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노조, FIFPro와 성질이 아예 다른 단체임. 생긴 과정부터 저런 단체들이랑 다름. 집단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모여서 외치지 않고서야 부당한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기관이 아님. 일단 대한의사협회는 법에 따라 나라에서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졌음.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들은 '중앙회'와 '지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음. 의사의 경우 대한의사협회가 '중앙회'에 해당하고 부산광역시의사회 등이 '지부'임.
심지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모든 의사가 반드시 가입해야 함. 의대를 갓 졸업한 사람들한테 흔히 나오는 반응이 이런 식: '여기 꼭 가입해야 되나?' '아까운데 회비까지 내야 되나?' '뭐 하는 데인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왜 가입해야 하나?'
의협이 하는 대표 업무가 있는데 의외로 대중들에게는 안 알려져 있음. 바로 의사들의 보수교육. 학교를 한참 전에 졸업하고 주로 중소규모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그나마 최신 지견을 따라가도록 교육하는 일이 이 단체의 핵심 임무 중 하나.
그렇다면 파업 같은 사태에서 왜 의협이 항상 전면에 나설까? 의사들의 의견을 대변할 기관이 사실상 없기 때문. 의협을 제외하면 의사들이 다 같이 모여 있으면서 제대로 틀이 갖춰진 기구가 없음. 대한내과학회, 대한간학회 등 각종 학회가 많지만 이들은 대규모 스터디 그룹에 가까움.
의사들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회비를 아까워할 정도로 의협에 관심이 없음. 그리고 의사들은 결정권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노동자라는 생각도 별로 안 함. 인턴, 레지던트 시절에는 '을'이지만 그것은 잠깐 몇 년 고생하는 것에 불과함. 그렇다고 정치에 관심이 있지도 않음. 현생에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 열심히 하고 기타 머리 복잡한 문제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임.
그런데 대한민국 의사 14만 명 중에 정치에 욕심 있는 자가 누군가는 있을 것. 자리를 원하고 여의도가 목표인 사람이라면 의협 수뇌부부터 꿈꿀 수 있고, 회원들이 관심이 없을수록 정치꾼들이 장악하기 쉬운 조직이 됨. 그래서 의협 회장 중에는 사실상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이들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