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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여태까지 가본 곳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느 한 곳만 꼽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 답을 합니다. “전혀 기대 없이 갔는데 좋았던 여행지는 ~”이라고 말이죠. 사실 언젠가부터는 어디를 갈 때 항상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여행지에서 참 많이 느꼈었거든요.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간 곳도 있고 애초에 나랑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관심조차 없던 곳도 있었습니다. 해외여행 못 간지 어언 1년. 옛 여행을 추억하며 ‘뒤통수 제대로 맞았던’ 의외로 좋았던 여행지 3곳을 소개합니다.

 

이탈리아 카프리섬

대학 시절 네덜란드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눈길조차 한번 안주던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였는데요. 이탈리아는 나중에 시간과 돈을 많이 들여서 꼼꼼하게 오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때까지는 아껴두자는 생각이었죠.

사회에 나와 여행기자를 하면서도 이탈리아와는 연이 박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드디어 이탈리아 출장이 잡혔습니다. 첫 번째 출장지는 토스카나 지역이었고 2년 전 두 번째 이탈리아 출장은 남부 이탈리아였습니다. 나폴리·포지타노·아말피·소렌토 그리고 카프리 등 남부 주요 도시를 가는 일정이었는데 여기서 제 인생 여행지를 만났습니다. 바로 카프리섬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가장 기대가 적었던 곳이 카프리였어요. 적은 기대감도 만족도를 높이는 한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폴리에서는 페리로 1시간, 소렌토에서는 20분이 걸리는 카프리는 전체 면적은 4㎢로 제주도 옆 우도(6㎢)보다도 작습니다. 마을은 딱 두 개. 카프리와 안나카프리입니다. 해안을 따라 절벽지대가 이어져 마치 요새처럼 생겼어요. 전체 인구는 약 1만5000명. 카프리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최고의 허니문 여행지로 꼽힙니다. 영국 찰스 황태자와 다이애나비도 카프리로 허니문을 왔었죠.

 

‘태양의 섬’이라는 별명처럼 종일 찬란한 햇살이 온 섬과 바다에 내려앉았습니다. 시내에는 오랜 역사가 담긴 기념품 가게와 유럽 최고의 휴양지답게 고급 레스토랑과 럭셔리 상점, 호텔 등이 모여 있고 자연경관 명소는 대부분 해안가 절벽 위를 따라 있어요. 그리고 카프리가 좋았던 건 섬 규모가 작고 골목길이 잘 나 있어 섬 곳곳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카프리 중심은 푸니큘라 스테이션 주변 광장은 밤에 산책해도 좋았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정원, 트라가라 전망대와 등대, 해변 등 웬만한 명소를 전부 걸어다녔어요. 버스를 탄 건 카프리에서 옆 동네 안나카프리로 이동할 때가 유일했습니다.

 

카프리가 특별했던 건 바로 해변이었습니다. 카프리를 떠나던 날 아침 현지인 가이드에게 추천받아 들렀던 ‘마리나 피콜라 해변’. 그리고 제가 찾은 보석은 마리나 피콜로 해변 옆 딱히 이름도 없는 해수욕장입니다. 사실 섬 전체가 절벽으로 둘러쳐진 곳이라 딱히 해수욕장을 기대하지 않았는데요. 두 발로 걸어서 찾아낸 보석 같은 몽돌해변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습니다. 멀리서 봤을 땐 온통 투박한 바위뿐이었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니 이렇게나 아기자기한 해수욕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쉬울 때가 많아요. 시간이 짧다 보니 피상적일 때가 많고 일정에 쫓겨 꼭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지나칩니다. 바쁜 일정 속에도 시간을 쪼개 마리나 피콜라 해변을 보고 온 것이 참 다행입니다.

 

‣ 에스토니아 탈린

에스토니아 탈린은 몇 해 전부터 ‘곧 뜰’ 여행지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에스토니아 이웃 나라 핀란드에 갔을 때 현지 사람들한테 추천을 받았는데요. 헬싱키 사람들이 자기네들 땅 냅두고 바다 건너 탈린을 추천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금요일이면 배 타고 탈린 가서 맥주를 엄청 사와. 물가가 정말 저렴하거든.” 뭐, 이해는 갑니다. 핀란드를 위시한 북유럽은 전 세계에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헬싱키에서 탈린까지는 페리로 2시간이 걸립니다.

 

두 눈으로 보기 전 탈린은 그저 그랬어요. 별 기대가 없었죠. 첨탑과 광장 그리고 중간중간 이가 빠진 듯한 낡은 성벽 정도가 남아 있는 모습이겠지, 유럽의 여느 ‘중세 도시’처럼요. 수 세기 동안 주변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렸으니, 도시의 모습도 온전치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만 실제 마주한 탈린은 제 예상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현존하는 도시 중 중세 유럽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탈린 구도심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어요. 약 45만 명이 살아가는 탈린은 중세의 모습이 무려 89%나 보존됐대요.

 

탈린에 사흘 머물며 들었던 생각은 ‘언젠가 이곳에서 꼭 한 달 살기 하고 싶다’였습니다. 저는 장롱면허예요. 그래서 도보 이동이 가능한 여행지들을 좋아합니다. 탈린이 딱 그랬어요. 유럽에서 탈린만큼 걷는 재미가 있는 도시가 또 어딨을까요. 세월에 깎인 울퉁불퉁 돌바닥과 알록달록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건물과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404년 완성된 옛 시청사, 1422년 첫 영업을 시작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1500년 쯤 완성된 올레비스테 교회 등 올드타운 곳곳에 유구한 역사를 담은 스폿들이 구불구불 낭만적인 골목길을 따라 미로 찾기 하듯 이어집니다.

 

3년 전만 해도 동양인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어요. 대신 스페인, 브라질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있었습니다. 탈린 구시가지를 종일 걸으면서 오래전 처음 유럽 여행의 추억도 새록새록 기억났답니다.

 

‣ 미국 라스베이거스

저는 여태껏 미국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저에게 미국은 여행지의 이미지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생각을 바꾸게 된 건 10년 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다녀오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존 무어 트레일을 걸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매력은 마천루 즐비한 현대적 도시보다 날것 그대로 보존된 자연에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됐어요. 얼마나 좋았던지 한동안 신혼여행은 무조건 요세미티로 갈 거라고 이야기하고 다니기까지 했어요.

 

미국의 의외의 매력에 더욱 빠지게 된 건 ‘라스베이거스’에서였습니다. ‘서울 안 가본 놈이 가본 놈을 이긴다’ 했던가요. 영화·드라마 같은 매체를 통해 숱하게 라스베이거스를 접해온 탓에 ‘뻔한’ 엔터테인먼트 도시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왠지 갬블링, 카지노라는 이미지 때문에 어딘가 꺼려지게도 했고요. 뮤지컬·쇼에도 별 관심 없고 갬블링은 더더욱 모르는 저에게 라스베이거스는 그저 영화 속 만들어진 세트장 같은 곳이었습니다. 가면 돈을 펑펑 써야할 것만 같고 말이죠.(저에겐 그만한 돈이 없는데 말이죠.)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라스베이거스는 출장이 들어와도 굳이 가겠다고 나서지 않았어요. 편견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본 라스베이거스는 영상 속에서 보았던 것과 그리고 편견 속 모습과도 무척 달랐습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오겠다고 다짐까지 했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미국 최고의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과 술집, 클럽, 공연장 심지어 롤러코스터가 있는 테마파크까지 상상한 오락거리 모든 것이 길이 약 6㎞ 스트립 길 위에 펼쳐집니다. 가장 매력적인 건 여느 미국 도시와 달리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저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출처출처: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스트립이 관광객들로 가득하다면 구도심 프리몬트 스트리트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곳입니다. 커다란 네온 간판이 줄을 잇는 빈티지한 분위기의 프리몬트 스트리트 곳곳에 맛집과 바들이 숨겨져 있답니다. 조금 멀리 나가자면 헬기를 타고 후버댐, 그랜드 캐니언을 갔다가 하늘 위에서 휘황찬란한 스트립을 내려다볼 수도 있어요.

 

링크 프롬나드는 스트립과 사뭇 분위기가 다른 상점가입니다. 그리고 이곳 끝엔 라스베이거스의 새로운 상징 하이롤러 전망차가 위치합니다. 곤돌라를 타고 지상 170m까지 올랐다 내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분. 특히 일몰 이후가 압권인데요. 도시 외곽 어둠이 내려앉은 황량한 사막과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불을 밝힌 스트립 주변 모습이 대조를 이루는 극명한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도시 전체가 마치 커다란 선물상자 같았던 라스베이거스, 뜨거울 정도로 화창했던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여름날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집니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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