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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오늘은 1900년 2월 27일 팀 창단 이래 FC 바이에른의 122년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날이다. 이번 일요일은 오늘날의 레코드 챔피언이 독일에서 처음으로 최고의 팀이 된지 90년이 되는 날이다.
그때도 FCB는 700명의 회원을 보유하며 뮌헨에서 가장 큰 클럽이었다. 따라서 첫 번째 성공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26년에 바이에른은 남독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했고 2년 후 이 모든 것을 반복했으며 동시에 처음으로 독일 챔피언십의 준결승 진출권을 확보했다.
욕망의 대상 : 1903년부터 1944년까지 빅토리아는 독일 챔피언십 우승에 대한 트로피로 수여되었다. 1932년에는 처음으로 뮌헨으로 향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바이에른의 가장 큰 성공은 4년 후인 1932년 6월 12일에 이어졌다. 남독일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 0-2로 패배했지만, 팀은 독일 챔피언십에 진출할 수 있었다. 총 16개의 다른 참가 팀과 함께. 16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미네르바 1893 베를린을 4-2로 꺾고 이어진 PSV 켐니츠와의 경기에서 3-2로 이기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첫 독일 챔피언을 향한 길 : 뉘른베르크와 준결승 경기에서 오시가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1-0으로 리드했다.
리차드 콘 감독의 팀은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준결승전에서 FC 뉘른베르크를 2-0으로 꺾었다. 골 득점자인 오시와 한스 벨커는 바이에른을 남부 독일 챔피언십 결승전 6주 만에 뉘른베르크에서 아인트라흐트를 꺾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었다.
당시 많은 FC 바이에른 팬들이 기차를 타고 그들의 심장 클럽을 가까이서 경험했다. 뉘른베르크로 향하는 자전거 호송대는 오늘날까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총 421명의 팬이 자전거를 타고 뉘른베르크까지 160km 이상을 갔다. 당시 그들의 대다수는 실업 상태였기 때문에 FC 바이에른은 연대를 보여 스포츠 팬들에게 음식과 숙박 시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근면성과 노력에 대해 결승전 티켓을 제공했다.
FC 바이에른 박물관에는 1932년 챔피언십을 기념하여 당시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다.
바이에른 팬들의 전폭적인 응원이 효과를 보였다. 20분 후, 바이에른은 경기 초반보다 훨씬 더 자신 있게 움직였다. 또다시 첫 골을 넣은 것은 오시 로어 였다. 그는 페널티킥으로 FCB에게 리드를 주었다. 75분에 프란츠 크룸이 골로 2-0을 만들었다. FC 바이에른이 32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했다. 클럽이 설립되었고, 분데스리가 타이틀의 전신인 빅토리아 타이틀을 얻었다.
수천 명의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하여 그들의 영웅들을 어깨에 들어 올렸다. 뮌헨에 도착한 우리는 수백 명의 서포터들과 함께 마차를 타고 중앙역에서 마리엔 광장을 거쳐 큰 챔피언십 축하 행사를 위해 "뢰벤브로이켈러"까지 도심 전체를 퍼레이드 했다.
우승 퍼레이드 : 프랑크푸르트와의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승리한 바이에른 팀은 도시를 거쳐 마차를 타고 챔피언십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