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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변백현
1.
서울에서 벗어나 외할머니의 고향 시골로 내려온 지 세 달이었다. 조용하고 지루한 시골 생활에도 이젠 적응되었다. 담배 하나를 사기 위해 집에서 30분은 걸어가야 겨우 나오는 구멍가게에 산책 삼아 나가는 것도. 주인 아저씨도 처음엔 젊은 아가씨가 담배를 피우는 게 못마땅한 듯 초면인 나를 위아래로 티 나게 훑어 보더니 이젠 내가 들어서자 마자 익숙하게 내가 피우는 담배를 꺼내준다.
느릿느릿 다시 30분을 걸어 집 앞 골목에 들어서서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여긴 모든 게 느리고 조용했다. 하늘을 보며 세 개비를 연달아 피웠다. 서울에선 하늘 본 적이 없는데, 여기 와선 낮이고 밤이고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담배를 다 피우고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쭉 켰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조그만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다시 쪼그려 앉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꾀죄죄한 게 주인 없는 강아지인 것 같았다. 아직 어려 보이는데.
“야.”
“......”
“너 엄마는 어디다 두고 혼자 다녀.”
괜히 시비를 거는 것처럼 말을 붙였다. 대답할 리 없지. 강아지는 내 주위를 맴돌다가 내가 살짝 내민 손을 앙 물었다. 아직 아기라서 그런 건지, 일부러 힘을 주지 않은 건지 아프진 않았다. 지켜보는 것도 잠시, 곧 흥미가 떨어져서 강아지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향했는데 강아지가 자꾸만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
어쩌지, 생각하다가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 뒤에 바짝 붙어 열린 현관문 사이로 마당까지 들어온 강아지는 저 혼자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면서 킁킁거리더니 이내 지쳤는지 내가 앉아 있는 마루 아래까지 다가와 몸을 엎드렸다.
“......”
밥은 먹었나. 집엔 강아지가 먹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강아지를 지켜보다가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놀다가 지치면 나가겠지 싶었다.
2.
방에 드러누워서 깜빡 조는데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런 시골에서 아이 울음소리라니. 처음엔 환청인 줄 알았는데 울음소리는 꽤 가까이에서 들렸다. 혹시나 하고 마루에 나가 보니 마당에 웬 어린애가 철퍼덕 앉아 울고 있었다.
“......”
당황스러워서 몸이 딱 굳어 버렸다. 아직 걷지도 못할 정도로 어린 저 애가 혼자서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건지도 모르겠고, 왜 우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를 볼 줄 몰라 주춤거리는데, 숨이 넘어갈 듯 서럽게 울어대니 할 수 없이 슬리퍼를 신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야, 왜... 왜 울어.”
아이는 나를 올려다보며 더욱 서럽게 울며 내게로 힘겹게 기어오려 애썼다. 쪼그려 앉아 안아주려는데, 아이의 목에 목걸이 같은 게 있었다. 미아 방지 목걸이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수인?”
수인 보호 센터. 아이의 목걸이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수인이구나. 아까 날 따라왔던 그 조그만 강아지일까. 보호 센터라면 가족이 없다는 뜻일까. 고개를 갸웃하며 일단은 급한 대로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를 안아본 적이 없어서 어설프기 짝이 없어 불편한 자세였지만, 다행히 아이의 울음소리는 잦아들었다. 몇 번이고 아이를 고쳐 안았다. 배가 고픈 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아이 목걸이에 적힌 수인 보호 센터의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마침 없어진 아이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시골의 작은 보호 센터라 인력이 부족하다길래 직접 데려다주기로 했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뒷좌석에 눕히고 차를 몰았다. 읍내 쪽에 위치한 곳이라 차로 가야 하는 꽤 먼 거리인데, 혼자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걸까 싶었다.
읍내까진 와본 적이 거의 없었지만 수인 보호 센터는 금방 눈에 띄었다. 겉보기엔 허름한 건물이어도 내부는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오는 동안 한 번도 깨지 않은 아이를 다시 안고 안으로 들어섰다. 직원이 나를 한 번에 알아보고 안내해주었다.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아이거든요. 적응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혼자 멀리까지 가버렸네요. 며칠 동안 찾고 있었어요.”
“며칠씩이나요.”
“네. 다행히 좋은 분이 찾아주셨네요.”
안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품에 안긴 아이가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 얼굴을 채 살피기도 전에, 몸집이 작아지는가 싶더니 아까 봤던 작은 강아지로 변해 내 품에서 뛰쳐나간다. 직원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는 강아지를 쫓아갔다.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직원에게 잡힌 강아지는 있는 힘껏 반항하며 직원의 손을 할퀴었다.
“백현아, 그러지 말구. 응?”
직원이 강아지를 달래려 애썼지만 강아지는 위협적이지도 않는 으르렁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그 모습이 왜인지 안쓰럽게 느껴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강아지가 앞발을 버둥거리며 내게 오려는 듯한 몸짓을 했다.
“어, 안, 안아주실래요?”
직원이 당황스러워하며 물었다.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뻗자 직원이 강아지를 내게 안겨주었다. 다행히 내 품에 다시 안겨선 얌전했다.
“이름은 백현이라고 해요. 변백현.”
“아... 네.”
꽤 예쁜 이름이었다. 반항하느라 그새 지친 건지 강아지는 숨을 헥헥거리며 내게 편히 기댔다. 직원은 며칠간 제대로 먹은 게 없을 거라면서 우유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직원의 손이 닿자 으르렁대는 바람에 우유도 내가 먹여주었다. 배가 많이 고팠는지 꿀떡꿀떡 잘도 마셨다.
“어, 김윤서 씨라고 하셨나요?”
직원이 말을 붙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이 괜찮으시면 백현이를 입양해보는 건 어떠세요?”
“네?”
뜻밖의 말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내가 너무 놀라자 직원은 두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아, 절대 강요는 아니구요. 저희 기관이 원래 수인들의 입양을 도와주는 기관이다 보니까 먼저 권유해드리기도 해요. 백현이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백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거든요. 가족이 없어서 생후 일주일도 안 돼서 여기로 오게 됐어요. 워낙에 적응도 못 하고 여길 싫어하는 것 같아서 저희 쪽에서도 마음을 많이 쓰는 아이예요.”
“아......”
“갑작스러우시겠지만 백현이가 윤서 씨 손은 거절하지 않는 것 같아서 드려본 말이에요. 이런 것도 인연이라고 생각되어서요. 물론 원하지 않으시거나 부담스러우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
3.
어느새 우유를 다 먹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강아지를 내려다보았다. 여길 싫어하는 것 같다고. 태어나서 고작 한 달 산 주제에 뭐가 그렇게 싫어서 그 멀리까지 도망을 친 걸까. 하필 도망친 곳이 내가 사는 집이라니.
“제가 얠 입양하면 가족이 되는 건가요?”
“아, 그렇죠. 수인은 3년 정도면 성인이 되기 때문에 좋은 친구로 지내실 수 있을 거예요.”
3년... 그래, 3년 정도야 뭐.
입 속으로 3년이란 세월을 곱씹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데리고 갈게요.”
“잘 생각하셨어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서류 처리 도와드릴게요.”
직원이 반가워하며 자리를 비웠다. 도롱도롱 잠든 강아지를 보다가 슬쩍 앞발을 건드려 보았다.
잘한 게 맞을까.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어쩌면 충동적으로 입양을 결정하긴 했는데, 혼자서 잘 키워낼 수 있을진 자신이 없었다.
4.
갈 땐 아이와 나, 두 사람의 몸만 갔는데 올 땐 짐이 한가득이었다. 수인인 아이가 사람의 모습으로 있을 때 필요한 간단한 옷가지와 기저귀, 분유 등을 비롯해 강아지의 모습으로 있을 때 필요한 강아지용 물품 몇 가지. 센터 직원은 수인은 빠르게 쑥쑥 자라나기 때문에 옷 같은 건 많이 사 둘 필요가 없다며 조언해 주었다. 그 외에도 입양과 관련된 여러 장의 서류와 아이의 이름으로 된 통장까지 전부 싸 들고 왔다.
“......”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뒤늦게 앞이 캄캄해졌다. 미친 짓을 한 걸까. 나이 스물넷에 수인 보모 노릇을 하게 생겼다. 사실 나도 내 한 몸 챙기기 힘들어 여기까지 온 건데.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인생을 책임지려 하다니.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되돌릴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할 수 있는 데까진 하는 수밖에.
5.
“야... 백현아...”
아이가 밤마다 울었다. 우유도 잘 먹고, 낮잠도 잘 자고, 날 보며 웃기도 잘해 낮엔 꼭 천사 같은데 밤만 되면 앙앙 울어대니 꼭 새끼 악마 같았다. 이 조그만 걸 혼낼 수도 없고. 일주일째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해서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랬다. 이젠 제법 안는 건 익숙해졌다. 안아주고 달래면 금세 울음을 그치면서, 왜 꼭 우는진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잘 자면 좋을 텐데.
“또 울면 안 돼. 그냥 코 자야 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먹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 배시시 잘도 웃었다. 울다가 말고 또 배시시 웃으니 기가 찬다. 어휴. 피식 웃으며 천천히 다독여주었다.
6.
아이는 정말로 쑥쑥 자랐다. 수인이라서 정말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 같았다. 어느덧 밤에도 울지 않고 잘 잤고, 옹알이를 조금 하는가 싶더니 금세 음마 음마 하면서 단어 비슷한 걸 내뱉었다. 엄마는 아니고 누나라고 알려줬더니 그건 좀 더 어려운지 그냥 웅얼거리고 만다.
쑥쑥 자라는 아이 때문에 나까지 덩달아 바쁘게 움직이며 바뀌고 있었다. 처음엔 어렵기만 했던 기저귀 정돈 손쉽게 갈아줄 수 있었다. 이유식을 시작해야 해서 잘 가지도 않던 부엌에 종일 붙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했고, 그런 와중에도 이리저리 기어 다니다가 머리를 콩 부딪혀 우는 아이를 달래려 뛰어다니기도 했다. 하루는 아이가 밤에 갑자기 열이 올라 혼비백산해서 읍내 병원까지 달려갔고, 또 어떤 날엔 까꿍, 하는 내 말에 반응해 까르르 웃다가 몸이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놀라 우는 아이를 안아주기도 했다. 이게 고작 몇 주 만의 일이었다.
7.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지루하고 느리기만 했던 시골 생활이 아이와 함께하며 매일 긴박하고 새로웠다. 아이는 대부분 사람의 모습으로 지냈지만, 한 번씩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하면 목줄을 채워 동네를 산책하곤 했다. 아이는 산책이 재미있는지 한 번 산책을 나가면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며 작은 네 발에 힘을 주고 버틸 때도 있었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주변을 한 바퀴 더 돌아주었다.
“백현아, 이리 와 봐.”
아이는 요즘 혼자 일어서더니 이젠 테이블을 짚고 걷는 연습을 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두 팔을 뻗고 기다렸더니, 입술까지 앙 다물고 집중해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고작 몇 걸음이 힘겨운지 중간엔 잠시 쉬기까지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 끝까지 걸어와 결국은 내 품으로 안겼다. 아이를 꼭 안아주며 잘했다고 엉덩이를 두드려 주었다. 통통한 뺨에 뽀뽀를 해주자 또 까르르 웃으며 내 볼에 침을 묻히며 뽀뽀를 한다.
“맘마 먹을 시간이네. 맘마 먹을까?”
“우응!”
이젠 의사소통이 그럭저럭 된다. 나는 아직 아이가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는 내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원래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아이에게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 말을 거는 것도 아닌데 아이는 잘도 옹알거렸다. 곧 말을 배울 시기인 것 같아서 그림책을 몇 권 사서 자주 읽어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썩 재미있게 읽어주는 건 아닌 것 같은데도 아이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그림책을 쿡쿡 찔러대거나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엉덩이를 들썩거리곤 했다.
“자, 아.”
“우응.”
이유식을 떠서 입가에 대줬더니 고개를 젓는다. 요새 아이는 혼자 숟가락질을 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다. 손에 힘이 없어 다 질질 흘려서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게 훨씬 많은 주제에. 이유식이 이리저리 떨어져 옷에도 다 묻고 바닥과 상도 더러워지니 내가 먹여주려고 해도 꼭 제가 하겠다면서 고집을 부렸다.
“어휴.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결국은 숟가락을 넘겨주었다. 그제야 신이 나서 퍽퍽 숟가락질을 하다가 그릇을 아예 엎어버리고 만다.
“변백혀언.”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이마를 짚으며 제 이름을 부르자 잘못한 건 아는지 아이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치를 본다. 그게 귀여워서 또 화는 못 냈다.
“그래. 이러면서 크는 거지. 이것도 또 며칠 지나면 금방 잘할 거니까.”
아이가 너무 빨리 자라서 아쉬울 때도 있었다. 이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은데, 며칠, 몇 주가 지나면 아이는 금세 자라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는 말을 몸소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사진을 많이 찍어 주었다. 우는 모습, 자는 모습, 웃는 모습, 걷는 모습.
“자, 손 줘 봐.”
물티슈로 엉망이 된 손부터 닦아주었다. 내 눈치를 보던 건 까먹은 건지 금방 또 까르르 웃는다. 웃는 아이를 보고 있을 때면 덩달아 웃음이 난다.
“오늘은 네가 다 엎었으니까 그냥 내가 먹여주는 거 먹어. 알았어?”
“우응...”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새로 떠 온 이유식을 천천히 한 숟가락씩 먹였다. 작은 입을 벌려 오물오물 잘도 먹는다. 맛있어? 물으니 으응! 하고 야무지게도 대답한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8.
아이를 재우고 일기장을 펼쳤다. 원래 일기 쓰는 습관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이곳에 온 후부터 쓰기 시작했다. 워낙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이라 쓸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 빼먹지 않고 한두 줄이라도 썼다. 아니, 썼었다. 아이를 데려오고 나서부턴 매일 쓰던 일기의 날짜가 드문드문 비기 시작했다. 하루가 너무 빠르고 처음에 데려왔을 땐 밤에 매일 울어댔으니 일기고 뭐고 단 한 글자도 쓰기 싫어서였다.
[20XX년 7월 12일.
백현이가 어제보다 더 많이 말을 옹알거렸다.
이젠 다리에도 힘이 많이 생겼다.
저녁에 이유식 먹다가 그릇을 완전히 엎었다. 고집부리더니.
쪼끄만 게 내 눈치 살살 보면서 웃는데 귀엽다.]
일기가 아이 얘기로 가득했다. 육아 일기 수준이었다. 하긴 뭐 하루 내내 아이와 붙어 있으니 당연했다. 매일매일 의무감에 억지로 한 줄 두 줄 쓰던 일기였는데 이젠 굳이 억지로 쓰려 하지 않아도 서너 줄은 쓸 수 있게 됐다. 아이 덕분이었다.
전부.
아이 덕분이었다.
9.
며칠 후에 병원에 있던 엄마가 죽었다는 연락을 전해 받았다. 엄마가 병원에 누워만 있었던 기간이 꽤 되었으니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 연락을 받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배다른 오빠의 문자 메시지가 연달아서 왔다.
[넌 니 엄마 죽었다는데 와보지도 않냐?]
[하긴 그 더러운 핏줄 어디 가겠어]
[내가 왜 첩년 장례까지 치러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젠 엄마도 없으니까 만날 구실도 없겠지]
[다신 얼굴 비추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핸드폰 액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에서 일기장과 약통을 꺼냈다. 처음 서울에서 이곳으로 왔을 때 가지고 왔던 수면제는 아직도 먹지 못했다. 이걸 먹으려 여기까지 온 건데도.
죽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데도, 아직도 죽지 못했다.
일기장을 펼쳐서 오늘 날짜를 적었다.
[20XX년 7월 20일.
엄마가 죽었다. 진작 나도 죽]
거기까지 쓰고 앞장을 넘겨서 지금까지의 일기를 훑었다.
10.
[20XX년 3월 7일.
엄마가 세 살 때까지 살았다던
외할머니의 고향 집으로 내려왔다.
엄마는 병원에서 곧 죽을 것 같았는데
그 전에 내가 죽고 싶다.]
[20XX년 3월 8일.
서울에서는 몰랐는데
하늘 보면서 담배 피우니까 더 맛있다.]
[20XX년 3월 9일.
또 하루가 흘렀네. 오늘도 못 죽었다.]
.
.
.
[20XX년 5월 29일.
하늘을 봤다.
죽으면 나도 저기로 가게 될까?]
[20XX년 5월 30일.
담배 사러 갔다가 사탕도 하나 샀다.
오랜만에 먹는 거라 맛있었다.
일곱 살 땐가 엄마가 사줬던 게 생각난다.]
.
.
.
[20XX년 6월 4일.
강아지를 주웠다.
아니 수인을 입양했다.
가족이 생겼다.]
[20XX년 6월 5일.
애가 너무 운다. 자고 싶다.]
[20XX년 6월 7일.
처음으로 어제 일기를 건너뛰었네.
도저히 쓸 정신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뭔가 더 살만한 것 같다.]
[20XX년 6월 10일.
백현이가 오늘은 안 울었다.
수인이라서 하루하루 달라지는 것 같다.
3년 만에 어른이 되려면 부지런히 자라야겠지.]
.
.
.
[20XX년 6월 28일.
처음 여기 왔을 땐 하루가 너무 길었는데
지금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백현이랑 같이 있으면 매일이 새롭다.
그래서 요즘은 죽을 생각이 안 든다.
백현이가 다 자랄 때까지 미뤄도 될 것 같다.]
[20XX년 6월 29일.
백현이가 너무 빨리 크는 게 아쉽다.
조금만 더 천천히 자라줬으면 좋겠다.]
.
.
.
[20XX년 7월 19일.
백현이랑 마주 앉아서 짝짜꿍 놀이를 하는데
그렇게 재미있는지 신이 나선
엄청 웃으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계속 같이 웃느라 볼이 아팠다.
내일은 또 백현이가 얼마나 예쁘게 웃을지
너무 기대된다.]
11.
바로 어제의 일기까지 읽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쓰다 만 오늘 자 일기를 볼펜으로 찍찍 그었다.
더러워진 종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일기장을 덮고 약통과 함께 다시 서랍에 넣었다.
“우응... 눈나아...”
낮잠을 자다 깼는지 아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우느라 대답하지 못했더니 칭얼거리며 나를 찾아 방까지 들어왔다. 그새 좀 더 자란 아이는 이제 무언가를 짚지 않아도 잘 걸을 수 있었다. 우는 나를 발견한 아이는 제가 더 서럽게 엉엉 울어 버린다.
“왜, 울어, 백현아. 응?”
“끅, 흐엉, 눈나아...”
내 목을 끌어안고 서러운 울음을 쏟아내는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다가, 살짝 뒤로 물러나 두 손으로 내 볼을 만지작거렸다. 흐른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제가 울 때 내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눈나아, 뚜욱...”
“......”
우리는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12.
[20XX년 7월 20일.
아직은 죽을 수 없다.]
*
아가 배쿠와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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