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950
10일 전

광기의 역사 by 미셀 푸코

Histoire dela folie a l'age classique  by Michel Foucault

 

미셀 푸코
나남출판
200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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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oyony.tistory.com/m/77

 

제1부

제1장. 광인들의 배

나병의 기이한 소멸은 아마 오랫동안 시행된 모호한 의료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격리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끝나 감염의 근원지인 근동지방과의 교류가 단절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을 것이다. 나병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병을 신성 불가침 영역 안에 존속시키고 나병을 어떤 전도된 열광상태 속에 붙들어놓기 위해 마련된 비천한 장소와 의례는 그대로 남긴 채, 나병이 물러난 것이다. 아마도 나병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고, 또한 나병 요양소들이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텅텅 비게 되는 시대에도 존속하는 것은 바로 나환자라는 인물에 달라붙은 가치와 이미지이고, 사람들이 인물의 주변에 신성 불가침의 원을 그린 후에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축출의 의미, 이 인물이 사회집단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나병이 사라지고 나환자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거의 사라져도, 이러한 구조는 계속해서 남아 있게 된다. 두세 세기 뒤에도 이상할 정도로 유사한 축출의 장치가 동일한 장소들에서 숱하게 재발견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환자가 맡은 역할을 가난한 자, 부랑자, 경범죄자, 그리고 머리가 돈 사람이 다시 맡게 되면서, 우리는 이들과 이들을 축출하는 자들을 위해 이러한 축출에서 어떤 구원이 기대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형태들, 특히 사회적 축출이면서도 영적 재통합인 엄격한 분할의 그 주요한 형태는 아주 상이한 문화 속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띠고서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나병과 교대된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병이었다. 15세기 말에 성병은 마치 상속권에 의해서인 듯 일시에 나병의 뒤를 잇는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17세기 이루어진 바와 같은 수용의 영향 아래, 성병이 의학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나가고 광기와 더불어 도덕적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다.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학으로 편입될 매우 복잡한 현상에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 현상은 바로 광기이다. 100년 동안의 공포라는 측면에서 나병의 뒤를 잇는 이 새로운 강박관념이 나병처럼 분할, 배제, 정화의 반응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잠복기가 필요할 것이지만, 이와 같은 반응은 명백히 광기와 연관되어 있다. 17세기 중엽 광기가 통제되기 전에, 광기에 대한 호의적 배려의 오랜 관습들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광기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의 모든 주요한 경험과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었다.

죽음의 주제가 광기의 주제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단절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동일한 불안의 내부에서 형성된 왜곡을 보여준다. 문제는 변함없이 삷의 허무이지만, 이 허무는 이제 위협과 동시에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외적이고 최종적인 종말로 인정되지 않고, 내부로부터 실존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형태로 체험된다. 그래서 예전에 사람들의 광기는 죽음이라는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였고, 죽음의 광경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예지를 잊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에, 이제 지혜는 도처에서 광기를 드러내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죽은 자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보편적이게 된 광기가 죽음 자체와 완전히 동일할 따름이고 이에 따라 종말이 가깝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게 된다.

사람들이 종말에 무신경할 정도로 미쳤다는 것을 나중에 보여주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시간과 세계의 종말이 아니고, 세계의 파국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광기의 증대, 광기의 은밀한 침입이며, 세계의 파국을 불러오고 세계의 파국을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 이상인 것이다. 

광기와 허무의 이러한 관계는 15세기에 매우 밀접하게 맺어져서, 오랫동안 존속하게 되고,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경험 한가운데에서 계속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은 미치광이의 경험은 비록 조형예술이나 문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극단적 일관성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보편적 광란 속에 빠져든다. 신도 악마도 승리하지 못한다. 승리는 광기의 것이다.

도처에서 광기는 인간을 현혹시킨다. 광기로 인해 생겨나는 환상적 이미지들은 사물들의 표면에서 재빨리 사라지는 일시적인 외양이 아니다. 가장 특이한 망상에서 생겨나는 것은 이상한 역설에 의해, 대지의 내장 속에 비밀처럼, 접근 불가능한 진리처럼 이미 감추어져 있었다. 광기가 인간에 의해 독단적으로 전개될 때, 인간은 세계의 암담한 필연성과 마주치고, 인간의 악몽과 불편한 잠자리에서 자주 출몰하는 동물은 인간 자신의 본성이며, 맹목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의 덧없는 이미지들이야말로 세계에 대한 커다란 앎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질서와 광기의 세계에는 미리부터 잔혹한 종말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막연히 예감된 세계의 흉조와 비밀은 그토록 많은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었는데, 그것들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들의 환상에 그토록 광범위한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 이 사실일 것이다.

광기에 관한 문학적, 철학적, 도덕적 주제들은 동일한 시대의 것이긴 하지만 성격이 전혀 다르다. 

중세에는 악덜들의 위계에 광기의 자리가 있었다. 13세기부터 광기는 악덕과 미덕의 싸움에서 사악한 병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기가 이러한 대수롭지 않은 자리를 떠나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는 광기가 인간의 모든 약점이라는 유쾌한 무리를 이끈다. 광기는 명실상부한 우두머리로서 인간의 온갖 약점들을 인도하고 야기하며 이것들에 이름을 붙인다.

자. 이제 나의 동무들을 소개합니다...눈썹을 찡그리는 동무는 필라우티(자만심)입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눈웃음치고 손뼉을 치는 동무는 콜라시(아첨)입니다. 반쯤 잠들어 있는 듯한 동무는 레테(망각)입니다. 팔꿈치를 괴고 두 손으로 깍지를 끼어 머리를 기대고 있는 동뭄는 미조포니(게으름)입니다. 장미 화관을 쓰고 향유를 바른 동무는 에도네(관능)입니다. 눈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리는 동무는 아노이아(경솔)입니다. 살이 포동포동하고 얼굴빛이 화사한 동무는 트리페(나약)입니다. 그리고 이 젊은 여자들 사이에 두 명의 신이 있는데, 그들은 소중한 하녀와 깊은 잠입니다.

광기는 민간의 풍자에 오랫동안 친숙한 주제에 따라, 앎과 어설픈 앎에서 기인하는 무지한 자만에 대한 희극적 처벌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광기는 세계와 세계의 숨겨진 형태들에 연결되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인간의 약점, 인간의 꿈과 환상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상상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광기를 신기루처럼 생겨나게 한다. 이제부터 광기의 상징은 거울일 것이다. 거울은 실제의 것을 비추기는 커녕 거울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자가 빠지는 자만의 꿈을 은밀하게 반영할 것이다. 광기는 객관적 진실이나 세계와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이 자기 자신의 진실로 인지할지도 모르는 모습과 관련된다.

광기의 층위가 변하는데,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에 생겨나며,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문란하게 한다. 광기가 도시를 지배할 때조차도, 사물들의 잔잔한 진실, 위대한 자연에는 광기의 흔적이 없다. 본질적인 것, 즉 삶과 죽음, 정의와 진실이 나타날 때 광기는 재빨리 사라진다. 모든 인간이 광기에 예속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광기의 지배는 언제나 보잘것 없고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현자의 시선에 광기의 초라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낼 터이기 때문이다. 광기는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실과 세계에 대한 결정적 발언이 아니고, 광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단지 인간의 비판 의식에만 관련될 뿐이다. 

그런데 16세기에 비판적 반성의 특권적 지위는 어떻게 확립되었을까? 어떻게 광기의 경험이 마침내 비판적 반성에 의해 몰수되어, 그 결과로 고전주의 시대의 문턱에서 이전 시대에 환기되었던 모든 비극적 이미지가 어둠 속으로 흩어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의 축소였다고 말하게 하는 이 흐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광기에 대한 고전주의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을 이러한 변천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요약하자.(1) 광기는 이성과 관련된 형태가 된다. 광기와 이성은 영속적으로 가역적 관계를 맺는다. 이 가역적 관계로 인해 모든 광기에 이성이 있고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 분명하게 판단한다고, 인간 자신이 사물들의 올바른 척도라고 생각한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 인간이 세계에 대해 지니고 있다고 행각하는 인식에 힘입어 인간은 자기 만족 속에서 이러한 생각을 굳게 간직한다. 

인간의 한정된 이해력에 의해서는 외양의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진실조차 드러나지 않으며, 인간의 광기를 통해서는 사물들의 이면, 사물들의 밤 같은 측면, 사물들의 진실과 직접적으로 모순되는 측면만이 드러난다. 인간은 신에게로 높아짐으로써 단순히 자기를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본질 사이의 대립을 단번에 제압해야 한다. 왜냐하면 외양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 진실의 모습은 진실의 반영이 아니라 냉혹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지혜에 비하면 인간의 이성은 광기일 뿐이었고, 사람들의 얄팍한 지혜에 비하면 신의 이성은 광기의 본질적 움직임 안에 놓여 있다. 큰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광기일 따름이고, 작은 차원에서는 전체가 그대로 광기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에 준거해서만 광기가 있을 뿐이지만, 이성의 참모습 전체는 이성에 의해 거부되는 광기를 이성이 한순간 나타나게 한다는 점, 그 결과로 이번에는 이성을 일소하는 광기 속으로 이성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15세기에 고조되었던 극심한 위험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 사상의 도도한 영향 아래 해소된다. 광기는 세계를 폭발시키고 환상적 마력을 드러내는 은밀한 동력이 아니고, 시대의 황혼기에 이르러 격렬한 동물성이나 앎과 금지의 큰 싸움을 드러내지 않는다. 광기는 이성에 결부되어 한없는 순환과정 속으로 들어가고, 광기와 이성은 서로를 긍정하고 부정한다. 이제 광기는 세계의 어둠 속에서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상관성 아래에서만 실재할 따름이다. 이 상관성 속에서 이성과 광기는 서로에 힘입어 보존되기도 하고 서로에 의해 소멸하기도 한다.

(2) 광기는 심지어 이성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광기는 어떤 때는 이성의 은밀한 힘들 가운데 하나를, 어떤 때는 이성발현의 계기들 가운데 하나를, 또 어떤 때는 이성이 이성 자체를 지각할 수 있는 어떤 역설적 형태를 구성하면서 이성에 통합된다. 아무튼 이성의 영역 안에서만 광기가 의미와 가치를 보유한다.

인간이 갇혀 있는 비참한 처지, 인간으로 하여금 진실과 선에 다가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장 나쁜 광기이다. 인간조건의 특징 자체인 이러한 비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일찍이 인간의 이성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성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 지혜와 광기의 이 연속적 순환 현상을 받아들이고 지혜와 광기의 상호성과 불가능한 분할을 뚜렷이 인식하는 태도에서 확인된다. 진정한 이성은 어떻게든 광기에 연루되어 있고, 광기가 내는 길로 마땅히 접어들게 되어 있다. 

이성은 광기를 맞아들임으로써 은밀하게 광기를 둘러싸고 포위하며, 광기를 의식하고 광기를 위치시킬 수 있다.

예술의 창안은 착란된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화가, 시인, 음악가의 기발한 착상은 그들이 자신들의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공손하게 완화시킨 이름일 뿐이다. 광기를 통해서는 어떤 다른 시대, 어떤 다른 예술, 어떤 다른 도덕의 가치체계가 문제시될 뿐만 아니라, 인간이 발휘하는 상상력의 모든 형태, 심지어는 가장 멀리 떨어진 형태들도 공통의 공상적 생각 속에서 뒤북박죽으로 뒤엉켜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인이 하나의 문학적 모델에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광인이 동일시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그것은 상상적 일체감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일체감에 힘입어 광인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는 모든 자질, 모든 미덕 또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광기의 마지막 유형은 절망적 정념의 광기이다. 너무 지나쳐 실망만을 안겨준 사랑, 무엇보다도 죽음의 숙명성 때문에 배신당한 사랑은 발광 이외의 다른 출구가 없다. 미친 사랑은 대상이 있는 한 광기라기보다는 사랑이었다. 그러나 정신착란의 허공 속에서 미친 사랑은 외롭게 추구된다.

광기는 착각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완전한 형태이다. 광기의 상태에서는 거짓이 참으로, 죽음이 삶으로, 남자가 여자로, 연인이 복수의 여신으로, 그리고 희생자가 미노스로 착각된다. 또한 광기는 연극의 체계에서 착각의 가장 엄밀하게 필수적인 형태이다. 왜냐하면 광기가 진정한 결말로 다가가는 데에는 어떤 외부적 요소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광기의 착각을 진실로까지 밀고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처럼 광기는 구조의 한가운데에서, 자체의 역학적 중심에서, 비밀스런 재출발의 의미가 함축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이성 및 진실과의 화해로서 나타나는 의미에서의 입문(入門)이다. 

광인들을 태운 작은 배들의 운이 다한 후 고작 100여 년이 지나자, 곧 광인 구빈원이라는 문학적 주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머리가 빈 사람들이 진정한 이성의 질서에 따라 사슬 따위에 묶이고 분류된 상태로, 각자 예컨대 모순과 반어, 지혜와 분리된 언어를 말한다. 

제2장. 대감호(大監護)

네상스 시대에 목소리는 풀려 나왔지만 이미 폭력성이 제어된 광기가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상한 강제력에 의해 곧 침묵으로 귀착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회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꿈과 모든 형태의 오류 가까이에서 광기와 마주친다. 그는 오류에 빠질 때 바깥의 세계가 사라지거나 꿈속에서 의식이 잠들 수 있듯이, 미칠 가능성은 자신의 육체를 박탈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어쩌다 내가 나를 광인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면, 이 손과 이 몸이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두뇌는 담즙의 검은 김으로 인해 그토록 혼란스럽고 흐리멍덩하여, 그들은 매우 가난한데도 왕이라 하고, 온통 발가벗고 있으면서도 휘황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있다고 끊임없이 단언하기도 하며, 자신이 항아리라거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꿈이나 오류의 가능성을 교묘히 회피하는 것과는 달리 광기의 위험을 피해가지 못한다. 감각은 속이는 것이라 해도 사실 "거의 감지되지 않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물"만을 왜곡시킬 수 있을 뿐이며, 감각에 의한 착각의 효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진실의 잔재, 가령 "내가 여기 난로 가에 설렁한 실내복을 입고 않자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진리의 영속성 덕분으로 사유가 오류에서 벗어나거나 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광기로부터 사유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의 영속성이 아니라, 미칠 가능성의 부정이다. 광기의 불가능성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의 본질이다. 누구나 회의(懷疑)의 어떤 건거를 찾기 위해, 자신이 꿈을 꾼다고, 또는 자신이 꿈꾸는 주체와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진리가 여전히 꿈의 가능조건으로 나타난다. 이와 반대로 사유를 통해서조차 미쳤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광기는 바로 사유의 불가능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보다 덜 괴상하지 않을 것이다..."

17세기 거대한 수용시설들이 새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파리 시의 주민 중에서 1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몇 달에 걸쳐 거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절대권력이 귀양이나 투옥 따위를 명하는 왕의 봉인장과 자의적 구금 조치를 남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와 같은 관행이 어떤 법의식에 의해 실행되었는가는 덜 알려져 있다. 

구빈원은 왕이 통치와 사법 사이에, 법의 한계지점에 세우는 기이한 권력기구, 즉 제3의 탄압기관이다. 구빈원은 기능이나 목적에 비추어, 어떤 의료 관념에도 연결되지 않는다. 구빈원은 질서, 그 동일한 시대에 프랑스에서 조직되는 군주제 및 부르주아 질서의 결정기관이다. 구빈원은 왕권과 연결된 시민 통제의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된다. 구빈원의 관리는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의 몫이다. 그렇지만 이 서설들 각각에서는 독서, 성무일과, 기도, 명상으로 나누어진 거의 관례적 생활이 영위된다. 공동 침실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다함께 기도를 드리며, 하루에 여러 시간대별로 신앙심의 실천, 기도, 영혼을 함양하기 위한 독서가 행해진다.

게다가 이 구제기관들은 원호와 동시에 탄압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은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면서도 거의 모든 곳에 감방과 유치 구역이 설치되어 있다. 

중세에 나환자 격리가 이뤄진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고전주의 시대에는 수용이 구상된 것이다. 유럽 세계에서 나환자가 사라짐에 따라 비게 되는 장소는 새로운 인물의 차지였다. 즉, 그들은 피수용자이다. 나환자 수용소는 의료의 의미만을 띤 것이 아니었다. 저주의 공간을 여는 그 추방의 행위에는 다른 많은 기능이 개입되었다. 수용하는 활동 역시 단순하지 않다. 여기에서도 정치, 사회, 종교, 경제 , 도덕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의미가 발견된다. 그리고 이 의미들은 필시 고전주의 시대의 세계 전체에 특유한 여러 구조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수용은 유럽 전체의 현상이다. 프랑스에서는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절대왕정이 성립되고 가톨리이 활기차게 부흥함으로써, 권력과 교회 사이의 경쟁과 동시에 결탁이라는 매우 특별한 성격이 이 현상에 부여되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 현상의 아주 다른 형태들이 나타나지만, 이 현상의 시간적 위치는 그만큼 분명하다. 대규모의 구제기관, 수용시설, 종교활동과 공공질서의 유지, 구제와 처벌, 자선과 통치계획은 바로 고전주의 시대의 진상이다. 즉, 고전주의 시대만큼 보편적이고 고전주의 시대의 출현과 거의 동시대적이다. 독일어권 국가에서는 교도소가 창설되는데, 최초의 교도소는 프랑스의 수용시설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것이며, 1960년에는 함부르크에 교도소가 개설된다. 영국에서는 수용의 기원이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도소의 유지비는 세금으로 충당하게 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의 자발적 기부가 장려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적으로 교도소를 설립하려는 시도의 허용이 몇 년 뒤에 결정된 점으로 보아, 이러한 조치는 사실상 전혀 실행되지 않았던 듯하다. 즉, 구빈원이나 교도소를 개설하기 위해 관청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구빈원이나 교도소를 설립할 수 있다. 17세기 초에는 전반적인 개편이 이루어진다. 재판권 관할지역에서 이와 같은 개정사항을 준수하지 않는 모든 치안판사에게는 5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되고, 교도소의 유지에 도움이 되고 교도소의 입소자들에게 일거리를 확보해주는 작업장, 제조소(제분, 방적, 직조)의 설치가 의무화되며, 누가 거기로 보내질 만한가를 결정할 권한이 재판관에게 부여된다. 이러한 교도소의 확대는 대단하지 않았다. 흔히 교도소들은 인접해 있는 감옥으로 흡수되었고, 교도소의 관행은 스코틀랜드로 확대되지 못한다. 반대로 구빈원은 더 큰 성공이 예정되어 있었다. 구빈원은 17세기 후반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670년 법령에 의해 구빈원의 지위가 명확히 규정되고 구빈원의 운영을 위한 세금징수와 회계관리를 감시하는 일이 사법관에게 맡겨지며 구빈원 관리에 대한 최고의 감독권이 치안판사에게 부여된다. 몇 년 사이에 하나의 전체적 조직망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나날이 또는 거의 수시로 나환자보다 더 가혹하게 유폐되고 내쫓기는 그 모든 사람을 가로질러 목표로 삼은 현실은 무었이었을까? 파리의 구빈원이 생기고 몇 년 지나지 않아 파리 인구의 약 1%에 달하는 6천 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집결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럽 문화에 거의 공통되고 17세기 후반에 갑자기 발현된 문턱에 도달한 사회적 성향은 은연중에 그리고 아마 여러 해에 걸쳐 형성되었음이 틀림없다. 즉, 수용장소에 거주할 운명에 놓여 있는 그 부류의 사람들을 단번에 격리시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성향이다. 우리의 눈에는 기이하게 뒤섞이고 혼잡하게 보이는 일단의 사람들이 나병의 소멸로 인해 오래 전부터 버려져 있는 황량한 장소에 거주하도록 지정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단지 미분화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그러한 성향이 확실히 고전주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정리된 인식방법이었다. 이성의 특권으로 규정하는 것이 관례인 시대에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졌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식 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용의 공간을 설정하면서 이 공간에 격리의 권한을 부여했고 광기에 새로운 출생지를 지정한 행위는 아무리 일관성 있고 합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단순하지 않다. 빈곤과 구제의 의무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 실업과 무위도식이라는 경제문제 앞에서의 새로운 반응형태, 새로운 노동윤리, 그리고 속박의 강압적 형태 아래, 이 활동은 도덕적 의무가 민법과 일치할 삶의 공간에 대한 꿈을 하나의 복합적 단위 안에서 조직해내는 것이다. 이 주제들은 수용 단지의 건설과 조직화에 어렴풋이 스며들어 있다. 수용의 실천에 의미를 부여하고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경험되었는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이 주제들이다.

수용방안의 실천은 빈곤에 대한 새로운 처방이자 새로운 각오이고, 더 넓게는 인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관계설정을 가리킨다. 중세에는 가난한 사람, 비참한 처지의 사람, 자기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 특별한 모습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16세기에 달라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빈곤의 신비로운 특성이 제거되어버렸다. 이는 가난의 절대적 의미를 없애자는 것과 가난을 구제했다는 데에서 자선에 가치를 부여하던 관행을 없대자는 두 가지 사상적 흐름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전체가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시행된 대감호를 승인한다. 이 사실로써 가난한 사람은 더 이상 하느님이 기독교의 자비를 불러일으켜 그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구실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게 된다. 모든 기독교인은 투르의 대주교를 본떠서 가난한 사람을 동정심의 원인인 물질적 빈곤 때문이라기보다는 혐오감을 자아내는 영적인 비참 때문에 국가의 쓰레기 같은 존재로 보기 시작한다. 교회는 방침을 세웠고, 그렇게 함으로써 중세에는 전체적으로 신성시되었던 빈곤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떼어놓았다. 

중세의 광인은 악마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성스러운 인물로 여겨졌다고 말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잘못된 것도 없다. 광인이 신성한 사람이라면, 무엇보다도 광인이 중세의 자선과 관련하여 빈곤의 모호한 세력권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사람보다 더 광인이 동정을 유발했을 것이다.

예전에 광인이 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인이 배제되는 까닭은 그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 궁핍한 사람, 부랑자 사이에 끼기 때문이다. 

실업자들이 수용시설에 흡수된 것은 무엇보다도 실업자들의 비참한 형편을 가리고 실업자들의 동요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난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업자를 의무 작업장으로 몰아넣은 시기에도 인근 지역이나 유사부문에서는 실업이 증가했다. 물가에 대한 영향으로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제조된 물품의 매매가격이 수용 자체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감안한다면 실제 원가와 비교도 안 되기 때문에, 작위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용시설의 기능적 가치만을 고려할 때 수용시설의 설립은 실패로 인정될지 모른다. 극빈자들의 수용기관 겸 빈곤의 감옥으로 기능한 수용시설이 19세기 초에 거의 유럽 전역에서 사라짐으로써 이 시설들의 최종적 실패는 공식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이 시설들은 효율성 없는 과도한 대책, 산업화의 태동에 편승하여 마련되었으나 결국 매우 부적절하게 구현된 사회적 예방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실패를 거쳐 고전주의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을 한 셈이다. 

남녀 걸인들 중에서 많은 수가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고 그들의 많은 자식이 세례를 받지 않았으며 거의 모두가 종교에 대한 무지, 성사에 대한 경멸 속에서 온갖 종류의 악덕을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행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자선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만큼 구빈원은 단순히 노화, 신체장애, 또는 질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위한 안식처로 보이지 않는다. 구빈원에는 강제 노역장의 측면뿐만 아니라 이보다는 오히려 도덕의 어떤 공백 부분, 다시 말해서 재판소에 회부될 만하지는 않지만 준엄한 회개만으로는 고칠 수 없을 과오를 징벌하고 바로잡을 책임이 있는 기관의 측면이 있다. 이처럼 구빈원은 윤리적 지위를 갖는다. 구빈원의 원장이 맡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도덕적 책무인데, 원장들에게는 탄압의 사법적이고 물리적인 도구 전체를 사용할 권한이 주어진다. 그들은 허가, 지시, 행정, 치안, 재판, 제벌, 징벌의 모든 권한을 갖는다. 그들이 이 책무를 원할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처형용 기둥과 수감용 쇠고리, 유치장과 지하감옥이 그들의 재량에 맡겨진다.

고전주의 시대의 이 대감호에서 본질적인 것이자 새로운 귀결인 것은 형벌이 더 이상 법률에 따라 선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순수한 도덕성의 구역에서 감금이 행해지는데, 거기에서 법은 감성을 지배하게 되어 있을 것이고 타협도 경감도 없이 엄격한 신체 속박의 형태로 적용될 것이다. 도덕적 원칙의 차원에서 신체의 차원으로 전환될 가능성,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강제성도 없고, 권력 남용도 없이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추정된다. 

수용제도는 17세기의 고유한 제도적 창안물이다. 그것은 중세에 실행될 수 있었던 그러한 유폐와 공통된 측면이 없을 만큼 큰 규모로 곧 확산되었다. 수용은 경제적 조치 겸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창안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수용은 결정적 사건, 말하자면 광기가 가난, 노동 불능, 집단 속으로의 통합 불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지평 위에서 지각되는 게기, 광기가 국가문제와 함께 짜여지기 시작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가난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 노동의 의무에 주어진 중요성, 그리고 노동의 의무에 연결된 모든 가치가 멀리에서 광기의 경험을 결정하고 광기의 의미를 굴절시킨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광기는 대낮에 논의되었다. <리어왕>을 보라. <돈키호테>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반세기도 안 되어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제3장. 비행(非行)의 세계

수용의 장벽 이면에는 가난과 광기뿐만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얼굴들과 공통되는 특징을 알아보기 쉽지 않은 모호한 모습들이 있다. 

여러 세기 전부터 잊혀졌거나 적어도 잘못 알려졌던 광기가 고전주의 시대의 가족의 붕괴, 사회의 무질서, 국가에 대한 위험으로 모호하게 이해되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 최초의 인식이 점차로 조직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의료의식으로 발전했을 것이며, 언제나 사회의 불안이라는 틀 속에서만 인식되었을 뿐인 것이 의료의식에 의해 자연의 질병으로 표명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수용의 역할은 부정적 배제였을 뿐만 아니라 긍정적 조직화이기도 했다. 통일성, 일관성, 기능성을 갗춘 경험영역이 수용의 관행과 수용의 규칙에 의해 구성되었다. 이전의 문화에서는 아무런 유사성도 지각되지 않았던 인물들과 가치들이 통일적 영역 안에서 서로 근접되었다. 이러한 인물들과 가치들이 수용을 통해 광기 쪽으로 옮겨졌다. 

150년 동안 성병환자는 동일한 울타리 안의 공간에서 미치광이와 함께 지내게 되었고, 오랫동안 미치광이에게 어떤 상처자국을 남겨놓게 되는데, 미치광이에게 성병환자와 동일한 운명을 부여하고 미치광이를 성병환자와 동일한 징벌체계 속에 두는 모호한 연관성은 이 상처자국에서 근대인의 의식으로 나타난다. 

광기는 죄와 인접하기 시작하고, 오늘날 정신병자가 운명으로 느끼고 의사가 본래적 진실로 파악하는 죄의식과 비이성의 연결관계는 아마 이 인접부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맺어졌을 것이다. 징벌과 치료의 이와 같은 혼동, 처벌하는 행위와 치료하는 행위의 이러한 준 동일성이 합리주의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플라톤 철학에서 발원한 모든 문화의 흐름에서 사랑은 숭고성의 위계에 따라 분류되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정도에 따라 어떤 때는 육체의 맹목적 광기에, 또 어떤 때는 비이성이 앎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영혼의 열광상태와 관련되었고, 사랑과 광기의 갖가지 형태는 영적 인식의 다양한 영역에 분포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부터 근대는 다른 선택의 여지를 확고하게 마련한다. 즉, 선택의 폭이 이성적 사랑과 비이성적 사랑 사이로 좁혀진다. 동성애는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광기의 성층들 사이로 자리를 잡고, 근대의 비이성 안에 배치된다. 

성 윤리가 가정 도덕에 대대적으로 흡수되는 현상은 이 시대에 목격된다. 궁정풍 연애의 의례를 일깨우고 결혼에 따르는 의무를 넘어 궁정풍 연애를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노력, 감정의 차원에서 결속과 언제나 가족의 유대보다 우세할 태세가 되어 있는 목계 같은 것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부르주아 도덕의 승리 앞에서 결국 좌초하게 되어 있었다. 사랑이 계약으로 인해 탈 신성화된다.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공증인 앞에서의 결혼, 혼인계약을 맺으면서만 사랑을 하는 것 만이 성스러운 일이다. 가족제도가 이성의 범윌를 결정하는 셈이고, 그 범위를 넘어서는 곳에서는 위험한 미치광이가 우글거리며, 거기에서 인간은 비이성과 온갖 발작증세에 시달리고 만다. 서구의 유구한 사랑의 형태들은 가족에서, 가족 내에 생겨나는 새로운 감성으로 대체된다.

신앙은질서의 한 요소이다. 이러한 명분 아래 신앙에 대한 감시가 행해진다. 무신론자나 불경한 자의 경우에서 일반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신앙의 효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정의 쇠약, 생활의 무질서이다. 무신론자나 불경한 사람에게 수용의 기능은 진리에의 더 충실한 애착을 위한 도덕쇄신이다. 수용시설이 진리를 위한 일종의 유치 구역으로 기능하게끔 만드는 데에는 거의 교육적인 측면, 즉 깨달음이 불가피한 것으로 되게 하는 데 필요한 어떤 엄격한 도덕적 속박의 적용이 엿보인다. 

수용의 조치에 수반되는 기이한 표면 현상. 성병환자, 방탕한 사람, 낭비벽이 있는 사람, 동성연애자, 신성모독자, 연금술사, 자유사상가의 모습들, 즉 그 모든 17세기 후반기의 다양한 사람들이 단번에 분할선 너머로 배척당하고, 한두 세기 뒤에 광기의 닫힌 영역으로 바뀌게 되어 있었던 보호시설 안에 틀어박힌다. 이 사회적 공간이 갑자기 열리고 한정된다. 이 공간은 비록 가난 앞에서의 커다란 불안으로 인해 생겨났을지라도 완전히 빈곤의 공간도 아니고, 언제가는 질병이 차지하는 것이 되곘지만 그렇다고 정확하게 질병의 공간도 아니다. 이 공간은 오히려 고전주의 시대만의 특이한 감성과 관련된다. 부정적 격리의 행위가 아니라, 광기에 의해 점유되기에 앞서 광기가 인식될 경험영역을 한 세기 반 동안 은밀히 생성하는 일단의 작업 전체가 중요한 문제이다. 

고전주의는 성을 대상으로 한 금지, 종교분야에서의 금기, 그리고 사유와 감성의 자유를 광기 앞에, 비이성의 영역에 병합시킴으로써, 정신병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 인식에 대해 사실상 토양의 구실을 하는 도덕적 비이성의 경험을 형성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통일성은 인식의 진행에 결정적일 뿐만 아니라 징벌의 측면에서 교정해야 할 생활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는 비이성적 생활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제4장. 광기의 경험

구빈원이 창설되고 독일과 영국에서 최초의 교도소가 개설된 시기에서 18세기 말까지 고전주의 시대는 감금의 시대이다. 이 고전주의 시대에는 방탕한 사람, 낭비벽이 심한 아버지, 탕아, 신성모독자, 자살하려고 애쓰는 사람, 자유사상가가 감금당한다. 그래서 그토록 많은 결함과 기이한 연계성을 가로질러 고전주의 시대에 특유한 비이성의 경험이 윤곽을 드러낸다. 그러나 각 도시에는 더 많은 광인의 무리가 있다. 파리에서 구빈원에 수용하기 위해 체포한 인원 중에서 약 10분의 1은 미치광이, 정신 장애자, 발광한 정신의 소유자,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이다. 그들과 다른 이들 사이에 차이의 표시는 전혀 없다. 

우리가 광기에 가장 일반적이고 가장 미분화된 수용의 형태를 적용한 것은 광기의 실증적 징후에 계속해서 눈을 감아 버림으로써 광기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광기의 경험은 역설적으로 광기가 수용, 징벌, 교정의 영역에 속하게 되는 다른 경험과 동시대적이다. 문젯거리가 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병렬현상이다. 고전주의 세계에서 광인의 지위가 무엇이었는가를 이해하고 사람들이 광인에 대해 가졌던 이해방식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병렬현상일 것이다.

함축적인 지속의 시간과 어렴풋한 진보의 시대에는 이와 같은 병렬 현상을 해결하는 가장 단순한 해결책에 유혹을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병자들이 오래 전부터의 믿음 또는 부르주아 세계에 고유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정신병자들을 막연하게 범죄자 또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의 잡다한 계급 전체와 동일시하는 광기관 때문에 감금된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수용과 입원이 병행하는 현상 때문에 우리는 틀림없이 이 두 가지 제도적 형태의 고유한 연대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병원이 사실은 교도소와 직접적 관련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고전주의 시대의 전제적 비이성의 경험에서 이 두 구조가 나란히 유지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하나가 더 새롭고 더 활기에 차 있다 해도, 다른 하나가 완전히 위축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광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서나 광기를 이해하는 공시적 의식에서 이러한 이원성, 곧 단절과 동시에 균형은 재발견될 것임이 틀림없다. 

교회법과 로마법에서 광기의 인정은 의사의 진단으로 결저오디는 것이었다. 모든 정신이상의 판단에는 의료의식이 내포되어 있었다. 한 개인이 미쳤는지, 질병으로 인해 그에게 어느 정도의 능력이 남아 있는지 판단할 역량을 의사만이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갖가지 문제를 하나하나 검토함으로써 인간의 행실을 검토하고 인간의 행실이 어느 정도로 광기의 속성을 띠는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이 정신이상인 경우에 재판관은 한 인물의 처신을 보고 지나친 교태, 장신구와 향수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를 관찰했다가 더 나아가 예쁜 여자가 지나가는 으슥한 거리에 그가 나타난다는 것을 우연히 확인했다면, 의학분야의 감정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이미 그의 정신이상을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징후는 개연성을 어렴풋이 나타낼 뿐이다. 결정의 권한은 다시 의학적 판단에 맡겨진다. 의학적 판단만이 광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서만 정상인과 정신이상자, 범죄자와 책임을 질 수 없는 정신병자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수용의 실천은 전혀 다른 유형으로 구조화되고, 어떤 식으로도 의학적 판단에 종속되지 않으며, 다른 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17세기에 광기는 사회적 감성의 문제가 되었음이 사실이다. 광기는 범죄, 무질서, 추문과 가까워지면서 이것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감성의 가장 자연발생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형태들에 의해 판단되기에 이른다. 광기의 사실여부를 결정하고 광인을 격리시킬 수 있는 것은 의료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추문에 민감한 의식이다. 

전적으로 수용의 절대적 필요성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단순히 긍정 또는 부정, 해롭지 않음 또는 위험함, 수용 적합 또는 부적합의 방식으로 표명되는 사회적이고 규범적이며 이분법적인 광기의 경험, 그리고 한계 및 정도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주체의 모든 활동영역에서 정신이상이 취할 수 있는 다형의 얼굴을 찾아보는 법률적이고 질적이며 세밀하게 문화된 경험이 중첩된 형태일 따름이다. 19세기 정신병리학은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의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로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감정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서로 이질적인 두 권역이 점점 뚜렷해진다.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된 듯하다. 법적 주체를 둘러싸는 비이성적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을 것인데, 이것은 무책임과 무능력의 법적 인정에 의해, 금치산 명령과 질병 규정에 의해 명확해진다. 또 다른 비이성적 분위기가 있었을 것인데, 이것은 사회인을 둘러싸고 추문의식과 동시에 수용의 실천에 의해 뚜렷해진다. 아마도 이 두 영역이 부분적으로 겹치기는 했을 터이지만, 이것들은 언제나 중심이 서로 달랐고,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형태의 정신이상을 결정했다. 
하나는 주체성의 제한 같은 것으로, 개인이 지닌 능력의 한계를 정하고 개인의 무책임 영역을 확정하는 선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정신이상은 이중의 움직임에 의해, 즉 광기의 자연적 움직임과 주체를 후견인으로 대표되는 일반적 타자의 권력에 종속시키는 금치산 선고의 법적 움직임에 의해 주체의 자유가 박탈되는 과정을 나타낸다. 정신이상의 다른 형태는 이와 반대로 광인이 사회에 의해 이방인으로 인식되는 의식화를 가리킨다. 이 경우에 광인은 책임을 면제받지 못하고 적어도 친족과 이웃사람 사이의 공모 아래 도덕적 죄의식을 뒤집어쓰며 타자로, 국외자로, 배제된 자로 지칭된다. 심리학적 정신이상이라는 몹시 기이한 개념, 다른 성찰영역에서라면 애매한 요소들로 풍요롭게 될 수 있을 터인데도 그 불확실한 요소들로부터 득을 보지 못하고 그저 정신병리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평가될 이 개념은 사실상 정신이상에 대한 이 두 가지 경험, 다시 말해서 타자의 권능 아래로 떨어지고 타자의 자유에 얽매인 존재와 관련되는 첫번째 경험과 타자가 되고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유사성과 무관하게 된 개인과 관련되는 두 번째 경험의 인간학적 혼동일 따름이다. 하나는 질병의 결정론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윤리적 정죄의 모습을 띤다. 

19세기가 비이성적 인간을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고 이와 동시에 수용이 환자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행위로 전환되기에 이르는 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합리주의가 언제나 출현가능성으로 남겨두었던 정신이상의 이 다양한 주제와 광기의 이 잡다한 얼굴을 혼란스럽고 우리로서는 분간하기 어려운 단일성으로 축소시키려는 폭력적 술책에 의해서이다. 

제5장. 정신이상자들

광기는 죄악과 암묵적 동조 관계를 맺고서 죄악을 증대시키고 죄악을 더 집요하고 위험하게 만들며 죄악에 새로운 모습을 부여한다. 미친 비방자에 대해 우리는 그의 비방이 헛소리라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광기를 인간의 궁극적이고 동시에 순수한 진실로 여기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동일한 죄악 전체 속에서 정신착란이 비방에 추가된다. 

무의지적 광기, 인간이 본의 아니게 사로잡히는 그러한 광기가 그토록 자연적으로 악의와 결탁한다면, 무의지적 광기의 내밀한 본질은 정신이 맑은 주체가 의도적으로 가장하는 광기와 거의 다르지 않다. 아무튼 무의지적 광기와 의식적 광기 사이에는 근본적 연관성이 있다. 이와 반대로 정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자만이 자신의 범죄에 합당할 형벌을 선고받으므로, 가장된 정신이상과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광기를 가능한 한 엄밀하게 구별하려고 한다. 그러나 수용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행해지지 않는다. 실제의 광기는 가장된 광기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니다. 

회의는 방법적인 것인 한, 광기에 대한 호의를 매순간 자발적으로 떨쳐버리리려는 각성의 의지에 에워싸이므로, 회의의 진행과정에서 광기를 단번에 제쳐놓는 것은 가능하다. 의심하는 사유가 사유와 사유하는 자를 내포하는 것처럼, 의심하려는 의지에서 무의지적으로 비이성에 매혹되거나 니체처럼 미친 철학자가 될 가능성은 사전에 배제되었다. 코기토에 훨씬 앞서 의지 및 이성과 비이성의 선택 사이에 내포관계가 아주 이른 단계에서 모습을 보인다. 고전주의적 이성은 진실이 완전히 밝혀진 끝에 도덕규범의 형태로 윤리와 마주치는 것이 아니다. 윤리는 비이성에 반대하는 선택으로서, 미리 준비된 모든 사유의 시초부터 현존하고, 성찰을 따라 한없이 연장되는 그 표면은 이성의 주도권 자체인 자유의 경로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유롭게 실행된 선택이 모든 이성의 배후에 숨겨져 있듯이, 모든 광기의 배후에도 선택이 감추어져 있다. 이 점은 데카르트의 회의가 한결같이 절대적으로 요청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서양인은 이천 년 동안 이성적 동물이라는 인간의 정의를 근거로 살아왔다는 것이 왜 필연적으로 이성과 동물성에 공통된 질서의 가능성을 서양인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서양인은 자신이 자연의 실증성 속으로 편입되는 방식을 이러한 정의로 나타내야 했을까?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말하고 싶어한 것과 관계없이, 폭발된 비이성의 공간에서 이성의 자유가 태동하고는 이 공간의 반대항을 형성할 정도로 이 공간에서 떨어져나온 방식을 이 이성적 동물이 서양 세계에 대해 오랫동안 나타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까? 철학이 인간학으로 바뀌고 인간이 충만한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한 시기부터, 동물은 부정성의 위력을 잃었고, 그 결과로 자연의 결정론과 인간의 이성 사이에서, 진화의 실증적 형태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자유의 모든 형태가 점차적으로 없어지는 결정론 쪽으로의 전락을 광기에서 감지하는 습관이 있다. 광기는 이제 우리에게 발생원인들의 연쇄, 그리고 형태들에 관한 추론의 움직임과 함께 결정론의 당연한 규칙성만을 내보인다. 왜냐하면 광기는 짐승과 사물의 음울한 세계로, 족쇄가 채워진 짐승과 사물의 자유로 되돌아감에 의해서만 근대인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17세기와 18세기가 광기를 알아보는 것은 자연의 지평 위에서가 아니라 비이성의 바탕 위에서이다. 광기는 메커니즘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동물성의 괴기스런 형태 속에서 맹위를 떨치는 자유를 드러나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비이성적이라는 부가 형용사의 형태로만 비이성을 이해하는데, 이것은 행동이나 말에 영향을 미치고 광기의 현존과 광기의 병적 행렬 전체를 속인의 눈앞에 나타나게 한다. 비이성적인 것은 우리에게 광기의 출현방식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고전주의에 있어서는 비이성이 명사적 가치를 갖고, 일종의 신체적 기능을 형성한다. 

 

제2부

제1장. 종(種)들의 정원에서의 광인

이제는 격리활동, 이 활동의 굳어진 관례 또는 이 활동에 대한 끝없는 비판적 논쟁으로 진입한 광기의식이 아니라 자체에 대해서만 분할의 작용을 하는 그 의식, 광인에 관해 진술하고 광기를 펼쳐 보여주는 그 의식이 검토되어야 한다. 일상생활의 공간에서 광인이 모든 정상적인 사람과 가깝게 뒤섞여 있고 광기의 특징이 이성의 끈질긴 징표와 착잡하게 뒤얽혀 있는 마당에,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광인을 가려낼 것인가? 

광기의 본질은 동시에 광기의 유용한 지혜이고, 광기의 존재이유는 광기가 이성에 그토록 가까이 다가가고 이성과 그토록 불가분의 것이어서 이성과 광기가 자연의 궁극 목적만을 해독할 수 있을 뿐인 불가분의 텍스트를 형성하리라는 데에 있다. 가령 사랑의 광기는 종을 보존하는 데 필요하고, 정신착란에 빠질 정도의 야망은 정치단체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필요하며, 무분별한 탐욕은 부를 창출하는 데 필요하다. 이처럼 이 모든 이기적 혼란은 개인을 넘어서는 질서의 위대한 지혜 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광기는 성격이 동일하므로, 이기적이고 무질서한 광증들은 그토록 쉽게 서로 어울려 인간사회의 가장 강한 유대를 조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 그 증거로 불사에 대한 욕망, 허황된 영광, 그리고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다른 많은 원리를 들 수 있다. 이성이라면 오랫동안 노력해야 도달할수 있는 지점에 이성보다 먼저 샛길들을 통해 다다르는 그 무의지적 기민성은 좋은 예가 된다. 광기는 인간이 목적을 모르면서도 자신의 뜻과는 달리 지혜의 도구이게끔 만드는 질서의 비가시적 측면이고, 예지와 섭리, 어림짐작과 궁극 목적 사이의 거리 전체를 헤아려보게 만든다. 광기에는 시간을 이겨내는 집단적 지혜의 두께 전체가 감추어져 있다. 

정신 착란자, 광포하게 구는 미치광이, 조광증에 시달리는 자, 또는 사나운 사람이 곧장 식별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식별이 가능해지는 것은 그들이 광인이기 때무이거나 그들이 광인인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의 정신 장애에 고유한 징표가 모든 광기의 지각되지 않는 본질에 덧붙여지는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신착란자들은 다른 종류의 광인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의 안쪽에서 광기의 일반적 본질은 형태를 부여받을 수 없게 된다. 일반적으로 광인은 징표를 지니고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뒤섞이며, 이성과의 대화나 갈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치스런 수단을 통해 막연히 이성에 봉사하기 위해 각자의 마음속에 현존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처음부터 끝까지 광기의 세계는 변함없는 경계선을 따라 윤곽이 뚜렷해진다.전신성 마비를 발견하고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분하며 편집병과 조발성 치매를 정립하는 것은 다른 세기의 일이게 되고, 정신분열증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도 역시 다른 세기에나 가능하게 된다. 인내심을 요하는 그와 같은 관찰작업은 17세기에도 18세기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17~18세기는 종들의 정원에서 불확실한 집단들을 판별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선험적 개념들은 다른 쪽에서 이루어진 인식적 경험의 견고성을 거의 약화시키지 않았다. 의학적 사유는 그저 변모하지 않고 계속해서 조용히 존속하는 형태들에 기촐르 두고 있었을 뿐이다. 분류학자들의 서열화되고 정돈된 자연은 이 본질적 형태들에 비하면 부차적인 자연일 뿐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리고 의학의 전 영역에서 치료술은 비교적 독립적인 길을 따라갔다. 아무튼 고대로부터 치료술의 모든 형태가 결코 의학 이론의 개념들에 맞춰 체계화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질병보다도 광기의 주위에서는, 기원으로 보아 케케묵었고 의미의 측면에서 마술적이며 적용체계로 보자면 의학과 무관한 일단의 관행 전체가 18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광기에 숨겨져 있을 수 있는 모든 두려운 위력이 생생하게 느껴진 만큼이나 이와 같은 관행들도 은밀하게 존속했다. 그러나 17세기 말에 생겨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관행들의 자율성이 강화되면서 새로운 방식과 미지의 전개 가능성이 광기에 부가되었다. 그 사건은 우선 "독기"라고 불리고 18세기에는 "신경질환"이란 명칭 아래 그토록 넓은 외연을 갖게 되는 장애들의 정의이다. 

한편 광기에 대한 추론적 인식이 될지도 모르는, 매개과정 없이 광인을 직접적으로 식별한다고 주장하는 의식도 있고, 다른 한편에는 광기를 나타내는 모든 징후와 함께 광기의 모든 형태를 잠재성에 입각하여 펼쳐 보일 수 있다고 자처하는 과학도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공백이 있을 뿐이다. 또한 거의 감지될 수 있는 부재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광기의 부재로서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형태, 광인들이 다시 놓일 실제적 요소, 정신이상자의 증상이 놀라울 정도의 특수성을 띠고 생겨나기에 이를 일종의 깊은 토대일 것이고 그런 만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것이다. 만일 정신병을 정신이상자의 자연적 모태, 인식되는 광인과 분석되는 정신장애 사이의 매개물, 요컨대 광기와 광인의 관련성으로 이해한다면, 고전주의 시대에는 정신병이 실재하지 않은 셈이다. 광인과 광기는 서로 무관하며, 광인과 강기의 진실은 각각에 별도로 간직되어 있고 광인과 광기 안에 몰수되어 있는 듯하다. 

비이성은 무엇보다도 이것, 즉 오성의 시대에 속하고 광인과 그의 광기를 서로 무관한 것으로 만들면서 서로 소외시키는 그러한 깊은 균열이다. 그러므로 비이성을 우리는 이미 이 공백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수용은 이 공백의 제도적 해석이 아니었을까? 수용은 분화되지 않은 배제의 공간으로서, 광인과 광기 사이에서, 즉각적 식별과 언제나 연기되는 진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실행되었고, 그리하여 앎의 구조라는 측면에서 비이성에 할당되는 영역을 사회구조의 측면에서 포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비이성은 비이성이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이러한 공백 이상의 것이다. 광인의 인식은 결국 이성 자체만을 내용으로 갖는 것이었고, 질병의 종류들 사이에서 광기의 분석은 천부적 지혜의 올바른 원리로 했으며, 그래서 광기의 충만한 실증성이 탐색되는 바로 거기에서 이성만이 재발견되었고, 이런 식으로 광기는 역설적이게도 광기의 부재 겸 이성의 보편적 현존이 되었다. 광기의 광기는 은밀하게 이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 광기는 광기의 내요으로서, 비이성에 관해 표명해야 할 두 번째 핵심 사항이다. 비이성은 광기의 진실이 이성이라는 것이다.

제2장. 정신착란의 선험성

광기의 문제는 영혼의 물질성을 중심으로 맴돈다. 질병 분류학이 그토록 쉽게 질병으로 묘사하는 이 악에 영혼은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을까? 

광인은 회개의 징후를 몇 가지 내보이기만 하면, 신부에게 고해하고 죄의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설령 광인에게서 인식능력을 상실했다는 징후밖에 찾아볼 수 없을 지라도, 사람들은 느껴지지도 않고 물질적이지도 않은 경로, "하느님이 때때로 이용하는" 경로, "곧 천사의 중개나 직접적 영감"을 통해 성령이 광인의 영혼을 비추었다고 추정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게다가 광인은 정신장애의 상태로 들어섰을 때, 은총의 상태에 있었을까? 의심할 것도 없이 광인은 광기에 휩싸여 무슨 행위를 했건 구원받을 것이다. 그의 영혼은 뒤로 물러나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질병 자체에 의해 악으로부터 보호된 것이다. 영혼은 죄를 범할 만큼 광기에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재판관들도 이 점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들은 광인의 행위를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광기란 정신에 병이 든 것이 아니라 어린이에게 정신이 존재하지 않거나 불완전한 것과 똑같은 일시적 장애일 뿐이라고 언제나 추정하면서 후견의 판결을 내린다. 게다가 박탈 판결이 나지 않는 한, 광인은 비록 수용되어 있을지라도 법인격을 잃지 않을 뿐더러, 파리 고등법원은 정신이상을 입증하는 사실상의 증거인 수용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법적 능력에 어떤 변화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의학적 광기의 경험은 새로운 분할에 따라 이분화된다. 하나는 사고나 육체의 장애로 인해 유발되는 영혼의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주위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의 변동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존재 전체, 이를 테면 동일한 감성 안에서 서로 연결된 영혼과 육체의 현상이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는 뇌의 국소적 훼손이고, 다른 하나는 감각능력의 전반적 장애이다. 광기의 원인은 뇌의 해부와 동시에 대기의 습도나 계절의 순환 또는 소설 탐독에서 찾을 수 있고 또한 찾게 되어 있다. 가까운 원인의 정확성은 먼 원인의 확산된 일반성과 상충하지 않는다. 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은 하나의 동일한 움직임, 곧 정념의 양극단일 뿐이다.

정신의 일탈은 오직 우리가 욕망에 맹목적으로 빠져든다는 점, 우리가 정념을 억제할 줄도 완화할 줄도 모른다는 점에서만 기인할 뿐이다. 사랑의 정신착란, 반감, 이상한 취향, 고뇌로 인해 초래되는 우울, 거부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생겨나는 광분, 술이나 음식의 과도한 섭취, 짜증, 모든 질병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인 광기에 의해 초래되는 육체적 악벽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광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라도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이와 같은 이미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몸이 유리로 되어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이 부서지기 쉽다, 깨질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너무 단단한 물체는 절대로 만지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는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등의 결론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이다. 이러한 추론은 광인이나 할 만한 것이지만, 이와 같은 추론이 그 자체로는 부조리하지도 비논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분별. 이것은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가 갖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용어의 하나이다. 이것은 광기의 고독한 이미지들에 비가시적 지고성을 부여하면서 그것들을 둘러싸는 준수면의 그러한 어둠에 관해 말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근거가 없는 확신, 그릇된 판단, 광기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그 오류의 바탕에 관해 말하기도 한다. 정신착란의 기본적 담론이 형태상의 유비관계와 의미의 엄밀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점에서 결코 이성의 담론일 수 없는가는 이런 식으로 그 기본적 감론의 구성력을 통해 드러난다. 

광기는 직관과 무분별, 상상과 판단, 환상과 언어, 수면과 각성, 낮과 밤을 연결하는데도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광기는 이것들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것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기의 역설은 이 무를 드러낸다는 것, 이것을 기호와 말과 행위로 확연히 나타나게 한다는 것이다. 질서와 무질서, 사물들의 합리적 존재와 광기의 이러한 허무가 뒤섞인 착잡한 통일성. 실제로 광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광기는 자체로부터 빠져나옴으로써만, 그리고 이성의 영역안에서 겉모습을 갖게 됨으로써만, 그리하여 광기 자체와 반대되는 것이 됨으로써만 표면화될 수 있을 뿐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경험에 내포된 역설은 이런 식으로 밝혀진다. 즉, 광기는 영속적으로 물러서는 가운데, 현상도 실증성도 없는 것,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면서 언제나 부재하지만, 미친 사람의 특이한 형상 아래 현존하고 완전히 드러난다. 광기는 검토의 대상일 때 몰상식한 무질서인 것으로 드러나지만, 질서 있게 배열된 형상들, 영혼과 육체에서의 엄밀한 작용방식, 확연한 논리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된 언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성의 부정인 광기가 스스로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에서는 모든 것이 이성일 뿐이다. 요컨대 광기가 비-이성임에 따라, 광기의 합리적 정복은 언제나 가능하고 필요하다.

우리가 이제 비이성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수용이 무엇이었는가를 더 잘 이해하게 해준다. 광기를 중립적이고 획일적인 배제의 세계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이 행위는 의료기술의 발전에서나 인도주의 사상의 진보에서 정체의 시기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더 이상 다른 세계의 징후이지 않았고 비존재의 역설적 발현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정확한 의미를 띠었다. 사실상 수용은 광기를 소멸시키고 사회질서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인물을 사회질서로부터 몰아내는 것을 그다지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고, 수용의 본질은 위험의 축출이 아니다. 수용은 다만 광기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를, 다시 말해서 비존재의 현동화*를 표시할 뿐이고, 이러한 발현을 나타내면서 무(無)라는 광기의 진실에 광기를 되돌리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성이 없는 부정성으로 경험된 광기에 가장 정확히 상응하는 실천이고, 거기에서 광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정된다. 다시 말해서 한편으로 광기는 차이로 즉시 인식되고, 그리하여 광인의 수용을 결정하기 위해 의사들이 아니라 양식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발적이고 집단적인 판단의 형식이 생겨나며, 다른 한편으로 수용은 교정 이외의 다른 목적을 지닐 수 없고, 그리하여 간수들이 기록한 수용등록부에서 숱하게 발견되고 수용의 야만성이나 잔인성 또는 문란성을 나타내는 징후가 아니라 무의무화라는 엄밀한 의미의 표현인 죽음의 희구가 나타난다. 현상의 표면에서, 그리고 성급한 도덕적 종합 속에서 수용은 광기의 은밀하고 분명한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규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한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 현실의 흐름속으로 집어넣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현동화는 이를테면 무정형의 미규정된 광기를 비로소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이다.

수용은 이러한 깊은 직관에 실천의 뿌리가 내리는 것일까? 광기가 결국 비존재로서 에워싸인 것은 광기가 수용의 영향을 받아 고전주의 시대의 지평에서 실제로 사라졌기 때문일까? 대답이 완벽한 순환성 속에서 서로 맞물리는 물음, 이러한 질문형식의 언제나 되살아나는 순환 속으로 들어가 헤매는 것은 아마 무익할 것이다. 고전주의 문화가 광기에 대해 하게 된 경험, 내적 논리의 동일한 영역에서, 여기저기에서, 사변의 영역과 제도의 영역에서, 담론과 법령에서, 말과 구호에서, 이를테면 기호를 지니고 있는 요소가 우리에 대해 언어의 가치를 띨 수 있는 도처에서, 동일한 의미에 힘입어 노출되는 경험, 이러한 경험의 일반적 구조를 고전주의 문화로 하여금 표명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제3장. 광기의 형상들

그러므로 광기는 부정성이다. 그러나 현상의 충만함 속에서, 종들의 정원에서 신중하게 배열된 풍요로움에 따라 주어지는 부정성이다. 광기에 대한 추론적 인식은 이러한 모순에 의해 제한되고 확정된 공간에서 펼쳐진다. 

우리는 정기의 의학이나 고체의 생리학을 고려하면서 정신의학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를 따라 지속되어 온 주요한 광기의 형상들을 차례차례 다시 다룸으로써, 어떻게 그것들이 비이성의 경험 내부에 자리잡았을까, 어떻게 그것들이 거기에서 제각기 고유한 일관성을 획득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이 광기의 부정성을 실증적 방식으로 나타내기에 이르렀을까를 보여주려고 애쓸 생각이다. 

1. 정신장애의 계열

정신장애는 디멘티아, 아멘티아, 파투이타스, 스투피디타스, 모로시스 등 다양하지만 거의 모두 동일한 영역에 걸쳐 있는 명칭들 아래에서 17세기와 18세기의 의사들 대부분에 의해 질병으로 인정된다. 정신장애는 이처럼 인정되고 다른 종류의 질병들 사이에서 아주 쉽게 떨어져 나와 분리되지만,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이 두 세기에 걸쳐 정신장애는 부정적인 것들의 영역 안에서 언제나 특징적 형상을 얻기 어려운 상태로 존속한다. 어떤 점에서 정신장애는 모든 정신질환 중에서 계속해서 광기의 본질과 가장 가까운 것이다. 일반적 견지에서 이해된 광기, 광기가 지닐 수 있는 부정적인 것 전체, 예컨대 무질서, 사유의 붕괴, 오류, 환각, 비이성, 비진실을 통해 경험된 것이다. 18세기의 한 저자가 다음과 같이 어떤 실증적 형식에 의해서도 완전히 설명하거나 결정할 수 없을 만큼 아주 크게 확대하여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광기, 곧 이성의 단순한 이면과 정신의 순수한 우연성으로서의 광기이다. 광기는 무한히 다양한 증후를 내보인다. 보았거나 들었던 모든 것, 생각했거나 궁리한 모든 것이 광기를 구성하게 된다. 광기는 가장 멀리 떨어져 보이는 것을 근접시킨다. 광기는 완전히 잊혀진 듯한 것을 환기시킨다. 이전의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반감이 다시 생겨나며, 성벽이 더욱 날카로워지지만, 모든 것은 흐트러진 상태에 있다. 생각은 혼란스럽다는 측면에서, 사전의 계획이나 구상 없이 아무렇게나 모아놓은 인쇄소의 활자와 유사하다. 일정한 의미를 내보이는 것이라고는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정신장애는 바로 무질서의 부정성으로 인해 이해된 광기와 유사하다.

정신장애와 연관되는 두 번째 계열의 개념들은 어리석음, 저능, 백치, 우둔 등이다. 일상적으로 정신장애와 저능은 동의어로 취급된다. 모로시스라는 명칭으로 윌리스는 태어나서 몇 달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서 알아볼 수 있는 어리석음뿐만 아니라 후천적 정신장애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문제되는 것은 기억력, 상상력, 판단력과 동시적으로 관련되는 손상이다. 

2. 조광증과 우울증

16세기에 우울증의 개념은 증후에 의한 어떤 규정과 이 규정을 가리키는 용어 자체에 감추어진 설명의 원리 사이에서 어정쩔하게 이해되었다.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형성하여 품을 수 있는 모든 망상은 증후 쪽에서 발견된다. 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짐승이라 생각하고는 짐승의 목소리를 내고 짐승의 몸짓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유리그릇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행인들 앞에서 혹시 부딪쳐 부서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몸을 사리며, 나머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대개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들은 자신이 범죄로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상상하는데, 누군가 다가오면, 그에게 덜미를 잡혀 감옥에 갇히고 재판에 따라 죽게 되리라고 생각하고는 두려움에 떤다. 여전히 고립되어 있고 이성의 전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정신착란의 주제들. 사이든햄은 우울증 환자들이 우울증만 아니라면 매우 현명하고 아주 분별 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해안과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주지시키게 된다. 

3. 희스테리와 심기증

히스테리와 심기증에 관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1) 히스테리와 심기증을 정신병으로, 또는 적어도 광기의 형태로 취급하는 것은 어느 정도로 타당할까?
2) 마치 조광증과 우울증에 의해 매우 일찍 구성된 것과 유사한 잠재적 짝패를 히스테리와 심기증이 형성하기라도 하는 듯이, 히스테리와 심기증을 함게 다룰 당위성은 있는 것일까?

심기증은 생체기능과 동물기능이 약해지고 활력을 상실하는 사태인 극도의 쇠약이나 질환으로, 히스테리는 정상적 기능의 경련성 증상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된다.
18세기 말에 심기증과 히스테리는 거의 아무런 문제없이 정신병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고전주의 시대에 히스테리와 심기증은 두 가지 핵심적 노선을 따라 변화한다. 하나는 신경질환의 개념이 될 공통개념의 형성으로까지 이것들을 접근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들의 의미와 명칭에 의해 충분히 지시된 이것들의 전통적이고 병리학적인 매체를 변경하고 이것들을 점차로 정신질환의 영역에 통합하여 조광증과 우울증 곁에 놓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제4장. 의사와 환자

입원과 수용이 얼마나 의학과 무관했는가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이지만, 의학 자체 내에서도 이론과 치료법은 불완전한 상호성 속에서만 소통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치료의 세계는 여전히 더 굳건하고 더 안정적이며 또한 구조에 더 충실하고 발전의 측면에서 덜 불확실하며 근본적인 갱신에 대해 덜 자유롭다. 

우선 만병통치약의 신화가 아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치료제의 효과에서 보편성의 관념은 17세기 말 경에 의미가 바뀌기 시작한다. 아편은 대단히 많은 질환에, 특히 머리의 질병에 사용된다. 즉 아편은 신경에 고유한 감각능력을 약화시키고, 따라서 심한 신경과민 때문에 초래되는 고통, 불규칙적인 동작, 경력을 완화시키며, 동요와 경련에 매우 유용할 뿐만 아니라, 매우 양이 많은 월경 때문에 유발되는 쇠약, 피로, 하품과 가스에 의한 복통, 폐의 폐색, 신물, 정말로 발작적인 천식에 아편을 쓰면 효험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저항의 영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광기의 영역이다. 오랫동안 광기는 세계의 예지에 따라 자연의 비밀속에 배분된 우주적 요소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광기의 완전히 구성된 그러한 반대명제들은 대부분 식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 관련되거나 광물의 세계에 관련되거나 하는 것이다. 

모든 치료는 실천임과 동시에 치료 자체와 질병에 대한, 그리고 치료와 질병 사이의 관계에 대한 자발적 반성이다. 이제 결과는 확증된 사실일 뿐만 아니라 경험이기도 하며, 의학이론은 시도 속에서 활기를 띤다. 어떤 것이 열리고 있는 중인데, 오래지않아 그것은 임상의 영역이 될 것이다. 이론과 실천 사이의 일정한 상화관계에 의사와 환자의 직접적 대면이 덧씌워져 있는 영역. 구체적 경험의 통일성 속에서 고통과 앎은 서로 부합할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 경험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공통 언어, 적어도 상상적 소통을 요구한다. 

그런데 18세기에 치료의 다양한 본보기가 가장 많이 얻어지고 치료가 의학의 특권적 기술로 인정됨으로써 치료의 지위가 강화된 것은 바로 신경질환의 경우에서이다. 마치 광기와 의학 사이의 이러한 교류가 수용으로 인해 끈질기게 거부되다가, 마침내 신경질환과 관련하여 특별히 우대받는 식으로 확립되는 듯하다. 그러한 치료법들이 급속하게 근거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는 했지만, 관찰 정신의학, 입원의 외양을 띤 수용, 그리고 피넬에서 뢰레까지, 샤르코에서 프로이트까지 그토록 기이한 어휘를 이용하게 되는 광인과 의사의 그러한 대화는 그러한 치료법에서 비로소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광기의 치료를 조직한 관념들 가운데 몇 가지를 복원해 보기로 하자. 

(1) 강화

광기가 격렬하게 폭발하는 경우에, 때때로 조광증 환자의 힘은 상당한 정도로 증대되는 듯이 보이지만, 그럴 경우에도 언제나 은밀한 쇠약, 본질적 저항력 결여가 가로놓여 있고, 광인의 광란은 사실을 말하자면 수동적 격렬함일 뿐이다. 그러므로 정기나 신경섬유에 기력을, 그렇지만 잔잔한 기력을, 어떤 혼란에도 흔들리지 않을 힘을 부여하게 되어 있는 치료가 추구되기에 이르고, 그런 만큼 치료는 처음부터 자연법칙의 흐름을 띠게 된다. 새로운 저항력, 원기 왕성이나 굴복되고 이미 길들여진 탄력의 주제를 감사면서 우뚝 솟아오르는 것은 생기와 원기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오히려 강건함의 이미지이다. 기질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기질 자체에 서 힘을 발견하여 끌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기를 "이를테면 북돋우는, 그리고 정기를 들끓게 하는 원인을 정기가 격퇴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는" 약이 갈구된다.

(2) 정화

내장의 협착, 들끓는 잘못된 생각, 술렁이는 독기와 격한 감정, 체액과 정기의 부채... 광기는 동일한 정화작업에 결부될 수 있는 일련의 치료법 전체를 불러들인다. 사람들은 일종의 완전한 정화, 즉 가장 단순할 뿐만 아니라 가장 불가능한 것을 꿈꾼다. 

(3) 물에 담그기

여기에는 두 가지 주제가 교차하는데, 하나는 세정의 주제로서 순수성과 부활의 의례와 연관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훨씬 더 생리학적인 것으로서 액체와 고체의 본질적 특성을 변화시키는 흡수의 주제이다. 이 두 주제는 기원이 서로 다르고 개념적 구상의 흥위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까지 대립이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한다. 자연의 관념은 모호한 상태속에서 이 두 주제를 결합시키는 요소로 구실한다. 단순하고 근원적인 액체인 물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것의 하나인데, 자연의 근본적 호의가 인간에 의해 아무리 의심쩍은 것으로 변할 수 있었다해도, 물의 이로움은 변질될 수 없었고, 문명, 사회생활, 소설 읽기나 연극관람에 의해 촉발된 상상적 욕망으로 인해 신경질환이 유발되었을 때, 맑은 물로의 회귀는 정화의례의 의미를 띄며, 신선하고 투명한 물 속에서 사람은 본래의 순결한 상태로 다시 태어난다.  

(4) 움직임의 조절

광기는 정기의 불규칙한 동요, 신경섬유와 관념의 무질서한 움직임이라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또한 육체와 영혼의 폐색, 체액의 정체, 빳빳해진 신경섬유의 부동상태, 다른 주제들보다 점차로 우세해지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관심과 관념의 고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광기는 정신과 정기, 육체와 영혼에 생기 넘치는 유동성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유동성을 조절하고 통제해야 하고, 이 유동성이 더 이상 외부세계의 자극에 순응하지 않는 신경섬유의 헛된 동요로 치닫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치료법적 주제에 활기를 부여하는 관념은 외부세계의 적절한 유동성과 일치하는 움직임의 복원이다. 광기는 무질서와 동요일 뿐만 아니라 은밀한 부동상태, 끈질긴 고착이므로, 광기의 치료는 세계의 운동규칙을 따르게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규칙적이고 동시에 실질적인 움직임을 환자의 몸에 일깨우는 데 있다. 

갖가지 방식의 걷기와 달리기를 통해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고대인들의 굳건한 믿음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단순한 걷기는 유연하고 동시에 단단한 몸을 만들어주고, 일직선으로 점점 속도를 높여 달리는 것은 분비액과 체액이 온 몸에 골고루 배분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기관들의 무게를 감소시키며, 옷을 입은 채로 하는 달리기는 조직을 덥피고 유연하게 만들며 너무 딱딱하게 굳은 신경섬유를 부드럽게 풀어준다. 

여행은 관념의 흐름에 직접 작용하거나 또는 감각만을 통과하기 때문에, 적어도 더 직접적인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 추가적 이점을 갖는다. 다양한 풍경은 우울증 환자의 완고함을 없애준다. 이것은 고대부터 이용되어 온 오래된 치료법이지만, 18세기에 이르러 완전히 새롭게 강조되고, 실제의 이동에서 문학과 연극을 통한 상상적 여행까지 종류가 다양해진다. 

치유의 기법은 상상력의 정도가 가장 짙은 육체적 상징들에서조차, 말하자면 한편으로는 강화와 다시 움직이게 하기, 다른 한편으로는 정화와 물에 잠그기에서조차 이 두 가지 근본적 주제에 따라 은밀하게 정돈되고, 치유의 기법에서 문제되는 것은 환자를 애초의 순수한 상태로 되돌리고 동시에 환자를 순수한 주관성에서 끌어내 세계 속으로 들여보내는 것, 환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상시레 하는 비존재를 소멸시키고 환자의 마음이 외부세계의 충만성, 존재의 굳건한 진실 쪽으로 다시 열리도록 하는 것이다. 기법의 의미보다 기법이 더 오랫동안 남아 있게 마련이다. 비이성의 경험 밖에서 순수하게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지위가 광기에 부과될 때에도, 고전주의적 광기의 규정에 근거가 된 오류와 결함의 관계가 오로지 유죄성의 관념에만 꿰어 맞추어질 때에도, 기법은 훨씬 더 제한된 의미를 갖게 될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게 되고, 사람들은 기계적 효과나 도덕적 징벌만을 찾을 뿐이게 된다. 움직임을 조절하는 방법이 유명한 회전기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식이다. 고전주의 시대를 가로질러 치료방법을 지탱하던 두터운 의미들이 어떻게 얇아졌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예전에 광기를 세계의 눈부신 진실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결함을 내몰고 오류를 없애는 데 이용되었던 수단이 이제는 규제하고 처벌하는 데에만 이용될 뿐이다.

제3부

제1장. 대공포

공포와 불안은 멀리 있지 않았다. 즉, 수용의 반동으로 이해 더 격심한 상태로 나타난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수용될까봐 두려워하곤 했으나, 이제는 사람들이 수용될까봐 늘 두려워한다. 18세기 말에 사드는 그가 "불길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자들, 그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 숨어서 그를 노리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에 여전히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수용의 장소는 이제 고유한 위력을 갖게 되었고, 병의 탄생지가 되었으며, 이제부터 병을 퍼뜨리고 또 다른 공포를 확산시키게 된다. 18세기 중엽의 몇 해 사이에 갑자기 공포가 솟아오른다. 의학용어로 표명되지만, 근본을 헤아려보면 도덕적 신화에 의해 고조되는 공포가 그것이다. 수용시설에서 퍼져나가 이윽고 도시를 위협하려는 몹시 불가사의한 병을 누구나 두려워한다. 감옥 열병이 이야기되기도 하고, 유죄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호송 수례, 쇠사슬로 줄줄이 묶여 도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병의 원인을 흘린다고도 하며, 괴혈병의 전염이 상상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병으로 인해 탁해진 공기가 주거구역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추측되기도 한다. 그리고 중세에 퍼졌던 공포의 이미지가 새롭게 대두되면서, 격렬한 공포의 은유를 통해 제2의 공황을 촉발시킨다. 수용시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환자 수용소일 뿐만 아니라, 도시 바로 옆에 다가와 있는 나병 자체다. 

수용의 명소는 많은 곳이 예전에 나병환자들을 집어넣었던 바로 그곳에 세워졌고, 여러 세기가 지나는 공안 새로운 피수용자들이 감염되었던 것 같다. 병이 수용의 닫힌 공간에서 들끓게 된다. 병은 18세기의 화학에서 산에 고유한 것으로 간주된 모든 위력을 갖춘다. 

1780년에 파리에 전염병이 번졌는데, 사람들은 구빈원의 감염을 이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했고, 비세트르의 건물에 불을 지르러 가자고 말하기까지 했다.  

18세기 후반기의 불안 속에서 광기에 대한 공포는 비이성 앞에서의 두려움과 동시에 심해졌고, 바로 이런 식으로 두 가지 형태의 강박관념은 서로 기대면서 끊임없이 강화된다. 그리고 비이성에 수반되는 상상적인 것의 해방이 목격되는 그 시기에, 광기로 인한 참화에 관해 높아가는 하소연 소리가 들여온다. 신경질환은 오늘날 훨씬 더 빈번한데, 이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즉 하나는 옛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더 강건했고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모든 종류의 질병이 더 적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질병의 다른 일반적 원인들 가운데 몇 가지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반면에 얼마 전부터 신경질환을 유난히 많이 일으키는 원인이 큰 비율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윽고 광기 때문에 매 순간 결정적으로 위태로워질 수 있는 이성의 불안정에 관해 사람들은 16세기가 그토록 활기차게 간직했던 그 의식을 되찾게 된다. 뜻밖의 사건이나 영혼의 강렬하고 갑작스러운 흥분이 일어나면, 아무리 이성적이고 아무리 위대한 정신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갑자기 난폭한 미치광이나 백치로 변할 것이다. 광기의 위협이 그 세기의 긴급한 문제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식은 작용 방식이 특별하다. 비이성에 관한 강박 관념은 매우 정서적일 뿐만 아니라 상상적인 것의 부흥 움직임과 거의 전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광기에 대한 두려움은 이 유산에 대해 훨씬 더 자유롭고, 비이성의 재래는 시간을 넘어 스스로 이루어지는 대대적인 반복처럼 보이는 반면에, 광기의 의식은 반대로 광기를 처움부터 시간, 역사, 사회의 틀 안에 위치시키는 어떤 근대성의 분석을 수반한다. 비이성의 의식과 광기의 의식이 상이하다는 사실에서 그 18세기 말의 결정적 동향이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동향으로 인해 비이성의 경험은 휠덜린, 네르발, 니체와 더불어 끊임없이 시간의 근원 쪽으로 점점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광기의 의식은 반대로 광기를 자연과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 안에 갈수록 더 분명히 위치시키게 된다. 바로 그 시기부터 비이성의 시간과 광기의 시간은 두 가지 대립적 벡터를 지수로 갖게 되는데, 하나는 무조건적 회귀와 절대적 잠행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로 역사의 연대기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다. 

(1) 광기와 자유

오랫동안 우울증의 몇몇 형태는 영국에 특유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것은 의학적으로 인정된 여건이었고 문학의 상수였다. 신앙의 자유는 권위와 독재정치보다 더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종교적 감정은 제한없이 작용하고, 모든 개인은 듣기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으며, 그토록 서로 다른 견해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나머지, 사람들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골치를 썩인다. 미결정, 고정될 줄 모르는 관심, 흔들리는 마음의 위험. 또한 언쟁, 정념, 자기 편을 악착스럽게 위해주는 정신의 위험. 각각의 사항은 반대에 부딪히고, 반대는 감정을 격하시키며, 각자는 종교, 정치, 과학에서, 요컨대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게 파당을 형성할 수 있지만, 반대에 마주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토록 많은 자유는 더 이상 시간의 통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즉, 시간은 불확실성에 내맡겨지고, 각자는 국가에 의해 투기에 몰두하는 탓으로 두려움과 소망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이기주의, 상인정신은 쉽사리 질투에 빠지고 다른 재능을 불러들여 이용한다. 게다가 이러한 자유는 자연스러운 진정한 자유와 관계가 멀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가장 정당한 욕망과 대립하는 요구에 의해 사방에서 속박과 압박을 받는다. 즉, 인간의 자유, 정신과 감성의 자유가 아니라 욕심, 결탁, 금융 술책의 자유이다. 돈 때문에 가정은 어느 다른 곳보다도 더 압제적이게 된다. 가령 부유한 가족의 딸을만이 결혼의 방도를 찾아낼 뿐이고 다른 미혼 여성들은 몸을 망치고 영혼을 뒤틀리게 하는 다른 충족수단 쪽으로만 내몰린다. 요컨대 자유는 인간으로 하여금 제정신을 되찾게 하기는커녕, 끊임없이 인간을 본질과 세계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돈의 절대적 외재성 속에서, 정념과 불완전한 욕망의 돌이킬 수 없는 내재성 속에서 인간을 현혹시킨다. 상업국가의 자유는 인간과 인간이 자신을 알아볼 세계의 행복, 인간과 인간이 자신의 진실을 발견할 자연 사이의 중간이고, 이에 따라 상업국가는 광기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2) 광기, 종교, 시간

신앙은 일종의 상상적 풍경, 모든 환각과 모든 망상을 쉽게 조장하는 가공의 환경을 마련한다. 오래 전부터 의사들은 너무 극단적인 신앙심이나 너무 열렬한 믿음의 결과를 두려워했다. 너무 심한 도덕적 엄격성, 구원과 미래의 삶에 대한 너무 심한 불안은 흔히 우을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과오로 인해 과도한 정신착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정신이상을 모면하도록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확고한 종교적 환경일 뿐이다. 종교는 온갖 의례와 요구를 통해, 인간에게서 과오 이전의 부질없는 정념을 없애주고, 일단 과오가 저질러지면, 무익하게 되풀이되는 회한을 품지 않도록 해주며, 철저하게 수행의 순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을 조직한다. 행복한 시대의 옛 종교는 현재의 영원한 축제였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종교는 관념화되면서, 현재의 주위에 느슨한 시간적 후광, 공백의 환경, 한가와 외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이러한 환경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불안에 처하고 정념이 시간을 무사태평이나 반복의 상태에 이르게 하며 마침내 광기가 활개칠 수 있게 된다.

(3) 광기, 문명, 감성

문명의 일반적으로 광기의 확대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과학의 발전은 오류를 일소하면서도 연구를 즐기고 심지어 연구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결과를 확산시킨다. 연구실 생활, 추상적 사변, 육체를 단련할 겨를이 없고 정신만이 그토록 영속적으로 활동하는 상태는 가장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노동자는 팔의 근육과 신경섬유가 단단해지고, 이에 따라 체력과 양호한 건강을 노년까지 누린다. 문인은 뇌가 단단해지고 흔히 관념들을 연결시킬 수 없게 되며, 바로 이 점 때문에 정신장애에 걸리기 쉽다. 지식이 추상적이거나 복잡할수록, 지식으로 인한 광기의 위험은 더 많아진다. 

18세기에는 광기와 광기의 위협적 증가에 대한 의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범주의 개졈들이 여전히 매우 산만한 방식으로 서서히 형성된다. 17세기가 광기를 위치시켰던 비이성의 풍경에서 광기는 어렴풋이 도덕적 의미와 기원을 감추고 있었고, 17세기의 불가사의에 의해 광기는 과오에 연관되었으며, 광기에 곧장 깃들 것이라고들 인식한 동물성은 역설적이게도 광기를 더 결백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기에는 인간을 아득한 옛날의 타락이나 한없이 현존하는 동물성쪽으로 근접시키는 것에서 더 이상 광기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게 되고, 반대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연의 직접성을 통해 인간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에 대해 유지하는 그 간격안에 광기를 위치시킨다. 광기는 감성적인 것, 시간, 타자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변질되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인간의 삶과 변전에서 직접적인 타락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영역에 속하는데, 이 영역에서는 역사가 예감되기 시작하고,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이상과 철학자들이 말하는 소외라는 두 형상, 이를테면 인간의 진실이 어떻게든 변질되는 조건이지만 일찍이 19세기 헤겔 이후로 유사성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린 두 형상이 본래의 막연한 연관성 속에서 형성된다. 

17세기는 진실의 상실에서 광기를 발견했다. 즉, 자연이 아니라 자유에 속하는 인간에게서 각성과 주의력의 역량만이 문제시되는 온통 부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은 광기의 가능성을 환경의 구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고 빗나간 감성, 욕망의 일탈, 척도를 박탈당한 시간이며 매개의 무한 속에서 상실된 직접성이다. 이에 맞서 자연은 반대로 폐기된 광기, 실존의 가장 근사한 진실로의 행복한 회귀이다.

제2장. 새로운 분할

18세기에 광기 쪽에서 무언가가 달라졌다. 우선 공포가 있었는데, 그것은 비이성을 오랜 강박관념에 결부시키고, 수용에 의해 모면되기에 이르렀거나 거의 이를 뻔한 현존을 비이성에 회복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공포 이상의 것이 있다. 즉, 광기가 조용히 억눌린 바로 거기에서, 비이성의 동질적 공간에서 느린 작업이 실행되는데, 그것은 매우 어렴풋이 거의 언급되지 않은 채로 이로어지는 까닭에 단지 표면효과만이 인식될 뿐이다. 심층의 압혁에 의해 광기가 다시 나타나게 되고, 그때 광기는 고립된 상태에서 스스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18세기의 새로운 공포는 헛된 강박관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즉, 광기는 혼란스럽게 현존하지만 벌써 수용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다시 문제시하면서 재차 표면위로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광기가 증가한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광인이 18세기에 실질적으로, 다시 말해서 인구 전체보다 더 큰 비율로 증가했는지를 확실하게 밝히기는 어렵다. 광인의 수는 수용의 총계로부터만 우리에게 파악될 수 있을 뿐인데, 수요의 총계가 반드시 광인의 수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수용의 동기가 흔히 애매하기 때문이고, 동시에 광인으로 인정되지만 수용이 포기되는 사람의 수가 언제나 더 많기 때문이다. 

광기에 대한 이해방식이 예전에는 획일적이었으나 이제는 갑자기 개방되어 그때까지 미치광이라는 단조로운 호칭에 파묻혀 있던 모든 것에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다. 광인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과의 총괄적이고 불분명한 차이가 단번에 감지되는 사람이 아니고, 서로 상이하게 되면서, 그들을 포괄하는 비이성 아래, 상반되는 유형들의 비밀을 잘 감추지 못한다. 균등한 광기에 차이가 억지로 끼어드는데, 어쨌든 이러한 침입은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때 이성은 비이성의 외부에 자리잡고서 오로지 비이성을 비난하는 역할을 상실하며, 동일성에 비하면 비유사성이나 일종의 본래적 이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극도로 축소되었지만 결정적으로 중요한 형태를 띠고서 비이성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직관을 통해 파악되는 비이성은 이성에 절대적 차이였지만, 이와 동시에 한없이 되살아나는 동일성에 의해 저절로 평준화되는 차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차이의 다양한 양상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며, 그것들은 이성이 재발견되고 거의 식별될 수 있는 영역을 형성한다. 조만간 이성은 분류되고 객관적으로 분석된 이러한 차이를 이용하여 비이성의 가장 가시적인 영역을 가로챌 수 있을 것이고, 오랫동안 의학적 이성은 이 차이의 추상적 분석을 통해서만 광기를 통제할 뿐이게 된다.

이제 우리는 실마리를 찾았다. 우리는 18세기의 근저에서 광인이 마치 저절로인 듯 갈라져 나오고 고유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어떻게 19세기의 정신병원이 가능하게 되었고 정신의학이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광기의 권리가 마침내 주장되었는가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수용에서 최초의 광인 보호소가 유래하고, 이로부터 피넬과 튜크의 등장을 가능하게 할 그 호기심, 이를테면 이윽고 연민으로 바뀌고 장차 인도주의와 사회적 청원으로 진전될 호기심이 생겨나며, 피넬과 튜크는 대대적인 개혁운동, 즉 위원들의 조사, 대규모 병원의 설립을 부추기고, 대규모 병원은 마침내 에스키롤의 시대와 광기에 관한 의료과학의 행운을 촉발시키게 된다. 연결선이 곧바르고 전개가 용이하다. 그러나 연결선이 끊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약간의 주의력만으로, 심지어는 한 장소만으로 충분하다. 

광인은 수용의 가장 결백한 첫 번째 희생자가 아니라, 수용하는 권력의 상징들 중에서 가장 모호하고 가장 가시적이며 가장 끈질긴 것이다. 바로 비이성의 그 소란스러운 현존 속에 갇힌 피수용자들 한가운데서 권력의 은밀하고 집요한 모습이 드러난다. 죄수들 사이에 광인이 있다는 것은 수용의 수치스러운 한계가 아니라 수용의 진실이고 수용의 폐습이 아니라 수용의 본질이다. 

빈민구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대두된다. 18세기는 빈민구제가 형태의 변화 없이 빈곤과 공조관계를 맺게 되고 빈곤을 확대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모순되지 않을 유일한 빈민구제는 빈곤층이 잠재적 부이게 하는 것, 즉 빈민층이 인구의 일부라는 무조건적 사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빈곤층을 수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빈민층을 자유가 충만한 사회공간에 내버려두어야 하고, 그러면 빈민층은 값싼 노동력을 형성함에 따라 서서히 사회공간에 흡수될 것이다. 사실상 인구과잉과 빈곤의 지점은 상업과 산업이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효력이 있을 유일한 구제형태는 자유이다. 저임금 정책, 고용에 대한 제한 및 보호의 부재는 빈곤을 해소하거나, 적어도 빈곤을 풍요의 세계에 새로운 방식으로 통합하게 마련이다. 중세의 부자는 가난한 사람에 의해 신성시되었으나, 18세기의 부자는 가난한 사람 덕분으로 부자의 지위를 유지한다. 하층계급, 다시 말해서 사회에서 고통받는 계급이 없다면, 부자는 잠을 잘 곳도 입을 곳도 먹을 음식도 향유하지 못할 것이고, 장인이 생명을 잃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허술한 발판으로 올라가서 막대한 무게의 자재를 건물 꼭대기로 들어올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자를 위해서이며, 농부가 악천후와 경작의 가혹한 노고를 무릅쓰는 것도, 한 무리의 불우한 사람이 광산이나 염색 작업장 또는 광물 가공장에서 일하다가 이윽고 사망하는 것도 부자를 위해서이다. 빈민은 수용으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공동체에 새로운 모습으로 재편입된다. 빈민은 더 이상 부의 정당화, 부의 영적 형태가 아니라 부의 귀중한 재료일 뿐이다. 빈민은 예전에 부의 존재 이유였으나 이제는 부의 존재조건이다. 빈민 때문에 부자는 더 이상 초월되지 않고 존속한다. 다시 부에 불가결하게 된 빈곤은 수용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고 부의 처분에 맡겨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병든 빈민은? 병든 빈민은 부정적 요소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아무런 방책도 가능성도 잠재적 부도 없는 비참. 오직 병든 빈민만이 전적인 구제를 필요로 한다. 

구제의 의무는 이미 본성 속에 있으므로 사회와 무관하지만, 사회는 기원에서부터 사람들의 공존만큼 오래된 이 의무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므로, 구제의 의무는 사회와 관련된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감정에서 사회의 가장 정교한 형태까지 인간의 삶 전체는 구제 의무의 망 속에 놓여 있다. 우선 자연발생적 자선. 우리와 더불어 생겨나고 어느 정도 발전하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동류가 겪는 빈곤과 신체장애에 민감하게 하는 내면 감정. 다음으로는 개인적 자선, 즉 우리로 하여금 개별적 선행을 베풀도록 유도하는 본성상의 성향이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변함없는 원칙과 언제나 일치하며 국가체로 하여금 드러난 폐습을 개혁하고 들려오는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가능한 사물들의 질서에 맞춰 재산을 바라고 이것을 불우하게 살아가거나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모든 계층의 개인들에게 나누어주도록 이끄는 내면감정을 포함한 국가적 자선.

구제는 사회의 조건 자체이므로, 이를테면 사람들 사이의 가장 생기있고 가장 개인적임과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유대이므로 모든 사회적 의무 중에서 으뜸가는 것, 모든 사회적 의무 사이에서 무조건적인 것이 된다. 

국가는 구제사업을 떠맡아야 할까? 구빈원을 세우고 구호물자를 분배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의무에서일까?

치유의 장소는 당연히 구빈원이 아니라 가정이고, 적어도 병자의 직접적 측근이다. 그리고 빈곤이 노동력의 자유로운 유통에 흡수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질병은 인간의 자연환경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행해질 수 있는 치료를 통해 사라져야 한다. 진정한 자선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할이 가능한 한 축소되어야 하고 가족과 개인의 특별한 힘이 활용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18세기 말에 촉구하고 체계화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바로 이 특별한 힘이다. 영국에서는 11722년의 법률에 의해 모든 형태의 재택 구호가 금지되었다. 병든 극빈자는 구빈원으로 인도되어야 했고, 거기에서 익명으로 공적 자선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조처로 인해 자격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우연한 도움을 받기가 어렵게 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가정상황에 내재한 위로를 기대할 수 없으므로 1786년의 새로운 법에서는 이러한 조처가 잘 적용될 수 없는 압제적인 것으로 여겨져 수정되기에 이른다. 각 소교구에서 감독자는 자택에 머물러 있는 가난한 병자에게 보낼 수 있는 구호물자를 결정할 것이다. 또한 상호보증 제도의 장려가 시도되는데, 가령 1786년에 아클랜드는 보편적 우호 또는 시료협의의 창설을 계획한다. 농부들과 하인들이 거기에 가입했고,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할 경우 재택 구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소교구마다 한 명의 약사가 약품공급의 자격을 부여받았던 듯하고, 약값의 절반은 소교구에서, 나머지 절반은 협회에서 부담했을 것이다. 

대혁명은 적어도 초기에는 구제사업의 핵심적 재편성계획과 대규모 구빈원의 건립계획을 폐기한다. 아주 유옹한 이점들 중에서 특히 물질적 혜택을 구호대상자의 가족 전체에 돌아가게 하고 구호대상자가 자신에게 소중한 것으로 둘러싸이도록 허용하며 빈민구제사업을 통해 자연스러운 유대와 애정을 강화하는 이점이 있는 제도, 곧 재택구호제도가 중시된다면, 오늘날 구빈원의 빈민들에게 들어가는 금액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으로도 자택에서 구호받는 개인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로부터 파급될 절약의 효과는 막대할 것이다.

제3장. 자유의 선용

부주의로 광인과 함께 수용된 사람들을 광인이 타락시킨다면, 광인에게 특별한 수용시설, 의료시설이 아니라 가장 효과적인고 가장 정당한 구제의 형태일 수용시설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인간을 엄습하는 모든 불행 중에서 광기의 상태는 한층 더 연민과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의 하나이므로, 이 상태에는 더욱 더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인 바, 치유될 희망이 없을 때라도 그 불행한 사람들로 하여금 적어도 삶을 견딜 수 있게 해줄 부드럽고 적절한 대우의 수단은 얼마나 많은가. 

1780년에서 1793년까지 취해진 조치들은 문제의 성격을 결정한다. 즉, 수용의 사라짐은 사회공간에서 광기가 편입될 지점을 없애버리고, 사슬에서 풀린 위험 앞에서 사회는 한편으로는 이제 막 생겨나고 있는 이상에 부합하는 일단의 장기적 결정, 이를테면 정신이상자만을 위한 시설의 건립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를 강제로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즉각적 조치, 즉 진보의 관점에서 이 역사를 헤아려보고자 한다면 퇴보적 조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대응한다.

사실상 그 형상들을 지식의 관점에서 묘사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앎이 아직도 해위, 일상적 언행, 최초의 발언에 아주 가까운 그러한 지점에 자리잡는다. 그 구조들 중에서 세 가지는 아마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1) 한 구조 속에서는 이제 축소되고 제한된 오랜 수용의 공간과 다른 곳에서 형성되었고 연속적 변모와 순화에 의해서만 수용의 공간에 들어맞을 수 있었던 의료공간이 뒤섞이게 되었다.

(2) 또 다른 구조는 광기를 식별하고 감시하며 판단하는 사람과 광기 사이에, 중립적이게 되고 겉보기에는 모든 공모 관계를 떨쳐버렸으며 객관적 시선의 영역에 속하는 새로운 관계를 확립한다.

(3) 세 번째 구조에서 광인은 범죄자와 대면하게 되지만, 이는 미분화 공간에서나 무책임의 공간에서가 아니다. 이것은 범죄를 전혀 축소시키지 않으면서 광기가 범죄에 자리잡도록 해주게 되고 이와 동시에 합리적 인간이 도덕의 새로운 형태에 따라 광기를 판단하고 분류하도록 허용하게 되는 구조이다.

오랜 동안 의학적 사유와 수용의 실천은 서로 무관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고유한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동안, 구체적 광기의 경험, 수용에 의해 상징되고 고정된 경험은 고전주의 세계에 자리를 잡았다.

건강한 빈민에게 노동의 의무가 규정되었고 병자를 보살피는 일이 가족에게 맡겨졌지만, 광인은 사회로 복귀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측근의 위험한 광인이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는 것을 개인들에게 금지함으로써, 광인을 가족공간에 묶어두고 부양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당시에 보호는 한쪽 편에서 아주 허술하게만 보장될 뿐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빈곤 앞에서 스스로 결백하다고 느끼는 만큼이나, 광기 앞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사인을 광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느낀다. 기독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과 가난이 개인이나 가족의 권역에만 속하게 됨으로써 사적인 것으로 변한 시대에, 광기는 사실상 공적 지위를 획득하고 사회를 광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감금공간의 규정에 얽매인다. 이러한 감금의 성격은 아직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이 체벌에 더 가까운지, 아니면 구호와 더 유사한지 알지 못한다. 당분간은 한 가지 사항만이 확실하다. 즉, 수용이 붕괴되어 경범죄자가 자유를 되찾고 파렴치한 사람이 가정으로 되돌려보내지는 시기에, 광인은 형사 소추를 당하거나 이미 유죄 선고를 받은 죄수, 가족이 없는 빈민이나 병자와 동일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광인과 비광인은 맨 얼굴로 서로에 대해 현존한다. 그들 사이에는 시선에 의해 직접적으로 헤아려지는 거리를 제외하면 더 이상의 간격이 없다. 그러나 이 거리는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아마 한층 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고, 수용시설에서 획득된 자유나 거기에서 진실과 언어를 붙잡을 가능성은 사실상 광기에 대해 인식상의 지위를 부여하는 동향의 다른 측면일 뿐이다. 측 최근까지도 광기를 인식되자마자 내몰린 형상으로 만들었던 모든 마력을 이제 광기는 주변의 시선 아래 박탈당하고, 바라보아지는 형태 또는 언어에 의해 포위되는 사물이 된다. 요컨대 광기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변화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해야 한다면, 아마 비이성의 경험에 고유한 특성은 비이성의 경험에서 광기가 스스로에 대해 주체였다는 것이지만 18세기 말에 형성되는 경험에서는 광기가 대상의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자주성을 상실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광기가 느리고 은밀하게 침입하는 듯이 이동하고는 재판관, 가족 그리고 질서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등장한다. 광기의 지위가 모색되는 동안, 광기에 관한 물음이 긴급히 제기된다. 즉, 가족, 치안, 사회의 차원에서 통용되어 온 비이성적 인간이라는 오래된 개념이 해체되면서 면책이라는 사법적 관념과 광기의 직접적 경험이 곧장 서로 마주친다. 힘겨운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법이 정의하는 것과 같은 정신이상의 부정적 개념에 점차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이 개념은 일상인이 광기에 부여하는 도덕적 의미에 의해 변질되기에 이른다. 

대혁명 초에 치안의 재편성으로 인해 독립적이고 동시에 혼합적인 그러한 권력이 사라지게 되자, 민간인이자 집단의지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에게 특별한 권한이 부여된다. 모든 치안조직의 임무인 사법행위 이전의 그 임박한 사회적 분할을 확실히 수행하는 책임이 수시로 민간인에게 맡겨진다. 민간인은 난폭성에서 광포함까지, 정신박약에서 정신장애까지 모든 불명료한 형태는 물론이고 부랑, 매춘, 방탕, 배덕 등 예전에 수용에 회부되었떤 물자 전체를 매개도 감독도 없이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시민으로서 인간집단에 대해 일시적으로지만 절대적 치안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요구받는데, 사회가 개인을 바람직하지 않거나 사회의 동질성과 무관한 존재로 지정하는 그 막연한 주된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이제 시민의 몫이고, 질서와 무질서, 자유와 소동,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를 판단하는 것은 바로 시민의 책무이다. 

시민은 이중의 의미에서 보편성이다. 즉, 시민은 인간 본성의 직접적인 진실이고 모든 법제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비이성이 이성과 분리되는 기준이며, 그가 갖는 의식의 가장 자발적인 형태, 그가 모든 이론적이거나 사법적인 착상 이전에 단번에 내리게 되는 판단에 비추어볼 때, 분할의 장소이자 동시에 분할의 수단 겸 판단자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도 역시 모든 앎에 앞서 직접적 단순파악을 통해 광기를 식별했지만, 그 때에는 인간의 정치적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양식이 자연발생적으로 발휘되었고, 사실상의 차이를 논평 없이 판단하고 인식하는 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인간이었다. 이제 시민은 광기를 상대하면서 근본적 권리를 행사하는데, 그러한 권력은 시민으로 하여금 법률인이면서 동시에 통치인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자유인은 부르주아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로서 광기의 첫 번째 판단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의식이 법원이나 보호시설에서 광기를 사법 또는 의료의 경험으로 되돌려보낼 때, 광기는 이미 이 이싁에 의해 은밀하게 제안당한 상태였다. 이러한 지배의 매우 과도적인 첫 형태는 가정법원이다. 낭비벽이 있거나 방탕한 아버지, 탕아, 물려받은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상속인 등, 과거에는 완전한 금치산 절차가 없었던 관계로 봉인장에 의해 제재되었던 이 모든 형태의 과오나 무질서 또는 비행이 이제는 가정법원의 관할에 속하게 된다. 어떤 관점에서 입헌의회는 자연발생적 실천 전체를 제도로 정착시킴으로써, 18세기 동안 쉴새없이 계속되었던 변화를 완결짓는다. 그러나 사실상 가족의 독단과 이해타산의 상대성은 이런 방법으로 제한될 리 없었다. 구체제에서 모든 진정서는 검증을 목적으로 경찰이 조사했던 반면에, 새로운 사법제도에서는 다만 가정법원의 결정에 불복하여 상급법원에 상소할 권리만이 있을 뿐이다. 가정법원은 아마 기능이 매우 미비했을 것이고, 이런 사유로 사법기관의 다양한 개편작업을 거치면서 존속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가정 자체는 상당 기간 동안 사법적 심급으로 간주되었고 비행, 무질서, 그리고 갖가지 형태의 무능력과 광기에 대해 법원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제도로 간주되고 법정으로 규정된 가정에서 관습법이 본래의 의미를 띠고, 이와 동시에 민간인이 비이성과의 일상적 대화를 공적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재판관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제는 광기에 대한 사적 의식의 공적이고 제도적인 지배력이 확립된다.

이 모든 것은 형사재판의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의 형태를 갖춘다. 형사재판에서 배심은 정확히 공공의식의 심급,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도믄 은밀하고 잔인한 침에 대한 공공의식의 이상적 지배를 구현하게 되어 있다. 공개토론의 규칙은 배심원들이 일시저긍로 위임을 받아 보유하는 그 지상권에 이론적으로 무한한 확산력을 부여한다. 타락, 비이성과 논쟁을 벌이는 자는 바로 국민 전체이다. 그런데 재판하는 법정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많은 보편성을 요구하고 특별한 법 해석의 규칙을 인간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일반적 규범으로 대체함에 따라, 판결의 진실이 일정한 공공의식에 의해 확증됨에 따라, 범죄는 내면화되고 범죄의 의미는 끊임없이 더 사적이게 되는데, 이러한 역설적 동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된다. 

형사범이 정신이상자 구역으로의 유치를 선고받는 것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는 표시가 아니지만, 어쨌든 그것이 특전임은 사실이다. 이것은 광기의 인정이 설령 소송 중에 확정된다 할지라도 판결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광기의 인정이 판결과 겹쳐졌고 판결의 결과를 변화시켰지만 판결의 핵심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범죄의 의미와 중대성, 행위의 절대적 가치, 이 모든 것은 온전히 남아 있었고, 광기는 의사에 의해 인정된다 할지라도 행위의 핵심에까지 영향을 미쳐 행위를 비실재화하지는 않지만 범죄는 변함없이 범죄인데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광기가 참작됨으로 해서 완화된 형태의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인간의 심리적 진실이 의미라게 되는 것은 비이성이 오랫동안 떠맡고 있던 기능과 의미를 이런 식으로 이어받고, 인간은 고전주의 시대가 사회의 가장 멀리 떨어진 경계로 내쫓았고 추방했던 유구한 힘을 인간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고독의 극단에서, 행복도 그럴듯함도 도덕도 닿지 않는 지점에서 발견한다. 이에 따라 비이성은 인간에게 있는 가장 주관적이고 가장 내밀하며 가장 깊은 것으로 부득이 객관화된다. 오랫동안 비난받아 마땅한 것의 표시였던 비이성이 이제는 결백과 비밀로 바뀐다. 그리고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끌려들어가 깊숙이 파묻히면서 인간에게 있는 본래 진실한 것을 표명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의 진실로서 표명되기에 이르는 모든 것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될 뿐더러, 서양의 법에서 언제나 최종 단계에 이른 광기의 속성이었던 그러한 결백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광기의 새로운 분할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즉, 한편으로는 타락에 내맡겨지고 어떤 결정론에 의해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을 광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적 가치의 거꾸로 되어 있지만 보완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영웅적 행위 쪽으로 투사된 광긱가 있다. 이성 안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의 일시적 중단 지점에 자리잡을 권리를 점차로 획득하게 되는 것은 오직 이 후자의 광기일 뿐이며, 책임이 완화되고 범죄가 더 인간적이게 됨과 동시에 덜 가혹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광기로 인해서이다. 이러한 광기가 설명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인간의 자기 확인이 이루어지는 도덕적 선택에 이 광기가 온통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가치에 일조하는 광기는 이성과 연관되고 이성에 끼어들며 이성의 관점에서 이해되는 반면에, 이 또 다른 광기는 외부의 어둠 쪽으로 던져지는데, 19세기 연속적으로 도덕성 장애, 타락, 타고난 사악성, 패륜이었던 그 기이한 선험적 개념, 즉 근대적 의식에 의해 이해될 수 없었고 비이성의 축소 불가능한 잔재를 형성하면서 절대저긍로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거부와 절대적인 비난에 의해서만 방지될 수 있을 뿐인 그토록 많은 해로운 광기가 탄생하는 것은 바로 그 외부의 어둠 쪽에서이다.

즉, 19세기는 좋은 광기와 나쁜 광기, 이를테면 이성의 주변부에서, 도덕과 양심의 가책이나 책임과 결백의 작용 속에서 막연히 현존한다고 인정되는 광기와 옛날부터의 배척과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무게에 다시 짓눌리는 광기를 분간하게 된다.

제4장. 정신병원의 탄생

 

 

제5장. 인간학의 악순환

자유는 광인이 미치게 되는 이유이자, 광기가 아직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광인이 비 광기와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광인은 자기 자신과 광인이라는 자신의 진실에서 벗어나면서, 진실도 결백도 아닌 영역에서 과오나 범죄 또는 우스꽝스러운 행동의 위험과 다시 만난다. 매우 근원적이고 매우 모호하며 매우 지정하기 어려운 출발과 분할의 시기에 광인으로 하여금 총칭적 진실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 자유는 광인이 언젠가는 자신의 진실에 사로잡히는 것을 방해한다. 광인은 자신이 광인이라는 진실 속에서 자신의 광기가 고갈되지 않음에 따라서만 미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의 경험에서 광기는 약간 범죄적이고 약간 가장된 것이며 동시에 약간 부도덕하고 약간 이성적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광인은 완전히 자유롭고 자유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다. 예전에는 광인이 자유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자유로웠으나, 이제는 이미 자유를 상실한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다.
우선, 광기의 문제에서 이제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자유이다. 실현 가능한 것의 지평에서 언뜻 보이는 자유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메커니즘을 통한 추적이 시도되는 자유이다. 광기에 관한 성찰에서, 광기에 관한 의학적 분석에서조차, 오류와 비존재가 아니라 자유의 실제적 결정요소, 즉 욕망과 의지, 결정론과 책임, 무의식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이 문제이게 된다. 

해방된 광인은 자기 자신과 동일한 평면에 놓인다. 다시 말해서 광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그는 자신의 진실 속으로 내던져지고 자신의 진실에 의해 완전히 장악 당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자유는 광기에 대한 광인의 관계, 즉 양면적이고 불안정하며 언제나 흐트러지지만 광인이 자신의 광기와 완전히 동일하게 되는 것을 가로막는 관계에 따라 광인의 위치를 결정했다.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침묵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광기를 예찬하는, 광기에 관한, 광기의 그 언어는 오래 전부터 침묵했다. 광기를 다루고 있는 17~18세기의 텍스트는 아마 대단히 많을 것이지만, 거기에서 광기는 의학적 범주의 이름으로, 또는 오류의 은밀한 진실을 예시하기 때문에 사례로 인용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이성의 명백한 본질인가에 대해 반대 추론에 의한 증거가 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이용된다. 광기의 의미는 의사와 철학자, 다시 말해서 광기의 깊은 본질을 알고 광기의 비존재를 제압하며 광기를 넘어서서 진리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1) 광인은 인간의 기본적 진실을 드러낸다. 즉, 인간의 기본적 진실은 광인을 원초적 욕망, 단순한 심리 기제, 육체의 가장 절박한 결정요인으로 귀착시킨다. 인간에게 광기는 연대기적이고 사회적이며 심리적이고 체질적인 일종의 유년기이다. 정신병자를 관리하는 기술과 어린 청소년을 기르는 기술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유사점이 있는가!라고 피넬은 인정했다.

ㅡ그러나 광인은 인간의 최종저거 진실을 드러낸다. 즉, 광인은 정념, 사회생활, 그리고 광기 없는 최초의 본성으로부터 그를 떼어놓는 모든 것이 어디까지 그를 떠밀 수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광기는 언제나 문명과 문명의 불편함에 연관되어 있다. 

(2)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종의 비시간적인 절단을 실행하고, 시간이 아니라 공간을 분할하며, 인간의 자유가 전개되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지도 따라 내려가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한 흐름의 중단이나 그러한 흐름이 육체의 결정론 속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광기에서는 생체현상, 객관화될 수 있고 과학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인간의 유일한 진실이 득세한다. 

ㅡ그러나 광기는 육체의 질병에서 나타나지 않는 진실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육체의 질병과 구별된다. 즉, 광기는 그때까지 비활성 상태에 있던 위험한 본능, 병적 악의, 번민, 난폭성의 내면세계를 솟아오르게 한다. 광기는 인간의 자유에 의미를 부여하는 심층을 나타나게 하는데, 광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 심층은 야만상태의 악이다.

(3) 광기의 결백은 이 심리적 내용의 강도와 작용력에 의해 보증된다. 들끓는 정념에 얽매이고 강렬한 욕망과 이미지에 이끌린 광인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그의 면책은 객관적 결정론의 결과인 범위 내에서 의학적 판단의 문제이다. 한 행위의 광기는 그것을 결정한 원인의 수數에 따라 평가된다.

ㅡ그러나 한 행위의 광기는 정확히 어떤 원인으로도 결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판단한다. 광기의 진실은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무의식적 자동성에 있다. 인간에게 광기의 진실은 이유가 없는 것, 피넬이 말했듯이 이해관계도 동기도 없이 무반성적 결정작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의 진실이므로, 하나의 행위에 이유가 없을수록, 그 행위는 광기와만 관련된 결정론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더 많게 된다.

(4) 인간이 광기 속에서 자신의 진실을 발견하므로, 치유가 가능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진실과 광기의 바탕으로부터이다. 광기의 무無근거에는 재발의 원인이 있는데, 광인이 잠겨드는 불행한 객관성에 아직 비밀이 남아 있다 해도, 그 비밀은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비밀이다. 질병이 건강의 완전한 상실은 아니듯이, 광기는 이성의 완전한 상실이 아니라 아직 실재하는 이성 안에서의 모순이고, 따라서 광기에 대한 인간적 치료, 다시 말해서 합리적인 만큼 너그러운 치료는 이성적 환자를 전제로 하며, 환자를 이러한 측면에서 맞아들일 확고한 근거는 바로 이러한 전제에서 찾아낼 수 있다.

ㅡ그러나 광기가 드러내는 인간의 진실은 인간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진실과 직접적으로 모순된다. 그러므로 모든 치료의 첫 번째 계기는 이 용인할 수 없는 진실의 억압, 이 진실에 번져 있는 죄악의 폐기, 난폭함과 욕망의 무시일 것이다. 

이러한 네 가지 모순은 19세기 동안 줄기차게 되풀이되면서 광기에 관한 성찰을 수반하게 된다.

사드와 고야 이후로 비이성은 모든 작품에서 근대 세계에 대해 결정적인 것, 다시 말해서 모든 작품이 내포하는 살인적이고 강압적인 것에 속한다. 타소의 광기, 스위프트의 우울증, 루소의 망상은 그들의 작품 자체가 그들에게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작품에 특유한 것이다. 실제로 하나의 영역이 실재했는데, 거기에서 광기는 작품에 의문을 제기했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작품을 축소시켰으며 작품의 상상계 풍경을 환상의 비정상적 세계로 만들었다. 정신착란과 얽혀 있는 그러한 언어는 정신착란으로서의 작품이 아니었다. 역으로 정신착란이 작품으로 확인될 경우에도, 정신착란은 광기라는 빈약한 진실에서 떨어져나갔다. 

작품이 잠겨드는 광기는 우리의 작업공간이고, 우리의 작업을 끝내기 위해 가야할 무한한 길, 우리가 사도와 동시에 주석가로서 떠맡아야 할 소명이다. 그래서 니체의 오만에, 반 고흐의 겸허에 광기의 목소리가 언제 최초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는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광기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으로서만 있을 뿐이고, 작품은 광기의 극한으로 광기를 한없이 밀어내며, 작품이 있는 곳에 광기는 없지만, 광기는 작품의 진실에 내포된 시간의 막을 여는 까닭에 작품과 시기를 같이한다.작품과 광기가 함께 태어나고 완성되는 순간은 세계가 작품에 의해 소환되고 작품 앞에서 세계 자체의 모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의 시초이다.

광기의 책략과 새로운 승리. 즉,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헤아려보고 광기를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는 심리학의 노력과 논쟁 속에서 니체, 반 고흐, 아르토의 과도함 같은 작품들의 극단성과 씨름하므로, 이 세계가 결백을 입증받아야 하는 것은 바로 광기 앞에서이다. 그리고 이 세계 안의 어떤 것도, 특히 이 세계가 광기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광기의 작품들에 의해 이 세계가 정화된다는 것을 이 세계에 확신시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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