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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625때의 한국군 졸장을 한명만 뽑으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은 유재흥을 뽑을것이다.

인터넷에서 유재흥의 위엄넘치는 업적(?)은 매우 잘 알려져있다.

군단을 버리고 도주,친일,4.3사건땐 민간인 학살,625 시작하자마자 사단 궤멸...

인터넷 글들만 보면 거의 원균의 환생수준이다.

게다가 이런 원균급 졸장이 나중엔 국방장관까지 올라갔다니,이정도면 인물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블랙코미디처럼 보인다.

당연히 유재흥은 이런 행적때문에 네티즌들에게 엄청난 졸장이자 친일의 잔재로 인식되어 엄청나게 비판받았고,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서 졸장이자 머저리,학살자로 욕을 먹고있다.

그런데,유재흥 장군은 과연 정말 학살자이자 졸장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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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인터넷에 떠돌고있는 유재흥장군의 전설은 다수가 과장이나 거짓이다.

이미 625전쟁 연구자들과 근현대사 전공자들 사이에선 유재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고,역덕들 사이에서도 2013~14년 이후로는 유재흥 장군에 대한 팩트체크가 다수 이루어진 상태이다.

그러나,이미 과장과 날조로 이루어진 유재흥장군 전설은 대중에게 각인된 상태이고 이때문에 유재흥 장군은 아직까지도 억울하게 욕을 먹고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 유재흥 장군에 대한 몇가지의 자그마한 변명을 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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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전쟁 개전초 7사단의 궤멸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 초반에 유재흥 장군이 졸렬한 지휘로 동두천-포천과 의정부에서 참패하고 7사단을 말아먹는 바람에 주위의 선전하던 부대들까지 순식간에 붕괴했고,이에 초반 방어가 실패했다고 알고있다.

물론 유재흥이 방어에 실패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유재흥이 졸렬한 지휘로 참패했단것은 한국전쟁 초반당시의 양측 격차와 한국군의 혼란에 대해 몰라서 일어난 오해이다.

유재흥은 한국전쟁 약 2주전에 갑작스러운 한국군 내부의 인사이동으로 인해 갑자기 7사단을 맡은 상황이었다.

이때문에 유재흥은 자기 휘하 부대의 정보와 지역상황,주요 요충지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개전을 맞아야만 했다.

게다가,7사단은 원래 3개의 연대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갑자기 1개 연대가 수도경비사단으로 이동하는바람에 개전당시에는 2개 연대로만,그나마도 외박자들을 빼면 겨우 4,500명으로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개전당시의 7사단은 한마디로 약체였다.

이런 부대를 유재흥은 상황파악조차 못한채 이끌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7사단을 상대하는 북한군은 당시 북한군의 주력이었다.

북한군 최고의 정예였던 3사단,4사단,105땅크여단이 7사단이 지키고있는 곳에 한꺼번에 투입되었던 것이었다.

고작 2개연대만 있는 사단으로 2개 완편사단과 전차여단을 막으라고?

이건 막는것이 이상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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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덕

게다가 유재흥이 지기만 한것도 아니었다.

유재흥의 7사단은 개전 초반부터 여러번 패하긴 했지만,개전 다음날 참모총장 채병덕의 지시로 반격에 들어가 북한군을 격퇴하는등 몇차례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때 포천방면 부대와 이형근이 지휘한 부대가 70~80대의 북한군 전차부대에게 돌파당하며 7사단의 퇴로가 막혀버렸고,7사단은 결국 퇴로가 사라진 상태에서 포위되어 붕괴되었다.

개전초 7사단의 붕괴는 사실 채병덕과 이형근의 잘못이 더 크다.

위에서 봤듯이 채병덕과 이형근이 담당한 포천-축석령방면 부대가 순식간에 돌파당하면서 7사단의 퇴로가 차단되었고,결국 포위섬멸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퇴로가 차단되자마자 7사단이 순식간에 붕괴되어버린건 유재흥의 책임이 크지만 유재흥은 애초에 2개 연대로 2개 사단+1개 전차여단과 맞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장 약한 부대로 적 주공의 전면공세를 막아야 하던 상황이었던것이다.

이걸 막아냈다면,유재흥은 백선엽보다도 더 뛰어난 명장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지역의 방어는 힘들었다.

7사단 궤멸은 그가 무능해서가 아닌 북한군의 병력집중과 채병덕의 트롤질,7사단의 약화 등이 모두 겹쳐져 일어난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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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50-51 동계전투에서의 패배

많은사람들이 중공군 공세당시 백선엽과 유재흥의 지휘를 비교하며 유재흥은 역시 졸장이라고 하지만,사실 유재흥에겐 사정이 있었다.

유재흥은 50년 7월부터 2군단장으로 임명된 상태였긴 했지만 계속 2군단장으로 있었던게 아니라 상황이 나아진후 육본으로 발령되어 2군단이 아닌 후방에서 근무중이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중공군 공세로 상황이 급박해지자 다시 급히 원대복귀한 것이었다.

유재흥은 7사단장 때와 똑같이 2군단의 상황이나 적의 정확한 규모도 모른채 후퇴를 지휘해야 했었던 것이다.

2군단의 패퇴는 유재흥의 잘못보단 상황을 이렇게 만든 맥아더의 책임이 더 크다.

물론 그렇다 해도 유재흥이 2군단 패퇴의 책임이 없다는건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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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현리전투 대패

일단,현리전투 대패는 유재흥 책임이 맞다.

그건 부정할수 없다.

그러나,이 전투 역시 유재흥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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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알몬드

우선,당시 미 10군단장이었던 알몬드 사령관은 유재흥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자기 작전구역이란 말만 반복하며 요충지였던 오마치 고개에 병력을 두게하지 못했다.

그런데,이 고개는 현리전투당시 중공군의 초기돌파가 벌어진 곳이었다.

현리 전투 초기 참패의 책임은 유재흥이 아니라 자기 작전구역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마치 고개에 주둔한 3군단 병력들을 빼버려 초기 중공군 돌파를 초래한 알몬드에게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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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

중공군의 오마치 고개 돌파이후,유재흥은 17일에 현리에서 작전회의를 열어 3군단 각 사단에서 1개 연대씩을 차출해 오마치 고개를 돌파하기로 하고 다시 본부로 돌아갔다.

그런데...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막 오마치 고개돌파를 위해 준비하던중,병사들이 도망치며 단체로 3군단이 붕괴되어버린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붕괴의 원인이 유재흥의 적전도주라고 하고있으나,이것은 완벽한 거짓이다.

현리전투 당시 17일에 유재흥이 현리로 와서 작전회의를 연후 다시 하진부리에 있는 군단본부로 갔던것이 적전도주로 오인되었던 것이다.

유재흥은 결코 비겁하게 도주해 붕괴의 원인을 제공하진 않았다.

오히려 9사단장 최석이 붕괴의 원인이었다.

과거부터 행정만 잘하고 일선 지휘는 젬병이었다는 평을 받았던 최석은 돌파임무는 내팽개치고 작전회의 이후 곧바로 도망갔다.

이에 이미 패배의 충격과 통신불량으로 인해 사기가 바닥이던 3군단 병사들은 '사단장도 도망갔으니 군단장도 복귀한게아니라 도망간거아닐까?'라고 생각해 본격적으로 부대를 이탈해서 흩어져버렸고,결국 현리 일대에 주둔하던 국군 모두가 붕괴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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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리전투 위령비

유재흥은 이런 상황속에서도 부군단장 강영훈과 같이 경비행기로 집결지 안내를 하는등 군단수습을 위해 분투해 어느정도 군단을 수습하는데 성공했지만,아직 수습이 덜된 상태라 하진부리 전투에서도 또 패배하게 되었고 결국 3군단은 해체되고 유재흥은 해임되게 되었다.

(이 전투때문에 미군이 국군 전작권을 접수했단 말이 있으나 전작권은 이미 50년 7월에 이승만이 미군에 넘긴 상황이었다.)

현리전투 당시 초기방어에 실패한것과 군단이 박살날때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한것,현리전투 직후의 하진부리 전투에서도 패배한것은 분명 유재흥의 잘못이다.

하지만 현리전투의 모든 책임이 유재흥 탓이란건 아니다.

중공군 돌파의 단초를 마련한 알몬드,적전도주로 군단 붕괴를 초래한 최석도 잘못이 크다.

백선엽 역시 "어떠한 지휘관이라도 당시 중공군의 집중적 공세를 국군의 부족한 화력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리 패배는 군단장으로써 군단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유재흥의 책임이 제일 크긴 하나,그렇다고 유재흥에게 모든 비난을 돌릴수는 없다.

일선 부대의 모랄빵,앨먼드의 방해,최석의 적전도주,유언비어 등이 모두 합해져 벌어진 복합적 참사가 바로 현리 전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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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정말 참패만 했나?

사실,그는 패배만큼이나 승리도 많은 사람이다.

전쟁이전에 6사단장으로 제직하던 시절,그는 미리 춘천지역에 대규모 진지와 10여개의 토치카를 만들어두었고 이는 김종오 장군이 춘천-홍천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쟁 발발 이후에도 수차례의 지연전에서 전략적 승리를 거두며 휘하의 부대를 온전히 유지하며 낙동강까지 후퇴하는데 성공했고 낙동강방어선에서는 2군단장으로 영천 지역의 한국군을 지휘하며 하마타면 무너질뻔한 낙동강 방어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마지막에는 북한군을 역으로 섬멸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은 이 전투에서 패하면 한국을 포기하고 한국정부와 일부 군경만 서사모아로 이주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기와 다부동에서 국군이 승리하고 북한군이 잔여 여력을 상실하면서 전세가 전환된 것이었다.

유재흥은 영천전투 승리로 서사모아로 망명갈수도 있었던 대한민국 정부를 살린것이다.

그 이후에도 유재흥은 52년에 2군단장에 임명되어 수도고지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하고 마침내 고지점령에 성공하며 승리하기도 했다.(수도고지는 후일 유재흥 장군이 육군참모차장으로 전보된후 53년에 중공군이 다시 점령한다.)

유재흥은 결코 패배만 기록한 졸장은 아니었고,오히려 여러번의 대승과 전략적 승리를 거둔 영웅이기도 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유재흥은 주사위형 장군이 아니었나 싶다.

현리에서 1이 나오고,영천에서는 6이 나온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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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유재흥은 제주 4.3사건 민간인 학살에 책임이 있다?

유재흥의 행적에 대한 제일 큰 오해가 바로 이것이다.

유재흥이 4.3사건 당시 제주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마구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장도,오해도 아닌 완전한 거짓말이다.

유재흥은 오히려 제주시민들이 무고하게 죽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유재흥은 49년에 제주도지구 전투사령관이 되자마자 군경과 토벌대의 민간인학살을 즉각 중지시키고 산으로 피난간 제주시민들에게 유화적 내용이 담긴 삐라들을 뿌렸다.

이와 동시에 대민지원을 시작했고 유격대 포로들을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그리고,유격대 출신이라도 깊게 연루되지 않은 단순 가담자면 생활필수품과 기호품을 받고 석방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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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군경의 학살을 피해 도망갔던 민간인들이 전부 하산해 항복했고,유재흥은 이들중 부역자들을 뺀 나머지를 삐라에 담긴 약속대로 전부 무사히 귀가하게 해주었다.

부역자들도 악질이 아닌이상 훈방이나 교도소 수감정도로만 처벌했다.

그후,유재흥은 그동안 엄청난 학살을 저지르며 제주도를 피로 물들인 3연대와 2연대,서북청년단을 강제로 쫓아내버리고 그자리에 해병대를 주둔시켜 제주시민들의 치안을 책임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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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이덕구

그러자 제주시민들은 전부 군경편을 들게 되었고,산에 숨어있던 유격대들은 고립되어 전부 궤멸되었다.

유재흥 파견 3개월후,유격대의 수장 이덕구는 경찰에게 사살되어 전시되는 신세가 되었다.

전임 사령관 송요찬의 강력한 탄압에도 절대 잡히지 않았던 이덕구가 유재흥이 오자 3개월만에 잡힌 것이었다.

이덕구 체포 이후로도 유재흥은 산위로 피난한 제주도민의 안전한 귀순에 힘쓰다 49년 5월 중순에 제주도를 떠났다.

유재흥 덕분에 산에서 나와 안전히 집으로 간 제주시민은 당시 제주지역 인구의 20%였다.

이들 모두가 유재흥의 유화책 덕분에 목숨을 건진것이다.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노무현 정부때 편찬됨)에서도 유재흥의 이러한 대민 유화정책을 칭찬했다.

유재흥은 결코 학살자도 비겁자도 아닌,합리적인 시각으로 제주도민 수만의 목숨을 구한 제주도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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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유재흥 장군에 대한 여러가지 자그마한 변명을 해보았다.

위에서 살펴봤듯이,유재흥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과같은 졸장이나 학살자는 아니었다.

그가 겪은 패배들은 전부 적의 주공에 약한 부대로 덤비다가 복합적 원인으로 인해 대참패한 경우였고(물론 그렇다고 패배가 합리화되는건 아니지만) 조건만 좋다면 승리한 경우도 꽤 많다.

게다가,4.3사건의 사례와 같이 대민지원에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재흥은 졸장이 아닌,그저 민사능력이 뛰어난 평범한 지휘관이었던 것이다.

물론,그가 과거 친일행적이 있었던것과 현리 전투에서 참패한것은 명백히 그의 잘못이 맞다.

유재흥은 애초에 군대에 있었으면 안될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그가 4.3사건때 빨갱이로 의심을 받으면서까지 제주시민들의 목숨을 살려준 것과 영천전투에서 하마타면 서사모아로 갈뻔한 한국을 살려낸것,그리고 현리전투 이후 묵묵히 군단수습에 힘을 쏟아 3군단을 큰 문제없이 재편한것과 큰 문제없이 수도고지 전투에서 승리한것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광복과 한국전쟁,개발독재의 혼란한 시기를 정면으로 관통해오며 살아온 흑과 백이 뒤섞인 사람의 흑만을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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