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59 추천 수 0 댓글 0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종교(宗敎)의 역사(歷史)는 사람 자신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다. 고고학자(考古學者)들과 인류학자(人類學者)들이 그렇게 말한다. 매우 원시적(原始的) 문명(文明), 다시 말해서 미개(未開)한 문명(文明)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숭배(崇拜)의 증거(證據)가 발견(發見)된다. 실제로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학자(學者)들이 발견(發見)한 바로 볼 때, 어떤 의미로도 종교심(宗敎心)이 없는 사람이란 어느 곳에도, 어느 시대에도 결코 존재(存在)하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종교는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多樣)하기도 하다. 보르네오 정글의 사람 사냥꾼, 얼어붙은 북극 지방의 에스키모인, 사하라 사막의 유목민(遊牧民), 세계(世界) 대도시(大都市)들의 도시 주민(都市住民) ,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민족(民族)과 모든 나라들이 그 나름의 신()이나 신들 그리고 그 나름의 숭배(崇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다양함은 참으로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할 정도이다. 오늘날 어떻게 어종교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전해왔는지 첨부파일을 참고하기 바란다.


논리적(論理的)으로, 이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이 모든 종교의 기원(起源)은 무엇인가? 종교들 사이에 유사점들 뿐만 아니라 뚜렷한 차이점들이 있는 것을 볼 때, 이들은 상호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하나의 근원(根源)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는가?’ 사실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도대체 종교가 왜 시작되었는가?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종교(宗敎)와 신앙(信仰)에 관한 진리(眞理)를 발견하는 데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하다.


1. 宗敎起源에 관한 質問


종교의 기원에 관해 질문(質問)을 하면,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Mahomet)의 아랍어 이름.), 붓다(Buddha, 부처), 공자(孔子), 예수 같은 이름을 생각한다. 우리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참 믿음을 창시했다는 이유로 영예(榮譽)를 받는 중심 인물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인습을 타파한 개혁가(改革家)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덕주의(道德主義) 철학자(哲學者)들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민족(民衆)의 헌신적(獻身的)인 영웅(英雄)들 이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새로운 종교의 기초(基礎)를 정립(定立)한 글이나 말을 남겼다. 세월(歲月)이 흐르면서 그들이 말하고 행한 것들이 다듬어지고, 윤색되어, 신비(神秘)한 영기(靈氣)를 띠게 되었다. 그 지도자들 중 일부는 신격화(神格化)되기 까지 하였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주요 종교들의 창시자(創始者)로 간주되지만, 그들이 실제로 종교를 창시(創始)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 창시자(創始者)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가르침의 근원(根源)이 신에 의한 영감(靈感)이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기존(旣存)의 종교사상(宗敎思想)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니면 이러저러한 면으로 불만스러워진 기존의 종교(宗敎) 체제(體制)를 바꾸고 수정(修正)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교적 정확(正確)한 역사(歷史)에 의하면, 붓다(Buddha)는 왕자(王者)였는데 힌두교가 지배하는 사회 내에서 주변의 고통(苦痛)과 비참(悲慘)한 환경(環境)을 보고 큰 충격(衝擊)을 받았다. 불교(佛敎)는 인생(人生)의 고통(苦痛)스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解決策)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努力)의 결과였다.

 

마찬가지로, 무하마드는 주변의 종교 의식에서 우상 숭배(偶像崇拜)와 부도덕(不道德)을 보고 심한 혼란에 빠졌다. 그는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그 결과 쿠란[Quran 또는 코란(Koran)]이 만들어져서 새로운 종교 운동 곧 이슬람교의 기초가 되었다. 프로테스탄트교는 16세기 초엽 마르틴 루터가 당시 가톨릭 敎會의 면죄부 판매에 항의(抗議)하면서 시작된 종교 개혁의 결과로 가톨릭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존하는 종교에 관한 한, 그 기원과 발전, 그 창시자(創始者), 그 경전(經典) 등등에 관한 지식(智識)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러면 그 이전에 존재(存在)했던 종교들의 경우는 어떠할까?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된 종교들은 어떠할까? 충분히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종교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종교 영역을 벗어나서 살펴보아야 한다.


2. 宗敎에 관한 많은 理論


종교의 기원과 발전(發展)에 관한 연구(硏究)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分野)이다. 여러 세기 동안,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태어나고 자기가 성장한 환경(環境)의 종교(宗敎) 전통(傳統)을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선조(先祖)들이 물려준 설명에 만족하면서, 자기들의 종교가 진리(眞理)라고 생각하였다.

 

아무 것도 의심할 이유가 없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언제, 혹은 왜 시작되었는지를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상, 여러 세기 동안 여행 및 통신수단(通信手段)이 제한(制限)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종교 체제에 대해 아는 사람들조차 별로 없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 양상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진화론(進化論)이 지식인(知識人)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과학적(科學的) 탐구 방법(探究方法)의 출현(出現)과 더불어, 진화론(進化論)은 많은 사람에게 종교를 포함한 기성 체제에 대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의 종교 안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의 한계를 인정한 일부 학자들은 초기 문명(文明)의 유물이나 사람들이 아직도 원시적(原始的)인 사회(社會)에서 살고 있는 세계 곳곳의 오지(奧地)로 향하였다. 그들은 종교가 어떻게 그리고 왜 시작 되었는 가에 관한 실마리를 찾기를 바라면서, 그 일에 심리학(心理學사회학(社會學인류학(人類學) 등등의 방법들을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갑자기, 많은 이론들 조사자(祖師者)들 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조사자들 끼리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으며, 저마다 대담성(大膽性)과 독창성(獨創性) 면에서 상대(相對)를 능가(凌駕)하려고 애썼다. 이 연구가(硏究家)들 중 일부는 중요한 결론에 이른 반면, 다른 연구가의 업적은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다. 이런 연구의 결과를 잠시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교육적(敎育的)인 동시에 계몽적(啓蒙的)인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타내는 종교적 태도에 대해 더 나은 이해(理解)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흔히 애니미즘 곧 정령(精靈) 숭배로 불리는 이론은 영국(英國)의 인류학자(人類學者)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0.2 ~ 1917.1.2)가 주창한 것이다. ·환상·환각 등을 경험하고 시체(屍體)에 생명(生命)이 없는 것을 보면서, 원시인(原始人)들은 몸속에 영혼(靈魂:Soul 또는 spirit)라틴어, 애니마(anima)이 거한다는 결론(結論)을 내리게 되었다고 타일러는 말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그들은 사랑하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영혼(靈魂)이 계속 살아있고, 영혼이 몸을 떠나서 나무·바위·강 등등에 거한다고 생각하였다. 마침내, 죽은 자들 그리고 영혼이 그 속에 거한다고 하는 물체들이 신으로 숭배(崇拜)받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종교(宗敎)가 탄생(誕生)했다고 타일러는 말하였다.

 

영국(英國)의 또 다른 인류학자(人類學者) R. R 마렛(Robert Ranulph Marett, 1866-1943)정령(精靈) 숭배(崇拜)를 다듬어, 애니머티즘 곧 유생관(有生觀)을 주창하였다. 태평양 군도의 멜라네시아인과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원주민(原住民)의 신앙(信仰)을 연구(硏究)한 후에, 마렛은 원시인들이 인격의 영혼 개념을 가진 것이 아니라, 만물에 생명을 주는 비인격의 힘 혹은 초자연적 능력(超自然的 能力)이 있다고 믿었다는 결론(結論)에 이르렀다.

 

또한 그 신앙(信仰)은 사람 속에 외경심(外境心)과 두려움이라는 감정(感情)을 불러일으켰고, 그 감정이 원시 종교의 기초가 되었다고 결론(結論)지었다. 마렛이 보기에, 종교는 주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람이 나타내는 감정적 반응이었다. 마렛이 가장 좋아했던 말은, 종교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춤으로 고무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1890년에 영국 스코틀랜드의 고대(古代) 민속학(民俗學) 전문가(專門家),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 1854.1.1-1941.5.17)금지편(金枝編: The Golden Bough)이라는 널리 영향을 미친 책을 발행했는데, 그 책에서 그는 종교가 주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프레이저에 의하면, 처음에 사람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그것을 모방함으로써 자기의 생명과 환경을 조종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천둥 같은 북소리를 내면서 땅에 물을 뿌리면 비를 오게 할 수 있다거나, 원수의 형상에 바늘을 꽂으면 그에게 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로 인해 生活의 많은 분야에서 의식[意識:불교에서는 六識 또는 八識의 하나, 심적 생활을 다른 것과 구별하는 특징, 각성(覺醒)하여 정신이 든 상태에서 사물을 깨닫는 일체의 작용, 역사적(歷史的사회적(社會的)으로 규정되는 사상(思想감정(感情이론(理論견해(見解) 등을 일컫는 말, 자각(自覺)]과 주문 그리고 주술적 물건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것이 기대했던 대로 작용하지 않을 때는, 그 일을 그만두려고 한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 능력자의 도움을 얻기 위해 비위를 맞추고 간청하였다. 의식과 주문이 제사와 기도가 되었고, 그래서 종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의 말대로라면, 종교는 사람보다 우월한 능력자를 달래거나 회유하는 일이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정신 분석학자(精神分析學者)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5.6-1939.9.23)그의 저서 토템과 터부(Totem and Taboo)에서 종교의 기원(紀元)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프로이트는 자기 직업에 어울리게, 최초의 종교가 아버지상()에 대한 노이로제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그는 야생말과 소떼의 경우처럼, 원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씨족을 지뱌(支配)했다는 이론을 세웠다.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하고 선망하기도 하던 아들들이 반역(反逆)을 하여 아버지를 죽였다. 아버지의 능력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 식인종 야만인들은 그들이 죽인 아버지를 먹었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하였다. 나중에, 아들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들의 행동을 속죄하기 위한 의례와 의식을 고안해 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하면, 아버지상이 하나님이 되었고, 의례와 의식이 최초의 종교가 되었으며, 살해한 아버지를 먹은 것이 많은 종교에서 행하는 영성체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이론들은 그 밖에도 수없이 많다. 그렇지만, 그 이론들은 대부분 잊혀졌으며, 그 이론들 중에는 실제로 다른 것들보다 더 믿을 만하거나 받아들일 만하게 두드러져 보이는 이론이 전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그 이론들이 참임을 증명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나 증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이론들은 순전히 일부 조사자들의 상상 혹은 억측의 산물에 불과하였으므로, 오래지 않아 다음 이론이 등장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3. 그릇된 기초(基礎)


여러 해 동안 그 문제로 씨름한 후에, 많은 사람은 종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일에 이제 아무런 돌파구도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첫째로, 옛날 사람들의 뼈와 유물은 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혹은 왜 숭배(崇拜)를 했는지를 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인공 유물로부터 끌어낸 그 어떤 결론도 기껏해야 경험에 의한 추측에 불과하다.

 

둘째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原住民)과 같은 오늘날의 소위 원시인(原始人)들의 종교 의식(宗敎意識)이 반드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행했거나 생각했는가를 측정하는 믿을 만한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세기 동안 그들의 문화(文化)가 변했는지의 여부(與否) 또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실(確實)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世界宗敎—古代史에서 現代史까지(World

ReligionsFrom Ancient History to the Present)현대의 종교사가들은 종교의 기원(起源)을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있다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역사가(歷史家)들의 노력에 관하여, 그 책은 이렇게 기술한다. 과거에는 단지 종교를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려고 한 이론가들이 너무 많았다. 초기 형태의 종교가 환영에 근거한 것임이 드러난다면, 후기 고등 종교들의 토대가 허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의 마지막 말에는 종교의 기원을 조사하는 다양한 과학적(科學的)” 조사자들이, 지지받을 수 있는 설명을 도무지 못하는 이유를 알려 주는 실마리가 있다. 논리적(論理的)으로 볼 때, 정확한 결론은 정확한 전제로부터만 이끌어 낼 수 있다. 만약 그릇된 전제로부터 출발한다면, 건전한 결론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거듭해서 과학적(科學的)” 조사자들이 이치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견해의 근거가 되는 전제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된다. 그들은 미리 생각한 개념에 따라, 宗敎를 그럴듯하게 說明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님도 그럴듯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런 상황은 여러 면에서 16세기 이전의 천문학자(天文學者)들이 행성(行星)의 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에 비할 수 있다. 많은 이론이 있었지만, 어느 것도 참으로 만족스럽지 못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이론들은 지구가 우주(宇宙)의 중심이고 별과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地球)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계(太陽系)의 중심인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을 과학자(科學)들이그리고 가톨릭 교회가기꺼이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많은 이론이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자, 개방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사의 전제를 재검토(再檢討)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成功)을 거두었다.

 

종교의 기원에 관한 조사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 무신론(無神論)이 등장하고 진화론(進化論)이 널리 받아들여짐에 따라,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존재(存在)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가정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종교의 존재에 관한 설명을 사람 자신에게서사람의 사고 과정, 사람의 필요, 사람의 두려움, 사람의 노이로제에서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볼테르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면, 하나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아래 참조)


많은 이론이 만족(滿足)할 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그 조사들이 근거(根據)하고 있는 전제를 재검토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똑같은 전철을 밟으며 헛수고하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겠을까? 만약 우리가 기꺼이 개방적(開放的)인 정신(精神)을 가진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적인 동시에 과학적인데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을 뒷받침하는 논리(論理)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아주 적절한 본이 있다.

 

4. 고대(古代)의 탐구(探究)


통용 기원(紀元) 1세기에, 그리스(헬라), 아테네(아덴)는 학문(學文)의 탁월한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인들 중에는 에피쿠로스(에비구레오) 학파(學派)와 스토아(스도이고) 학파같이, 신들에 관하여 각기 그 나름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학파가 많았다. 그 여러 사상에 근거해서, 많은 신들이 경배를 받았고, 서로 다른 숭배(崇拜) 방식이 발전되었다. 그 결과, 그 도시에는 사람이 만든 우상(偶像)과 신전들이 가득하게 되었다.사도 17:16.


기원 50년경,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로(The Apostle Paul, AD. 10? ~ 67?)은 아테네를 방문(訪問)하여, 아테네인들에게 전혀 생소한 견해를 제시하였다. 바울로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주(宇宙)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天地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生命)과 호흡(呼吸)과 만물(萬物)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사도 17:24, 25.

 

다시 말해서, 바울로은 아테네인들에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참 하나님이 사람의 상상으로 지어낸 분이거나 사람이 고안한 방법대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참 종교는 단지 사람들이 심리적 필요를 채우거나 두려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울이는 일방적인 노력이 아니다.

 

그와는 달리, 참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고 능력(能力)과 추진력(推理力)을 주신 창조주(創造主)이시므로, 인간이 하나님과 만족스러운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길을 그분이 직접 제시하신다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論理的)이다.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일을 하셨다. 人類의 모든 족속을 한 血統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으니] ···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사도 17:26, 27.


바울로의 말의 요점에 유의하십시오. 하나님은 인류(人類)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血統)으로 만드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많은 민족을 이루어 온 땅에 퍼져 살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자(科學者)들은 모든 인류가 같은 혈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개념(槪念)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온 인류가 같은 혈통이라는 말은 단지 인류가 생물학적(生物學的), 유전적(遺傳的)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다른 면으로도 서로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세계의 숭배 설화(世界崇拜 說話)(Story of the World’s

Worship) 책에서 사람의 言語에 관해 알려 주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世界言語들을 硏究하고 서로 비교(比較)해 본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다름아니라 모든 言語는 어족(語族) 혹은 語群(語群)들로 分流할 수 있으며, 이 모든 어족은 하나의 공통(共通) 근원에서 出發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세계의 언어들은 진화론자들 때문에 사람들이 믿게 된 것과는 달리 각각 독자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진화론자들은 아프리카, 유럽 및 아시아의 혈거인(穴居人)들이 꿀꿀거리고 으르렁대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침내 그들 나름의 언어를 개발했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실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증거(證據)는 그 言語들이 하나의 공통 근원에서 出發했음을 알려 준다.

 

만약 그 사실이 언어와 같이 인간적인 그리고 인간 특유의 것들에 들어맞는다면, 하나님과 종교에 대한 사람의 사상(思想)도 당연히 하나의 공통 근원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적이 아니겠을까? 따지고 보면, 종교는 사고 방식과 관련되어 있고, 사고 방식은 사람의 언어 사용 능력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모든 종교가 실제로 하나의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思想槪念들이 종교 사상의 어떤 共通 起源 혹은 根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있을까? 그리고 사람의 종교가 실제로 하나의 단일 根源에서 생겨났다면, 그 근원은 무엇이겠을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5. 差異點이 있지만 비슷하다


우리는 언어학(言語學) 전문가(專門家)들이 언어의 기원에 관한 해답을 얻은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여러 언어를 나란히 놓고 서로 비슷한 점들에 유의함으로써, 어원학자들은 여러 언어를 그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러 종교를 나란히 놓고 그 교리(敎理), 전설(傳說), 의례(儀禮), 의식(儀式), 제도(制度)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공통된 主體에서 비롯된 일관된 줄거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그 일관된 줄거리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오늘날 存在하는 많은 종교가 서로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윤색에 불과한 것과 나중에 더한 것들을 빼거나, 발상지의 풍토(風土언어(言語특수(特殊)한 조건(條件) 및 그 밖의 요인(要因)들에서 기인한 차이점(差異點)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종교가 놀라우리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그 어떤 두 종교도 西洋의 로마 가톨릭 교회(敎會)와 동양(東洋)佛敎보다 차이점(差異點)이 더 많은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에 기인한 차이점들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객관적(客觀的)으로 살펴본다면, 두 종교간에 공통점이 매우 많다는 것을 인정(認定)하지 않을 수 없다. 가톨릭교와 佛敎는 모두 儀禮儀式에 흠뻑 젖어 있다. 그중에는 촛대, , 성수(聖水), 묵수(黙珠) 혹은 염주(念珠), 성인(聖人)의 형상(形象), 찬가(讚歌)와 기도서(祈禱書), 심지어 십자가 표시를 사용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두 종교 모두 남녀 수도승(修道僧) 제도(制度)를 가지고 있으며, 사제(司祭) 혹은 승려(僧侶)의 독신제(獨身制), 특별한 복장(服裝), 성일(聖日), 특별한 음식(飮食)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결코 전부를 다 열거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요점을 예시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종교가 그렇게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이 두 종교를 비교해 봄으로써 계몽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처럼, 다른 종교들을 비교해 볼 때도 비슷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비교해 보면, 특정(特定)한 가르침과 신앙(信仰)들이 그 종교들 가운데 거의 보편화(普遍化)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人間 영혼(靈魂)의 불멸(不滅), 한 사람은 모두 받는다는 하늘의 , 악인들이 지하 세계에서 받는다는 영원한 고초[苦楚:고난(苦難)], 연옥(煉獄:천국과 지옥의 사이), 삼신(三神) 혹은 많은 신으로 이루어진 신격(神格), 그리고 신의 어머니 혹은 하늘 女王 女神 같은 敎理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밖에도 똑같이 공통적으로 퍼져 있는 전설과 신화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불법적(不法的)으로 불멸성(不滅性)을 얻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잃게 된 일,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을 바쳐야 할 필요성(必要性), 생명(生命) 나무나 청춘(靑春)의 샘을 찾는 일, 신과 반신 반인(半神半人)들이 인간들 사이에 살면서 초인간적(超人間的) 후손을 낳은 일, 그리고 거의 모든 인류를 멸망시킨 홍수 재난에 대한 전설들이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로부터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런 신화와 전설들을 믿은 사람들이 지리적으로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들의 문화와 전통은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었다. 그들의 사회 관습(慣習)은 서로 아무 관련도 없었다.

 

그런데도, 종교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은 그처럼 비슷한 사상을 믿었다. 民族들 모두가 앞서 언급한 것을 다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민족들은 모두 그중의 일부를 믿었다. 분명하게 제기되는 질문은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종교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지만, 마치 각각의 종교가 그 기본 신앙을 이끌어 낸 공통의 근원이 있었던 것 같다. 歲月이 흐르면서, 이 기본 思想들은 윤색되고 수정되었으며, 그로부터 다른 가르침들이 발전되었다. 그러나 기본 골자는 明白하다.


논리적(論理的)으로, 세계의 많은 종교의 기본 개념(槪念)들이 비슷하다는 것은 그 종교들이 각각 독자적(獨自的)으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종교들의 사상이 나온 하나의 공통 기원이 있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 기원은 무엇이었을까?


6. 초기(初期)의 황금 시대(黃金時代)


흥미롭게도, 많은 종교의 공통된 전설 중 하나는, 사람이 무죄하였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幸福하고 平和스럽게 살았으며 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황금 시대로부터 인류가 출발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세부점은 다를지 모르지만, 한때 존재했던 완전한 낙원에 관한 똑같은 개념이 많은 종교의 저술물(著述物)과 전설(傳說)들에서 발견된다.


고대 페르시아(바사) 조로아스터교의 經典, 아베스타는 아후라 마즈다(창조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최초의 멸성 인간인 훌륭한 이마, 선한 목자에 관해 알려 준다. 이마는 아후라 마즈다로부터 내 세상을 가꾸고, 다스리고, 보살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모든 생물을 위한 땅 속의 거처인 바라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의 생활은 이와 같았다고 한다. 뽐내는 일이나 천박(淺薄)한 일이 없었고, 어리석은 일이나 폭력도 없었으며, 가난이나 속임수도 없었고, 연약한 것이나 기형적인 것도 없었으며, 보통 이상으로 큰 이빨이나 체구도 없었다. 그 거민들은 악령(惡靈)의 더러운 행위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향기로운 나무와 황금 기둥 사이에 거하였는데, 그것은 땅에서 가장 크고 가장 좋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들 자신부터 키가 크고 아름다운 인종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 가운데, 헤시오도스의 시 「勞動과 나날(Works and Days)사람의 다섯 시대에 관해 알려 주는데, 그 첫째 시대는 사람들이 온전한 행복을 누렸던 황금 시대였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늘 궁정을 거니는 불멸의 신들, 처음에 황금 인종으로 사람들을 만들었도다.
사람들은 신들처럼 살았으니, 행복하고 근심없는 영혼으로, 수고와 고통을 모르고, 조금씩 비참하게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온통 잔치로 지내는 삶, 그리고 그들의 팔다리는 변할 줄을 몰랐어라.”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에피메테우스가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에게서 선물로 받은 아름다운 판도라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그 전설의 황금 시대를 잃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판도라가 큰 단지의 뚜껑을 열었는데, 갑자기 그 속에서 골칫거리와 괴로움과 병이 빠져나왔으며, 인류는 결코 그것들을 원래대로 회복하지 못하였다.


고대 中國의 전설 역시 기원전 26세기에 백 년 동안을 다스렸다는 황제(黃帝) 당시의 황금 시대에 관해 알려 준다. 그는 문명(文明)과 관련된 모든 것옷과 집, 운송 수단, 무기(武器)와 전쟁(戰爭), 토지 관리(土地 管理), 제조술(製造術), 양잠(養蠶), 음악(音樂), 언어(言語), 수학(數學), 달력 등등을 발명(發明)했다고 한다.

 

그의 통치 때는 세상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中國에는 도둑이나 싸움이 없었고, 사람들은 겸손하고 평화스럽게 살았다. 때에 알맞은 비와 날씨로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가장 놀라운 일은 심지어 야생 동물들도 살생하는 일이 없었고, 육식을 하는 새들도 해를 입히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중국의 역사는 낙원에서 시작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중국인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황제의 자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역사 시초의 행복하고 완전했던 때에 관한 비슷한 전설 기록들은 그 밖의 많은 민족이집트인, 티베트인, 페루인, 멕시코인 등등의 종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 및 관습을 가지고 있던 이 모든 민족이 자기들의 기원에 관해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단지 우연이었을까?

 

그 모든 민족들이 자기들의 시작을 똑같은 방법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 단지 우연의 일치였을까? 논리와 경험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可能性)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람과 그 종교의 시작에 관한 진실의 몇몇 공통 요소가 이 모든 전설 가운데 서로 얽혀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사람의 시작에 관한 서로 다른 온갖 전설 중에는 많은 공통 요소들이 눈에 띈다. 그것들을 함께 모아 놓고 보면, 더 완전한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그림은 하나님께서 첫 남녀를 어떻게 창조(創造)하셨고 그들을 어떻게 낙원에 두셨는가를 알려 준다.

 

그들은 처음에 매우 만족스럽고 매우 행복했지만, 오래지 않아 반역하게 되었다. 그 반역으로 인해 완전한 낙원을 잃게 되었고, 수고와 고역, 아픔과 고통이 낙원을 대신하고 말았다. 마침내 인류가 너무 악해지자, 하나님께서는 큰 홍수를 내려서 한 가족만 빼고 모두 멸망시키셨다.

 

이 가족의 수가 늘어나면서, 후손 중 일부가 무리를 짓고 하나님께 도전하여 거대한 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그들을 땅 끝까지 흩으심으로써 그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다.


이 조각 그림은 순전히 누군가가 머리 속에서 꾸며낸 것일까?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그 그림은 성서 창세기(創世記)의 처음 11장에 나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서의 확실성에 관해 논하지는 않지만, 많은 전설에서 발견되는 핵심 요소들에 사람의 초기 역사에 관한 성서 기록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 기록은 인류가 메소포타미아에서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기억과 경험 및 사상을 가는 곳마다 함께 가지고 갔음을 밝혀 준다. 그것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듬어지고 변화되어, 세계 모든 곳의 종교를 구성하는 날실과 씨실이 되었다. 달리 말하자면, 앞서 사용한 유추로 다시 돌아가 볼 때, 창세기의 기록은 세계 여러 종교에서 발견되는 사람과 숭배의 시작에 관한 기본 사상들이 나온 최초의 순수한 근원 역할을 한다. 종교마다 그것들에다 독특한 교리와 의식들을 더하였지만, 그 연관성은 명백하다.

 

7. 사람에게는 왜 종교심(宗敎心)이 있는가?


B. 노스는 그의 저서 사람의 宗敎」(Man’s Religions)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모든 종교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사람이 고립되어 있지 않으며 고립되어 있을 수도 없음을 알려 준다. 사람은 자기 외부의 자연 및 사회에 있는 세력들과 필연적으로 관련을 맺으며, 심지어 그것들에 의존하기도 한다. 희미하게든 분명하게든, 사람은 자기가 세상으로부터 고립(孤立)해서 존재할 수 있는 독자적(獨自的)인 힘의 중심이 아님을 안다.”


그와 비슷하게, 「世界의 종교—古代史에서 現代史까지는 이렇게 알려 준다. 종교를 연구해 보면, 종교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인생의 가치에 대한 갈망, 인생이 우연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신앙임이 드러난다.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인간보다 더 큰 능력자(能力者)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하고,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삶에 대한 최고의 가치관(價値觀)을 유지(維持)하려는 의도와 뜻을 가진 우주적(宇宙的) 혹은 초인간적(超人間的) 정신(精神)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음식이 우리의 굶주림을 충족시켜 주듯이, 종교는 인간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充足)시켜 준다. 우리는 배고플 때 아무 것이나 마구 먹어도 굶주림의 고통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다. 건강(健康)한 생활(生活)을 영위하기 위해서, 우리는 건강에 좋고 자양분이 풍부한 식품(食品)을 필요로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靈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건전한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성서는 우리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알려 준다.신명 8:3.

 

 

 

 

주석(註釋)

 

 

무함마드(Muhammad, 마호메트(Mahomet)의 아랍어 이름.) : (요약)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라고도 한다. 6세에 고아가 되어 친적의 손에 자랐다. 틈틈이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610년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신의 말씀을 계시받았다. 613년부터 전교에 들어가 이슬람교를 세웠다. 그는 유일신을 정성을 다해 믿고 섬기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내려온 기독교의 예언자들을 따른다고 천명했다. 630년부터 군사적 원정을 통해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슬람 제국을 설립했다.

 

마호메트(Mahomet)의 아랍어 이름. 무함마드는 메카에 사는 쿠라이시 부족의 하심 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아브드 알라는 그가 출생하기 이전에 세상을 떠났고, 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고아 무함마드는 조부 아브드 알 무탈리브, 숙부 아부 탈리브에게 양육되었다.

 

무함마드는 1년 중 일정 기간 동안 메카 교외 산중에 틀어박혀 명상과 기도로 시간을 보내는 습관이 있었다. 610년경, 어느 날 밤 히라 산에서 무함마드는 영적 체험을 했다. 대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신의 말씀이 계시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도망치려고 했다. 이윽고 계시가 끝나자마자 마음 깊은 곳에서 공허감이 그를 엄습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전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고 확신하고 613년경부터 전도를 시작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유일신의 전능을 열렬하게 그리고 되풀이하여 선언하는 것이었다. 유일신은 우주의 창조자이며, 부활의 날에 그 피조물의 모든 것을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불러모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의의 신은 동시에 자비의 신이기도 했다. 신은 지상을 자신의 영광과 은혜의 징표로 채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관해, 신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진다. 모든 사람은 신앙·예배·희사로 신의 자애와 가호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이것을 새로운 교리로서 제창한 것은 아니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가르침이 예언자의 전통적 흐름을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아브라함·모세·예수 등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예언자들이 같은 사명을 띠고 인류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키려고 했다.

 

아라비아 반도 각처에 사는 여러 부족의 사절이 메디나의 무함마드를 방문했지만, 동시에 군사 원정도 행해져서 이슬람 국가는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 때 무함마드의 권위는 견고하게 확립되어 아라비아 반도의 통일은 점차 진척되었다.

 

이별의 순례라고 일컫는 632년의 순례에서 무함마드는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병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함마드 자신에게나 그의 제자들에게 이별의 순례는 예언자의 생애를 정리하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최후의 설교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후에도 분열하지 않도록 당부했다. 또한 신은 유일하며 신자는 형제라는 것을 재차 확인했으며, 여성의 권리에 유의할 것을 신도들에게 명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로 돌아와 63268일 죽었다.

 

전승에 따르면 새로 선출된 칼리프인 아부 바크르는 비탄에 빠진 신자들에게 만일 그대들이 무함마드를 숭배하고 있다면 분명히 무함마드는 죽었다. 그러나 만일 신을 숭배하고 있다면 신은 지금도 살아 있다. 신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다.

 

쿠란(Quran, Koran이라고도 함) : (요약) 이슬람교의 경전(經典)으로,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 아라비아 반도 메카 근교의 히라(Hira) 산 동굴에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처음으로 유일신 알라의 계시를 받은 뒤부터 632년 죽을 때까지 받은 계시를 집대성한 것이다.

 

코란(Koran)은 어원상 읽는 것을 의미하지만, 신학적으로 말하면 구체화된 신의 말씀이다. 보통 -키탑(al-Kitab)’이라고 말하거나, ‘성서의 의미를 담아 -키탑 알-무깟다스(al-Kitab al

-Muqaddas)’라고도 부르지만, 가장 널리 불리는 명칭은 -꾸란 알-카림(al-Quran al-Karim: 고귀한 코란)’이다. 기독교의 성경이 여러 시대에 걸쳐(850년간) 여러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로 쓴것을 결집한 것인데 비해 코란은 한 장소에서 한 인물에게 비교적 짧은 기간(23) 동안 한 언어(아랍어)로 계시되어 완성되었다. 또한 코란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내려지는 것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으로, 계시의 매체는 성령이지만 말씀의 주체는 알라 자신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은 신의 말씀이 직접 코란이 되어 내려왔다고 믿으며, 일생동안 코란을 부단히 읽고 암송하면서 신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표현한다.

 

원래 코란은 구전과 문자 두 가지 방법으로 보존되어 왔다. 구전으로 암송되어 전해오던 방식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을 때부터 이어온 전승의 기본적 형태로 오늘날까지 많은 무슬림들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문자로 쓰인 것은 계시받은 코란 구절을 무함마드가 사람들에게 낭송하였을 때, 그들 중 일부가 양피지, 가죽조각, 돌판, 대추야자 잎이나 나무 껍질, 낙타의 골편(骨片) 등에 이를 받아적은 것들이다.

 

무함마드의 계시는 메카에서 13, 메디나에서 10년간 계속되었으며, 무함마드 사후 제 1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 632-634년 재위)시대에 최초로 집성되었다. 칼리프 오마르는 예언자의 서기 중 한사람이던 자이드 빈 사비트(Zaid b. Thabit)에게 명해 구전되던 계시와 문자로 기록된 것을 모아 코란을 집성했으며, 이는 제 2대 칼리프 오마르(Umar : 634-644 재위)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제 3대 칼리프 오스만(Uthman : 644-656년 재위) 시대에 이르자 이슬람 공동체가 크게 확장되고 개종자들이 증가하면서 코란을 잘못 읽거나 암송하는 사례가 속출했으며, 지역마다 서로 다른 이본(異本)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에 칼리프 오스만은 651, 압둘라 빈 자이드(Abdullah b. Zaid)와 사이트 빈 알-아스(Sayt b. al-As)에게 세 명의 쿠라이쉬족(예언자 무함마드의 출신 부족) 원로의 도움을 받아 코란 원본의 정확한 필사본을 만드는 한편, 이본들을 소각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완성된 코란 정본은 쿠파, 바스라, 다마스쿠스, 카이로 등 주요 도시로 보내져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보존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오늘날까지 한 자의 첨삭도 없이 보존되어왔다.

 

코란은 모두 1146,200여 절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장은 첫장(개경장)을 제외하면 연대순이 아닌 장단의 길이에 따라 배열되어 있으며, 가장 긴 장(2, 286) 부터 점점 짧은 장(103장 부터는 3~6)의 순으로 되어 있다. 코란의 각 장은 '수라(Surah)'라고 하며, 각 장에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 이름이 반드시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코란은 계시의 시기에 따라 크게 메카 계시와 메디나 계시로 구분된다. 메카 계시들은 주로 종교적이며, 교리상의 여러 주제와 더불어 교훈적인 신의 말씀과 진리들이 담겨져 있으며, 내용이 간결하고 시처럼 운율적이며 비유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메디나 계시는 무함마드가 이슬람 공동체를 세운 뒤의 계시로, 주로 법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산문체 형식이며 길이가 긴 편이다.

 

(1) 구성

 

코란(Koran)의 용어는 아랍어의 메카 방언이었으나 이것이 후에 고전 아랍어로 널리 쓰이게 되어 현행 아랍어 문어체의 기초가 되었다. 문체는 '사주아'라는 일종의 운()을 단 산문체로 되어 있어 독송할 때 리듬감이 있다. 현행 코란6,342아야[구절(句節)]114수라[()]로 되어 있으며, 각 수라에는 암소’, ‘이므란 일가(一家)’, ‘여자등과 같이 그 장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제가 붙어 있다.

 

1수라의 개경장(開經章)7아야로 된 짧은 것으로 그리스도교의 주기도문(主祈禱文)’에 해당하며, 이슬람교도는 이를 독송해야 한다. 다른 수라는 대개 아야의 수가 많은 것에서 적은 것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어서 최종 장에 이르러서는 아야의 수가 아주 적어진다. 예를 들면, 2수라는 286아야, 3수라는 200아야인데, 113수라는 5아야, 114수라는 6아야로 되어 있다.

 

모든 수라에는 메디나 계시(啓示)’ 또는 메카 계시라는 표시가 있는데, 메카 시대의 계시는 극히 신앙적인 짧은 것이기 때문에 현행 코란에서는 대개 후반에 집성되어 있고, 후대의 메디나 계시는 대부분 전반에 편입되어 있다.

 

(2) 주해서(註解書)

 

코란에는 아랍의 고대풍속과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전승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또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역사적 사건에 관한 내용도 적지 않으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졌기 때문에, 코란에 주해(타프시르)를 기록할 필요성이 생겨 그것이 이슬람 신학자들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가 되었다. 각 시대마다 수많은 주해서가 출간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은 아 타바리, 아 자마후샤리, 알 바이다위 등이 만든 것이며, 그 중에서도 알 바이다위의 주해는 오늘날 코란을 이해하는 데 기초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3) 독송과 번역

 

이슬람교도(무슬림)는 일상생활에서 코란을 독송하며, 각종 의식에서는 정규 독송자가 소리 높이 독송한다. 초기에는 10여 파의 유파(流派)가 각기 다른 정지(停止)나 성조(聲調)로 독송했으며, 10세기경 이후 7파로 통일되어 오늘에 이른다.

 

코란은 유일신 알라 자신의 말로 되어 있으므로 이슬람교도는 이것을 직접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고, 번역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계가 이슬람교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11세기 이베리아반도에서 전쟁을 한 뒤부터 급속히 고조되어 12세기에는 최초의 라틴어 번역이 시도되었다. 1543년에 간행된 비브리안델의 라틴어역으로부터 독일어·이탈리아어·네덜란드어로 중역(重譯)했으며, 1698년에 간행된 마리치의 라틴어역은 널리 읽혀졌다. 그 후 프랑스어·영어 등으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1980년 김용선(金容善)한역주해(韓譯註解) 코란 역편(譯編)이 간행되었다.

 

진화론(進化論) : (요약) 생명생물은 진화하는 것이라는 주장. 1859년에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체계화하였다.

 

19세기 엄청난 발전을 이룬 과학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하여 제창된 진화론이었다. 진화론은 특이하게 학문적 영역에서보다도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다윈은 뉴턴이 물리학에서 달성한 것을 생물학에서 이루었다. 생물학을 일반법칙에 토대를 둔 과학적 학문으로 만들며 코페르니쿠스와 비견될 지식혁명을 선도하였다.

 

계몽주의가 풍미하던 시대, 생명의 시작은 모든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만물은 하느님의 피창조물이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온 우주와 자연에 그가 창조한 만물로 배치하였고, 만물은 자연 속에서 하느님의 놀라운 솜씨를 찬양할 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신이 만물창조를 약 6천여 년 전에 끝냈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서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 초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지질학 원칙이라는 세 권의 책을 출판하여 별들이 오랜 시일에 걸쳐 진화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은 유기적 생명의 법칙이라는 책에서 "지구는 인간이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생성되어 존재하였고 동물들이 진화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같은 견해들은 가설로는 자리잡을 수 있었으나 실증적 증거가 없었으므로 별 관심을 끌지는 못하였다. 따라서 만물이 신의 창조로부터 존재한다는 믿음은 굳건히 그 지위를 지켰다.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1871인류의 혈통을 저술하였을 때 이 글들이 사회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다윈은 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동물들의 여러 변종이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라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았다. 그는 맬서스의 이론들을 사용하여 자기 주장을 폈다. 식량의 증가가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지 못하므로 필연적인 '생존경쟁'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정령(精靈) :

 

(1) 초목이나 무생물 등 갖가지 물건에 붙어 있다는 혼령. 나무ㆍ돌ㆍ산ㆍ강 등 모든 것에 제각기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숭배하는 것이 정령신앙이다.

 

(2) 육체를 떠난 죽은 이의 혼백. 성령ㆍ정혼(精魂)이라고도 한다.

 

(3) 만물의 근원이요 생명력의 원천을 이루는 불가사의한 천지의 기운. 동양 전래 사상은 해와 달과 별 등이 천지만물의 정령이라 믿었다. 이는 천지만물의 소소영령하고 신령스러운 진리의 기운이 해ㆍ달ㆍ별 등의 기운과 통해 있다는 의미로 보인다. “일월과 성신은 천지만물의 정령이라고 선성(先聖)이 말한 바가 있는데 사실로 그러하느냐고 묻는 제자에게 소태산대종사는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대종경(大宗經)변의품8).

 

바울로(The Apostle Paul, AD. 10? ~ 67?) : (요약) 바울로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예수가 죽은 지 불과 몇 년 뒤에 회심한 그는 새로운 종교운동, 즉 그리스도교를 지도하는 사도(使徒:선교사)가 되었으며, 그 운동이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 세계 종교가 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남긴 서신들은 현존하는 그리스도교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울로의 서신들은 신학적인 정교함과 목회적인 이해를 생생히 드러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의 생활과 사상에 대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바울로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약성서외에는 믿을 만한 자료가 없으며, 1차적인 자료는 바울로가 쓴 서신들이다. 그 가운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바울로 자신이 직접 쓴 서신들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기독교의 대사도(使徒). 본명은 사울(Saul). 처음에 엄격한 유대교에 의하여 교육받고 바리사이(Pharisee) 주의에 열중하였는데, 기독교 탄압을 위해 다마스쿠스(Damascus)에 원정 도중 예수의 음성을 듣고 회심 하였다. 그는 유대교적 율법주의와 형식주의를 반대, 참된 복음 전파를 위해 대여행에 올랐다. 각지로 순방하며 전도에 힘쓰고 기독교의 기초를 세웠으나 편협한 유대인들로부터 반감을 사서 수차 투옥되고 마침내 참수되었다. 유대교적 기독교를 말하는 사람들과의 논쟁을 통해 보여 준 그의 사상이 갈라디아서로마서에 나타나 있으며 유수(幽囚) 시대의 편지 등에서 신비적 명상적인 요소가 나타나 보인다. 그는 예수를 가장 깊이 이해한 가장 충성스러운 사도로서, 그의 전도는 유럽의 정신에 무서운 영향을 끼쳐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양의 지성(知性)을 지배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의 저서(著書)와 서간(書簡)의 대부분은 신약 성서(新約聖書) 중에 포함되어 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에디터 업데이트+) GPT AI 기능을 포함하여 강력한 도구들을 사용해보세요 ⬆️ file 🍀플로버404 2024.04.16 832
공지 덕질 공통 이용규칙 및 안내 (업데이트중+ 2024-04-13) 😀컴덕824 2024.04.14 1167
공지 K-POP 초보를 위한 필수 앱/사이트 목록 file 😀컴덕871 2024.04.14 373
공지 1000P를 모으면 다이소 상품권 1000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file Private 2024.02.14 2826
737 성경에서 숨길 수 밖에 없었던 책들 / ft. 천국과 지옥 - 베드로 묵시록 file 😀익명077 2024.04.17 264
736 왜 '지옥'인가? 지옥에 숨겨진 상징과 의미 총정리! : 단테의 신곡 지옥편 2부 file 😀익명049 2024.04.16 352
735 아돌프 히틀러 (1889-1945)는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 북부에 😀익명596 2024.04.16 207
734 평범한 사람들이 왜 '끔찍한 죄' 저지를까 😀익명793 2024.04.16 195
733 악한 사회 속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익명184 2024.04.16 235
732 사유(思惟)하지 않는 것 😀익명081 2024.04.16 195
731 악의 평범성’ 그리고 사유하지 않는 기독교 😀익명948 2024.04.16 187
730 K-POP 초보를 위한 필수 앱/사이트 목록 file 😀컴덕871 2024.04.14 373
729 논어 - [위정17]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한다 file 😀익명358 2024.04.12 535
728 지적 수준이 높을 수록 친구가 적은 이유 5가지 😀익명067 2024.04.12 185
727 니체 어록 😀익명229 2024.04.12 194
726 니체의 말 - 성공하는 사람들의 3가지 공통점 😀익명568 2024.04.06 323
725 아인슈타인 - 인생을 바꾸는 명언 😀익명913 2024.04.06 275
724 쇼펜하우어의 인생조언 - 혼자 되는 법을 배워라 😀익명280 2024.04.06 308
723 ** 세계 신학 논문 List ** 리스트는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익명835 2024.04.06 420
722 믿음의 증거를 만져볼 수 있는 이집트 교회를 가다 │이집트로 간 예수 1부 (4K) file 😀익명119 2024.04.05 247
721 황제, 교회 그리고 도마복음 (마지막편) | 신보다 권력을 택했던 교회 file 😀익명736 2024.03.27 380
720 왜 교회는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를 혐오하게 되었을까? | 예수님이 추구했던 ‘안드로포스(온전한 인간)’를 ... file 😀익명608 2024.03.27 350
719 자본주의'의 정신적 지주가 된 개신교 교회의 칼뱅교회 😀익명511 2024.03.27 372
718 '자본주의'의 정신적 지주가 된 개신교 교회의 '칼뱅주의' | '예정론'과 &#0... file 😀익명665 2024.03.27 39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