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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회의보(Courrier de la Conférence de la paix)》 1907년 7월 5일자 기사
제2차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광경
만국평화회의는 6월 15일에 시작됐다.
이보다 열흘쯤 늦은 6월 24일 ~ 25일경에 헤이그에 도착한 특사는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숙소에 국기를 게양한 뒤 공식 활동에 돌입했다.
일본은 헤이그에서 특사들이 회의장 입장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특사가 파견됐음을 알아챘다.
호머 헐버트
이들은 한국에서 헐버트를 감시했는데 헐버트가 일본까지 이동하며
일본의 눈길을 끄는 동안 특사 셋이 러시아를 거쳐 헤이그로 간 것이었다.
여기에 헐버트 역시 비슷한 시기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를 거쳐 헤이그에 도착했다.
당시 대한제국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헤이그에서 특사가 목격됐다는 전보를 받고
노발대발하며 고종에게 찾아가 따졌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얼굴이 벌개져서 고종에게
"조선의 모든 외교는 을사조약을 지켜 우리 일본을 반드시 통해야 하거늘
이렇게 비열한 방식으로 국제 사회에서 일본을 난처하게 만들다니,
조약을 어긴 데 대한 배상금을 물어내던지
- 우키요에 판화-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과 풍도해전 -
https://www.touken-world-ukiyoe.jp/war/art0018720/
차라리 일본한테 전쟁을 선포하던지 하시오!"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