009 17세기 초 베트남에서 활동한 예수회의 포교 문구는 "서양인의 마음으로 들어오겠습니까?" 였는데 1 2025.05.11 565 0
13008 동양 서양 역사가 겹치는 타임라인 2 file 2025.05.11 603 0
13007 문명7 재밌네..... 1 2025.05.11 580 0
13006 청동기 시대 라는 말만 들으면 반달돌칼 민무늬 토기 자동으로 떠올라서 막 원시부족 우가우가 이런 느낌이 드는데 2 2025.05.11 609 0
13005 이탈리아 기사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 복간 결정! 2 file 2025.05.11 589 1
13004 한덕수 밀어주기 가는것같네 ㅋㅋ 국민의힘 ㅋㅋ풉 2025.05.10 603 0
13003 "대선 후보 한덕수로 교체" 초유의 사태..결국 김문수 갈아치운 국민의힘 2 2025.05.10 644 0
13002 한나 아렌트 악의 급진성으로 보는 한국의 전체주의 교육 2025.05.05 932 0
13001 인간의 두뇌를 뛰어넘는 인공지능🌐 인간이 AI와 함께 살아가는 최고의 방법 file 2025.05.01 543 0
13000 더쿠 회원가입, 2024년/2025년 최신 정보! 언제? 가입 방법, 꿀팁 총정리 (눈팅 vs 가입) 2025.05.01 654 0
12999 피라미드란 존재할까요? 2025.04.24 1278 0
12998 [오늘 이 뉴스] "이러다..?" 대선 변수 급부상.. '3가지 경우의 수' 따져보니 3 file 2025.04.23 1416 0
12997 [인터뷰] 이범준 법학연구소 연구원 "6명 채워서 파면은 확실" / JTBC 뉴스룸 3 file 2025.03.23 393 0
12996 제주 4.3사건 (역사는 반복된다) 2 file 2025.03.23 384 0
12995 280명의 정예군인 부대로 쿠테타 국회 점거 가능할까? 2025.03.22 617 0
12994 국회 실탄 지급 관련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오히려 계엄군에게 실탄이 지급된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2025.03.22 600 0
12993 또 민주주의 추락 진단‥"한국 독재화 진행 중" (2025.03.17/뉴스데스크/MBC) 2 file 2025.03.18 889 0
12992 한국이 민주주의 한다는데 그렇지 않아요 | 김누리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더 피플] file 2025.03.18 927 0
12991 노예로 만들거나 노예가 되거나 (자유와 억압) file 2025.03.16 1168 0
12990 석열의 3년 : 파괴된 정치‥추락한 민주주의 4 file 2025.03.16 889 0
12989 레드불 탄생비화 file 2025.03.08 9840 0
12988 72년 전, 한 남자가 쓴 출사표 file 2025.03.08 9829 0
12987 연좌제가 존재하는 나라 file 2025.03.08 9838 0
12986 21년만에 해결한 미제 은행강도 사건 file 2025.03.08 9922 0
12985 조선의 장애인 대우 1 file 2025.03.08 9804 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34 Next
/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