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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5월 18일 제이슨 포먼 (5세 남성)은 형과 세 남성과 함께 놀고 있었다.
제이슨은 하이 스트리트 언덕에 있는 소방서를 향해 달려갔다.
제이슨의 집은 소방서 반경 30야드에 위치했으며 제이슨의 어머니 조이스는 오후 3시 30분경 창문 밖에서 제이슨의 웃음소리를 들었지만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는 아들의 목소리였으며 제이슨 두 번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82년 마이클 우드맨시 (1958년 7월 16일생)은 신문 배달부 데일 셔먼 (14세 남성)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고 셔먼의 목을 졸랐다.
셔먼은 우드맨시의 집에서 어떻게든 도망가는데 성공해 아버지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격노한 아버지는 우드먼시를 찾아가 마구 팼고 우드맨시의 아버지가 아들을 때린 사실을 경찰에게 알린다.
경찰관은 경찰서에서 이야기를 하자며 우드맨시를 데려와 신문했고 제이슨 실종에 대해 무언가 알고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이슨이 마지막으로 집 앞에 있었던 것은 어머니 조이스가 확인했으며 마침 우드맨시의 집은 제이슨의 집 맞은편에 위치했었다.
조사가 계속되자 우드맨시는 제이슨을 살해했다고 자백했고 몸집이 큰 사내아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제이슨 포먼)
경찰은 우드맨시의 방을 수색해 일기를 발견했지만 내용은 망상 뿐이었다.
다음에 발견된 것은 제이슨의 옷과 두개골, 뼈 몇개였다.
살이 다 발라진 뼈였으며 우드맨시는 페도, 네크로필리아, 식인 이 3가지의 이상성욕을 가진 혼종새끼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1983년 우드맨시는 사법거래에 응해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우드맨시가 수감된 교도소가 있는 로드 아일랜드주에는 굿타임법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교도소에서 행실이 좋은 죄수에게 매달 최대 10일의 형기를 면해주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이용한 우드맨시는 28년간 12년의 형기를 단축시켰다.
2011년 5월 2명의 정신과 의사가 우드맨시를 진찰하였다.
우드맨시와 변호사는 가석방 후 자발적으로 크랜스턴의 엘리너오 슬레이터 병원에 무기한 방문하는 것에 동의하였고 9월 11일 우드맨시는 28년간의 감옥살이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출처 : https://blog.naver.com/hurucin/222523995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