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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의 생애

 

S.Kierkegaard(죄렌 키에르케고르)는 아버지 미카엘 키에르케고르와 어머니 안네의 7남매중 막내로 1813년 5월 5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안네는 아버지 미카엘과 결혼한 뒤 다섯달만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사실은 미카엘을 일생동안 괴롭혔고, 또 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고뇌로 옮겨져 그의 사상과 생애에도 영향을 끼친다.

키에르케고르는 겨울이 춥고 안개가 많으며 음산한 덴마크의 기후와 풍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우울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가난과 추위 속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온 미카엘은 어느날 운명의 불공평함과 저주받은 것 같은 심정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신(神)을 저주한 어릴 적 경험으로 미카엘은 신앙심을 굳히게 되고, 속죄의 뜻으로 키에르케고르를 신에게 바칠 훌륭한 성직자로 키우기 위해 엄격한 종교적 훈련을 시킨다.

이후 레기네 올센과의 연애사건과 신문 콜사르(corsair)와의 논쟁, 그리고 마르텐젠(H.L.Martensen)과의 논쟁은 키에르케고르의 생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레기네를 사랑했지만, 깊은 종교적 성향을 지닌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이 경험은 키에르케고르에게 고뇌의 원천이 됨과 동시에 깊은 종교적 사색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동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일반 군중과 사회의 저속한 본질을 상대로 싸운 콜사르 사건을 통해 그는 “현대와 같이 천박하고 저속한 시대에 참된 기독자로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생애의 근본 과제로 삼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결정적으로 종교적 신앙의 삶을 살게 되고, 당시 안일 속에서 말로만 기독교를 말하던 덴마크 교회와의 사이에 벌어진 논쟁(마르텐젠과의 논쟁)을 통해서 세속적인 타성에 빠진 기독교인들의 허위와 죄악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정화를 위해 힘쓴다. 그러나 이 논쟁에서 전신의 힘을 소진하여 1855년 11월 11일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

(특징) 최초의 실존주의자로서 당대의 철학이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을 주류로 하였다면 그 흐름을 거슬러 신을 중심으로하는 사상을 전개하였다. (이후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그렇다면 실존이란 무엇인가?

: “실존(實存)은 현실존재(現實存在)를 줄인 말인데 사물이 그 원인의 바깥(ex-) 혹은 현실세계에 실재한다(-sistence)는 것을 가르킨다. 따라서 실존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사용적 의미는 사물의 현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生)을 다른 존재와 구별하여 표현한 것이다.”

- 헤겔에의 반발과 소크라테스로부터 나온 실존에의 추구

: 헤겔의 관념론에 대한 반발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 auton, Know thyself)”로부터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철학은 출발한다. 헤겔은 세계이성(절대정신,로고스)이라는, 우주 일체를 보편화하는 본질적 이념을 기본으로 하여, 모든 것을 통일해버리는 방대한 객관적 진리의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그 객관적인 진리에 대한 가부가 아닌,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존재하느냐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 즉, 헤겔에 따를 때 개인의 구체적 존재의 의의가 없어지는 데에 반발하여 나 자신의 ‘주체적 진리’에 중점을 둔 것이다. 또한 헤겔의 세계이성의 관념론적 철학에 의하면 신과 인간은 그 본질에 있어서 궁극적으로는 동일시 된다(≒물질의 정신화).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헤겔의 사상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의「그노티 세 아우톤(너 자신을 알라)」과 연결시켜 사상을 전개하였다. 고대 희랍인들이 자신들의 뛰어난 지혜와 문화에 의해 오만(Hybris)에 빠져 인간의 위치를 넘어서 신의 자리에까지 올라가려하는 희랍인들의 오만에 대해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 인간의 자각의 의미로 쓴 것으로 받아들였다. 더 나아가 키에르케고르는 그것을 기독교적인 뜻으로 받아들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

: “헤겔의 진리는 부분들을 변증법적으로 통일하여 거대한 전체적 체계 속에 포섭하는 전체적 진리, 즉 '양적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키에르케고르의 사고에 있어서 이것도 저것도 모두 주워 담는 것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선택이 그에게는 중요하다. '전체 아니면 전무’라는 그의 변증법은 양자택일의 결단의 논리로서 '질적 변증법'이라 할 수 있다.

- 실존의 3단계

: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참 모습은 신 앞에 서는 단독자에 있다고 보고, 그의 실존을 종교적 단계에서 파악하였다. 종교적 실존이야말로 실존의 진정한 모습이며 최후의 도달점으로서, 심미적 실존과 윤리적 실존의 서로 대립하는 양자의 관계(궁극적으로는 조화된다)에 의해 나타날 수 있다.

(1) 심미적 실존(審美的 實存)

: 향락과 쾌락을 즐기는 삶의 단계로서 인생의 의의는 행복에 있고 이 행복은 쾌락의 최고 정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심미적 단계에서는 외면적이고 일시적 만족에 그치고, 내면적이고 깊은 정신적 만족은 이루지 못한다. 인간은 감성(感性)인 동시에 영성(靈性)이므로 심미적 실존으로서는 이 양자의 절대적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런 것을 깨닫는 순간, 심미적 실존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이고 아이러니컬한 태도를 갖게 된다. 이러한 양자 택일의 계기에서 양심의 입장에 서는 윤리적 실종의 단계가 시작된다.

(2) 윤리적 실존(倫理的 實存)

: 양심의 입장에 서는 엄숙하고 진실되며 건전한 실존으로서 언제나 새로운 결의와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적이고 시민적 생활태도를 갖는 가장 온당하고 건전한 인생의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성실한 윤리적 실존에 들어가 양심적으로 되려 애쓸수록 자기의 부족과 무력과 유한성을 자각하고 깊은 회한을 느끼거나, 오히려 도저히 미치치 못한 도덕률을 무시하소 억지로 오만한 태도를 취하려 한다. 이리하여 자신이 단독자인 실존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반응에서 절대자를 연상하게 되고 그것에 귀의하고 싶은 새로운 욕망을 갖게 된다. 이에 제3의 실존인 종교적 실존이 우리 앞에 전개된다.

(3) 종교적 실존(宗敎的 實存)

: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실존으로서 하나님과 대면하는 단독자로서의 삶이다. 종교적 인간은 자기의 모든 존재를 신에게 돌린다. 그는 신의 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받았으며 신의 도움으로 그 생명을 부지해 나가려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는 미적 인간들처럼 생을 즐긴다. 윤리적 인간들처럼 책임을 진다. 그러나 종교적 인간들은 내면적으로 모든 것을 신에게 돌리고 그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바로, 신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독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 키에르케고르는 이처럼 향락적이며 무신론적 실존에서 시작하여 종교적 실존에로 나아가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2) 단독자(單獨者, the individual)에 관하여

-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자면, 단독자는 “모든 사람이 그것이며 또 그것일 수 있는 단독자이다.

… 이 이중성이 단독자의 변증법이다. 곧 단독자는 모든 사람 중의 ‘오직 한 사람’을 의미하는 동시에 ‘누구나’를 의미하는 것” 이며, 그 전형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에 찬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사람이 먼저 자기 발로 서야한다. 신앙한다는 것은 윤리적, 종교적으로 단독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무리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며, 무리에게 조소와 미움을 받아 죽임당하는 위험에 자기를 내맡기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키에르케고르는 단독자로서의 신앙을 갖지 못하는 현실의 기독교를 비판하게 된다.)

- 단독자는 그가 개별자로서 절대적인 것에 절대적으로 관계한다.

-----> “절대적인 것에 대하여 절대적인 의무를 지닌다.”

“신앙은 사고가 멈추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 키에르케고어가 찾은 윤리적, 보편적인 것을 넘어서는 단독자의 최고의 표현;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 → 그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행해야 했던 것은 윤리적 판단이 아닌, 절대적 결단이었다.

- “단독자는 그리스도교적으로 결정적인 범주이다”

: 낱낱의 사람은 그리스도교계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사람이 단독자가 된다는 것은 개별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과제이며, 위에서도 말했듯이 단독자의 전형이 그리스도인이므로, 개별 인간은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교류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한다.

- 단독자와 그리스도

: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사람’인 그리스도와의 동시성(同時性, samtidighed)을 이루어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와 동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한 실견으로서 그리스도를 만나 그의 사랑으로 죄의 용서를 받고, 그와 함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스도와의 단독대면)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

키에르케고르 사상의 주류를 이루는 ‘실존’에 관한 문제에서, 그가 심미적, 윤리적 그리고 종교적 실존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보았다. 이것은 결국 크리스천으로서의 실존의 모습 즉 주체적으로, 죄의식을 통해 그리스도와 동시대적으로 사는 실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따라서 기독교에 대한 비판점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주관을 배제하여 객관적으로 그 점을 주장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문헌들을 통해 나타난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 비판은, 깊은 통찰력과 함께 기독교의 내부에서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관찰한 새로운 관점으로 말미암아, 독창적이며 또 기독교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들이다.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의 이면에는 언제나 기독교를 기독교계로 다시금 도입하려는 격렬한 노력이 숨어있다. 이것은 키에르케고르 자신이 기독교와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실제로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고, 다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된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 또한, ‘이 기독교 사회는 기독교를 기껏해야 장식품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는 그의 말을 통해, 우리는 키에르케고르가 당시의 기독교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젊을 때 신학을 공부했으며 생애 후반에도 기독교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그 주위에 있는 순전히 이름뿐인 기독교에 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였고, 한편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키에르케고르가 기독교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또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점은, 형식에만 머물고 신과의 진정한 전인격적인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목회자들과, 신도들과, 기독교 자체의 안일한 자세였다. 따라서 기독교계에 대한 그의 비평은 기독교 내부적 비판으로, 기독교라는 칭호만 가진 사람들을 놀랍게 해서 그들의 안락에서 일깨우려는 목적을 언제나 추구한다.

먼저 신도들은 ‘나’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뜨거운 열정으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습관에 젖어 일요일마다 ‘비천’과는 거리가 먼, 고귀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인습과 관습에 질식된 기독교 생활의 지루하고 무의미한 전 부랑성이 그 속에 들어있다. 심장이 마비된 일요 기독교도들은 여하한 종교적 긴장력도 전혀 모른다. 그리스도교는 이교(異敎)가 되어 버렸고,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는 것이라고는 그리스도교가 지닌 찬란하고 더할 나위 없는 여러 진리에 관해서, 또 그 부드러운 위로에 관해서, 일요일마다 한없이 되풀이되는 수다뿐이다.

또 다른 책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신도들이 기독교를 믿게 되는 ‘동기’가 상당 부분 지극히 이기적이고 구복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기에게 불이익이 올까 우려해 종교적인 발언을 하는 것조차도 꺼려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그가 결혼을 하고 아버지가 되려 하자, 그는 모범적인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필요적인 이유’에서 종교를 갖게 되고 그 중에서도 기독교를 선택하게 된다. 이 예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람들이 종교를 한갓 자신을 보호하고 이익을 줄만한 ‘장식품’ 정도로만 여긴다는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의 본질인, 그리스도의 고뇌와 죽음에 의한 은총을 헛되게 하는 시민적 그리스도교, 현세적 행복의 교회에 대하여 항의하고 싸운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신도들 뿐만 아니라 설교를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당시의 교회의 설교는 실존하는 일, 주체적으로 깊어지는 일의 의의를 강조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선포되는 말씀에 대한 주체의 실존적 관계가 문제되지 않는 빈말이요 설교자와 그의 실존 사이에 있는 불일치나 모순을 고려하지 않은 허망한 것이라는 비판이었다. 또한, 현대는, 설교를 듣는 사람이 설교를 단독자로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감각을 상실했다. 설교는 역설적 성격을 잃고 다만 그리스도교, 신앙, 신앙 생활에 대해서 객관적, 제 3자적으로 말하는 사상 강연, 윤리적 권면과 같은 미적인 것으로 전락되어버린 것을 키에르케고르는 한탄했다. 결국 키에르케고르는 당시의 설교가 신앙 생활에 본질적으로 따르는 ‘진리의 고난’을 말하지 않음을, 또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천한 종의 모습을 눈물과 함께 감동적으로 말하지만 그를 본받아 몸소 고난받으며 뒤따르는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지 않음을 비판했다. 그는 당시의 설교를, 안이한 세속성, 행복주의, 심미성, 추상성, 상대성 등을 갖춘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고 비본질적이며 형식적인 의식을 습관적으로 행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만 하는 구복(求福)적 성격을 근원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에만 유언자의 유산을 취득할 권리를 갖는 어떤 사람이, 요구 조건을 행하지도 않고 은근히 그 유산을 취득하는 것만을 원하는 것’을 현 기독교의 모습에 비유시킴으로써, 풍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간명하게 드러내었다.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 대한 대안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를 비판함과 동시에 허점을 메워 줄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했다. 크리스천으로서 말하는 것과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동시대적으로 되어가는 것’이요, 그것은 곧 진리의 실천자로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또한 그는 주체로서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과, 그리스도와 동시대적으로 되는 것을 동일하게 취급했다.

또한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을 비난했다. 그는 기독교에 있어서 이성은 옆으로 자리를 비켜야 하고, 그 때에 개인은 제자가 되는 조건 즉 신앙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는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성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비이성적이고 인격적이며 영적인 관계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리스도교가 마땅히 이성적 지식을 배척하고 체험적 신앙을 고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입으로만 성경에 관해 해석하고 논의하며, 머리로만 기독교와 예수님을 인식하는 기독교는, 예수의 삶이 옳다고 느낄 때, 과감히 그와 같이 살 수 있는 ‘진정한 동일시’의 자세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키에르케고르의 기독교 비판은, 그의 확신과 신념에 의해 이루어진, 다시 말해 불이익이 올 것을 감수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리스도교계의 1800년을 통하여서 나의 과업에 필적하는 것이나 그와 유사한 것은 전혀 없다. 나의 과업은 그리스도교계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판 및 발제자들의 비판

1. 학자들의 비판

가. 마르틴 부버(M. Buber)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나. 막스 셀라(M. Sheler)

“모든 개인에게 있어서 의식의 본질적인 부분에 이미 사회라는 것이 내면화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는 관련 영역으로서 그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다. 하이데거(Heidegger)

“다른 인간이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고, 또한 다른 인간이 실재로는 지각되지 않을 때도 역시 공존이 존재론적으로는 현존을 결정한다. 독존은 다만 공존의 변태에 불과하다. 독존의 가능성은 공존의 증거이다.”

라. 킴발 융(Kimball Young)

“인간은 먼저 한 개인이고 다음으로 사회의 하나의 구성분자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실존과 그의 성품들이 이미 이웃들과의 공동생활과 문화에서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진 산물이다.”

⇒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개체성과 단독성만을 생각하여 개인의 사회성을 경시하고 있다.

마. 블랜샤드

“합리적 윤리학을 거부하는 불분명한 논증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바. 해롤드 드월프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실재에 관한 신념체계의 내적 의미를 주장할 수 없다. 결국 비합리주의는 귀류법에 의해 논파당하게 될 자기 파괴적 철학이다.”

사. 매킨타이어(A.Macintyre)

“기준 없는 선택이 있느냐, 없느냐? 우리가 타당한 신념의 기준에 도달하는 것은 기준 없는 선택에 의한 것인가, 어떤가?”

⇒키에르케고르는 이성의 사용 필연성을 주지하지 못하여 비합리주의의 자기 파괴성을 간과하고 있다.

2. 발제자들의 비판

키에르케고르의 사상 및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서 논란의 여지가 될 만한 부분을 지적해본다면,

1) 사상의 경향이 지나친 ‘개인주의’에 머물고 있음을 발견했다. 키에르케고르는 ‘대중’을 신뢰하지 못하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단독자’의 개념을 강조했는데, 이 단독자의 개념은 어떠한 관점에서 보면 주변과 사회의 가치를 경시하고 오로지 ‘개인’의 각성만을 강조한 면이 없지 않다. 이와 같은 그의 사상은 어느 정도 그의 폐쇄적인 성격을 알고나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보편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사람이 사회화되고 사고력을 가진 존재로 성장하는 계기는 개인의 주체적 결단도 중요하겠지만 사회의 일원으로서 경험적으로 깨우쳐나가는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2) 키에르케고르는 크리스천들에게 요구되는 자세로서, 이성적 지식을 배척하고 체험적 신앙을 고조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허망한 논의에 그치는 신앙이 아닌 실천에 중점을 둔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아도 무조건 믿어라!’ 라는 식의 논리로서, 키에르케고르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무신론자나 타종교인이 이러한 그의 주장을 접하게 된다면, 납득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를 ‘불합리에 근거한 맹목적 믿음’이라고 폄하시킬 수도 있다.

 (참고문헌)

1. Soren Kierkegaard, Attack upon Christendom, translated by Walter Lowrie, Princeton in United States of America,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44.

2. 한명석,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이해에 관한 연구, 서울: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1987

3. 키에르케고르, 사랑과 영혼의 기로에서, 최혁순 역, 서울:을지출판사, 1988

4. 키에르케고르, 그리스도교의 훈련, 임춘갑 역, 서울:평화출판사, 1978

5. 표재명, 키에르케고르 연구, 서울:지성의 샘, 1995

6. 발터 니그, 쇠렌 키에르케고르, 강희영 역, 왜관:분도출판사, 1974

7. 洪子述, S,Kierkegaard의 인간이해와 그 문제성, 서울: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979

8. 표재명, 키에르케고어의 단독자 개념, 서울:서광사, 1992

9. 朴羅美, S,Kierkegaard의 그리스도 解釋,-그의 著書「그리스도敎의 訓練」을 中心으로- 서울: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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