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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 기사라는 게 있다. '신묘년에 왜가 쳐들어와서 백제 등을 신민으로 삼았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 요 구절과 일본서기 내용 때문에 한때 일본에서는 진지하게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 당시 정황상 일본이 백제 등을 신민으로 삼는 건 말이 안 된다
(1) 외교 문제: 백제와 왜는 우호 관계를 형성한 국가로 굳이 싸울 일 없음
(2) 국력 문제: 당시 왜는 일본 열도 일부만을 장악한 상태로 한반도 남부를 차지할 역량이 안 됐다
그래서 국내 사학계 초기 거두 정인보 선생은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한다. 바로 중간에 생략된 주어가 있다는 것. 즉, 고구려라는 주어가 중간에 생략되어, 실제로는 '왜가 바다를 건너오니 (고구려가) 무찌르고 백제 등을 신민으로 삼았다' 고 해석했던 것
오랫동안 국내 사학계는 정인보 선생의 해석을 지지했다. 왜냐면 당시 정황상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거든. 근데 이 해석은 치명적인 오류가 몇 개 있었다
(1) 해석이 매우 부자연스러움. 물론 중간에 생략된 주어가 있다고 보는 건 실제로 있는 한문 해석법이긴 하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맥락에 맞게 해야 되는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여기선 맥락에 맞지 않다.
(2) 신묘년으로 추정되는 해엔 막상 백제는 고구려의 신민이 아니었다. 아신왕이 고구려한테 기는 건 훗날의 일
솔직히 말해서 한문 해석을 자연스럽게 하려면 일본처럼 임나일본부식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 그런데 해석은 자연스럽지만 이렇게 되면 내용이 병신이 된다. 참고로 임나일본부설은 본토인 일본조차 요즘은 부정할 정도.
그렇다고 당시 국제정세에 끼워 맞추기엔 해석을 매우매우 부자연스럽게 해야 된다. 그래서 한 때 광개토대왕릉비 조작설까지 진지하게 학계에서 논의됐지만, 결국 조작설은 논의 끝에 학계에선 부정된다. 그리고 이미 말했지만 국제정세에 끼워 맞춘 해석조차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학계에선 새로운 학설이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학설인데, 바로 광개토대왕릉비를 만든 장수왕이 구라를 쳤다는 거.
그동안 한일 양국 학계는 방향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론 '아 당연히 광개토대왕릉비는 당대 1차 사료니 진실된 얘기만 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서로 해석에 목숨 걸었던 거고. 근데 생각해보자. 과연 당대 사료라고 진실만 적혀있을까??
그동안 학자들이 놓친 가장 큰 부분은, 광개토대왕릉비는 역사서가 아니라 무덤 비석이란 점이다. 각 잡고 쓴 역사서마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조작이 들어가는 판국인데, 광개토대왕릉비는 그 건립 목적 자체가 역사 편찬이 아니다. 광개토대왕릉비는 장수왕이 지 애비를 기념하려고 세운 비석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 최근 학계에선 '야 잠만. 이거 사실 장수왕이 지 애비 띄울려고 구라 친거 아냐???'라는 학설이 나왔다. 역사서 편찬할 것도 아니고, 아빠 띄울 목적으로 세운 거라 첨부터 객관성 같은 걸 지킬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 그래서 장수왕은 자기 아빠 업적 띄울 겸 고구려의 천하관까지 섞어 대형 구라를 치게 된다
즉 장수왕은 '동북아시아는 고구려의 세계인데, 감히 왜 따위가 우리 고구려가 관할하는 백제 등을 침공했다. 그래서 존나 뛰어난 우리 아빠가 가서 왜를 격파하고 백제 등을 해방시켜줬다'는 소설을 썼단 거다.
이렇게 되면 기존 학설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애당초 신묘년 기사의 문구는 진실이 아니었으니, 자연스럽게 해석을 하면 그 당시 상황과 맞지 않았던 게 당연했던 것.
결국 장수왕의 구라에 천오백년 뒤 한일 양국의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낚이게 된 셈. 역시 적국 상대로 스파이 보내서 국력약화할 생각한 사람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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