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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海村JCO臨界事故

(とうかいむらジェー・シー・オーりんかいじこ)

東海村放射能漏出事故

 

< 사건 개요 >

1999년 9월 30일 오전 10시 30분 (아침)

일본 이바라키현 나카군 도카이촌

레벨 4 원자력 사고

핵연료 재처리 회사 JCO가 도카이촌에 세워둔 핵 연료 가공 시설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이 사고로 인해서 현장에서 작업 중이었던

직원

오우치 히사시 (1964년생 당시 35세) 18그레이

시노하라 마사토 (1959년생 당시 39세) 10그레이

상사

요코카와 유타카 (당시 54세) 1~4그레이

가 피폭 당하는 사고가 발생 됐다.

여기서 1그레이(시버트)는 과거 렘/라드 단위에 100배가 되는 수치로

6그레이 이상 피폭된 생존자는 현재 까지 없다

( 참고로 1년 허용 방사선이 1미리시버트 , 1시버트가1000미리시버트니 18시버트면

1만 8천년 동안 방사선을 한번에 쬐인샘이다 )

오우치는 피폭 83일 시노하라는 211일만에 사망했고

이 사건을 통해 사망자를 포함해 피폭자가 667명 나온 사건이다.

<사고 원인 >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로 인재 사고의 대표적 예다

3년만에 처음 핵 물질을 처리하는 상황이었으나, 훈련이나 자격요건 없이 작업을 진행했고

작업자 3명 모두 10년 이상 베테랑이었으며 5% 미만 저농축 재료를 처리한 적은 있지만

사건 발생일 농축도가 높은 재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3명의 작업자 모습으로, 오른손 우라늄 깔때기를 잡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피폭을 받은 오우치 히사시

침전조에 붓고있는 사람이 시노하라 마사토 (다음으로 피폭받은 사람)

다른방에서 지켜보고 있는 인물이 요코카와 유타카 (선임)이다.

사고는 불순물 제거작업에서 터졌는데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질산에 녹여서 별도의 용기에 잘 섞은 다음

조금씩 침전조에 접어넣어야 했지만

질산에 농축도 18.8%인 이산화우라늄분말을 녹인 다음 시노하라는 그것을

그냥 침전조에 몽땅 부어버렸다

(다만 JCO에서 규정한 임계제한량은 2.4kg 이고 용기에 들어간 용액은

2.3kg이라 이것만으로사건이 생기진 않았다)

문제는 작업자들은 이후에도 계속 이렇게 작업 했고

결국 안에 들어간 우라늄 양이 16kg에나 달했을땐 임계질량을 돌파했고.

핵분열이 일어났다. (임계사고 : 제어하지 않은 핵 연쇄반응)

그나마 농축도 18% 내외라 폭팔적 반응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한방에 작업장 전체가 방사선이 되어버렸다.

< 늑장 대응이 일을 키우다 >

작업자들은 "체렌코프 현상" 으로 발생한 푸른 섬광 목격후 바로 피폭당하고

공장에 감마선 경보가 울리기 시작한다

폭팔은 없었지만 핵분열부산물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경보음이 발생되자 옆방에 있던 요코카와가 "도망쳐!"라 외치고 다들 방사선 관리구역 밖 까지

도망쳤으나.

가장 가까히있었던 오우치와 시노하라는 "구역질, 호흡곤란"으로. 쓰러지고

곧 얼마지나지 않아 요코카와 또한 의식을 잃으며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이미 그들의 삶은 끝이 난것과 다름이 없었다.

문제는 쓰러진 작업자를 구하기 위해 들어간 소방관들에게

신고자는 "임계사고가 우리시설에서 일어날리는 없다"고 축소 보고 하여

소방관들이 덩달아 방사능에 누출해 버렸고. 구조를 위해 들어간 3명은 피폭되고

사고가 발생되고 10분이 지나서야 정체가 밝혀졌다

"작업자가 푸른 섬광을 봤다"라는 보고가 올라오고 사태의 심각성이 파악되었고

사고가 보고된것은 1시간뒤.

주민들은 4시간 30분뒤나 되어서 대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고가 난곳에서 반경 350m이내 주민은 40세대

500m이내는 100세대 가 거주했고.. 책임자들의 무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목숨을

내버려야했다

< 상황이 종료 된후 그 이후 >

문제의 연쇄반응은 다음날까지도 이어졌지만

작업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투입되 침전조의 냉각수를 망치로 부수고 침전조에 가스를 주입해

냉각수를 빼냈고 다음날 새벽 5시 상황은 종료 되었다 (이후 붕산수를 주입해 사태가 끝났다)

이사고 이후 공장은 폐쇄되고 관련자 6명은 집행유예

JCO는 벌금 100만엔 (천만원)이 선고되고 회사는 문을 닫고 흐지부지하게 끝났다

< 문제의 사건 피해자들 >

가장 많은 피폭을 당한

오우치 히사시와

시노하라 마사토는

1년이 되지 못해 숨졌다 문제는 이 과정이 매우 참혹해서

일본 전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처음에 이들이 병원으로 후송되었을때

목격한 사람들은 " 왜 멀쩡한 사람을 비닐채로 덮어 이송할까?" 라 의아해했고

담당의사나 간호사들마저 응급실에 실려온 두사람을 보고 너무 멀쩡해 놀랐다고 한다

 

(오우치 히사시)

(1964 ~ 1999)

1964년생 , 출생지는 도카이무라 가나사도정

아내와 아들,형제 여동생이 있었다.

키 175cm , 76kg (다부진 체격)

온화한 성격, 고등학생때 럭비선수였다

은퇴후 아내와 7년간 교제후 결혼후 아들을 얻고

1980년대 중후반 JCO에서 일했다

오우치는 피폭 직후 의식을 잃고 토했고 2-30분 뒤에 깨어났다

이후 여러번 설사를 하고 38도의 고열을 경험했지만 참고 있었다

입원당시 3명의 작업자중 가장 심한 피폭에도 불구하고

의식에 문제가 없고 병원을 잘걸어다니는등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처음엔 간호사들도 오우치를 보고 일찍 퇴원할것 같단 생각을 했다고

 

( 9월 30일 3시 26분 방의연으로 걸어가는 오우치 히사시 멀쩡해 보인다)

한다 허나 18시버트 방사능의 피폭은 "예정된 죽음"이 었고

이후 오우치는 급속도로 악화되어간다

입원 4주후 10월27일 의료진이 전신을 탈의한 오우치 좌측에

그의 오른손을 들었는데 팔이 많이 악화되었지만 아직 비교적 양호한 상태였다

그렇게 3개월간 투병생활 이후 사망하였다.

12월 26일 장례식에 600명이 왔고 이바라키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처음 오우치에게서 눈에 보인건.

우라늄용액을 부은 깔때기를 잡고있던 피폭된 팔이 빨갛게 부어오른 정도였다

질문에 대답을 하고 쾌유를 빌고 웃기도하는등 응급실 환자에 어울리지 않았다

문제는..

세포검사에서.. 엄청난 사실이 발견된다

(오우치의 산산 조각난 염색체 사진)

현미경으로 확대한 골수세포에 염색체가 나와야했는데

오우치의 염색체는 "없었다"

여성 염색체인 X , 남성 Y염색체 같이..

23쌍의 염색체는 식별도 못할 만큼 찢겨져 다른 염색체끼리 붙어있는것도

있었다

염색체가 망가졌다는것은 더이상 "새로운 세포"를 만들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재생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모든 장기들은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치의 "히라이 히사마루"는 오우치의 염색체를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오우치가 고통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게 될것을 예상했다 한다

염색체가 찢어진 상황은 현재의료기술로도 절대 치료가 불가능하다

염색체가 없다는것은 생명체로 구실을 할수 없다는 뜻이었다

1. 처음에는 백혈구가 가장 먼저 죽었다 특히 림프구는 사고직후 급격히 줄고

항체를 생성하는 B세포의 림프구는 거의 없어져 에이즈 환자 같은 상태로 면역이 없이

기회감염에 노출될수있어 지극히 위험한 상태라 멸균실로 옮겨져야했다.

가장 먼저 백혈병 증세가 일어났다

2. 혈소판이 감소되어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했다

3. 세포분열이 일어나지 않고 피부가 더이상 재생되지 않으며 자멸하며 벗겨졌다

의료용 테이프를 붙여둔 피부가 테이프와 같이 뜯겨지거나 수건으로 발을 닦아도 피부가

손상되고, 나중에는 손톱이 빠졌다 피폭량이 많은 오른손에서 부터 시작되 순차적으로 피부가

떨어져나가며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한다

JCO 임계사고 83일 기록이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데

오우치는

"제발그만해줘"

"집으로 돌아가겠어"

"엄마.."

등의 남긴말이 기록되어있다.

피부가 뜯어지고 폐에 물이 차기시작하면서 엄청난 고통에 빠졌고

이후 전신을 붕대와 거즈로 감싸고 눈을 감을수 없어 연고를 발라주는 조치를 해야했고

눈에서도 피가났다

4. 11일째 치료중 피부가 계속 뜯어지고 숨쉬기 힘들자

온화한 성격의 오우치는 간호사들에게 "난 몰모트가 아니야 적당히해 내가 회복될수

없다는걸 알지 않느냐"라고 이성을 잃고 충궁했다고 한다.

점점 장기의 점막이 소멸되며 소화장애가 일어났다

대량의 설사가 유발되고 위장으로 투여하던 영양액은 거의 소화되지

않은채 초록색 물설사로 배출되었다

물은 흡수할수 없고, 하얀 동그라미형태로 일부 장의 점막이 소생되기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나중에는 점차 출혈이 심해져 위,십이지장이 피바다가 되었다

5. 피폭당한 팔부터 점차적으로 신체는 부패하며 근육이 손상되었고

혈액에는 미오글로빈이 녹아나왔다 신장의 부담이 커졌고 당시 러시아 의사는

팔을 절단하길 권했으나, 절단면이 회복될 가능성이 낮아 시행할수 없었다

(나중에 부검때 근육의 선을 발견할수 없는 지경이었다한다)

(피폭된 팔의 변화)

오우치는 피폭후 7일간은 멀쩡해보였지만

심각한 방사능피폭으로 염색체가 완전히 파괴되며

속으로는 이미 산사람이 아니었다. 중성자선이 10~100만배 강한 에너지로

신체를 지나가며 염색체의 전기자극을 다찢어놓았고

세포가 죽으면 새로운 세포가 재생어야하는 생명체의

염색체가 파괴되니, 더이상 재생이 불가능했고

모든 장기들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의사들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있었고

새로 신체에 "백혈구 "등 면역을 찾아줄수있는

"조혈모 세포 이식"에 희망을 걸고

세계최초로 이식에 성공도 했고 일시적이지만

"백혈구가 다시 정상에 가깝게 상승하는 결과가 생기기도했다"

문제는 , 피폭자의 몸에 방사선이 너무 많아

새로 성공한 세포의 염색체도 얼마 못가 손상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생긴 백혈구중 림푸구는 미숙한 상태였고

나중엔 그 백혈구마저 기형적으로 증식한 매크로파지로 공격 받아

대부분 파괴되고 적혈구 수치마저 같이 줄어들었다

대량의 피부이식과 진통제, 임상 약물 투여까지 하였으나

(피부 이식은 피부로 손실이 벌어진 체액 유실을 막기 위한 조치)

피부이식이 얼마가지 않아 체액이 새어나와 피부가 들떠버리고

고통의 연장이 이어지다

오우치는 83일만에 다발성 장기부전을 사인으로 사망하였다.

(그사이에 3차례 심장마비, 소생으로 위급상황을 겪었고 , 장기출혈로

인해 수혈이 하루 10리터에 이르렀고 그로인해 심장이 무리가 가서

뇌의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그외 혈압을 올려주는 약물로 혈압을 맞춰줘야

했고 승압제 의존상태로 혼수상태에 접어들었다 )

그나마 심장이 피폭이 덜당해 83일이나 살아있었을수 있었다한다.

(실제 부검후 근육과 대조되는 심장 조직은 대부분 온전하였다)

사망이후 오우치와 시노하라의 시신은 방사성 자체가 되었기때문에

차폐하기 위해 콘크리트 석관에 납으로 밀봉한관에 넣어 매장하였다.

(오우치의 시신 집으로 돌아오다)

또한 많은 의료인들이 비난받았고 안락사 제도가 다시한번 도마위에 오르기도했다.

 

(시노하라 마사토)

(1959(40세) ~ 2000)

1959년생 , 출생지는 도카이무라

죽기전 배우자와 자녀 3명이 있었으며

84년 부터 JCO전임자로 근무했다

키 177cm 60-65kg

9월 30일 사고로 "이런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버렸어"라고 하고

쓰러졌다.

설사는 하지 않았고

손에서 어깨까지 무감각했고

오우치가 쓰러지자

"정신차려 오우치!"라고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3걸음만에 쓰러졌다

 

(시노하라 이송과정 멀쩡해보인다)

침착했던 오우치와 달리 병원에 이송된 시노하라는 의식에 문제가있었다

사고 직후 11일 부터 손은 오우치와 달리

피범벅이었고

10월 4일 제대혈 이식으로 이송되고 상태악화로

12월 피부이식을 시도했고

시도는 성공했지만 피부가 섬유화 되는 부작용을 거쳐

피부가 신축성을 잃고 단단해버렸다

입원당시 직후엔 시노하라는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있었지만

왼손은 문제가 없었고 입이 누렇게 변색된것 이외 이상이 없었으나

또한 오우치와 마찬가지로 염색체가 다 망가져서

이후 손에 진물이 나거나 입점막이 손상되는등 점차 상태가 악화되었다

피폭 83일째 오우치가 죽었다는 소식을

형에게 전해듣고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라며 울며 한탄했다 한다

아내와형은 "나중에 괜찮아지면 오우치 묘에 향을 피우러가자"며 격려했다

피부이식이후 그의 상태는 점차 좋아지는듯 했다

새해를 넘기고

첫날엔 휠체어를 탄채 도쿄 대학의학 연구소 정원으로

갈수있을만큼 호전되기도했다.

2월초에 시노하라는 여러개의 피부를 이식받으며 거의 모든 혈액생산 능력을 회복하고

침대에 앉아있거나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닐수 있었다

허나 10시버트라는 치사량의 방사능은 이미 예측된 죽음과 같이

2월말에 폐렴과 호흡기 방사선 손상으로

호흡곤란이 심해져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메세지로 의사를 전달해야했으며

4월 10일부터 도쿄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엄마..제발"이라는 메세지를 남기고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이후 7개월만에 관짝이 되어 히타치에서 4월30일 영결식이 열렸다.

( 시노하라 마사토의 기록 )

피폭사고 풍자 그림

 

(요코카와 유타카)

(1945~ 현재)

1945년 11월생 , 일본 간토 출신

키 175cm , 67kg

피폭량은 방건너에 있어 1~4시버트로 치사량의 방사능을 맞지 않았다

그래서 3명의 작업자중 유일한 생존인원이다

입원직후 백혈가 0까지 떨어지기도했지만

이내 회복하고 12월 20일 퇴원할수 있었다

치바의 방사선 연구소 NIRS에서 후유증 치료를 위해

2003년 3월 15일까지 회복받고 회복해 2004년엔 직장에 복귀할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2003년 3월 사고를 일으킨 두명의 담당자로

과실치사죄로 재판을 받았다

2005년 9월30일 인터뷰에서

사고의 원인은 무지였으며, 오우치와 시노하라가 죽자 외톨이가 된 느낌

이라 했다. 사이가 평소 좋았던것으로 보이며

마지막으로는 치바에 방의연에서 오우치,시노하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에 요코가와가 "힘내라" 라고 말하자

2명은 "당신도요"라고 대화를 나눈것이 끝이다

(사고 이후)

오우치 히사시는 일본 역사상 "첫 임계사고 피폭 사망자"로 기록 되며

일본 전역을 포함, 한국까지 대서특필 되었다

오우치는 피폭 83일 째 죽었고

몇달뒤 시노하라도 똑같은 최후를 당했다

이후 오우치 히사시의 치료기록은 ( 83 일 ) 이란 제목으로

하얀표지를 단 책으로 출판 되었다.

오우치를 치료했던 의료진의 고뇌도 포함되어있다고한다

시노하라 마사토 사망이후 우연인지

치료중 피폭영향인지 피폭환자의 치료연구에 깊이 관여했던

히라이 히사마루도 2003년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피폭자중 유일한 생존자인 상관 요코카와 유타카는 직장에 복귀했고

2004년 정년 퇴직했다.

2020년 현재는 간토지방에 살며 2개월중 한번은 시노하라와

오우치의 묘로 간다했다.

이후 2013년 5월 23일 이바라키현 원자력 연구개발기구 실험시설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고 연구원4명이 피폭되는 사고가있었고 이때도 늑장보고가있었다

대부분 사건들은 흐지부지하게 흐려져간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간다

방사능의 무서움과 그 죽음의 최후는

그렇게 잊혀져

또 어딘가에서 "인재에 의한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는"

현재가 기다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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