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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다

말세의 징조와 재림에 관한 예언들 - 세상 종말의 징조(마 24:1-14)

마태복음은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확실하게 알려주기 위해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해서,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을 130회 인용)

 

※ 마태복음의 5대 강화(가르침)를 살펴보면,

- 1강화(마5~7장) : 산상수훈 - 천국의 선언서(천국의 새 법)

- 2강화(마 9:35~10:42) : 천국의 사명(전도, 선교)

- 3강화(마 13장) : 천국의 7가지 비유

(네 가지 땅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 누룩,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의 비유, 그물

비유)

- 4강화(마 18장) : 천국에서의 관계들.

- 5강화(마 24,25장) : 감람산 강화 - 예루살렘과 역사의 종말.

 

특별히 마태복음 24장은, 마태복음에 나타난 주님의 5대 강화 중 그 마지막에 해당하는 ‘감람산 설교’에 관한 부분으로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파괴’, 그리고 ‘세상종말과 주님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여기에 언급된 예언들이 1차적으로는 A.D. 70년 멸망과 관련되나, 예언적으로는 세상 종말과 관련되는 예언의 복합성(양면성)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종말론 강화'를 말씀하신 목적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제자들(넓혀서 적용하자면, 새 언약백성이 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 = 성도= 택자들)로 하여금 그릇된 가르침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미혹 혹은 속임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4절).

둘째, '깨어서 예비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42, 44절).

 

※ 종말에 관한 그릇된 가르침은 크게 두 종류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가르치는 것이고(5절,23-26),

둘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일어날 것’이라고 그 시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36절).

 

※ 이 종말론 강화를 잘 이해하기 위해 24장의 문단을 나누어 보면, 다섯 문단으로 나누

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① 서론(마 24:1-2)

② 세상 종말의 징조(마 24:3-14)

③ 대 환난(마 24:15-28)

④ 인자의 다시 오심(마 24:29-31)

⑤ 주님을 예비하라(마 24:32-51)

 

◈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1-2)

 

1. 예루살렘 멸망의 예언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1~2절은 예루살렘의 멸망의 예언에 관한 말씀으로 마태복음 23:37~39절에 언급된 예루살렘 멸망의 예언의 연속기사로 주님이 보실 때, 도둑과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파멸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디도(Titus, 티투스)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파괴되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 23:37-39)

 

▶ 성전파괴에 대한 구약의 예언

㉠ 왕상 9:6~9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

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 왕하 23:2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택한 이 성 예루살렘

과 내 이름을 거기에 두리라 한 이 성전을 버리리라 하셨더라”

 

▶ 성이 불타는 구약의 예언

㉠ 렘 17: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

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

니라 하시니라.”

㉡ 호 8: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 암 2:4~5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5.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예루살렘 불타는 원인

①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숭배하기 때문에.(왕상 9:6-9; 대하 7:19-22)

②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슥 7:8~14)

③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1:11)

④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요 12:37-40)(행 13:45-46)

⑤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롬 10:16)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신 때는 고난주간의 화요일 저녁 무렵으로 마 21:23~23:39의 교훈을 모두 마치신 때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떠나신 것은 일종의 메시아적 예언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도둑과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성전에 대한 파멸 선고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마 21:13). 실제로 예수께서는 전장에서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8)고 예언하시고 성전에서 나오시자마자 성전 파멸을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2절), 다시는 성전을 찾지도 않으셨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신 행위가 ‘메시아적 예언 행위’ 였음을 입증해 줍니다.

 

여기의 성전은 헤롯왕이 건축한 제3성전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제1성전(솔로몬 성전)은 B.C.586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고, 포로 귀환 후 스룹바벨의 영도하에 재건축한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헤롯 왕 때까지 보존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에서의 후예인 에돔인이었던 헤롯왕은 항상 혈통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고, 유대인들 역시 반쪽 유대인이었던 헤롯왕에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헤롯왕은 이 같은 처지를 타개하기 위한 일환으로 스룹바벨 성전의 개축을 시도했는데, 이 공사의 규모가 매우 방대했기 때문에, 완공된 이후에는 스룹바벨 성전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제3성전(헤롯 성전)은 스룹바벨 성전의 개축임에도 불구하고 헤롯 성전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입니다. 어째든 제3성전은 B.C.19년에 착공되어 A.D.63년경에 완성되었는데, 이 공사는 무려 80년이 넘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따라서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리킨 성전은 외형만 완공한 상태로 아직도 계속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지금 막 성전에서 나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이 예수께 성전을 가리켜 보이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절과 병행구절인 막 13:1~4절을 보면,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성전을 가리켜 보이며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나이까?’ 라는 질문을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과 질문은 앞장(23장)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멸을 선언 하신 것(마 23:38)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공사 시작 무려 50여년이 지난 현재(A.D.30년)도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이며,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우며 견고한 성전이 무너진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2절의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 구절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으로 특별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는 말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완전한 파괴에 대한 묘사입니다.(렘 26:18, 미 3:12, 학 2:15) 제자들 마저도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감탄했던 헤롯 성전이 완전히 황폐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은 실제로 A.D. 70년 로마 장군 디도(Titus)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함으로써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이때 성전은 흔적도 없이 무너졌는데 심지어 투르누스 루푸스(Turnus Rufus)란 사람은 성전의 기초까지도 파회치는 일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갈이 갊을 당하고’(미 3:12)라는 말씀의 문자적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배교자 줄리안(Julian)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예언을 무시하고 기독교에 대항하기 위해서 성전을 재건하려 했으나 땅에서 불이 솟아나와 좌절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전 터에는 이슬람 회교 사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로써 유대교의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이것은 진리를 담고 있지 못하는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한 집행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로 교회가 내적 생명이 없어지면, 자연히 외부를 꾸미게 되는 법입니다.

건물이 크고 아름다우며 사람이 많이 모이고 예배의식이 훌륭하여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영적 생명력이 없다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입니다. 내적 생명은 없고 외부만 아름답게 꾸미고 의식주의로 나가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 것입니다.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

2. 세상 끝에 관한 예언과 경고(3-14)

예언을 듣고 제자들이 이때가 언제인지 알기를 궁금해 하다가 주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시매 비로소 말세의 징조와 주의 다시 오심에 대해서 질문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께서는 말세의 징조에 대해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였습니다.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본문의 징조들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파괴 때에 일어날 현상들에 관한 것임과 동시에, 종말에 있게 될 대환난에 대한 복합적 이중적 예언입니다. 따라서 A.D. 70년에 성취된 이 예언은 또 한번의 성취를 남겨두고 있는데, 결국 예루살렘 멸망사건은 종말 때의 세계 멸망의 예표론적 사건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람산은 성전 건너편, 곧 예루살렘성 밖 동편에 위치한 산으로 예루살렘 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나오신 후 아마도 예루살렘 성의 동쪽 문으로 해서 베다니로 가시던 도중 감람산에 오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신 때는 고난주간의 화요일 저녁 무렵으로 마 21:23~23:39의 교훈을 모두 마치신 때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떠나신 것은 일종의 메시아적 예언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도둑과 강도의 굴혈이 되어버린 성전에 대한 파멸 선고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마 21:13). 실제로 예수께서는 전장에서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마 23:38)고 예언하시고 성전에서 나오시자마자 성전 파멸을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2절), 다시는 성전을 찾지도 않으셨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신 행위가 ‘메시아적 예언 행위’ 였음을 입증해 줍니다. 하여튼 예수께서는 성전을 보시면서 성전의 파멸을 예언하셨고(2절), 이제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에 관해서 예언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처럼 은밀하게 질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들은 성전 파괴의 예언이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당시 백성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었던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시자 마음에 번민하다 차마 공개적으로 질문하지 못하고 예수께 은밀히 나아와 그들의 의문을 해결해 주시도록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여기서 ‘이런 일’이란 단순히 ‘성전 파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언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제자들은 성전의 파괴와 세상의 종말을 동시에 있을 사건으로 알았던 것입니다.(Calvin, Zahn) 사실 당시 유대인들은 성전의 파괴란 세상이 존속하는 한 있을 수 없고, 세상 끝에야 비로소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종말의 때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종말의 징조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거은 제자들 이후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질문으로 예수께서는 종말의 징조는 말씀하셨으나 종말의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시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맡기셨습니다.(마 24:36) 따라서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종말의 때가 ‘이때다’ 혹은 ‘저때다’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인 주장이 되지 못합니다.

 

◑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여기에서 ‘임하심’(파루시아)는 본래 인격적인 ‘참여’, ‘임재’를 뜻했던 말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특정 낱말이 되었습니다.(살전 4:15, 약 5:7) ‘세상의 끝’은 문자적으로 ‘세상의 마침’ 또는 ‘세상의 종말’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의 질문은 ‘주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이 있을 때에는 어떠한 징조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까? 라는 말입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여기서 “미혹”은 원어 ‘플라나오’로서, ‘방황하다’, ‘헤매다’, ‘죄를 짓다’, ‘넋을 잃다’, ‘길을 벗어나게 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사 플라나오는 70인 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타아(칼형, 이리저리 헤메다; 길 잃게 하다, 미혹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헬라어 단어의 고전 문헌적 의미가 70인 역본으로도 이어져 내려갔습니다. ‘플라나오’의 공간적 의미는 소경으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이 공간적 의미는 포도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의 배후에 있는 기본 개념이기도 합다(사 19:13이하; 사 28:7).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길을 잃습니다(신 13:6). 그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는 요소들은 우상들(암 2:4), 거짓 선지자들(렘 23:32), 신실치 못한 왕(대하 33:9) 등으로 묘사됩니다. 하나님 자신까지도 길을 잃게 하는 자의 역할로 등장하십니다(욥 12:24; 겔 14:9; 사 63:17). 때로는 이스라엘의 길(path)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들기 때문에, 회개와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는 목자(Shepherd)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양의 모습으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주의하라”는 원어 ‘블레포’(현재능동태명령법2인칭복수동사)로 ‘알아차리다’, ‘깨닫다’, ‘인지하다’, 심지어 ‘통찰(간파)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 절에서부터 본장 마지막 절까지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함에 있어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즉 그것은 예언의 복합성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 또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리스도의 재림 또는 세상의 종말을 같은 때에 일어날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A.D. 70년에 있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가까이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멀리는 종말적인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종말 예언에는 제자들의 질문과는 달리 현 세대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과 장차 미래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멸망은 세상 종말의 예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믿지 아니한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의 때’라면, 세상 종말은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때’인 것입니다.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종말의 첫 번째 징조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이 같은 현상은 예루살렘 성 함락 전이나 종말 전에도 있는 일로서 교회사에 자주 발견됩니다. 즉 예루살렘 함락 전에는 드다와 갈릴리 유다(행 5:36-37), 애굽인(행 21:38) 등과 같은 사람들을 비롯해서 사마리아인 도시데우스, 시몬 마가스 등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가장했습니다. 물론 이 같은 현상들은 로마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족주의적 운동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메시아적 권위를 가장한 민족주의적인 운동은 예루살렘 직후에도 한 차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A.D. 135년에 있었던 바르코흐바의 반란사건이었습니다.

 

이 같은 유대 민족주의적 색채를 띤 메시아 운동과는 달리 종말 전에 발생하는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은 대부분 성도들의 영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들의 거듭되는 출현은 종말의 확실성에 대한 징표라고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수없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하여 실족케 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신앙의 경주를 마치는 날까지 더욱 깨어 있어야 하게습니다.

 

※ 말세의 징조들(마 24:4~14절)

㉠ 거짓 그리스도(=적그리스도)의 출현.(4,5절)

㉡ 전쟁, 기근, 지진, 온역(질병)의 출현.(6,7절)

㉢ 핍박.(9,10절)

㉣ 거짓선지자의 활동.(11절)

㉤ 불법의 성행.(12절)

㉥ 사랑이 식어짐(12절)

㉦ 복음의 확산.(14절)

㉧ 배교.(살후 2:3)

㉨ 지식의 증가.(단 12:4)

㉩ 성도의 타락.(딤후 3:1-5)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종말에 대한 두 번째 징조는 난리와 난리에 대한 소문이 흉흉해 진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종말적인 징조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통념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이 로마에 함락되기 전까지 유대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또한 종말을 향해 치닫는 인류 역사 진행 가운데서도 전쟁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야수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전쟁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이는 결국 전쟁 또한 당신의 섭리 아래 허용된 것으로서 결코 성도들이 무서워하고, 겁내어야 할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종말의 징조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말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할 뿐 세상의 종말 그 자체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종말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고전 15:24) 그러므로 성도들은 전쟁과 전쟁의 소문을 듣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한 믿음으로 신앙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종족과 민족, 그리고 국가 간에 있을 전쟁을 뜻합니다. 종말의 또 다른 징조는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의 기록들에 의하면 예루살렘 멸망 전 곳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근은 전쟁의 부산물로 여겨지는데, 사도행전에서는 대규모의 기근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는 바다(행 11:28) 또한 지진은 보통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로 여겨졌는데, 당시 그레테, 로마, 브르기아와 아하네아, 프리기아의 라오디게아, 캄파니아 등지에서 대규모로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대규모의 지진과 기근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 재해 현상들은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닐 수 없습니다.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 구절은 전쟁, 기근, 지진 등의 일련의 현상들이 종말의 징조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종말의 때에는 새로운 현상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재난’(오딘)은 본래 ‘해산의 고통’을 뜻하는 말로, 죄로 물든 세상이 심판받고, 메시아가 통치하는 새로운 체계가 오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고난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루살렘 멸망 전에 있을 난리와 기근과 지진 등은 메시아를 배척한 이스라엘의 멸망과 교회의 태동 및 확산이라는 과도기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현상이었으며, 종말 전에 있을 전쟁, 기근, 지진 등은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의 멸망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현상인 것입니다.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오고 오는 세대의 성도들이 당할 환난을 종말의 징조로 설명하시고 계십니다. 이처럼 교회에 대한 세상의 핍박은 종말의 중요한 표징으로서, 이런 양상은 초대 교회에서 뿐 아니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멸망 전에 예수님의 많은 제자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종말 때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대적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초대 교회 교인들이 받았던 대표적인 핍박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이 가는 곳곳에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로마인들은 기독교인을 매우 증오했는데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의 역사책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치욕스런 행동 때문에 보기 싫은 무리’들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이 파에 대해서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행 28:22) 라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억울한 미움과 설움을 받았는가 하는 사실을 잘 증언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그 때에’는 일반적으로 종말을 뜻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앞 절의 상황, 즉 모든 민족들이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시작할 때를 가리킵니다. 이때에는 믿음이 어린 성도와 원래 가라지와 같은 거짓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갈 뿐 아니라, 성도들을 박해하는데 앞 장을 서게 될 것입니다.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의 기록에 의하면 ‘처음에는 자신이 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붙잡혔다. 그리고나서는 그들이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많은 사람들이 붙잡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말세에는 예수를 바로 믿는 사람은 환난을 만납니다. 성경대로 바로 믿는 사람은 환난에 넘겨주고 잡아 죽이며 미움을 당하게 될 날이 옵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세에 환난받을 각오와 미움 받을 각오와 죽을 각오까지 하고 나가야 합니다.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계의 말씀은 여러 차례 주어졌습니다.(마 7:15, 마 24:5, 고후 11:13, 딤후 2:17-18)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성도들을 미혹케 하고 있지만, 예루살렘 멸망 전 이스라엘에 출현했던 자들은 주로 자신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메시아로 자칭했습니다.

 

특히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멸망 직전까지 성 내에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증폭되었는데, 이처럼 극도의 혼란과 불안이 팽배해지자 예루살렘 성 내에서는 백성들의 구원을 보장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다수 등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추종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자주 보여지는 ‘거짓 선지자’는 예루살렘 성 내에서 백성들을 선동했던 부류와는 성격을 약간 달리하는데, 이들은 주로 교회 공동체에 잠입해서 성도들에게 유대주의적 율법을 주입시킴으로서 복음의 정신을 희석시키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행 20:30, 롬 16:17-18, 고후 11:13, 갈 1:7-9, 골 2:18-23) 특히 거짓 선지자들은 ‘이신득의’(以信得意)의 교리를 주장한 바울의 선교에 지대한 방해 공작을 획책했는데, 이들은 심지어 성도들을 미혹하여 유대주의적 요소를 배격하는 바울의 사도성까지도 부인하게 하였습니다.(갈 1:1-24)

 

이처럼 당시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단 사설은 교회와 교인들을 미혹하고 분열시켰던 바 교회에 대한 외적 핍박보다 더 큰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단 사설은 교회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악한 교훈이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며, 그들을 쳐부수기 위한 대책 마련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살후 2:8~12)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불법“(이노미아)은 부도덕함을 나타내는 말로, 본 절에서는 신앙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온갖 비신앙적인 반종과 타락을 가리킵니다. 결국 본 절은 종말의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신앙이라는 허울을 쓰고 교회를 부패시키며 부도덕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이런 현상은 ‘불법’이 성행한 결과입니다. 불법과 사랑은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법이 성행하면 교회는 타락할 수밖에 없고, 성도들은 사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실례를 에베소 교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성도들 간에 뜨거운 사랑을 지녔으나 교회에 불법이 성행하자 ‘처음 사랑’을 버렸던 것입니다. 어째든 성도들은 불법이 성행하는 때일수록 보다 더 형제에 대한 사랑을 배가시킴은 물론 불법을 조장하는 자들을 단호히 조처함으로써 교회가 불법의 장이 되는 것을 막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결국 말세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부도덕하고 부패한 세대가 되어 사람들이 악하고 사랑이 식어지게 된다. 말세에 성도들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딤전 1:9, 딤후 3:1-5)

※ 말세에 나타날 타락상(딤후 3:1-5)

ⓐ 자기를 사랑함 : 하나님과 교제가 완전히 단절된 자.(눅 14:26)

ⓑ 돈을 사랑함 : 모든 악의 근원이 됨.(딤전 6:10)

ⓒ 자랑함 :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롬 1:30)

ⓓ 교만함 : 남의 인격을 철저히 짓밟고 자신을 드러냄.(눅 1:51)

ⓔ 비방함 : 언어생활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무시함.(딤전 1:3)

ⓕ 부모를 거역함 : 하나님과 부모의 권위를 동시에 깔보는 행위.(엡 6:1)

ⓖ 감사치 않음 : 감사는 모든 덕의 기초.(눅 6:35)

ⓗ 거룩치 않음 :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발견치 못하고 행함.(딤전 1:9)

ⓘ 무정함 : 죽어버린 양심과 인간애.(롬 1:31)

ⓙ 원통함을 풀지 않음 : 화해할 여지가 없는 강팍한 자.(약 3:14)

ⓚ 모함 : 거짓되고 추악한 말과 양심을 일삼음.(딤전 3:11)

ⓛ 절제치 아니함 : 자신의 악한 본성을 제어하지 못함.(약 3:14)

ⓜ 사나움 : 포악한 동물적인 기질의 소유자.(전 8:1)

ⓝ 선한 것을 싫어함 : 어두운 세력의 지배하에 있음.(요 1:11)

ⓞ 배반하여 팖(배신) :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저버림.(요 13:21)

ⓟ 조급함 : 무엇이든지 생각없이 서두름.(행 19:36)

ⓠ 자고함(자만) : 자신만을 알아 모든 권위를 부정함.(딤전 3:6)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함.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서 ‘끝’은 고난의 마지막을 뜻하는 말입니다. 고난을 인내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뜻합니다. 이때 구원은 종말적 심판 때 얻을 최종 구원인 영생을 뜻하지만, 현실적인 육체적 구원까지 염두에 둔 말입니다. 실제 예루살렘 멸망 때에는 유대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 종말시대 교회에 나타나는 7가지 현상.(9~12절)

❶ 환난에 넘겨주고(9절)

❷ 죽이고(9절)

❸ 잡아주고(10절) ; 배신, 넘겨주다

❹ 미워하고(10절)

❺ 미혹하고(11절)

❻ 불법이 성하고(12절):도덕적 타락

❼ 사랑이 식어진다.(12절)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예수께서 종말의 징조로 보이신 것 가운데 마지막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종말의 끝 시점을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는 때로 정하셨습니다. 이 예언적 말씀이 특별히 의미가 있는 것은 종말이 올수록 성도들을 미혹하고, 박해하는 세력이 흥황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천국 복음이 결코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일 없이 전파될 것이라는데 있습니다. 즉 종말의 끝이 박해와 냉대의 분위기 속에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의 임무 완수로 완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말이 오기 전에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구절로 범세계적인 복음의 확장은 종말이 임박했다는 중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대는 세계적으로 복음이 다 전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세상 끝이 다 된 셈입니다.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다 들려주어서 믿는 사람은 구원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3. 종말시대 성도의 자세

 

이 종말의 시대에 성도들은,

① 영을 잘 분별하여 악한 영들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날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 그리스도라 자처 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이 많은 바, 그들을 경계하여 그들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일 2:18-19)​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8-19)

 

② 시대가 악할수록 종말의 때가 가까워 옴을 알고 그때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불법과 불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때는 아니라 할지라도 분명 종말의 징조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시 깨어 더욱 말씀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딤후 3:1-5)

 

③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소망 중에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이 극심해 질수록 성도들에 대한 세상의 핍박은 더욱 극심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죄악이 극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종말의 때가 가까이 이르렀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인내하는 가운데 믿음을 지킴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딤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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