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회 수 79 추천 수 0 댓글 0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18세기 이후 청나라가 삼번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해 내부 문제를 통제하고, 준가르 등 외부 위협요소까지 제거하자

청은 조선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렸고, 동시에 연행사 파견을 통해 서학에 대한 접근성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지식 체계인 서학은 조선 지식인들의 견문을 넓혀주는 데 크게 일조했고, 일부는 중화 세계관에 의구심을 품기까지 했다.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은 자신의 저서, 『성호사설』 에서

 

 

지금 중국이라는 것이 대지 가운데의 한 조각 땅에 불과하나 거기에다 하늘 전체에 있는 별을 가지고 배치하고 또 그 가운데에 있는 한 나라나 한 지방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가령 한 동이의 물에도 비치지 않는 별이 없는 것을 보아 이것이 증명된다. 그러나 지구의 전체 지도를 가지고 보는 것만 못하다. 북극이 중앙이라면 동양은 용(龍)이며 서양은 호(虎)다. 이렇게 배치하여 놓으면 중국은 조(鳥)요 땅 밑은 무(武)다. 그러나 각 지방에서 거주하는 데마다 해가 뜨는 곳을 동쪽, 해가 지는 곳을 서쪽이라 할 터이니 사방의 위치가 고정되지 못할 듯하다.

라 언설하기도 했으며,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의산문답」에서 '중화와 오랑캐는 하나다'(華夷一也)를 주장하는 등

지식인 개개인의 세계관 인식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그러나 조선에 전해진 서학서들은 대체로 명말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저술되었는데

이들은 서학의 우수성과 함께 그 성과가 천주교의 산물임을 강조해 상대를 감화시키는 선교 전략을 내세웠다.

때문에 서학서에 소개된 내용과 천주교 교리의 경계가 불투명했고,

이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천주교 교리에 대한 반응을 두고 공서파(功西派)와 신서파(信西派)로 나뉘어졌다.

그럼에도 양측 모두 서학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안정복(安鼎福, 1721-1791)의 『순암선생문집』에 나온 다음의 내용은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利氏(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와서 수십 종의 책을 지었는데, 천문을 관찰하고 지리를 살펴서 운행을 계산하여 역법(曆法)을 만든 우수함은 일찍이 중국에 없던 바이다. … 그러나 필경에는 자신의 교(敎)도 환망(幻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내 생각으로는, 서국(西國)의 풍속이 급속히 변하면서 …부득이 천주경(天主經)의 가르침이 있게 되었던 것이니, 처음에는 중국의 『시서(詩書)』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설을 보태어서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며, 그 이후의 허다한 영이(靈異)의 자취는 저들이 이른바 마귀나 광인(誑人)의 소치에 불과한 것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안정복이 천주교를 중국의 학문이 서양의 풍속으로 변형된 사례로 인식했다는 점이다.

다만 이러한 인식 체계는 당시 조선 지식인들에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중국기원설'은 초기 이론 체계가 빈약했던 동도서기론자들 사이에서 서구 기술 수용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역시 나가사키의 번영을 주목하면서도이를 서양과의 통교가 아닌, 강남과의 통상에 있다고 지적했고,

몇몇 지식인들 역시 강남과 통상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강남은 청의 對서양 교섭창구였다. 다만 지식인들이 서양을 교섭대상으로 지목하지 못한 것은

모든 교역을 청이 주재하고 있다고 여겼으며, 나아가 청과 서양의 교류를 조공책봉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 서양은 중국에서 연원한 문물을 뛰어나게 발전시킨 낯선 타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이렇게 조선 내에서 학문으로 연구되던 서학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신앙이 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중국과 일본 역시 서양과의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던 천주교 문제에 있어 포교를 엄금하는 것으로 대응했는데

서양과의 일체 관계도 없을 뿐더러, 서학 수용의 절실함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조선에게 있어

천주교 문제는 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1785년 추조적발사건(秋曹摘發事件)을 기점으로

조선 내에서 서양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일소되었다.

image.png 18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인식

가령 조재삼(趙在三, 1808-1866)이 쓴 백과사전격의 유서,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는 마테오 리치를

 

충수류(蟲獸類, 벌레와 짐승)로 분류해 '스스로 암놈도 되고 수놈도 되는 짐승의 소생'으로 소개되었으며

1791년 진산 사건을 계기로 규장각에 소장된 서학서들이 모두 불태워지기까지 하였다.

이처럼 조선은 중국·일본에 비해 훨씬 늦은 시기에 천주교와 갈등하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불운하게도 조선이 서양을 향해 완강하게 등을 돌리던 이 때가 바로 서세동점의 서막이 열리고 있는 시기였다.

 

ㅊㅊ

https://arca.live/b/histor25385328036y/97273266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덕질 공통 이용규칙 및 안내 (업데이트중+ 2024-04-13) Private 2024.04.19 727
공지 글쓰기 에디터 ChatGPT 인공지능 기능을 포함하여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해보세요 file Private 2024.03.14 1325
공지 1000P를 모으면 다이소 상품권 1000원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file Private 2024.02.14 3001
12554 1990년대 말에 나온 새로운 방식의 공포영화 file 😀익명998 2024.05.09 89
12553 세네갈 사하라사막 마을에 농업을 전파하는 중 file 😀익명287 2024.05.09 112
12552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하와이안 피자의 비밀 file 😀익명044 2024.05.09 103
12551 앞으로 타사이트의 게시글을 업로드 할 경우 출처를 남겨주세요 😀익명640 2024.05.09 153
12550 파묘보고 생각난 우리가족 실화 😀익명176 2024.05.08 272
12549 나치 수용소를 해방시킨 미군이 한 일 file 😀익명855 2024.05.08 244
12548 스압) 주성하 기자가 탈북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 file 😀익명548 2024.05.08 269
12547 2008년 금융위기 다음 세계 경제대위기 file 😀익명310 2024.05.08 249
12546 미국이 망할뻔했던 3가지 큰 사례 file 😀익명003 2024.05.08 230
12545 한국에게 납치당한 북한인 file 😀익명041 2024.05.08 244
12544 한국산 김치가 먹고 싶었던 한국군 일화 file 😀익명704 2024.05.08 208
12543 한국에 도착한 탈북인이 한 걱정 file 😀익명207 2024.05.08 206
12542 페도필리아의 특징 file 😀익명078 2024.05.08 214
12541 오보가 맺어준 인연 file 😀익명607 2024.05.08 193
12540 북괴가 거기서 왜 나와? file 😀익명381 2024.05.08 221
12539 ㅈ간지 소 😀익명423 2024.05.08 191
12538 대한민국 24개 대도시 내국인 인구 현황.jpg file 😀익명113 2024.05.07 363
12537 영국이 CCTV 천국으로 변한 이유.jpg file 😀익명869 2024.05.07 380
12536 케냐 난민 젓가락 살인사건 ㄷㄷㄷ file 😀익명332 2024.05.07 395
12535 의외로 북한보다 더 광기의 열병식을 갖는 국가 file 😀익명190 2024.05.07 32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628 Next
/ 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