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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43937P9PV0L3VYLFX8R.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1958년 2월 6일,

영국 축구 역사에 있어 매우 비극적인 사고가 터졌다.

 

당시 풋볼 리그 스타 군단이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버스비의 아이들'이 유로피언 컵 8강 2차전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에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한 것이다.

 

 

The_FA_로고.svg.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유로피언 컵? 축구 종주국이 가오가 있지 그딴 대회에 왜 나감?"

 

당시 영국 축구 협회는 절라 보수적이었다.

이미 월드컵에서 밑천이 드러났음에 불구하고,

그들의 오만은 꺾이지 않았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는 다른 나라보다 늦은 1946년에 시작했고,

대표팀 선수 선발권은 감독이 아닌 기술위원회에 있었다.

 

프로리그 운영도 보수적이기 짝이 없었다.

구시대적인 주급상한제가 여전히 유지되었고,

당연히 외국선수들은 영국 리그에 딱히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베르트 트라우트만 같은 특별 케이스를 제외하면

영연방 지역 외 국가 출신의 용병 선수들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나중에 이야기 할 거지만,

풋볼 리그에 뛰려면 영어도 잘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있었다.

 

여기에 유러피언 컵과 같은 국제대회 출전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FW-SouthernLeague127331News1.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FA는 가오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영국 축구의 민낯이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풋볼 리그는 유럽의 프로 축구 리그 중에서 가장 영세했다.

경기장은 비만 오면 논두렁이 되기 일쑤였고,

선수들의 급료는 법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었다.

 

협회의 이런 규정에 짝짜꿍한 구단주와 임원들은

선수들이 낡은 버스와 좁은 숙소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을 때,

자기네는 승용차를 굴리고 고급 호텔에서 파티를 벌였다.

 

스코틀랜드에서 패스를 축구에 적극적으로 이용한 후로,

영국은 패스 전술이 가장 선진적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필드가 저 GR이다 보니 패스 축구는 꿈도 꿀 수 없었고,

비만 오면 내달리고 뻥뻥 내지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기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고, 거친 태클이 일상적으로 날아드는 상황이라

축구화도 발목까지 올라오는 매우 구시대적인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images.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ㅅㅂ 이딴 필드에서 어케 축구를 하란 거냐!"

1956-57 유로피언 컵 당시 맨체스터 원정 경기를 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올드 트래포드의 필드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f7d9364391ac0bb58143d44dd880235a.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ㅋㅋㅋ 축구 종가 좋아하네.

울버햄튼 십새들 같은 팀은 유러피안 컵에 출전하면 안 됌."

1959-60 유러피언 컵 8강에서 풋볼 리그 챔피언인 울버햄튼을

개아작 낸 바르셀로나의 엘레니오 에레라는

킥 앤 러쉬 밖에 못하는 울버햄튼과 영국 축구를 대차게 깠다.

 

당연히 이런 판이니 풋볼 리그에서 고랩 선수들은

이탈리아 세리에 같은 잘나가는 해외 리그로 탈주하고 있었다.

거기다 국내에 남은 선수들은 선수 노조를 결성,

주급상한제 폐지와 선수권 보장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FA는 타조새끼 마냥 눈 가리고 귀 막고 아몰랑으로 일관했는데...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래서는 발전이 없소.

허울 뿐인 축구종주국이라는 간판이 아니라,

진정한 챔피언이 되려면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시합해야지!"

 

당시 스타 군단을 이끌고 맨유의 중흥을 이끌고 있던 맷 버스비는

FA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러피언 컵 출전을 단행했다.

 

첫 출전한 1956-57 유러피언 컵에서 4강에 올랐지만,

디펜딩 챔피언이자, 당시 유럽축구 저승사자 군단인 레알 마드리드에게

밀려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쉬운 결과였지만, 버스비는 다음 시즌을 기약하고 있었고,

이는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Munich_2_in_1_Article_Image1706636656229_large.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우와, 국제대회 뛰니까 출전 수당이 나오네!"

 

당시 유러피언 컵 출전팀에게는 출전료가 지불되었다.

스타 군단이라고 해봤자 주급상한제(1958년 기준 최고 15파운드)로

쪼달리는 맨유 선수들에게 있어,

UEFA의 통 큰 지불은 가뭄의 단비와 마찬가지였다.

 

 

The_FA_로고.svg.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보소, 미스터 버스비. 이번 시즌 유러피언 컵에도 나갈거라믄서?"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가 풋볼 리그 챔피언이니 대표로 나가야지요.

근데 리그랑 병행하기엔 힘드니 일정 조정 좀 해주시면..."

 

The_FA_로고.svg.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당신네 돈 벌자고 멋대로 나가는 데 우리가 왜 편의 봐줘?

다른 리그 팀들이랑 형평성 안 맞다고.

리그 경기 빵구내면 몰수패 시킬 거니까 그리 아슈."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거야 원... 어쩔 수 없나..."

 

당시 교통편이라는 게 현재처럼 좋지 않았다.

이는 항공편이라도 마찬가지였는데,

1949년 벌어진 수페르가 참사 이후로 신뢰도가 뚝 떨어져 버렸다.

실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이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출전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맷 버스비는 선수들을 이끌고

유러피안 컵 챔피언에 도전했다.

 

1957년 9월 25일과 10월 2일 예선 경기는 그래도 나았다.

상대팀인 샴록 로버스는 바로 코앞인 아일랜드 팀이었으니까.

 

그러나 이후 16강 토너먼트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두클라 프라하.

11월 20일 홈경기는 그럭저럭 3-0의 완승을 거두었지만,

문제는 12월 4일 2차전 프라하 원정 경기였다.

 

11월 30일 풋볼 리그 20라운드에서 토트넘에게 3-4로 패하며 덜미를 잡힌

맨유는 12월 7일 버밍엄 원정 경기를 치러야 했다.

 

 

unnamed.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당시 맨유 구단은 진짜 개고생 했다.

 

여독을 풀 겨를 없이 진행된 프라하 원정 경기에서 맨유는

두클라 프라하의 간판 밀란 드보르작에게 결승골을 맞고 0-1로 패배했다.

그나마 홈경기에서 3-0으로 이겨 골득실로 8강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귀국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영국 전역이 짙은 안개로 드리운 바람에

비행기는 암스테르담에 착륙했고,

선수단은 배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넌 후, 기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던 것.

 

그렇게 피로가 떡이 된 상태에서 버밍엄 원정 경기 치렀다.

당시 득점기계 데니스 바이올렛이 선제골을 터트렸음에 불구,

1분도 안되어 상대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순식간에 역전 당했다.

다시 공격수 토미 테일러가 동점골을 넣으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지만,

전반 36분에 또 역전골을 내주고 만다.

다행히 후반 초반에 데니스 바이올렛이 동점골에 성공...

없는 체력으로 우주 방어를 시전해 무재배 승점 겟으로 만족해야 했다.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하, 이래서야...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겠어."

 

당시 맨유는 울버햄튼과 우승 레이스를 벌이고 있었다.

지금이야 울버햄튼이 EPL ㅈ밥 같지만,

당시에는 레전드 수비수이자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인 빌리 라이트가 이끄는 강팀이었다.
맨유는 2월 8일 울버햄튼과 리그 경기가 잡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2월 5일이 유러피언 컵 8강 2차전 원정 경기였다.

더구나 상대는 프라하보다 더 멀리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였으니...

또 중간에 트러블이 일어나면 리그 경기 시간에 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다.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울버햄튼과 경기를 하루만, 아니 12시간만 미뤄주면 안되겠습니까?"

 

The_FA_로고.svg.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안돼, 들어줄 생각 없어. 돌아가."

 

버스비.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하... 이거야 원..."

 

결국 맨유는 아무런 도움이나 배려를 받지 못한 체 베오그라드 원정을 떠났다.

앞서 1차전 홈경기는 2-1로 승리했기에,

최소 무재배만 거두어도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맨유는 원정임에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를 맹렬히 몰아붙였고,

전반 2분 만에 데니스 바이올렛이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바비 찰튼이 30분과 31분에 연속 추가골을 넣으며 3-0으로 앞서갔다.

후반에는 레드스타가 맹추격, 3-3 동점이 되었지만 경기는 거기서 끝났다.

 

 

Matt Busby.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ㅋㅋㅋ 이겼다! 이제 늑대 잡으러 가즈아~!"

 

귀국 비행기는 연료 보급을 위해 뮌헨 공항을 경유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날 뮌헨에는 눈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선수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고 카드를 치거나

눈싸움을 하며 비행기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Thain-James-Jim.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뭐? 오늘 비행기 못 뜬다고?"

 

02350920_p_2402070.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보다시피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이륙이 힘들 겁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시죠?"

 

Thain-James-Jim.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아니, 눈 좀 왔다고 비행기가 못 뜬다고?

안돼, 난 오늘 반드시 영국으로 돌아갈 거야!"

 

당시 맨유 선수들이 탄 여객기를 조종하는 기장 제임스 타인은
2차 대전에 참전했을 정도로 경험이 많은 파일럿이었다.

그 많은 경험이 제임스에게 오만을 부르고,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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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비행기 뜬다고요? 못 뜬다면서?"

 

맨유의 에이스였던 던컨 에드워즈는 이미 내일 간다고 집에 다 전보까지 쳐둔 상태.

그런데 비행기가 뜬다니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일찍 돌아가기를 원했던 던컨과 선수들은 다들 비행기에 올라탔다.

 

 

1434663510086.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이렇게 휙 하니 날아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이들이 탑승한 BEA항공 AS-57 앰버서더 여객기는 1947년에 비행을 시작한 영국제 비행기였다.

이 항공기는 앨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 필립 공이 애용할 정도로 성능이나 내부 설비가 좋았고,

기종당 연간 운영시간 2,230 시간을 찍을 정도로 많이 날아다녔다.

그리고 1955년에 비상착륙을 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사고도 나지 않은 기종이었다.

 

 

Thain-James-Jim.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두고 보라고, 멋지게 날아볼 테니까."

 

...라고 장담했는데, 이 양반 2번이나 이륙에 실패했다.

눈 때문에 비행장 상태가 너무 나빠서 도무지 이륙할만한 양력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승객들은 불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Thain-James-Jim.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승객 여러분, 걱정마십쇼! 서울은 안전... 아니 비행기는 안전합니다!"

 

images (1).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어씨, 불안한데..;; 타도 되는 건가?"

 

두 번이나 이륙에 실패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던 수비수 빌 포크스는

동료들과 함께 카드를 치고 있다가 세 번째 비행 시도 소식을 들었다.

그는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고,

동료들에게도 말했지만 탑승을 막지 못했다.

자칫 리그 경기가 펑크나면 팀은 물론, 선수 본인들도 손해였으니까.

 

결국 맨유 선수들은 불안 반 믿음 반 한 상태로 다시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불안했던 그들은 당초 앉았던 앞좌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았다.

당시에는 현재 처럼 좌석 배정이 되어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만약에 사고가 나도 비행기가 추락하면 앞부터 떨어지니까

뒷좌석 쪽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너무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20180202003226.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여객기는 가까스로 활주로에서 이륙했지만,

하늘로 날기에는 양력이 부족했기에

결국 기우뚱하다가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맨유 선수단에게는 불행하게도 뒷꼬리 부분부터 지상에 떨어졌고,

비행기는 담장과 가옥에 충돌하면서 대파되었다.

 

이 사고로 맨유는 던컨 에드워즈를 비롯한 8명의 선수들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 당했다.

부상자 중에 조니 베리와 재키 블란치플라워는 다시 필드에서 뛸 수 없었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클럽 총무와 2명의 코치, 언론인들과 일반 승객들도 희생되었다.

 

 

gregg_edit-11581926297525_large.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난 처음에 죽은 줄 알았지요."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해리 그래그가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그는 사고가 터진 후 멀뚱히 구경만 하는 주민들에게 사람을 구하라며 호통을 쳤다.

 

images (1).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갑자기 엄청난 소리가 났고,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았어요.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눈밭 위에 앉아 있었죠.

나도 모르는 사이 비행기 밖으로 튕겨나갔던 겁니다."

 

천운으로 경미한 부상을 입은 것에서 끝났던 빌 포크스는

처음엔 비행기가 폭발할 줄 알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하지만 비행기는 터지지 않았고, 그는 다시 되돌아왔다.

그가 본 풍경은 정말이지 끔찍한 것이었다.

사방에 시신들이 널려 있었는데, 그 중에는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해리 그레그가 사람들을 구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를 거들기 시작했다.

 

 

bdf0c796827003fe98ffc72bdc126043.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사고 직후 입원한 던컨 에드워즈와 문병을 온 해리 그레그와 빌 포크스

문병 온 두 선수의 표정이 영 좋지 못하다.

 

사고 초기에 던컨 에드워즈는 부상자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사고 다음날, 그는 문병을 온 지미 머피 코치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코치님, 울버햄튼과 경기 시간이 언제죠?

그 경기는 절대 놓쳐서는 안돼요."

 

사고 때문에 대충 경기가 미뤄질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FA는 사고 소식을 듣고 맨유의 경기들을 14일 간 미뤄주었다.

 

던컨은 처음에는 호전되는 듯 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졌다.

그는 양다리와 갈비뼈 골절 되었고, 신장에 큰 손상을 입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는 인공 신장 설비로 투석을 시작했지만,

결국 상태는 호전되지 못한 체 던컨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d906954c3196f63df91ce12c0ee7753f.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당대에는 엄청난 장신이었던 180cm의 신장,

양다리로 볼을 능숙하게 다루는 뛰어난 득점 능력의 소유자.

어떤 포지션이든 수행했던 멀티 플레이어,

17세에 프로무대 데뷔, 18세에 국가대표 승선...

21세까지 200경기 넘는 시합을 치렀던 영국 축구의 천재...

하지만 그는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체 쓰러지고 말았다.

 

 

WA1037556.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너무나 많은 친구들을 잃었어요.

내 인생이 바뀐 건 그때부터 일 겁니다."

 

바비 찰튼의 부상은 심각하지 않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한때 은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멘탈이 부서져 버렸던 것.

 

버스비의 아이들.

그렇게 불릴 정도로 당시 맨유 선수들은 아버지 같은 감독 밑에서

서로 형제처럼 챙겨주며 돈독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생존한 선수들의 충격과 슬픔은 말할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생존자를 구조하고, 팀원들을 보살폈던 해리 그래그도

남몰래 암페타민을 복용했을 정도로 사고 후유증을 심하게 앓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은 주저 앉지 않고,

남은 동료들과 함께 다시 무너진 팀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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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맨유의 부활을 도왔다.

맨시티의 베르트 트라우트만은 소식을 듣자 바로 뮌헨으로 와서

통역으로 맨유 구단을 지원했다.

 

영국 축구의 아이돌들이 당한 참사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보내고 도움을 주었다.

블랙풀과 리버풀을 비롯해 여러 구단에서

자기 팀 선수들을 임대 보내거나, 이적 시켜 주었다.

 

 

3.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심지어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페렌츠 푸스카스를 공짜로 보내주겠다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푸스카스는 여권 문제로 스페인에서 뛸 수 없었기에,

영국으로 보내서 경기 감각을 쌓게 하자는 의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푸스카스 임대는 나가리가 되었는데,

영어 못하는 선수는 뛸 수 없다는 ㅈ같은 풋볼 리그의 규정 때문이었다.


The_FA_로고.svg.pn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 너무 욕하지 마세요. 우리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던컨 에드워즈, 토미 테일러, 로저 번, 데이비드 팩 등등...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알짜 활약을 보이던 선수들이 세상을 뜨면서 전력은 반토막이 났다.

결국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3무재배, 조 3위로 성적 말아 먹었다.

 

 

Thain-James-Jim.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내, 내 책임은 아니오! 공항 측에서 잘못한 거라고!"

 

부기장까지 사고로 순직한 가운데, 비행을 강행한 제임스 타인은 살아남았다.

이후 그는 법적 고소를 당했지만,

사고의 책임을 눈을 치우지 않은 뮌헨 공항 측에 떠넘겨서 면죄에 성공했다.

 

실제 활주로에 쌓인 눈이 슬러시가 되어 이륙에 부담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거기다 비행기 날개에 쌓인 눈도 얼어붙으면서 더욱 양력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수 없다는 공항의 만류를 뿌리친 건 제임스 본인이었고,

심지어 세 번이나 이륙을 시도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사고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70.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맨유는 물론 EPL 모든 구단들이 이 사건을 잊지 않는다.

크나 큰 희생이 있었던 만큼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있기 때문이다.

 

뮌헨 비행기 참사는 분명한 인재이다.

공항 측은 제설과 제빙에 불성실 했으며,

기장은 악천후임에 불구하고 무턱대고 비행을 시도했다.

여기에 FA는 아무런 배려와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서

맨유 선수단을 다급하게 몰아갔다.

무성의와 오판, 그리고 꼰대질의 하모니로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무고한 사람들과 젊은 인재들이다.

 

 

NISI20231013_0020089946_web.jpg [뮌헨 참사 66주기] 사고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이건 비단 영국만 그런 건 아니다.

 

무성의와 오판, 꼰대질의 하모니...

저 빌어먹을 늙다리들이 대한민국 축구 역대급 플레이어들의 꿈을 무너트렸다.

저 10새들이 물러나지 않고 버틴다고 해도 상관없다.

역사는 니들을 기억하고 두고두고 씹고 뜯고 까댈 거니까.

 

죽어서 남기는 게 이름과 명성 뿐인 인간 사회에 참 좋은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CVR 것들

 

 

출처 : 에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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