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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존슨은 1954년 자메이카에서 태어났다.
존슨은 11남매 중 1명이었으며 바나나 농장에서 일했다.
1980년 아내 이본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그는 자동차 수리 서비스 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81년 존슨은 이본이 교회에 갈 때 복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하였다.
그러다 분노가 극에 달한 존슨은 이본의 머리를 꽃병으로 박살내버리고 울버햄프턴 9층 발코니에서 이본을 떨어뜨려 죽여버린다.
스태퍼드셔 재판에서 판사는 존슨을 아내로부터 학대를 당한 남편이라 하며 살인은 아내에게 도발을 당해 일어난 일이라며 살인이 아닌 과실치사 혐의로 심판한다.
1992년 존슨은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울버햄프턴에서 이본느 베넷을 만났다.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하면서 런던 북부의 핀즈베리 파크로 이사를 갔고 베넷이 딸을 낳았을 때 베넷이 바람을 피다 걸려버리는 바람에 떨어져 살게된다.
떨어져 살던 존슨은 베넷에게 스토커 행위를 하다가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1993년 두 살배기 딸이 잠든 사이 존슨은 베넷의 목을 벨트로 졸라 살해했다.
베넷을 살해한 후 경찰에 전화한 존슨은 범행을 고백하고 나무에 줄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경찰에 끌려갔다.
올드 베일리에서 열린 재판에서 존슨이 우울증 및 인격장애를 앓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책임능력 저하를 이유로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어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1994년 9월 존슨은 정신과 병동을 나올 수 있게됐고 1995년 「City and Guilds」에 이틀간 참여하는 것이 허용됐다.
맨체스터에서 토트넘으로 이사를 온 네 자녀를 둔 어머니 안젤라 베스트(51세)와 만난 존슨은 그녀와 사귀게 된다.
1997년 10월 정신위생법 심판에 의해 석방됐고 석방 조건으로 여성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자신을 감독하고 있는 의사와 사회 복지사에게 통보하는 조건이 달렸다.
그러나 존슨은 베스트와의 관계를 통보하지 않았다.
2016년 9월 베스트는 존슨의 전과를 알고 그와 헤어진다.
그러면서도 존슨과의 관계는 이제까지의 만남 중에서도 가장 행복했었다고 이야기한다.
12월 8일 정신과 의사와 사회 복지사가 면회를 왔을 때 우울증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누군가와 사귀는 것 또한 여전히 부정했었다.
12월 15일 베스트는 자메이카 대사관과의 약속 때문에 존슨의 아파트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존슨의 집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서 존슨은 베스트를 망치로 6번 때리고 마지막으로 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다.
베스트를 살해하고 몇 시간 후 존슨은 체샨트역 급행열차에 몸을 던진다.
존슨은 목숨을 건졌지만 오른쪽은 팔까지 잃고 왼쪽은 손을 잃고 말았다.
구급대원들이 존슨의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경찰은 그의 집 거실에서 베스트의 시신을 발견했다.
재판에서 휠체어에 탄 존슨은 베스트를 살해했다고 고백했고 26년의 금고형이 선고됐다.
변호사는 존슨이 교도소 안에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지만 존슨은
"그는 살아있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을 원망하고 있어요"
라고 했다.
베스트의 가족들은 헤아릴 수 없는 상실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베스트가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많은 사랑을 줬다는 이야기를 재판에서 하였다.
출처 : https://blog.naver.com/hurucin/222490849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