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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1999년 KBS에서 방영되었던 '역사실험 - 환단고기' 편을 다시 보며 느낀 감정과 우리 상고사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책은 워낙 논란이 많아서 언급하기조차 조심스러운 면이 있지만, 우리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거대한 벽이자 등불 같은 존재이기도 하죠.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라는 네 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것입니다. 이 책이 주장하는 우리 역사의 길이는 무려 1만 년에 달합니다. 우리가 흔히 배우는 반만년 역사를 훌쩍 뛰어넘어, 단군조선 이전에도 환국과 배달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있었다고 말하죠.
특히 환국의 영토가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달해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는 기록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대목입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초인 수메르가 우리 민족인 '스밀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나, 치우천왕이 황제 헌원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했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책을 바라보는 학계의 시선은 매우 차갑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출처의 불투명성입니다. 1911년 계연수가 편찬했다는 원본은 사라졌고, 70년이 지난 1979년에야 제자인 이유립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었다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책 속에 등장하는 '산업', '문화', '인류', '남녀평등' 같은 단어들은 근대에나 쓰이던 용어들이라, 과연 고대와 중세의 저자들이 쓴 글이 맞는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킵니다. 4천 년 전 단군조선의 인구가 1억 8천만 명이었다는 기록도 당시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수치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환단고기를 단순히 '위서'라고 치부하며 던져버릴 수 없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적 검증의 결과들 때문입니다. 단군세기에 기록된 '오성취루' 현상, 즉 다섯 행성이 일렬로 늘어선 천문 현상이 실제 서기전 1734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현대 천문학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또한 비파형 동검의 출토 범위가 환단고기가 설명하는 고조선의 강역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삼성기'와 같은 책들이 국가에 의해 수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이 책들이 아주 근거 없는 창작물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다큐멘터리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 단군상의 목이 잘려나간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혹은 특정 종교의 우상으로만 치부하며 배척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사관에 의해 난도질당한 우리 상고사가 해방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김지하 시인의 말처럼, 상고사는 우리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거대한 문화적 자산인데, 그 입구인 단군조선부터 부정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믿고 싶은가'와 '무엇이 진실인가' 사이의 갈등일지도 모릅니다. 학계에서는 실증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며 외면하고, 재야 사학계에서는 식민사관의 잔재라며 학계를 비판하는 평행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대중에게 그토록 열렬히 읽히고 있는 이유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는 환단고기를 무조건적인 추종의 대상이나 맹목적인 비난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상고사를 연구하는 풍성한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중국과 일본은 신화조차도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우리는 있는 기록조차 의심하며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환단고기가 던진 1만 년 역사의 화두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책이 진짜냐 가짜냐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잃어버린 우리 상고사의 퍼즐을 맞추기 위한 거대한 여정의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깊을수록 그 위에 핀 문화의 꽃도 더 찬란할 테니까요. 4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썼다는 가림토 문자의 신비와 찬란했던 대륙의 기상을 가슴 한편에 품으며, 언젠가 밝혀질 진실의 날을 기다려 봅니다.