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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노인의 나이는 대통령보다 몇 살 아래였다. 일찍이 자식 하나를 두고 상처한 뒤 자식마저 살림을 차리자 사고무친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은 늘 이 외로운 양씨를 감싸 돌았고, 서울서 피난 올 때도 가정부 대신 양 노인을 데리고 왔다. 그는 얼굴 생김이나 풍채, 희끗희끗한 헤어스타일이 너무도 대통령을 닮았다.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대구 임시관저에 있을 때 두어 번 미8군에서 냉동고기류와 빵을 보내온 일이 있었다. 또 시민들은 대통령이 들도록 감자, 옥수수, 계란, 닭 등을 지게에 지고와 두고 가기도 했다. 대통령은 이런 음식이 생기면 몽땅 전방이나 후방 훈련소의 우리 아이들(국군 장병들)에게 갖다 주도록 했다. 날씨가 더워 고기나 빵 같은 것은 하루만 지나면 상하는 시절이었다.
대통령이 양 씨를 불렀다. “자네 나하고 같이 부산 훈련소에 다녀오지. 저 음식들을 갖고 가서 자네 솜씨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게. 음식이 빨리 상하니 비행기로 가지.” 부산 신병훈련소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와서 특식을 제공한다는 연락을 받고 군악대까지 대기시켰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양 씨가 음식을 먼저 챙기기 위해 트랩을 내려섰다. 군악대가 대통령 환영 연주를 시작했다. 언뜻 보아 양 씨는 틀림없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것은 양 씨였다. 그는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군악대는 대통령이 환영에 답하는 줄 알고 더 신이 나서 나팔을 불어댔다.
이 해프닝이 있고난 뒤 대통령은 양 씨를 보면 “자네는 음식 대통령 하게. 앞으로 내 시찰 때는 함께 가서 우리 아이들 음식을 만들어주지.”하며 꼭 수행토록 했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