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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겨울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얗게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숨소리만 부유했다.
그리고 그 겨울, 나는 ‘박지민’을 만났다.
하필이면 지하철이었다.
퇴근길, 복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내 팔에 닿은 따뜻한 온기.
고개를 돌렸을 때, 마스크로 반쯤 가려진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괜찮으세요?”
목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냥 한 번 사과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내 눈을 몇 초간 바라봤다.
나도 이상하게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이야기.
며칠 후, 나는 친구의 부탁으로 공연장에 갔다.
고3 때 같이 뮤지컬 동아리 했던 지현 언니가 요즘 아이돌 팬이 되었단다.
“진짜 딱 한 번만 같이 가줘. 나 혼자 너무 민망하단 말이야.”
귀찮았지만, 언니 얼굴을 떠올리며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입장하자마자 무대 위로 쏟아지는 조명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 안에 그가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게 사과하던 그 사람.
그리고 지금, 박지민.
노래를 부를 때와 춤을 출 때,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무대 위 지민은 치명적이었다.
치명적이란 말, 난생 처음 그 단어가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무대가 끝나고, 인사하는 순간에도 나는 믿지 못했다.
우연이 아니라면, 운명이라고 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끝난 뒤, 팬들 사이에 섞여 빠져나오던 중 누군가 내 손목을 살짝 잡았다.
“그때 지하철에서… 맞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가 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분명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인연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서로의 일상을 조심스레 꺼내 보이고, 사소한 메시지에도 설레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그와 나 사이에는 ‘세상’이 있었다.
그는 너무 빛났고, 나는 그림자에 익숙했다.
그래서였을까.
다음 약속을 정하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혹시… 나, 조금만 더 용기 내도 될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어딘가 슬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