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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194
6개월 전

🗨️ 임진왜란 당시의 해저유물이 남해안에서 거의 안나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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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의 해저유물이 남해안에서 거의 안나오는 이유!

 

가토 기요마사와 이순신이 전투를 벌인 지역이 요하 근처인 장산군도 일대일 가능성이 많으며 특히 장문포 전투와 고금도 해군기지 이전에 대한 추정지역이 장산군도일 가능성이 많다. 또한 북경 일대가 순천부로 불리운 지역으로 보아 백의종군하고 난 이후, 삼도수군절도사 자리를 차지한 이후 해군을 재건한 지역 중에 유력한 추정지역이다. 순천, 광양, 곡성, 구례지역은 어디인가! 북경에서 단동까지... 황하에서 압록까지... 발해만과 요동만의 연안이 해군 재건설을 하는 가장 유력한 지역이다.

 

부산이라는 지명은 산동성 동래현 지방과 양자강 항주 근처도 부산으로 불리운 적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수도는 서안(장안)과 북경 그리고 무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개성과 평양 그리고 한성의 영역인 것이다. 실제 임진왜란에서 싸운 이순신의 바다는 양자강 일대와 산동성 일대 그리고 요녕성 일대, 한반도 남해안 잔적 소탕작전 등으로 방대한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중일기에서 절강에서 강소까지 바다를 지켰다고 나온 것이다. 자세한 정위론과 전체 전쟁상황은 차후에 자세히 언급을 드린다.조선수군이 전멸했다는 거제도 칠천량 바다를 뒤져 보아도 임진왜란 당시에 침몰한 어떤 배의 흔적조차 안나온다. 그 이전에 침몰한 배는 많이 나와도 확율적으로 많을 것 같은 임진왜란 유적은 거의 안나온다. 그것은 임진왜란 당시 주 강역이 한반도가 아니기 때문이며 변방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금을 동원해 남해안을 뒤져도 거의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양자강이나 황하강 그리고 요하의 바다를 뒤져보면 많은 임진왜란 유물이 나올 것이며 거북선도 나올 것이다.

 

백두산정계비의 진실 - 압록강과 두만강은 요하(난하)와 아무르강을 말한다.

 

아래 지도에 나온 것은 지리와 강 이름을 표시한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첫째는 조선 초 세종 때 여진족을 토벌하기 위해 동북방에 6진을 설치하는데 그 설치지역이 한반도 두만강 안이 아니라 서북으로는 바이칼호에서 동북으로는 사할린까지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청나라와 영토분쟁이 일어나서 경계를 확정지은 것으로 유명한 백두산정계비의 영역이 만주 일대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압록강과 두만(토문)강, 그리고 백두산은 조작된 지명이며 원 지명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요하의 서쪽상류 시라무렌강에서 거란제국을 세우다.

 

요하라는 강 이름이 형성되는 계기는 거란족의 부흥지이기 때문이다. 요하(遼河) 상류이며 서요하의 끝인 시라무렌(Siramuren) 유역에서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거주하였는데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황제를 칭하고 거란을 건국하였으며,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947년 국호를 요(遼)로 개칭한 것에서 유래한다. 시라무렌강 상류는 바이칼호와 몽고고원 아래에 있으며 내몽고자치주에 해당된다.

 

압록강은 요하이며 난하가 요하라고 한다.

 

<삼국유사>와 <중국 요사지리지>에서 "요하를 일명 압록이라 하였다"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서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며, 지금의 난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동과 요서의 기준은 어디인가!

 

거란족이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요(堯)라고 하였으며, 여진족이 나라를 세우고 금(金)이라 하였다. 이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가! 단군조선 이후 대부여와 고구려까지 5부족 유목연맹체를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역사의 뿌리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요나라의 이름을 따서 국호를 요라고 한 것이다. 요(堯)는 성이 이기(伊耆), 이름은 방훈(放勛), 호는 도당씨(陶唐氏)이며, 제요(帝堯)라고도 하고 당요(唐堯)라고도 한다. 그래서 서이족의 당(唐)이라는 나라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유목족은 대대로 부족연맹에 의하여 나라를 세우고 동서양 스탭지역을 활동기반으로 하였으며, 실크로드를 상업기반으로 하면서 제국을 다스렸던 것이다.

 

요라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7회력인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일요일에 들어가는 요도 같은 유래인 것이다. 또한 중요하다는 말도 중앙의 요라는 뜻이며,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상징을 요라고 한 것이 이것이며, 국호와 왕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란족도 같은 유목족 뿌리이기 때문이다. 고구려도 5부족 연맹체에서 비롯되었으며 고주몽 계열의 계루부를 중심으로 연합하였다. 역사를 따라 추적해보면 계루부가 거란족이 되었으며 그 연원은 그리스 유목족까지 연결이 된다.(글안->거란->코란->카라->가야)

 

* 여기서 그리스 유목족은 현 서구백인이 아니라 서역으로 진출한 배달족을 말한다. 유럽어의 뿌리는 한글이다.

 

 

요라는 것은 거란족이 요나라를 세운 중심지역이기도 하며 황제국의 중심을 요라고 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시대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것이다. 요나라는 황제국이기 때문에 황제국이 중심이 되어 그 중심에서 동쪽을 요동이라 하고 서쪽을 요서라 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시대에는 유프라테스와 티크리스강을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것이며(환인제국),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것이며(배달국), 황하의 중심 장안에서 요서와 요동을 나누는 것이다(단군조선). 시대 변천과 함께 각기 달라지는 것이며 제후국에서는 방향이 바뀌어 나타나기도 한다.

 

요동과 요서라는 개념도 황제국이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된다. 특히 수도를 칭하는 평양(平陽)이나 안(安)도 요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며 한수(漢水)나 압록수(鴨綠水)도 같은 개념이 된다.

 

압록강은 어디를 말하는가!

 

압록강의 어원은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과 같다(…水色如鴨頭…)고 하여 압록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리머리 모양을 닮은 강이라고도 하며 오리의 음을 따서 오리-> 아리-> 아리수-> 우리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리는 알과 같은 말이며 알은 <안 - 한 - 우리 - 울 - 훈>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한수 = 압록강 = 한강 = 아리수와 같다. 민족의 중심강이 아리수의 파생영역으로 발전되어 여러 이름으로 변형, 발전된다. 중심강이기 때문에 황하강으로 부르기도 하며 문명의 중심이기 때문에 불-> 파이어-> 페르-> 비류로 발전되어 비류슈 = 패수로 발전된 것이다. 크게 보면 여러 강의 어원은 비슷한 매커니즘의 영역인 것이다.

 

크게 본다면 아리수나 압록수는 아랄해의 지류인 아무다리아강과 시르다리아강이 압록수이자 아리수이자 한강이며, 요하의 여러 지류도 압록수이자 아리수이자 한강이 된다. 그리고 황하도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민족의 흥망성쇠와 이동, 영토의 확장과 축소에 따라 달리 불리워지며 자국과 경쟁국의 역사적 명분에 따라 왜곡되기고 하고 변형되기도 한다. 때문에 획일적인 적용과 해석이 곤란하며 그 당시 상황에 맞는 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9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 개의 큰 물이 있는데 하나는 백두산(白頭山) 아래의 마죽동(馬竹洞)에서 나와 혜산진(惠山鎭)과 인차외(仁遮外)를 거쳐 최천이동(崔天已洞)의 물과 합류하여 군계(郡界)로 들어오고, 또 하나는 길성현(吉城縣) 북쪽 장백산(長白山) 서북보(西北堡)에서 나와 운총보(雲寵堡)를 거쳐 허천강(虛川江)과 합하여 강기(江岐)에 이르러 군계로 들어오며, 또 하나는 함흥부(咸興府)의 황초령(黃草嶺)ㆍ부전령(赴戰嶺)과 평안도 강계부(江界府)의 오만령(五萬嶺) 등의 물이 어면강(魚面江)과 합하여 군계로 들어온다. 세 개의 물이 합류하여 압록강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삼수(三水)라고 이른다'하고, 혹은 말하기를, “군(郡)이 어면강ㆍ압록강ㆍ삼수동수(三水洞水)의 세 가닥 사이에 있기 때문에 삼수라 했다.”한다.

 

삼수 또는 삼수동수라는 지명이 있는 곳이 아무르강 삼강평야와 요녕성의 요하 하류지방 두 군데가 있다. 그 중에 요하가 압록강인 이유는 요하의 지형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내용과 같다. 그리고 현 압록강은 전혀 내용이 틀리다. 요하 하류에 싼장커우[三江口] 부근에서, 창바이[長白]산맥에서 발원한 동 랴오허강을 합쳐 랴오허강이 된 뒤, 그대로 남하하다가 훈허강[渾河]을 합치고 나서 잉커우[營口]에서 보하이해[渤海]로 흘러든다. 그리고 혼하는 원래는 랴오허강[遼河]의 지류였으나, 1958년 와이랴오허강[外遼河]을 가로막은 뒤부터 독립수계가 되었다. 칭위안만주자치현[淸原滿族自治縣] 동쪽 군마링[滾馬嶺]에서 발원하여 서남쪽으로 흘러 푸순[撫順] • 선양[沈陽] • 랴오중[遼中] 등을 지나 하이청시[海城市] 싼차강[三酒河] 부근에서 타이쯔강[太子河]과 합류한다.

 

 

《한서(漢書)》의 <조선전(朝鮮傳)>과 <지리지(地理志)>에 패수(浿水) • 염난수(鹽難水) • 마자수(馬水) 등의 이름으로 나온다. 압록강의 한 지류에 소금강을 뜻하는 염난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소금기가 있는 강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소금기가 있는 강은 요하의 서쪽지류 상류인 시라무렌강에 소금강이 존재한다. 지금도 그곳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소금기를 머금은 지역이며 내륙에 많은 소금이 산출되는 장소가 실존한다.

 

또한 염난수라고 일컬어지는 강은 아랄해 일대의 아무다리아강이며 아랄해가 염수이며 서쪽으로 흐른다. <한서지리지>에는 “마자수는 서쪽으로 흘려 염택에 들어간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염택은 소금연못이므로 아랄해를 지칭한다. 압록은 두 곳을 말한다. 또 “서북쪽으로 흘러 염난수에 들어가서, 서남쪽으로 서안평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라고 자세히 기술하였는데 서안평이 바로 서투르크 평원인 파미르 고원을 넘어 존재하는 아랄해 일대평원을 말한다. 참고로 현 요하지명의 역사기록에 중첩이 일어나는 것은 압록강을 지칭하는 것을 한 곳에 모아 적용시키는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이 나타나는 것은 민족의 이동과 함께 비슷한 자연환경에 같은 이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두만강은 어디를 말하는가!

 

두만강(豆滿江)은 콩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콩은 태극이며, 생명이며, 시초를 말한다. 아무르의 <아>도 아사에서 나온 말이며, 새로움이며, 알파벳의 A도 감탄사의 의미도 있지만 생명현상의 명사를 의미한다. 만은 마르로 연음이 되며 마르-> 무르로 연음이 된다. 그러므로 아무르를 한자로 옮기면 두만강이 되는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남쪽으로 흐르는 것은 압록강(鴨綠江), 북쪽으로 흐르는 것은 송화강(松花江)과 혼동강(混同江), 동북으로 흐르는 것은 소하강(蘇下江)과 속평강(速平江), 동쪽으로 흐르는 것은 두만강(豆滿江)이다.” 또 “여진 말로 만(萬)을 두만(豆滿)이라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러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류되는 것이 두만강이므로 현 압록강이 아닌 것이다. 또한 남으로 압록강이 흐르고 이 압록강이 요하(하북성 난하)라면 북으로 흐르는 것은 송회강과 여러 지류에 해당된다. 이 지류가 다시 동으로 흐르고 하나로 뭉쳐 바다로 흘러간다고 하였다. 바로 아무르강을 말하는 것이다.

 

두만강은 만주강을 말하며 만주 일대를 가득히 채우는 강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흑룡강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동단국 - 조선족 - 고구려의 상징색이 흑색이기 때문에 붙은 명칭인 것이지 현 두만강의 짧은 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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