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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독립운동 역사상 최강의 독립운동가, 김상옥 의사의 모친 김점순 여사 -
일제 경찰의 심문 앞에서는 김상옥 의사를 못난 자식이라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로 여기며, 의거에 필요한 무기를 숨겨주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아들을 직접 도운 여사님께서는, 실로 호랑이 자식을 낳은 어머니다운 분이었다.
김상옥 의사의 전설적인 "서울 시가전" 당시, 일제 총독부는
무려 1 vs 1000이라는 말도 안되는 전력차의 군경 물량을 때려박아
인해전술로 의사를 사살하려 들었지만, 몇 시간 동안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개피똥을 싸다가
결국 총알이 바닥난 의사께서 마지막 한 발로 자결을 선택하면서
마지막까지 끝끝내 1천의 일제 군경이 혼자인 의사를 자력으로는 체포도, 사살도 하지 못했다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치욕을 당했다.
그리고 그 수치의 정점은, 심지어 이미 죽은 김상옥 의사조차도
갑자기 일어나 달려들까 무서워서 자기들이 직접 다가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김점순 여사의 등을 떠밀어
자기 아들이 정말 죽었는지 어머니가 직접 확인하라는 희대의 패륜을 저지른 것이었다.
온몸에 무려 11발의 총알이 - 일본군의 10발, 의사가 자결을 택한 최후의 1발 - 이 박힌 아들의 시신을
자기가 직접 확인하고, 눈을 감겨 주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지
한낱 미붕이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엄두가 안 난다.
다만 당시의 보도에서는, 김상옥 의사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64세 노모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통곡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여기 왜 왔더냐! 죽으러 왜 왔더냐!
거기(상하이 임시정부) 있었으면 그냥 생이별이었을 것을
왜 와서 영영 이별하게 된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