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854
8 days ago

서양인이 본 히데요시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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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 나카무라 에서 태어날 때 어머니가 태양을 품에 안았다고

자칭한 일륜의 자식 히데요시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미쓰히데의 반역으로 죽자, 미쓰히데를 토벌하고

일본의 실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시작하는 그릇된 야망

唐入り(명나라 정복)

 

 

1.

토요토미 히데요시. 큐슈의 히젠 나고야에 성을 쌓고 군을 징발하다

히데요시는 조선은 단지 중간 경유지로 실제로 전투는 명나라에서 벌어질거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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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주성 남쪽의 조령고개를 넘어 진군해온 일본군 1군 15000을 이끈 고니시 유키나가는 달천평야에서 신립의 부대와

전투를 치뤄 승리하게 된다. 이 때 조령의 동쪽에서 진군해온 가토가 고니시에게 참전을 요청했으나, 고니시가 거절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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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립의 충주 탄금대 전투 패배로 한성을 떠나 평양으로 퇴각한 선조는 임진강에 김명원을 배치해 수비를 명한다

문제는 여기에 비변사의 추천으로 다시 한응인이 또 다른 지휘권을 가진 채 부임하면서

임진강 수비를 맡은 조선군의 지휘권이 사실상 김명원,한응인 이원체제로 크게 양분되고

거기에 원래 있던 이양원의 군까지 더해져

3등분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북상해온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는 임진강을 건널 뚜렷한대안이 없어

서로 지리한 대치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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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때 기요마사의 군이 강변에 일부의 부대만 남기고 퇴각을 시작하자

조정의 공격 요청을 받고 있던 차에 이를 기회라 본 한응인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일선 지휘관들이 이는 일본군의 계략이라 생각되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본 후에도 늦지 않다고 보고) 강변 군사들에게 강을 건너 공격을 명했고, 경기도 조방장 유극량의 반대에도 , 경기도 수어사 신할(신립의 동생) 마저 돌격을 명하니 조선군은 강을 건너 남아 있던 가토의 부대를 공격 이를 물리친다

그러나 이후 매복해 있던 가토의 부대가 사방에서 이들을 에워싸 공격하자 강을 건너온 조선군 대부분은 전사하고

지휘관이었던 신할,유극량,홍봉상(독진관) 마저 전사한다

강건너에서 이를 지켜 보고 있던 김명원과 한응인의 부대는 사기가 떨어지고 있던 찰나 휘하의 박충간이 갑자기 홀로 말을 타고 도주하기 시작하자

이를 총지휘관인 김명원의 도주로 착각한 병사들이 도원수가 도망쳤다고 소리지르며 앞다퉈 도주하는 바람에

전군이 붕괴되며 임진강 방어선은 무너지게 된다. 이 후 가토는 조선군이 타고온 배를 이용해 임진강을 도하해 북상하게 되며

이는 선조가 또 다시 의주로 몽진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imjin02.jpg 서양인이 본 히데요시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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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편 남쪽에서는 이순신,이억기(꼽사리 원균)가 이끄는 조선수군이 일본수군에 연전연승 하면서

부산 이서의 남해 제해권을 장악, 일본군의 전라도 침략과 수륙병진책을 좌절시킨다

한산도 해전과 안골포 해전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가토 요시아키,구키 요시타카의 수군 주력을 쳐부순 이순신 장군

(일본군 점령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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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해전에서 박살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6.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이 참전하며 조명연합군은 평양의 고니시 유키나가를 공격 평양성을 수복한다

그 후 벽제관에서 조명연합군이 패배하긴 했으나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의 대군을 물리치며

잔존 일본군들은 한성에 모여 대책회의 끝에 조선 남부로 일시 퇴각을 결정한다

조선수군의 활약으로 해로를 통한 한성으로의 보급이 불가능해지자 더 이상의 전쟁 수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이 된것이다

전쟁은 소강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후 1593년 부터 1597년까지는 전투가 없는 일종의 휴전 상태가 되며

물밑 외교전이 전개된다

(임란 초기 부산에 상륙했던 15만의 일본군 병력은 그 후 사상자와 탈영을 겪으며 53000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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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조는 다시 한성으로 돌아오고 남부의 이순신은 제해권을 장악 일본군의 서쪽 진출을 막았고, 일본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남해안에 왜성 전진기지를 쌓아 주둔하게 된다

그리고 1597년 이순신을 대신해 조선수군의 지휘권을 이어 받은 원균은 칠천량에서 대패 조선수군의 주력이 무너지며 이전까지 지켜오던 제해권을 상실하게 된다.

이에 놀란 선조는 화급히 백의종군 중이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였으나,이 때 이순신의 수중엔

예전의 정예 조선수군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나 12척의 판옥선으로 명량해전에서 일본군의 133척을 물리친 명량의 승리를 계기로 재건의 물꼬를 튼

이순신의 조선수군은 명나라의 수군제독 진린이 이끈 명 수군과 연합해 일본군에 대응하게 되고

운명의 1598년 일본에서는 조선침략의 원흉인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이에 철수하려는 일본군과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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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샷은 서양 유튜버 킹즈 앤 제네랄의 임진 다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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