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3 23:44
(혐) 좆같은 페티쉬의 연쇄살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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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소련 다게스탄 공화국에서 태어난 한 남성이 있다.
그는 모친의 자궁에 있을 적에 탯줄에 목이 졸려 뇌로 통하는 공기가 차단 되면서
만성적 간질과 기질성 뇌 증후군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기질성 뇌 증후군의 증상으로는 '충격적인 사건'에 오랫동안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
이런 증상들로 인해 슬리브코는 어렸을 적에 불면증과 식욕부진에 시달렸다.
어렸을 적의 불면증은 그의 정신을 병약하게 만들었고
일반적인 수준의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무성욕자가 된다.
학생 시절, 그는 '신체이형장애'라고 하는 정신병까지 얻게 되었다.
신체이형장애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왜곡되어 보이는 질병이다.
실제로 꽤 잘생겼던 그였지만 이 병으로 인해 자신의 외모가 괴물 같다고 생각하여
또래 친구들을 사귄다던지, 사회활동을 한다든지 이런건 기피 했다고 한다.
그는 정신병으로 인해 군대 신검에서 병역불가 판정을 받지만 해군에서 자진 복무한다.
언제나 혼자였던 그에게는 한 가지 유일한 취미가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등산'이었다.
등산을 하는 동안에는 그는 그 어떤 걱정, 불안감도 느끼지 못했다.
또한 등산을 통해 건강이 나아지면서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 왔던 정신병들도 완화가 되었는데
덕분에 그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자를 한명 만나게 된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바로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부부의 25년간 성관계 횟수는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2명의 아들을 득남한다.
체르기드(ЧЕРГИД)라는 캠핑 동아리를 조직하여 운영한다.
그러던 1961년
슬리브코는 학생들과 하산을 하던 중
음주운전 오토바이와 학생들 무리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오토바이에서 기름이 새어 나오면서 사방에 휘발유 냄새가 진동을 했고,
그리고 그 중간에 많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한 교복 입은 소년이 있었다.
이 사고를 목격한 슬리브코에게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성적 충동이 일었다.
며칠 간 슬리브코의 머리 속에는 구두를 신은 발목이 잘린 채 죽어가는 소년의 모습이 각인되었고
이 사고를 목격한 슬리브코에게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성적 충동이 일었다.
며칠 간 슬리브코의 머리 속에는 구두를 신은 발목이 잘린 채 죽어가는 소년의 모습이 각인되었고
슬리브코는 자신의 성욕 회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깨닫게 된다.
슬리브코는 학생들과 캠핑만 한 게 아니라
같이 다큐멘터리를 찍거나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하거나 사회 봉사를 하는 등
학생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선한 이미지를 구축했는데
슬리브코는 이러한 자신의 이미지를 범죄에 악용하기 시작한다.
(지역 신문에 실린 아나톨리 슬리브코의 업적에 대한 사진)
소년들에게 자신의 집으로 동행할 것을 요구했고
슬리브코를 좋은 아저씨로 생각하는 소년들은
별 의심 없이 그의 집으로 동행했다.
슬리브코는 아이들에게 올가미로 처형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말하며
소년들의 목에 올가미를 건 후 질식을 시켜 기절을 시킨 후
기절한 학생의 신체를 그 때의 사고현장처럼 재현 하여 성행위를 했다.
아나톨리는 이 모든 과정을 모두 필름카메라에 담고 집에서 보며 자위행위를 했다.
슬리브코는 이 짓을 22년동안 44명의 학생들과 하였고 그 과정에서 7명의 학생이 사망했다.
슬리브코는 사망한 학생들의 시신을 절단하여 또 절단한 신체부위로 성행위를 하거나 머리통을 축구공 처럼 가지고 노는 등 정말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짓들을 벌였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아나톨리를 철썩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에, 또 기절을 해있었기 때문에
슬리브코와의 만남을 비밀로 하였다.
희생자들은 전부 체르기드의 회원으로 슬리브코는 1975년에 일찍이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슬리브코는 교육 영웅훈장을 받을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었기에 당시의 소련의 경찰 법률의 한계로 슬리브코에 대한 압수 수색이 진행되지 못했다.
수사법도 변화 되었고 소련경찰은 슬리브코의 집을 급습해
그가 찍은 필름, 사진들을 발견하였고
슬리브코는 곧 바로 체포되었다.
(사건 현장을 재현하는 아나톨리 슬리브코)
슬리브코의 재판에서 그의 학생들이 직접 나와 그를 변호하려 했지만
증거가 너무 명확하기에 1989년 그는 사형을 선고 받고 노보체르카스크 교도소에서 총살 되었다.
슬리브코는 처형당하기 몇시간 전에 당시에 화제였던 사건에 대해 조언격 인터뷰를 했는데
그 사건의 범인이 바로
소련 최악의 살인마
로스토프의 백정 안드레이 치카틸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