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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디펜던스 전차)
전차라는 물건이 처음 탄생한 1차세계대전 이후, 비록 전차는 대전쟁의 성패를 가를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했지만, 각국 군 수뇌부들에게 한없이 많은 영감을 부여하며, (당시 기준) 미래 전장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여겨졌다. 하여 무기 좀 만든다 하는 나라들은 너도 나도 신형 땅크 개발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때만 해도 트랙터에 포나 기관총을 달아놓은 수준이었던 전차는 전간기에 엄청난 수준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이미 1차세계대전 후반기에, 최초의 현대식 전차로써 그 위용을 뽐낸 세기의 걸작, 르노 FT-17의 등장으로 회전 포탑이라는 존재가 전차에 퍽 부합한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거대한 포탑과, 거대한 주포를 장착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탑을 수동으로 선회하자니, 일정 이상 거대해지면 손으로 돌리는 것도 세월아 네월아 하게 되고 승무원도 금방 피로해진다는 문제점이 있었고, 그렇다고 해서 포탑을 작은 걸 달자니 기껏해야 소구경 유탄포나 기관포 정도밖에 무장할 수 없게 된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포탑 크기를 작게 설계한 경전차들이 대세를 이뤘는 데, 경전차는 체급상 한계가 매우 명확한 물건이었다. 본격적인 대전차전도, 보병과의 제병합동에서 '움직이는 토치카'의 역할을 하기에도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몇몇 공학자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그럼 작은 포탑을 여러개 다는 건 어때요?"라는 아이디어가 새어나왔다. 비록 포탑 하나 하나의 화력은 부족할 지라도 여러 방향을 커버할 수 있고, 여러 개의 포탑이 동시에 불을 뿜는다면 화력이 부족하지도 않을 것이란 판단 덕분이었다. 포탑을 여러개 달면 짱 쎄지 않을까? 라는 속편한 아이디어에서 다포탑 전차가 출발했다.
(독일의 노이바우파초이크. 독일도 한때 이런 괴상한 물건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엄연히 대보병포와 대전차포가 구분되어있던 만큼, 대보병포를 장착한 전차는 대보병전만, 대전차포를 장착한 전차는 대전차전만 수행할 수 있었기이 그 용도가 제한적이었다. 다포탑 전차는 대전차전과 대보병전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을 요구받았다. 위 사진의 노이바우파초이크만 하더라도 75mm 유탄포와 37mm 대전차포를 포탑마다 따로 장착한 형태였다.
하나만 장착할 포를 두 개, 세 개씩 주렁주렁 달았으니 당연 단일포탑 전차와 비교하면 짱개식 계산으로 화력도 두 세배가 되는 것은 당연했고, 하나의 전차가 대전차전과 대보병전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어떠한 전장상황에서도 능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받았다. 거기에 힘들게 전차를 선회하지 않아도(당시만 해도 궤도 내구성과 변속기 문제 등으로 전차를 선회하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포탑이 여러개니 사각지대도 없었으니 정말 무적에 가까웠다고 여겨질만 했다.
(소련의 SMK 전차)
그러나 다포탑 전차는 그 설계사상부터 글러먹은 물건이었다는 것이 오래 지나지 않아 판명되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데, 애초에 대구경 주포를 하나 실으나, 소구경 주포를 여러개 실으나 중량 증가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었고, 당연 포탑 여러개를 주렁주렁 달으니 당시만 해도 후달렸던 구동계 기술로썬 전차의 기동력에 큰 저해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해결하자니 장갑의 두께를 덜어내야하고, 그럼 결국 물장갑이 되어 이동 토치카로써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는 모순점에 봉착하게 된다.
또 하나는 전차 하나에 포탑이 여러개니 당연 승무원도 늘어날테고, 주포도 여러개니 탄약도 여러 종류를 실어야하는 데 내부 공간이 부족하니 거주성, 포탑탑재량이 모두 최악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위의 단점과 결부하자면 장갑이 얇아 공격에 취약한데, 한번 공격 당해 전차가 파괴된다면 일반적인 전차에 비해 인명손실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여러 무장을 쓰다보니 이 무장들을 통제할 전차장으로선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었다. 당대에는 정밀한 사격통제장치도, 여러 무장을 컨트롤할 컴퓨터 시스템도 전무했으니 모두 사람이 일일이 간섭해야했는 데, 정신없는 전장상황에서 모든 포탑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전투효율성도 떨어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니, 포탑을 안 다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니, 영국은 이후에 단일포탑 전차로 완전히 방향을 틀었고, 독일조차도 노이바우파초이크 이휴 다시는 다포탑 전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소련은 끝까지 다포탑 전차의 가능성을 믿었는 데, 이 조차도 서기장의 한 마디에 끝장나고 만다.
"동지들은 왜 땅크에 백화점을 차리려고 하시오?"
서기장 동지의 위협적이고 명쾌한 한 마디에, 결국 소련조차도 단일포탑 전차로 갈아탈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단일포탑 전차의 화력, 범용성 부족 문제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대구경 주포의 장착과 포탑 자동선회장치, 전차포용 고폭탄의 개발 등으로 해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